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85
“흩어져라! 섬광을 피해 돌파해!”
일사불란?
아니, 거의 혼돈의 형태로 진형이 흩어졌고, 공격자의 입장에서는 난이도가 오른 셈이었다.
만약 생화의 파일럿이 인간이었다면.
“이 정도는 문제없습니다.”
소세계창유로 생화와 연결되어 있는 플라리노가 조준 지점을 빠르게 바꾸었다.
신경의 속도로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발밑의 개미를 밟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굉음에 모든 소리가 파묻히고, 섬광에 스친 것만으로도 마족들이 타 버렸다.
꽃밭까지 후퇴한 루피스트는 싸우는 와중에도 전황을 꼼꼼히 살폈다.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다.’
화족의 타격에 의해 마족들이 줄어드는 속도가 기준치를 훨씬 상회했다.
‘기뻐해야 하나?’
30분 동안 사망한 마족들의 숫자는 얼추 계산하건대 무려 15만이 넘었다.
즉, 소규모 왕국이 보유한 군대 전체를 30분 만에 전멸시킨 화력인 것이다.
문제는 그 거대한 숫자조차 지옥의 군대 전체 병력의 0.1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연합군의 피해는 대략 4퍼센트.’
시간이 지날수록 전력의 비대칭은 가속화될 테지만, 그것조차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계속 밀려들 것이다.’
아무리 죽여도 끝이 없기 때문에 병사들은 적을 무한으로 느끼게 된다.
폭포 아래에서 물을 맞을 때, 물줄기가 언제 끊어질지를 생각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이 억 단위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이루키가 모든 것을 걸고 원소 폭탄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유였다.
군대의 중진에 위치한 발칸이 턱을 괴었다.
“흐음.”
군중기를 통해 꽃밭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거대한 흐름으로 읽혔다.
‘확실히 유인하고 있다. 게다가 생화.’
섬광이 연사로 쏘아지는 모습을 뚫어지게 지켜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 대비 반응 속도로 보건대 기계의 수준이 아니야. 인간은 더더욱 느릴 테고.”
결론이 나왔다.
“화족이군.”
소세계창유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스모도.”
발칸이 불렀으나, 스모도는 지평선 끝에 있는 인포메이션 캐슬에 시선을 빼앗긴 상태였다.
“뭘 그렇게 보고 있어? 가고 싶어?”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발칸을 돌아보았다.
“아니, 원래 나는 여행할 때 핫플(핫 플레이스)은 다 찍는 주의라서.”
발칸이 입꼬리를 올렸다.
“보내 주고 싶지만 지금은 안 되겠다. 고대 병기에 집중해. 어디가 제일 약하지?”
결벽시를 가진 스모도는 삼백 기의 생화 중에서 가장 동요하는 움직임을 찾아냈다.
“북서쪽. 스물세 번째, 마흔일곱 번째, 여든여덟 번째. 저 세 기는 다른 것과 달라. 겁을 먹은 것 같은데.”
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탈취해라. 한 기만 탈취해도 인근에 있는 생화는 전부 파괴할 수 있을 테니까. 제타로랑 가.”
“오케이.”
스모도와 제타로가 선두로 나서자 정예 마족들이 빠르게 뒤를 쫓았다.
나타샤가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발칸, 나는?”
신중하게 고민에 잠긴 발칸이었으나, 어차피 나타샤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였다.
“놈을 죽여.”
마하의 기사.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나타샤가 꽃밭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빛냈다.
“좋았어.”
꽃밭의 중심에서 피어오르는 리안의 투기가 그녀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광신 (2)
***
욕망왕 구스타프 하비츠 17세.
그의 마음에 깃든 파동을 공유하는 세인 일행은 심각한 정신적 대미지를 받았다.
세인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제길, 판단 미스야.’
하비츠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는 생각에, 파동의 성질까지는 계산에 넣지 못했다.
아니, 과연 그럴까?
문제를 앞에 두고 변수를 간과할 만큼 세인이 살아온 세월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계산했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을 뿐, 의식의 흐름에서 분명 짚고 넘어갔을 거야.’
문제는 극악이 뿜어내는 심파동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끔찍하다는 점이었다.
‘모르는 것에 대비할 수는 없다.’
하비츠의 욕망은 형태로 나타낼 수 없는 순수한 성질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불이라는 성질을 형태로 정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불을 알고 있는 것처럼…….’
모든 인간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하비츠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좋다가도 금세 싫어지고.’
너무나 사랑하기에 오히려 어떤 끔찍한 짓이든 저지를 수 있는 혼돈의 존재.
‘그 지점이 하비츠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세인이 입을 열었다.
“에덴, 정신 차려.”
철륜안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공포에 잠식당하던 에덴의 정신이 조금씩 맑아졌다.
“아…….”
지금의 효과를 내기 위해 세인의 무언가가 희생되었다는 생각에 도달하자 에덴의 눈빛이 변했다.
“네, 죄송합니다.”
요라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휘둘렸지만 수치심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하비츠를 제거한다. 단순한 일이야.’
모두의 각오가 무르익을 무렵 쿠안과 아르민, 메이레이가 동시에 몸을 날렸다.
“흐음.”
적들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하비츠는 편한 자세로 고개를 좌우로 까닥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태연하여 소름이 돋았으나, 아르민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놈은 혼자다. 하비츠를 지킬 마족은 한 마리도 없어. 사건을 없애기 전에 죽이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스피릿 존이 펼쳐지면서 하비츠에게 슬로 마법이 걸렸다.
고개를 일정한 리듬으로 까닥거리는 진자 운동의 속도가 떨어지자 메이레이가 음향 대포를 시전했다.
‘됐다!’
여전히 모두는 하비츠를 인지하고 있다.
슬로 마법과 음향 대포로 육체와 정신을 구속시켰으니 쿠안이 베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잔인하게 죽이고 싶지만…….’
어릿광대 피에로의 움직임으로 하비츠의 인지 밖으로 벗어난 쿠안이 검을 치켜들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10미터의 간격을 순식간에 좁히려는 그때, 하비츠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하아…….”
시간은 느리게 흘렀지만 소리와 표정만으로도 하품을 하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인의 생각이 빠르게 질주했다.
‘아주 여유 만만하군. 하지만 그 허세도 여기까지다. 너는 죽을 수밖에 없어.’
철륜안을 통해서 분석한 모든 요소들이 하비츠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아품.”
하비츠에게 그런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다.
황무지의 하늘이 번쩍 빛나더니 낙뢰가 대지를 긁었고, 곧바로 굉음이 터졌다.
콰르르르르릉!
소리가 더 늦기에 생존한 것이지만, 바로 앞에서 터진 소리는 냉정을 유지할 수준이 아니었다.
“크윽!”
아르민이 플리커 마법을 시전해 멀어지고, 쿠안과 메이레이가 사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갑자기 무슨……!”
중심을 잃고 비틀거린 아르민이 뒤를 돌아보자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흐음, 어제 잠을 못 잤더니 피곤하네.”
연기가 걷히고, 검게 그을린 땅 위에서 하비츠가 처음과 똑같이 목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 뭐 했어?”
모두가 멍하니 하비츠를 지켜보는 가운데 세인이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구름이?’
마법이 아니다.
대자연의 무수한 요소들은 오래전부터 이 시간, 이 장소에 벼락을 예고하고 있었다.
‘단지 그 자리에…….’
하비츠가 있었을 뿐인 것이다.
‘설령 기후를 읽는다고 해도 낙뢰가 떨어지는 지점은 인간이 계산할 수준이 아니야. 따라서 이것을 노리고 기다렸다고도 볼 수 없다.’
오직 욕망.
단지 어제 잠을 설쳐서 피곤했고,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고 싶다는.
‘혼돈에서 촉발되는 사고.’
이런 것이었다.
“이상한 놈들이군. 이곳으로 불러 놓고 아직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날 죽이려는 거 아냐?”
다시 늘어지게 하품을 한 하비츠가 그 자리에서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았다.
“쉬.”
아이처럼 입으로 소리를 내며 오줌을 갈기는 모습에도, 세인 일행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방비 상태지만 이것 또한 그의 욕망이 시키는 행위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 슬로를 걸어야 하나?’
아르민은 고민에 빠졌다.
‘만약 내가 슬로를 건다면 이번에도 벼락이 내리칠 확률이 크다. 아니, 분명 그럴 거야.’
어쩌면 그의 머리 위로.
‘잠깐만, 그렇다면 반대로 내가 슬로를 걸지 않으면 벼락은 치지 않는다는 것인가?’
아르민은 고개를 저었다.
‘순서가 틀렸다.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어. 내리칠 벼락은 결국 내리치니까.’
그것이 자연의 섭리.
‘따라서 정확히 하자면, 조금 전 벼락이 내리쳤기 때문에 내 생각이 변했다고 봐야 한다.’
만약 벼락이 치지 않았다면 지금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현재 나는 슬로를 걸고 싶지 않다. 만약 이 생각이 벼락으로 인해 바뀐 것이라면 오히려 반대로…….’
지금 슬로를 걸어야 되나?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조금 전의 생각으로 인해 변한 내 생각이다.’
결국 끝없는 순환의 고리에 빠질 뿐이었다.
‘빌어먹을!’
아르민은 순한 성격이지만 이번만큼은 욕지거리가 목까지 차올랐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존재하지?’
정해진 미래.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죽이고 싶을 때 죽이고, 때리고 싶을 때 때리고…….’
모든 것에 대해 무죄.
결국 하비츠는 자신이 욕망하는 모든 행위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르민,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라.”
세인이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철륜안의 회전을 무섭게 가속시켰다.
“내가 맡을 테니까.”
하늘이 검게 물들고, 2개의 광륜이 합쳐진 일월광륜이 빛의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정해진 미래. 일단 당해 보니 대충 감 잡았어. 벼락이 치든, 강풍이 불어오든, 지진이 일어나든.”
막아 내면 된다.
“쉬. 쉬.”
하비츠의 오줌 줄기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쿠안이 다시 몸을 날렸다.
‘세인이 정해진 미래를 차단할 수 있다면, 나는 하비츠가 인지하기 전에 죽인다.’
그 순간 땅을 내려다보는 하비츠의 몸에서 보랏빛 오라가 피어올랐다.
“…….”
12개의 외중력을 뽑아낸 쿠안이 하비츠를 중심으로 하염없이 맴돌았다.
그러다가 외중력이 사라지자 땅에 착지하더니 관성 그대로 몇 걸음을 절뚝거리다가 멈췄다.
“뭐지?”
쿠안이 물음을 던지는 순간에는 모두가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리리아가 자문했다.
“우리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그건 알아. 하지만 대체 누구를?’
하비츠의 화신술 배니싱이 발동했다는 것조차 그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 시원하다.”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 볼일을 끝마친 하비츠가 바지춤을 올리고 장검을 붙잡았다.
“그럼 이제 죽여 볼까?”
세인을 첫 번째 타깃으로 삼은 이유는 그의 얼굴이 가장 재수가 없었기 때문.
“시체같이 생겼잖아.”
하지만 그의 욕망이 내린 결론은 이성적, 논리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