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89
“대단한 함정은 못 만들 겁니다. 적의 규모에 비해서 작업 효율이 너무 떨어져요.”
급조된 함정이 얼마나 위협적일까 싶었다.
“꼭 크기나 형태만으로 규모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에요.”
“네?”
단테가 정밀한 광자 출력으로 양 손바닥 사이에 레이저 모델을 띄웠다.
정육면체의 프레임 내부에 또 다른 정육면체의 프레임이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건……?”
마치 끝없이 탄생하는 것처럼, 두 정육면체가 안과 밖의 개념을 역전시키며 움직였다.
“차원.”
단테가 입꼬리를 올렸다.
고대 병기 생화의 에너지는 방대한 꽃잎이 받아들이는 태양광을 원천으로 한다.
하늘에는 한 점의 구름도 없었다.
이미 성전에서 세계기후기구에 협조를 요청해 날씨를 조작한 덕분이었다.
“태양을 가려라.”
발칸은 즉각 메커니즘을 간파했다.
각 부대에 소속되어 있는 비행 마족들이 하늘로 솟구치자 일대가 밤처럼 어두워졌다.
꽃밭의 지휘관 에녹스가 지시를 내렸다.
“요격.”
삼백 기의 생화가 하늘로 섬광을 쏘아 올리자 붉은 고기 천장이 시원하게 뚫렸다.
“지금이다! 돌격!”
마족들의 재가 함박눈처럼 내리는 가운데, 지상 병력이 꽃밭으로 침투했다.
화족의 족장 프로테아가 소리쳤다.
“에녹스 님! 연합군이 밀리고 있습니다! 더 가까워지기 전에 생화로 밀어내야 합니다!”
“안 돼. 생화는 계속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하늘을 열지 못한 상태에서는 고철일 뿐이야.”
연합군의 십중 포위망을 뚫고 들어온 마족의 사단장이 소리쳤다.
“죽이지 않아도 좋다! 끔찍하게 고문해라! 제발 죽여 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망가뜨려라!”
“우아아아아!”
전쟁의 목적마저 퇴색시키는 지령에, 각자의 위치에서 대기하던 연합군의 낯빛이 하얘졌다.
“쓰레기 같은 것들.”
에녹스가 검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형제자매들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아가페의 빛이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다. 가자!”
“크하하하! 엘프다, 엘프!”
탐욕의 눈으로 돌진하는 마족들을 주시하며 엘프 부대가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이데아를 향하여!”
에녹스의 두 다리가 허공에 뜨더니 전방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쏘아졌다.
“재활용도 안 되는 썩은 고깃덩어리들.”
그녀의 검에 회오리가 맺히더니, 검술을 펼칠 때마다 마족들이 토막으로 분리되었다.
칼날처럼 예리한 바람이 마족 대대장의 오른팔을 자르고 지나갔다.
“큭! 무슨 바람이……!”
강철에 맞은 느낌이었다.
“흥, 너희들이 하등하다는 증거다.”
비행 마법 에이오스, 절삭 마법 아루오페.
모두 노르가 구사하는 고대 마법이었다.
“엘프는 신인류.”
노르와 페어리의 혼혈.
같은 고대 마법이라도, 페어리의 정신력에서 나오는 마력은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음 세대의 이데아는 우리 것이다.”
에녹스는 언젠가는 엘프가 인간의 사회에 섞여 신에게 도달하는 꿈을 꾸었다.
“포위해! 몸으로 깔아뭉개란 말이야!”
여단장의 지시에 한 덩치 하는 마족들이 사방에서 땅을 울리며 돌진했다.
시야가 완전히 가로막힐 정도였기에, 에녹스는 깃털처럼 가볍게 지상에 착했다.
“냄새나는 육신을 들이밀다니.”
차가운 눈으로 적들을 훑은 그녀가 개미처럼 가는 허리를 끝까지 뒤틀었다.
“마하가르트.”
노르에게는 집단 마법.
하지만 정精의 친화력이 100퍼센트인 엘프는, 공기 외에 다른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람의 정이여!”
에녹스가 허리의 탄력을 이용해 검을 가로 긋자 강풍이 사방으로 퍼졌다.
“크윽!”
마치 거대한 파도에 맞은 듯, 거구의 마족들이 바닥을 끌며 밀려났다.
우아하게 회전한 에녹스가 검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두 눈을 번쩍 치켜떴다.
“에스타시온!”
노르 마법사 100명이 모여야 가능한 집단 마법이 그녀의 정에서 홀로 폭발했다
반경 100미터의 대기가 수만 개의 작은 칼날이 되어 난기류를 일으켰다.
“크아아아!”
푸드득! 푸드득! 푸드득!
마치 거대한 믹서에 갇힌 것처럼, 너덜너덜 갈린 마족들의 살점이 휘몰아쳤다.
“제길! 저 엘프, 가만두지 않겠다!”
잔인한 마족들조차 지금은 에스타시온의 위력 밖에서 지켜보는 게 고작이었다.
“후우.”
에녹스가 검을 뽑아 들자 기다리고 있던 마족들이 살의를 폭주시키며 달려들었다.
“손가락부터 씹어 먹어……!”
펑 소리를 내며 마족의 얼굴이 터졌다.
“족장님!”
바람의 정에서 태어난 엘프 궁수들이 저지선을 밀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전원 연사하라!”
궁수 부대가 강철 시위를 튕길 때마다 화살이 마하의 속도로 날아가 소닉붐을 터트렸다.
인간보다 육체 능력이 월등한 그들의 연사 속도는 초당 7대에 달했고…….
펑! 펑! 펑! 펑!
화살의 위력은 마족의 육체를 뚫고 뚫어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였다.
선봉대가 싸우는 광경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던 테스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밸런스는 맞췄네. 비행 마족을 희생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이대로 버티면…….”
그때 스키마의 감각 계열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미약한 진동이 전달되었다.
“뭐야?”
진원으로 고개를 틀자, 한 기의 생화가 연합군 쪽을 향하고 있는 게 보였다.
“피해!”
리안이 테스의 손목을 잡고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섬광이 땅을 긁고 지나갔다.
우르릉 땅이 울면서 테스가 몸담은 천인대에 사선으로 검은 선이 그어졌다.
몸을 일으킨 리안이 중얼거렸다.
“누군가 생화를 탈취했어.”
“내가 갈게!”
테스는 소중한 친구지만, 전쟁 중에 개인적인 감정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조심해.”
테스가 엄지를 세워 보이고 멀어지자 리안은 다시 고개를 돌려 전방을 눈에 담았다.
그 순간.
“…….”
시간의 시소가 발생했다.
단지 앞을 돌아봤다는 이유만으로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도대체 왜?
아직 뇌가 생각을 만들지 못한 상황에서도 온몸의 세포가 맹렬히 의문을 뿜어냈다.
200미터 앞에 있는 또 다른 천인대.
후미의 병력이 시야를 가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
더 멀리에서는 수많은 병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하늘로 튕기고 있었다.
후미의 병사들이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인지조차 못 하고 있다는 뜻.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시간의 시소가 풀리면서, 리안의 팔이 대직도를 가슴 깊숙한 곳으로 끌어당겼다.
두두두두두두두!
마치 지뢰가 터진 것처럼 병사들이 튕겨 나가고, 마침내 후미가 뻥 뚫리는 것과 동시에…….
쾅!
리안의 대직도에 충격이 전해졌다.
“크으으으!”
수십 미터를 날아간 리안이 발바닥으로 브레이크를 걸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명치가 뚫린 기분이다.’
전방을 노려보자, 블랙 계열 드레스를 입은 나타샤가 골반을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전투 인형…….’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동작이 앙증맞으면서도 상대를 유혹하는 듯했다.
한 바퀴를 회전한 그녀가 고개를 한쪽으로 꺾은 채로 허리에 두 팔꿈치를 붙이고 손을 활짝 폈다.
“안녕?”
리안은 그녀의 손가락에서 시작된 10개의 별빛이 강선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추적했다.
후드를 뒤집어쓴 해골의 화신이 머리 꼭대기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신의 무도.”
나타샤가 사라졌다.
히든 코드 (1)
시옥.
사탄을 추종하는 광신도가 등장하자 하비츠는 할 일이 없다는 듯 물러섰다.
‘시옥이 인간이라고?’
후드를 벗은 여자의 얼굴을 눈에 담고 있으면서도 세인은 의문했다.
‘왜 인간이지?’
물론 사탄이라는 개념 또한 인간인 하비츠가 수행하고 있으니 특이한 일은 아니다.
극선을 미로가, 공을 나네가, 박애를 시로네가.
어떤 개념이든 현상으로 드러내려면 하드웨어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
그렇기에 세인의 의문은 논리적오류가 아닌, 오직 감정의 문제였다.
즉, 어째서 시옥마저 인간이어야 하는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탄을 추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과, 스스로 선택해서 사탄을 추종하는 것은 다르다.
광신.
가장 위험한 방법으로 마음을 던지는 행위.
‘시옥의 의지가 하비츠와 별개라도, 결국 하비츠의 의지인 것과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직접 손을 쓰면 곤란한 상황이 닥치고, 청탁을 하려고 해도 꼬리가 밟힐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알아서 행동해 준다면?’
사탄의 수족으로 이보다 더 효율적인 존재가 있을까?
“더 이상 감출 필요 없겠지.”
얼굴을 가리고 있던 남은 11명의 시옥이 동시에 후드를 뒤로 넘겼다.
여자, 노인, 어린아이.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외모였다.
이마가 베인 여자가 쿠안을 노려보았다.
“인지 바깥에서 들어오는 공격이라. 흥미롭군. 우리 외에 히든 코드를 다루는 자를 만날 줄이야.”
쿠안이 되물었다.
“히든 코드?”
“모를 수밖에 없지. 이면 세계의 이지異知니까. 너희들이 세상을 논리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논리적 코드가 실험되어야 하거든. 일종의 테스트 모드에서 사용되는 코드지. 우리는 치트라고 불러.”
세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너희들은 이 세계가 논리적이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아니야. 단지 너희들이 현실의 코드에 적응한 것일 뿐.”
그녀가 검지를 들었다.
“꿈에서는 아무리 허무맹랑한 사건이라도 납득이 되잖아? 당연해. 드리모라고 하는데, 이면 세계의 수많은 코드가 그곳으로 들어가 걸러지거든. 그리고 안정성이 확보된 코드만 현실에 적용되는 거야. 결국 너희들이 논리라고 믿는 건, 이 세계를 만든 자들이 편의에 의해 정한 규칙에 불과한 거야.”
세인 일행은 멍하니 듣고 있었다.
“드리모에서 현실 세계에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코드, 즉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코드는 라는 버퍼링으로 빠져나가지. 그리고 그곳에서 현실 세계의 폐기된 정보들과 결합해.”
세인이 물었다.
“결합한 다음에는?”
“디 어비스라는 시스템에 끝없이 저장되는 거지.”
미로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모든 정보의 종착지.’
현재의 상태를 기반으로 세계가 도달하는 마지막 미래가 구현된 장소라고 들었다.
‘지옥 같았다고 했던가?’
“아주 재밌는 곳이야.”
시옥의 생각은 달랐다.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이 전부 축적되어 있으니까. 그곳에서 뒹구는 유적이나 기록을 잘 살펴보면 미래의 특정 시점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 수 있거든. 한번 가 봐. 되게 재밌어.”
세인은 고개를 저었다.
“현재가 바뀌면 미래도 바뀐다. 우리가 이기면 디 어비스는 지옥이 아니게 될 거야.”
“다 정해져 있는 거라니까.”
여자가 비웃음을 지었다.
“이면 세계, 현실, 드리모, 언더 코더, 디 어비스. 동일한 시간대에 5개의 시스템이 동시에 운용되는 세계야. 상상할 수 있어? 무엇을 바꿀 수 있는데?”
세인은 침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