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90
“똑똑히 들어. 인간은 그저 현실이라는 공간을 사용하는 입주자에 지나지 않아.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고.”
“하지만 모든 시스템은 현실이라는 공간을 위해 운용되고 있는 거겠지. 네 말대로 인간이 사용자라면, 지금의 세계를 거부할 권한도 우리에게 있어.”
“하하하하!”
미친 듯이 폭소를 터트리던 여자가 뚝 하고 웃음을 그치더니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한때는 그랬던 적도 있었겠지.”
인간이 모든 것을 정의했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아니야. 연결되어 있지 않거든. 미싱 링크를 깨닫지 못한 인간이 어떻게 율법을 바꾸겠어? 물론 몇몇 인간이 관리자 코드를 다루기는 하지. 하지만 그런다고 이 세계가 꿈쩍이나 할 것 같아?”
세인이 입을 다물자 여자가 쿠안을 돌아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칭찬해 주고 싶어. 제법 괜찮은 치트야. 하지만 우리는 수준이 다르거든.”
이마에서 흘러내리던 피가 사라지면서 검에 베인 상처마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치유력? 아니, 상처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메이레이가 중얼거렸다.
“교만의 1시.”
“응?”
그녀를 돌아보는 순간 를 통해 여자의 파동이 환청으로 전해졌다.
“……말도 안 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후후, 그래. 나는 교만의 1시. 과거의 선택을 바꿀 수 있는 히든 코드를 다루지.”
“헛소리.”
쿠안이 내뱉었다.
“내 기억에는 여전히 너를 벤 순간이 확실히 남아 있어. 내 기억은 거짓이 아니야.”
“그건 네 생각이고. 내가 알 게 뭐야?”
교만의 1시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도 이해가 안 돼? 네가 아는 논리가 절대적인 게 아니에요. 이건 네가 모르는 치트라니까? 봐, 상처가 없어졌잖아. 내가 후회했거든. 조금만 더 상체를 젖혔으면 베이지 않았을 텐데 하고. 그래서 선택을 바꾼 거야.”
마음의 파동이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진짜라고?’
교만의 1시는 과거에 후회했던 선택을 바꿀 수 있고, 나비효과를 통해 결과를 출력한다.
‘끝없이 바꾼다.’
이는 누군가의 인생에서 후회스러운 사건이 전부 소거된다는 뜻으로, 하비츠가 어떤 결정을 내려도 항상 옳게 되는 현상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건 위험한데.’
성전에서 히트맨의 역할을 맡았던 쿠안은 교만의 1시를 죽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직감했다.
‘후회하지 않는 죽음을 만들어야 한다.’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스스로 죽음을 도모하게 만들거나,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거나.’
두 가지 경우 모두 ‘후회’라는 감정이 촉발되지 않기에 과거의 선택을 바꾸지 못하지만…….
‘과연 가능한 난이도인가?’
해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메이레이입니다. 지금부터 시옥 12명의 파동을 전부 도청할 거예요. 확실히 기억해 두세요.
시옥이 돌진했다.
“사탄의 쾌락을 위하여!”
세인과 아르민, 메이레이는 각자의 마법으로 하비츠의 율법을 막고 있기에 움직일 수 없었다.
“앱솔루트 배리어!”
에덴이 방어막을 펼치자 시옥이 산개하고, 리리아가 쿠안의 율법을 증폭시켰다.
쿠안의 모습이 시옥의 인지에서 사라졌다.
‘섣불리 들어갈 수는 없어.’
그러는 동안 를 통해 시옥의 이름과 히든 코드가 뇌리에 울렸다.
세인이 교만의 1시를 머리에 저장했다.
‘표독한 인상에 치열이 날카로운 여자. 과거의 후회했던 사건을 바꿀 수 있고, 과정이 무시된다는 점에서 치트라고 할 수 있다.’
다음 파동이 밀려들었다.
‘소갈머리가 벗겨진 남자. 불복의 2시. 히든 코드는 모든 종류의 확률에서 승리한다?’
가장 먼저 하비츠가 떠올랐다.
시옥의 능력이라는 것도 사탄의 혼돈에서 파생된 것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쿠안! 1시를 죽여!”
어차피 시옥은 쿠안을 찾지 못하기에 힘껏 소리쳤다.
‘과거의 선택을 되돌리는 교만의 1시야말로 최우선 척결대상이다. 1명만 죽여도 시옥에 구멍이 뚫려.’
적어도 지금은 그랬다.
“어리석구나!”
눈이 부엉이같이 크고 광대뼈가 도드라진 30대 중반의 여자가 소리쳤다.
“왜 교만의 1시를 죽여야 하지? 혹시 너는 1등을 증오하는 자가 아닌가? 그런 피해망상적인 생각으로 어떻게 전투를 지휘할 수 있어? 따라서 너는 쓰레기야!”
세인은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째서?’
그녀를 논파할 방법이 없음을 깨달은 순간 메이레이가 도청한 파동의 소리가 들렸다.
‘아집의 3시. 히든 코드는…… 모든 종류의 반박에서 승리한다? 이게 뭐야.’
구체적인 정보가 이어졌다.
‘……어떤 주장을 펼쳐도 그녀의 논리를 깰 수 없기 때문이다. 젠장, 이런 개 같은 소리가 어디 있어?’
논리주의자인 세인은 조금 더 강도를 높여 그녀의 코드에 맞서 보았다.
“여태까지 분석한 3명 중에서 전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가 1시니까. 알겠나? 나는 피해망상 따위로 전략을 짜는 게 아니야.”
“아, 몰라! 짜증 나! 얼굴도 이상하게 생겨 가지고 목소리는 왜 그래? 결론은, 네가 틀렸다는 것이다!”
치트가 적용되었다.
세인의 사고를 이루는 논리의 연결 고리가 파괴되면서 현기증이 일 정도로 화가 났다.
“크으으으!”
속에서 불이 끓었으나 현실의 논리가 사라진 이상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이게 히든 코드인가.’
과거를 바꿀 수 없다든가, 삼단논법이라든가, 확률은 수학적이라든가.
‘이런 명제도 어차피 인간의 생각이다. 관리자의 편의에 따라 정해진 규칙일 뿐이야.’
우주 바깥에서 지켜보면, 사실 세상은 어떻게 작용하든 문제가 없는 것.
“갑자기 입을 닫았네? 하긴, 너는 모순투성이니까. 반면에 나는 오직 사실에 입각하여 주장을 펼쳤지. 그렇기에 너는 멍청한 놈이다!”
“……닥쳐.”
“닥쳐? 뭘 쳐? 네 뺨이나 쳐!”
정말로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세인은 패배감에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였다.
‘제길! 어째서 이길 수가 없지?’
모두가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 가운데, 아집의 3시가 통쾌하게 웃어 젖혔다.
“깔깔깔깔! 역시 사탄을 숭배하지 않으니 인생이 실패로구나! 사탄 만세! 오오, 사탄이시여!”
세인이 아예 무시하며 고개를 트는 그때, 마음의 파동이 다시 밀려들었다.
‘나태의 4시.’
볼따구니살이 심술스럽게 늘어진 노인이었고, 잠시 후 히든 코드가 밝혀졌다.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빌어먹을.’
세인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비츠도, 시옥도, 이런 식으로 율법을 피하는 거였어. 그럼 4시를 먼저 죽이고 1시를 죽여야 하나? 아니, 경우에 따라서는 2시도…….’
잠깐만.
‘하지만 쿠안은 1시에게 상처를 입혔다.’
비대칭의 극의 또한 치트라면, 결국 시옥이 완벽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리아……!”
음성으로 지시하려던 세인이 아집의 3시를 깨닫고 를 이용했다.
-리리아, 틈을 봐서 쿠안의 율법을 갑자기 증폭시켜. 폭이 클수록 좋다.
고개를 끄덕인 리리아가 박달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은 채로 전장을 주시했다.
그때,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통통한 체구의 여자가 소리쳤다.
“저 여자가 배신자다!”
“뭐?”
모두가 리리아를 돌아보았다.
“무슨 헛소리를……!”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치던 리리아는 자신을 주목하는 동료들의 눈빛을 보고 당황했다.
“왜, 왜 그래?”
메이레이가 조금 전에 소리친 여자의 파동을 도청했다.
‘편견의 5시. 히든 코드는…….’
모두가 신뢰한다.
‘어처구니가 없군.’
세인이 느끼기로, 선량한 사람을 살인자로 몰아도 믿고 싶을 정도로 강력한 코드였다.
“잠깐만! 내가 왜 배신을 하겠어?”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래, 배신할 이유가 없어. 그녀는 시온 소속이고, 악을 증오하는 수도사다.’
하지만 치트는 현실의 논리가 아니다.
모두의 머릿속에 히든 코드가 입력되자 뇌리에서 끝없이 의심이 파생되었다.
‘목숨을 보장받았나? 아니면 악과 결탁하여 더 높은 명성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의심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한 달 전에 리리아가 혼자 방을 나간 적이 있었다. 맞아, 말투도 이상했어.’
평생을 함께한 노부부조차 사소한 의심 하나로 갈라서게 되는 게 우리의 삶.
“아니야! 난 아니라고!”
인간이라는 종족이 가진 비극일 것이다.
히든 코드 (2)
여전히 의심과 싸우며, 에덴이 입을 열었다.
“미안해, 리리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겠지만, 솔직히 너를 믿을 수 없어.”
아닐 것이라고 되새김질을 해도, 그녀가 배신하는 망상이 끝없이 피어올랐다.
메이레이가 말했다.
“이제 됐어요.”
신의 주파수로 리리아의 마음을 도청하자 일행의 머릿속에서 의심이 사라졌다.
세인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상대의 마음을 읽으면 편견은 생길 수 없지. 테라포스의 기술력은 엄청나군.’
선과 악을 심판할 자격이 괜히 주어지는 게 아니다.
‘지금이다.’
쿠안이 눈짓을 주자 리리아가 어릿광대 피에로의 율법을 최대치로 증폭시켰다.
아군조차 그를 찾을 수 없는 가운데 쿠안이 선택한 타깃은 교만의 1시였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아.’
여자의 등 뒤로 돌아가 심장을 겨누자 마치 반응하듯 시옥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태의 4시로군.’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그럼 한번 당해 봐라.’
비대칭의 극의가 증폭된 상태이기에 치트 간의 충돌에서도 우위에 있을 터였다.
쿠안의 검이 여자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죽어.’
누구도 쿠안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후회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크으으으!”
불길한 느낌에 휩싸인 교만의 1시가 이를 악물고 상체를 뒤틀었다.
단지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분명 뭔가 있다.’
나태의 4시는 가능한 율법을 총동원하여 곧 닥칠 미래를 피하려 할 것이기 때문.
‘깨달아야 돼.’
뭔지만 깨달으면, 끔찍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후회의 감정으로 선택을 바꿀 수 있다.
‘늦어.’
1초가 영원처럼 길어지는 순간 속에서 쿠안은 마음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히든 코드라고 해 봤자 그것을 다루는 자는 인간. 그게 너희들의 패착이야.’
교만의 1시가 시선을 돌리기도 전에 그의 검이 심장을 꿰뚫을 터였다.
‘응?’
측면에서 섬뜩한 살기가 느껴졌다.
“위험해요!”
메이레이의 목소리가 튀어나오기도 전에 이미 쿠안은 검을 회수하며 물러섰다.
그가 있던 자리에 주먹이 들어오면서 펑 하고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를 냈다.
‘저 녀석은?’
마치 구심력을 받은 듯 크게 허공을 우회한 쿠안이 주먹의 정체를 살폈다.
뿔테 안경을 쓰고 머리를 2 대 8로 넘긴 청년이 자세를 풀며 웃고 있었다.
“와, 정말 날렵하네요? 타이밍은 제대로 잡았는데.”
“…….”
쿠안이 하고 싶은 소리였다.
‘조금 전의 공격은 나와 맞먹을 정도로 빨랐다. 시옥에도 스키마 고수가 있었단 말인가?’
청년이 너스레를 떨었다.
“정말 열심히 훈련했나 봐요. 그 움직임, 어떻게 한 거예요? 나도 배우고 싶은데.”
감탄사를 내뱉고 있으나 뿔테 안경 너머로 갈매기처럼 휘어진 눈은 명백한 조롱이었다.
지상에 착지한 쿠안이 내뱉었다.
“알아서 뭐 하게? 아니, 알려 준다고 해도, 너 같은 건 평생을 해도 모자랄 거다.”
“하하! 물론 그렇죠.”
청년이 뱀처럼 긴 혀를 내밀더니 섬뜩한 안광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런 미련한 짓을 누가 하겠냐, 멍청아?”
쿠안이 입을 다물고 있자 메이레이가 도청한 청년의 마음이 흘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