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94
나타샤의 손 모양조차 경이로웠다.
“멋지다.”
남들과 무엇이 다른지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다프네는 분명 느끼고 있었다.
‘10분의 1도. 아니, 100분의 1도 차이인가.’
다프네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응, 해 볼게.”
“그래. 파이팅!”
자리로 돌아가 다시 연습을 시작하는 나타샤를 바라보며 다프네의 심경은 복잡해졌다.
‘쉬지를 않아.’
다른 또래처럼 카페에 가는 것도, 남자를 만나는 것도 관심 밖이었다.
오직 무용.
춤을 추고 있을 때의 나타샤는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다프네가 가방을 챙겨 나타샤의 뒤를 지나갔다.
“먼저 들어갈게. 몸이 안 좋아서.”
“응? 갑자기? 어디가 안 좋은데?”
대꾸조차 하지 않고 연습실의 문을 여는 다프네의 눈에는 절망감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나타샤는 어떤 괴한에게 끌려가 척추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천재 무용수의 은퇴였다.
회상에서 벗어난 나타샤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본 적은 없어. 하지만 정말 그런 이유 때문에 나를 미워했던 것이라면…….”
나타샤의 볼이 부풀었다.
“그건 좀 억울한걸.”
“나는 네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몰라. 하지만 이건 알지. 너에게는 그저 단점이지만, 그들에게는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세월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리안이 대직도를 겨누었다.
“너의 호의는 절대로 전달되지 않아.”
리안의 말은 묘하게도, 너를 죽이겠다는 말보다 더 아프게 나타샤를 찔렀다.
“……열심히 하지 않았어.”
언제나 고양이처럼 초롱초롱하던 그녀의 눈에 처음으로 싸늘함이 담겼다.
“나처럼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그렇겠지. 누구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너는 아닐 테니까.”
나타샤를 조종하는 사신의 팔이 움직였다.
“가장 소중한 걸 빼앗아 갔어.”
물론 나타샤는 괴한을 고용하여 자신에게 린치를 가한 이가 다프네인지 아닌지도 알아보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에 감정을 소모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는 성향이었기에.
그런 극단적인 성향 자체가 천재적이지만…….
‘춤추고 싶어.’
이제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죽인다. 그것이 내 직업.”
사신의 무도-변박자 협주곡.
시간의 시소 속에서 나타샤가 움직이는 순간, 리안의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뭐야?’
1천분의 1박이었다.
모든 역사 (1)
‘저곳이다.’
테스는 생화의 꽃잎이 만든 거대한 그림자 속을 달렸다.
300미터 거리를 빠르게 주파하는 중에도 주위의 생화들이 섬광에 맞아 불에 타고 있었다.
적들이 탈취한 고대 병기를 찾는 것은 쉬웠다.
테스가 달리는 쪽에 정예 마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군대가 지키고 있었다.
예상보다 경계가 삼엄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원수.’
마족이라면 치가 떨리지만, 시간을 지체할수록 생화의 피해는 커질 터였다.
테스가 발을 구르며 외중력을 발생시키자 몸이 붕 하고 떠올랐다.
마족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어느새 생화의 기둥에 달라붙어 있는 상태였다.
테스는 기둥을 따라 수직으로 달렸다.
전장의 소리마저 멀어질 즈음, 하늘 저편에서 시커먼 무리가 날아왔다.
“까아아! 까아아!”
검은 깃털을 가진 인면조였다.
‘여기가 한계야.’
깨달은 테스는 가장 가까운 출입구를 찾아 생화로 침투했다.
안쪽에도 마족들이 경계를 하고 있었으나 시선을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몇몇 마족을 소리 없이 처리하고, 시체마저 은신시키며 올라가자…….
“이랴! 이랴!”
잔뜩 상기된 노인의 목소리에 이어 찢어질 듯한 여자의 비명이 들렸다.
“용서해 주세요! 제발!”
통제실이었다.
거미처럼 천장에 매달려 이동한 그녀가 문턱 위쪽에서부터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었다.
“푸하하하! 이거 진짜 재밌네? 정말 시키는 대로 다 하잖아?”
테스의 눈에 핏줄이 일어섰다.
구스타프 4기예 스모도와 제타로.
화족을 괴롭히는 스모도는 끔찍한 변태였고, 전장을 살피는 제타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스모도, 너무 기분 내지 마. 자꾸 공격이 빗나가잖아.”
지시에 따를 때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화족의 특성상, 협박이나 고문은 필요치 않았을 터였다.
‘즐기고 있어.’
테스도 간첩 교육을 받으면서 수많은 고문 방법을 익혔지만, 저들이 행하는 방식은 무언가를 얻어 내기 위함이 아니었다.
화족이 애원했다.
“차라리 죽여 주세요. 제발…….”
“푸하하하! 제타로, 들었어? 이 여자 아직도 자기가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데? 너 말이야, 네가 어떤 상태인지 거울이라도 보여 줄까?”
“스모도, 이제 그만 작전 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던 제타로의 눈이 크게 뜨였다.
“피해!”
“응?”
스모도가 입구를 돌아보는 순간, 테스의 발길질이 턱을 걷어찼다.
“큭!”
이빨 여러 개가 천장으로 튀면서 스모도의 몸이 발라당 뒤집혔다.
“이 개 같은 자식들!”
치솟는 분노를 잠시 미뤄 두고 테스는 화족을 살폈다.
“괜찮아요? 이봐요!”
이미 의식을 잃은 듯 눈을 뒤집어 깐 화족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죽었어.’
스모도를 일으켜 세운 제타로가 혀를 찼다.
“안타깝구먼. 젊은 처자가 어쩌다가……. 고인의 명복을 비네.”
테스의 정신이 핑 하고 돌았다.
“……장난이냐?”
엄청난 살기를 피부로 느끼면서도 제타로는 태연했다.
“너희들에게는 이 모든 게 장난이야?”
“너.”
이빨이 빠진 스모도가 피를 닦으며 내뱉었다.
“몸매 좋군.”
테스는 짜증에 숨이 막혔다.
“자네는 내가 본 여자 중에 상위 1.78퍼센트군에 속하네. 체중을 추정하건대…….”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테스의 주먹이 스모도의 턱을 돌렸다.
바닥에 쓰러진 그를 보며 제타로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튼 맞을 짓을 사서 하는…… 큭!”
곧바로 제타로의 머리끄덩이를 잡은 테스가 통제실의 벽에 미친 듯이 얼굴을 찍어 댔다.
몇 번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제타로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나쁜 새끼들! 순 나쁜 새끼들!”
제타로의 몸에서 반응이 사라지자 테스는 가벼운 육체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제타로가 쿵 하고 시체처럼 쓰러지고, 스모도가 터진 입술로 바닥을 기어갔다.
“아우, 무슨 여자가 주먹이 이리 매워? 으아아아!”
사브르를 치켜든 테스가 그의 종아리를 찔렀다.
“아프냐?”
종아리를 꿰뚫은 채 바닥 깊이 사브르를 박아 넣은 그녀가 스모도의 얼굴 쪽으로 다가왔다.
“아파? 고작 이게 아파? 그래서 비명을 지르는 거야?”
“아으으. 아으으.”
두 손을 벌벌 떠는 모습조차 혐오스러웠다.
테스는 그의 검지를 붙잡고 짓눌렀다.
“너도 똑같이 당해 봐.”
그런 상태로 손가락 중간을 꺾자 직각으로 휘었다.
“으아아아! 아파! 아프다고!”
“그래, 그게 고통이야.”
테스는 또 다른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아이고! 아이고, 나 죽네! 이건 노인 학대야!”
“닥쳐.”
양쪽 도합 6개를 부러뜨리자 저항할 힘조차 잃은 스모도가 바닥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아파. 너무 아프다고. 제발 용서해 줘.”
“용서? 그러는 너는, 저 여자에게 자비를 베풀었어?”
“내가 잘못했다니까…….”
테스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어떤 감정인지 이름조차 알 수 없었다.
“직접 당해 보니까 어때? 재미있냐? 이게 재미있어? 신체를 훼손하고, 고통을 주고, 비명을 듣는 게 그렇게 재밌었냐고, 이 자식아!”
잠시 정적이 흘렀다.
“……삼류.”
“뭐?”
고개를 쳐든 스모도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재밌어서 하는 건 삼류지, 이 양반아.”
참회의 감정을 요만큼도 읽을 수 없는 눈빛에 테스는 소름이 돋았다.
“너희들은…… 도대체 뭐야? 재밌는 것도 아니라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스모도가 치열을 드러내며 웃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자유.
“스모도, 방에 있니?”
어머니는 스모도의 방에 들어갈 때면 언제나 목이 바짝 타들어 갔다.
열두 살 아들.
딱히 사고를 치는 건 아니지만, 이미 사고는 정신에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네, 있어요. 안 나갈 거예요.”
“그것 때문에 온 거 아니야.”
보통의 부모가 그렇듯, 스모도의 어머니도 거짓말을 하고 문을 열었다.
“…….”
하얀 벽면에 빼곡하게 그려진 수직선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좌표에 정확히 위치해 있는 사물들도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친척들이 찾아왔단다.”
스모도는 강박증이 심했다.
유아기 때부터 젖병은 같은 것만 써야 했고, 연필이 하루에 닳는 길이는 정해져 있었으며, 책장에 순서대로 책이 꽂혀 있지 않은 날에는 난리가 났다.
“재밌게 보내다 가시라고 해요. 나는 여기에 있을 거야.”
‘머리는 정말 비범한데.’
오직 그 이유만으로 스모도가 여전히 감싸야 할 자식이 될 만큼.
“하아. 스모도,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거니? 네가 강박이 심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겨 내자. 너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거야. 학교에 거의 나가지도 않는데 시험에서는 늘 1등이잖니.”
스모도는 대답이 없었으나, 갈등하는 게 보였다.
“자, 나가자. 친척들에게 인사만 하고 다시 돌아오자.”
“약속하시는 거죠?”
어머니가 화색을 띠었다.
“그럼, 인사만. 응?”
아들의 손목을 부드럽게 당기자, 스모도가 못 이기는 척 따라왔다.
1층에서는 아버지가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 스모도 형이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는 것도 보였다.
하지만 스모도에게는 그저 공간과, 그 공간을 움직이는 사물일 뿐.
계단을 내려오는 스모도의 눈에 간식 테이블에 쏟아진 소금이 보였다.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다 소금통을 엎은 듯했다.
“…….”
테이블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스모도는 이모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다, 스모도. 이모 기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