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96
“그럼에도 이겼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
“아니.”
리안이 돌진했다.
“그것이 내 검이라는 뜻이다.”
전보다 박력이 넘치는 모습에, 나타샤는 황당한 표정으로 자세를 취했다.
‘바보인가?’
이 정도로 단점을 짚어 줬으면, 적어도 자신에 대한 비판이라도 해 봐야 정상 아닌가?
‘나는 그랬어.’
하지만 다프네는 그러지 않았다.
나타샤에게 지적을 받은 이후로, 그녀는 사사건건 나타샤를 음해하고 모함했었다.
“……사신의 무도.”
나타샤의 눈빛에 진심으로 상대를 죽여야 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그녀가 아는 가장 격렬하고 빠른 무용곡.
‘광란의 밤.’
공기에 공백의 터널을 만들며 다가온 나타샤가 리안의 옆구리에 킥을 날렸다.
“크윽!”
야차의 근육이 꽈배기처럼 뒤틀렸다.
‘리듬이 안되면 힘으로 따라잡는 수밖에!’
전신의 힘을 쥐어짜 내 허리를 뒤틀자 마침내 나타샤가 시야에 포착되었다.
‘보인다.’
극한의 주마등 속에서, 그녀의 육체가 마치 불빛처럼 깜박깜박 점멸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나타샤가 리안의 인지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4만분의 1박.
그녀가 하나의 사건을 대하는 박자였다.
‘벨 수밖에 없어!’
리안이 대직도를 수직으로 휘두르는 순간, 나타샤가 몸을 돌리며 칼날의 옆으로 다가갔다.
팅. 팅팅.
대직도의 날을 손톱으로 튕기는 묘기에도 리안은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여전히 박자가 남아 있다.
나타샤는 자신을 추적하는 리안의 시선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고…….
‘여기서 변박.’
갑자기 반대로 몸을 틀었다.
‘제길!’
또다시 나타샤를 놓쳐 버린 리안의 마음에 처음으로 절망감이 피어올랐다.
‘정말로, 이길 수 없는 것인가?’
무너지려는 마음을 붙잡기 위해, 리안은 짐승처럼 악을 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난폭함의 끝이었지만, 리듬감으로 싸우는 나타샤에게는 오히려 까다로웠다.
‘스쳐도 사망이겠네.’
8만분의 1박.
더욱 잘게 리듬을 쪼개는 것으로 나타샤는 평정을 되찾고 연타를 퍼부었다.
리안의 온몸에 주먹 자국이 찍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눈으로 보면서도 대응이 안 되는 자괴감을 느끼며, 리안은 마침내 인정하고 말았다.
‘나는 검에 어울리지 않아.’
재능이 없어.
‘나 같은 놈이 이미르를 막겠다고? 아니, 오히려 이 여자에게 맡기는 게 낫다.’
누가 이기든 멋진 전투를 보여 줄 것이다.
‘왜 나야?’
가이 형이 살아 있었다면, 아니, 차라리 라이 형에게 이데아가 전해졌다면.
‘레이나 누나도 나보다 나은데!’
심지어 그녀는 청발이었다.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는 놈이! 도대체 뭘 해 보겠다고 여기서……!’
나타샤의 주먹이 리안의 왼쪽 안와를 파괴하자 시야의 절반이 사라졌다.
‘왜, 왜 하필이면 나야!’
그래서 너라고.
‘……!’
리안의 모든 세포가 말하는 듯했다.
불꽃같은 긍정적 사고인지, 세포에 깃든 오젠트가 내린 결론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주마등보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은, 천국을 질주하는 오젠트의 모습.
인간의 형태마저 잃은 채로, 스밀레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검을 허우적대는 인류 최강의 검사.
‘결코 아름답지 않지만.’
오젠트는 천국 전체를 상대로 스밀레를 구했다.
‘그렇구나.’
리안의 꿈은, 인류 역사상 가장 밝게 빛나는 마법사의 곁을 지키는 검사가 되는 것.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야차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리안이 대직도를 양손으로 붙잡고 몸을 뒤틀었다.
나타샤의 동공이 흔들렸다.
‘뭐야?’
여전히 리안은 등을 지고 있지만, 이미 회전한 것 같은 야차의 얼굴이 반투명하게 튀어나왔다.
‘크으으으으!’
신적초월의 의지가 인도하는 대로, 리안의 육체가 회전력을 머금기 시작했다.
‘재능이 있든지 없든지!’
‘엄청난 속도……!’
나타샤가 상체부터 젖히며 멀어졌다.
‘조롱을 하든지 말든지!’
대직도의 잔상을 따라 주위의 공기가 유리 파편처럼 깨지는 게 보였다.
‘인간이든지! 인간이 아니든지!’
그딴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해내면 그만이다!’
나타샤는 어느새 자신의 허리 근처까지 다가온 대직도를 발견하고 소름이 돋았다.
16만분의 1박.
더욱 첨예하게 리듬을 쪼갠 그녀가 아직 여유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그때.
‘툭?’
머릿속에서 뭔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투툭. 툭.
리듬이 파괴되고 있다.
‘부정박不正拍.’
하나의 사건을 16만 개로 쪼갰음에도 담기지 않은 박자라는 건 대체 어떤 것일까?
‘그럴 리가 없어!’
자존심이 상한 나타샤는 16만분의 1박자를 더욱 빠른 리듬으로 느꼈다.
32만분의 1박.
하지만 머릿속에 들리는 건 리드미컬한 박동이 아닌.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리듬을 통째로 파괴하면서 밀려드는 완벽한 부정박의 소음뿐이었다.
‘이 녀석.’
나타샤는 깨달았다.
‘진짜 재능 없다.’
재능이 너무 없는 것도 재능이라고 친다면, 리안은 천재들의 천적일까?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재능이 없는 게 재능이라니.
마치 대답하듯, 대직도의 칼끝이 나타샤의 복부 깊숙이 침투해 시큰한 감각을 전했다.
‘아, 그러네.’
나타샤의 눈에는 하나의 단점일 뿐이지만.
‘이 남자에게는 삶.’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했던, 이겨 내기 위해 끝없이 검을 휘둘러야 했던…….
“이야아아아아아!”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허억!”
배에서 핏물이 분수처럼 터지자 나타샤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우리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되는 하나의 행동을 하지 못해서, 수많은 생각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봐, 다프네.’
함께 꿈을 꾸었던 친구.
‘하면 되잖아.’
나타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만약 그녀에게 눈꺼풀이 있었다면, 아주 선량한 눈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미안해.”
모든 역사 (3)
주마등이 풀리기 시작했다.
나타샤가 땅에 쓰러지고, 그 모습을 발견한 소수의 시선이 수많은 시선을 끌어들였다.
전쟁의 소음이 파문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저 인간 여자가…… 당했다고?’
마족들은 인간을 싫어하지만, 나타샤의 무력만큼은 함부로 폄하할 수 없었다.
“리안!”
생화의 임무를 끝마치고 돌아온 테스가 리안의 상태를 보고 얼어붙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는 리안의 두 팔은 어깨부터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신적초월로 공중에 떠 있는 만이 그의 의지를 말해 주고 있을 뿐.
나타샤가 고개를 들었다.
“리안이라고 했지?”
해골의 사신이 그녀의 복부에 손을 넣어 치료 중이지만, 출혈을 막는 게 고작이었다.
일종의 외과적 수술 능력.
다만 화신의 율법이 그러하듯, 기술력은 망가진 인형을 고치는 수준이었다.
“말을 아껴. 죽을 수도 있다.”
리안에게 특별한 전쟁 철학은 없다.
어떤 기치를 내세우기에는, 그의 검에 죽은 인간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괜찮아, 죽어도.”
리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남길 말이라도 있나?”
“졌어.”
꼭 전하고 싶었다.
“너의 검이 내 리듬을 전부 깨고 들어왔거든. 그것이 무엇이든, 이제부터 너의 기술이자 유流가 되는 거야. 부정박, 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주인이 정하는 거니까.”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래?”
나타샤가 힘을 풀고 쓰러졌다.
“멋있더라, 너.”
그녀는 속에 있는 말을 전부 꺼냈으나, 리안에게는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었다.
“악을 버릴 수도 있다고 했지.”
“…….”
“그렇다고 죄가 지워지는 건 아니야. 하지만 후회한다면, 지금 속죄해라. 인류가 너를 심판하는 이 자리에서 마족을 부정하는 것만이, 너로 인해 죽은 사람들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 될 거야.”
마족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고문하고 죽여도 돼. 나쁜 짓 많이 했어.”
나타샤는 담담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 후회가 뭐야? 그게 가능했다면 여기에 있지도 않았겠지.”
매 순간 최고를 도모하는 재능에게,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악을 버린다고 했던 건, 그냥 상관이 없다는 뜻이야. 인간의 편이든, 마족의 편이든. 그래도 내 대답은…….”
나타샤가 고개를 들었다.
“하비츠하고 먼저 친구가 됐거든. 미안.”
삶의 목적이 없는 그녀에게 이유는 그걸로 충분했다.
“죽여라! 인간을 죽여!”
나타샤를 선점하는 게 유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족이 무섭게 돌진했다.
“전원 돌격!”
같은 생각을 한 연합군이 치받았고, 리안과 나타샤가 있는 장소에 병력이 가득 찼다.
“크아아아아!”
아비규환의 전장이었다.
***
“사탄……!”
바닥에 떨어진 하비츠의 목을 보자 시옥들이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사탄이시여!”
나이도 생김새도 모두 달랐지만, 이 순간에는 똑같은 얼굴 12개가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