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00
‘행성에 내가 설치한 문은 73개. 차원의 벽을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캉이 물었다.
“신의 사자시여, 그렇다면 이제 저희들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옵니까?”
“이 문을 열려면 무한의 열쇠가 필요하다. 기억해라. 거핀의 이름이 새겨진 문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강철에 새기겠습니다.”
오젠트라는 인간이 나타난 이후로 앙케 라의 인간에 대한 경계는 극에 달했다.
‘천국 확장 프로젝트는 실패했다고 봐야겠지.’
거핀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수많은 인류가 우주에서 사라졌고, 조만간 이곳의 차례가 올 터였다.
‘여기서 시작한다.’
갈리앙트를 떠난 거핀은 행성의 지름이 눈에 담기는 높이에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작지만, 포근했다.
자신과 이카엘의 마음을 이어 나가기에는 더없이 좋은 시작 지점이었다.
“인간이여, 오메가의 끝이 머지않았다.”
거핀이 두 손을 들자 행성 곳곳에 있는 거핀의 문이 전부 활성화되었다.
“강해져라.”
대륙 곳곳에서 빛의 기둥이 치솟고.
“옳음을 추구해라. 반복하지 마라. 모두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빛의 기둥이 거핀의 손에 모여들고,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팡 하고 공간이 물결치면서 행성 전체를 감싸는 무형의 기운이 퍼져 나갔다.
차원의 벽이었다.
‘언제까지고 이것에 의지할 수는 없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을 끝내기 위해, 거핀은 다시 인간의 세계로 내려갔다.
오메가의 흐름 속에서 시로네는 오감이 익숙하게 느끼는 장소를 발견했다.
‘토르미아 왕국.’
모교인 알페아스 마법학교가 있는 크레아스 도시였다.
“어, 어떻게 기별도 없이!”
크레아스 마법협회 지부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마법사인 맥클라인 거핀이 찾아왔으니 전 직원을 대동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호들갑 떨 것 없네. 조용히 처리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네, 물론입니다!”
왕이라도 고개를 숙일 것이다.
거핀이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였다.
“며칠 전에 성전에 들렀는데 재밌는 이야기가 들리더군. 놀라운 재능을 가진 마법학교 학생이 있다던데.”
삼황계, 칠왕성, 이군왕, 권력의 정점을 떠올린 지부장은 빠르게 원하는 답을 찾아냈다.
“아, 알페아스 마법학교 말씀이군요. 네, 이번에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생존 테스트 7단계를 통과한 사람이 있습니다.”
거핀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아이를 좀…… 볼 수 있겠나? 가급적이면 아무도 모르게.”
그로부터 이틀 뒤, 거핀이 묵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모르는 허름한 여관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창밖을 바라보던 거핀이 커튼을 닫고 몸을 돌렸다.
“들어와.”
문밖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초면도 아닌데 반말이야. 짜증 나게.”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거핀의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가 피식 웃는 가운데 문이 열렸다.
“실례합니다. 여기에 아-주 높으신 분이 절 찾는다는 얘기를 듣고…… 어라?”
아직 소녀티가 남아 있는 여성이 인간과 다른 거핀의 외모를 보고 눈을 깜박거렸다.
“아드리아스 가문의 미로?”
“네, 그렇습니다만…….”
당시에 거핀이 느낀 미로의 첫인상이 시로네의 궁감을 통해 전해졌다.
아직은 애송이군.
역사의 시대(2)
***
천국의 군대는 행성을 순회했다.
자전축을 따라서 한 번, 적도와 본초자오선을 따라 두 번을 탐색했으나…….
‘찾을 수가 없다.’
그 어디에도 부처는 없었다.
‘우리가 허접한 게 아니라면…….’
슈라의 게슈탈트는 거짓을 지배하지만, 증폭의 능력 앞에서는 한낱 어린애 말장난 같은 것.
‘일부러 피하는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다.
기억을 2만 배 증폭시켰을 때, 이카엘은 잃어버린 모든 기억을 되찾았다.
앙케 라가 그녀에게 했던 일까지도.
‘물론 나도 원망스럽다.’
하지만 찢어 죽인달지,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앙케 라가 내리는 모든 판단은 그저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차가운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앙케 라는 이제 인간이 되었다. 만약 나네라는 인간을 만나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아니, 그는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사티엘은 고민에 빠져 있는 이카엘을 훔쳐보았다.
‘기억을 되찾은 게 분명해.’
물론 다른 대천사들도 거핀 말소에 대해 어느 정도는 짐작을 하고 있다.
천사의 정신체는 가장 순결하고, 세계에 작용한 미약한 균열에도 위화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전체가 어떻게 변하든 전체일 뿐이지만, 최초의 리셋은 분명 다르다.’
또한 천사들이 위화감을 느낀다는 것은, 앙케 라의 세계에서 다른 존재가 리셋을 했다는 증거였다.
‘만약 이 느낌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카엘 님에게 원수 같은 존재일 것이다.’
사티엘은 노스탤지어의 능력으로 기억을 최소 단위까지 분해하여 파편들을 수집했다.
‘맥클라인 거핀. 질투. 이카엘의 죄.’
단어들이 망상의 레벨에서 연결되는 것만으로 치가 떨리고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어째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일까?’
선명한 기억은 없어도, 이카엘에게 아주 좋지 않은 짓을 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정말로 기억을 되찾기는 하신 거야? 증폭으로 가능하다면, 나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얘긴데.’
그래서 의문이었다.
어째서 오직 이카엘만이 거핀 말소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일까?
“정지.”
이카엘의 지시에 천국의 군대가 멈췄다.
광자 신호는 흔한 하늘의 풍경을 비추고 있지만 이카엘에게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이었다.
“나오너라.”
하늘의 풍경이 불룩해지더니 슈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슈라.”
십로회의 서열 7위.
천국의 영생자가 대천사의 권위를 모를 리 없건만, 슈라는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앙케 라는 없다.’
세계의 관리자는 나네라는 이름의 인간이었다.
‘오직 마음을 알기 위해.’
신의 위상에서 한낱 피조물이 되어 버린 앙케 라의 결단력에 새삼 소름이 돋았다.
“부처의 명이라고? 말을 가려서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명령할 수 있는 존재는…….”
“저를 따라오시죠.”
이카엘의 의견은 고려할 필요조차 없다는 듯, 슈라가 차갑게 몸을 돌렸다.
***
화족의 족장 프로테아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계속 생화를 잃고 있다. 오래 버틸 수 없어.’
화족의 전략은 이렇다.
300명의 화족이 300기의 생화를 통제하면, 프로테아는 꽃밭의 중앙에서 전체를 관할한다.
따라서 마족들에게는 프로테아를 제거하는 게 급선무이겠으나, 실상은 안중에도 없었다.
“크하하하! 내가 잡았어! 내 거야!”
그들은 눈앞에 있는 인간을, 화족을, 엘프를 끔찍하게 괴롭히는 일에 심취해 있었다.
“빌어먹을!”
그럼에도 숫자가 워낙에 많았기에, 결국 루피스트는 플루에게 지시를 내렸다.
“방어선을 당겨! 프로테아를 지킨다!”
신속하게 이동한 연합군은 프로테아로부터 300미터 전방에 방어선을 재구축했다.
끼기기기기기!
사방에서 생화의 강철이 부러지는 소음이 들리더니 쿵 하고 땅이 흔들렸다.
“엘프다! 엘프를 잡아! 저것들이 별미야!”
마족에게 인기가 좋은 먹잇감은 단연 엘프였다.
“싫어! 저리 가!”
인간보다 공포에 면역력이 강하지만, 일단 마음이 꺾이면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종족.
“이 개 같은 것들이!”
동족이 유린당하는 모습에, 결국 에녹스가 검을 치켜들고 돌진하려는 그때.
“응?”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날아들었다.
“…….”
태양을 눈앞에서 보는 듯한 형태의 화염구는, 마족들이 지켜보는 와중에도 도착하지 않았다.
“어어?”
그리고 마침내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할 때에야, 직경 20미터가 넘는 대형 구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아아아! 뜨거워!”
불덩어리가 지상을 강타하는 순간 에녹스가 엘프족을 데리고 후퇴했다.
“다 죽일 생각이야?”
동시에 루피스트가 엘프족의 후미를 가로막더니 40미터 높이의 철벽을 세웠다.
“크으으으!”
잠시 뜨거운 기운이 차단당했지만, 이내 강철의 벽이 용암처럼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물의 마법!”
에녹스가 소리치자 물의 요정들이 고대 마법을 시전했다.
“아스콜!”
마족과 인간의 피가 순식간에 증발하더니 일대 반경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치이이이이!
철이 식는 소리를 내며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로 온도가 낮아지자 철벽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군마저 위험할 정도의 위력이었으나, 덕분에 마족의 전진 라인이 700미터 밀려나 있었다.
루피스트의 눈빛이 깊어졌다.
‘소문대로군.’
이 정도의 화염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1명뿐이었다.
공간 이동을 타고 가르시아가 도착했다.
“괜찮으십니까?”
세계 최고의 화염 마법사라는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느끼며 루피스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요. 전황은 어떻습니까?”
“좋지 않습니다. 발키리 병력 2할을 잃었습니다.”
연합군이 5할, 엘프가 3할의 피해를 입은 것을 생각하면 과연 세계 정예였다.
“하지만 가장 큰 손실은 제1군단장이 당했다는 겁니다. 이대로는 꽃밭을 사수할 수 없을 겁니다.”
루피스트의 눈썹이 올라갔다.
‘피데로가 죽었다고? 대검호 카델의 환생이라고 불릴 정도의 검사가?’
분명 충격적인 비보였으나, 한편으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곳이 전장이었다.
“협회장님이 판단하시죠. 여기서 후퇴하여 다음 전략을 도모할 것인지, 이곳을 사수할 것인지.”
작전 계급은 가르시아가 높다.
하지만 토르미아의 명운이 걸린 일에서는 자국의 지휘관에게 맡기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흐음.”
루피스트가 턱을 괴었다.
‘후퇴하면 병력은 지킨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경우, 우리에게 남은 미래가 있나?’
전력의 비대칭 속에서도 마족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꽃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계 중에서 무엇이 더 효율적인가.
“전군!”
루피스트가 소리쳤다.
고대 병기를 포기하면 다시는 마족에게 이 정도의 피해를 줄 수 없을 테지만.
“후퇴하라!”
인간이 없이는 시스템도 없다.
그것이 루피스트라는 인간이었고, 가르시아도 그의 의사를 존중했다.
“발키리! 전군 후퇴!”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연합군의 모습을 눈에 담은 마족들이 침을 흘렸다.
“크하하하! 난 이 부분이 제일 재밌더라!”
도망치는 적의 등을 덮쳤을 때에, 그들의 눈에 떠오르는 절망감이 짜릿했다.
“으아아아! 안 돼!”
아군의 절규가, 익숙한 목소리로 내뱉는 비명이 연합군의 심장에 파고들었다.
“흐으으으!”
이빨이 부서질 정도로 턱이 닫혔다.
“달려! 계속 달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