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07
“하나같이 괴팍한 놈들이라 걱정이 되지만, 울티마인 네가 있으면 문제없을 테지. 잘 이끌어 줘.”
“나는 가르쳐 줄 것이 없어.”
지금 시로네를 기다리는 12사도는 대천사의 무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최강의 용족이었다.
“가르쳐 주지 않아도 돼. 그들이 배울 테니까. 그렇게 너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천천히 눈을 감는 카라토르사의 뇌리에 용의 시대가 스쳐 지나갔다.
“우리도 이어질 수 있을까?”
무등룡의 육체가 급격히 생명력을 잃어 가더니 밝은 빛을 내며 소멸했다.
시로네는 고개를 숙이고 애도했다.
“감사합니다.”
시간은 짧았다.
가장 힘든 생을 완수하고 떠난 자에게 슬픔을 느끼는 것도 예의가 아니므로.
“후우!”
크게 숨을 고른 시로네의 주위로 미라클 스트림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깊은 산의 풍경이 신호로 해체되었고, 한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거대한 산맥을 뛰어넘었다.
도착한 곳에 12사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메시아를 뵙습니다.”
블리츠가 무릎을 꿇자, 11명의 사도가 같은 동작을 수행했다.
무등룡이라는 코어가 사라졌으나 슬픈 감정을 드러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최강의 드래곤.’
시로네는 이미 오메가를 통해 12사도의 모든 것을 11감으로 느꼈다.
하지만 오감, 그중에서도 시각만으로 그들을 살피자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카라토르사는 영면에 들었어.”
“알고 있습니다.”
네트워크의 데이터베이스가 사라진 지금, 12사도는 개인의 판단에 의지해야 한다.
“그렇기에 메시아께서 우리를 이끄셔야 합니다. 저희가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정보가 아닌 믿음의 영역이었다.
“그래.”
시로네가 12사도의 면면을 살피자 모두 불타는 의지로 고개를 들었다.
모두 자신을 불러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으…….’
무등룡이 존재할 때부터 12사도 사이에 작용하는 경쟁의식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생각을 공유하는 상태에서 개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은 코어의 선택을 받는 것.
‘누구를 먼저 부를까.’
카라토르사가 했던 쓸데없는 고민을, 이제는 시로네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선 광룡 페이톤.’
곱상한 외모의 소년이지만, 그가 알기로 난폭하기로는 12사도 중에서도 제일이었다.
‘화룡 인페르커스.’
졸업 시험의 시뮬레이션 모델이기도 했으나 시로네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무서워.’
머리의 절반을 삭발하고 입술에 피어싱을 달고 있는 모습에,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가장 궁금한 사도는…….’
백룡魄龍 아스라이커.
동방의 무녀들이 입는 붉은 치마를 입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어? 어?’
시로네는 넋을 잃었다.
드래곤 중에서 혼의 정보를 구사하는 아스라이커의 외모는 세상의 모든 형태를 압도한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호라지.’
완벽의 개념이 아니다.
개성을 초월한 극한의 호好이자, 만인의 이상을 충족시키는 매력이었다.
시로네의 시선을 느낀 아스라이커가 살며시 고개를 들더니 미소를 지었다.
“…….”
호의의 감정.
단지 웃어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시로네의 마음속에 엄청난 파문이 퍼졌다.
‘이건 위험하다. 진짜 위험해.’
눈으로 느낄 수 있는 가장 쾌락적인 신호에, 심장이 뛰고 정신이 혼미했다.
메시아에게 주목을 받자 아스라이커가 더욱 부드러운 시선을 보냈다.
‘윽!’
머릿속에 빨간불이 들어온 시로네는 곧바로 울티마 시스템을 발동했다.
아스라이커를 이루는 극호極好의 정보가 최소 단위로 해체되면서 감정의 요동이 멈췄다.
“휴우.”
블리츠의 눈이 빛났다.
‘이렇게 빨리 백룡의 특질을 제압하다니. 역시 메시아, 우주 최강의 정신인가?’
12사도들이 고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흥, 어디서 미인계야?’
아스라이커는 인정한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호명의 열망을 잠재웠다.
시로네는 다른 사도를 물색했다.
‘아, 저 남자는…….’
수룡 카이오스.
갈리앙트 섬에서 수천 톤의 물길을 이끌고 솟구쳤던 장면이 뇌리에 생생했다.
3개의 대양을 10년에 걸쳐 이동하면서 세계의 시간을 관리했던 드래곤.
시로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구면이네.”
설명은 그것으로 충분했고, 카이오스가 벌떡 일어나 사도의 열을 이탈했다.
‘쳇! 이건 어쩔 수 없지.’
차분한 인상의 카이오스는 푸른 머리를 발목까지 늘어뜨렸고 특이하게 눈을 감은 채 움직였다.
‘폐안과 개안.’
울티마의 역사에서 카이오스는 두 가지 인격을 가진 드래곤으로 나온다.
눈을 감고 있을 때는 무풍지대처럼 고요한 성격이지만, 일단 눈을 뜨면…….
카이오스가 고개를 숙였다.
“네. 그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카라토르사께서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니. 덕분에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었어.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거든.”
지스, 카니스, 아린,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흠흠.”
독룡 포이네가 헛기침을 하며 일어서자 다른 사도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직 메시아께서 하명도 하지 않으셨는데. 하여튼 오만방자하기는…….’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앞으로 걸어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메시아님을 뵙습니다. 독룡 포이네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시로네가 마주 고개를 숙이자 포이네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호오?’
오메가의 역사를 전부 살아온 자라면 누군가를 높일 이유가 전혀 없다.
실제로 시로네 또한 포이네에게 보통 인간들이 갖는 경외심은 품지 않았다.
‘그래도 할머니니까.’
다만,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달았든 인간에게 중요한 것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어쩌면 그것이 마음을 가진 신이라는 것일 테니까.
“호호, 역시나 예상이 틀리지 않는군요. 앞으로 많은 일을 하셔야지요. 저희를 수족처럼 부리시고, 필요한 게 있으면 저에게 하명하십시오.”
11명의 사도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저게 노망이 났나!’
카라토르사가 소멸한 이후 대표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게 없었다.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노파의 이미지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지만, 시로네 또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정말 방심할 수가 없네.’
카라토르사는 12사도의 경쟁 구도를 활용했고, 이제는 시로네의 차례였다.
“네, 차차 일을 맡기도록 할게요. 12사도의 대표도 생각을 해 봐야 될 것이고요.”
포이네는 오히려 즐거워했다.
“당연히 메시아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그게 저희들의 존재 이유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시로네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정황부터 듣고 싶어요. 현재 로그는 얻지 못했거든요. 전장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아직 호명을 받지 못한 사도들이 동시에 손을 번쩍 치켜들고 소리쳤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며, 시로네는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옳은 선택(1)
연합군의 장수들은 한 분야의 정점을 찍은 자들이지만 그것만으로 승리할 수는 없었다.
마족이 강한 이유는 무력 외에도 인간과 다른 신체 기관이나 체질, 정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리력을 반사하거나, 속성을 다루거나, 공포의 군주 이고르처럼 정신을 파괴하거나.
전 제1군단장 대검호 피데로가 사망한 이유도 극단적인 상성의 치우침이었을 터.
결국 누구라도 죽을 수 있는 게 꽃밭의 전투였다.
“전진! 전진!”
입으로 외치는 것과 다르게 연합군은 계속해서 뒤로 밀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큭!”
선두에서 싸우는 병사의 등이 후미에 있는 병사들의 방패에 부딪혔다.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분노의 눈으로 뒤를 돌아본 그들의 마음이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
“어느새…….”
꽃밭의 끝이었다.
비로소 시야를 넓히자 삼백 기의 생화 중에서 솟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 거리를 밀렸다고?’
거대 구조물 300개가 심긴 꽃밭은 광대하고, 직선거리만 23킬로미터에 달했다.
루피스트는 이를 악물었다.
‘제길…….’
마족의 동선을 트는 것은 달리는 말의 고개를 꺾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연합군은 언제나 마족에게 포위되어 있고 그 안에서 회전력을 발생시켜야 한다.
전력의 차이로 비유했을 때, 수면 아래에서 물길을 움직여 호수 전체를 회전시켜야 하는 난이도.
‘그럼에도…….’
연합군은 지옥의 군대가 최초에 진입했을 때와 비교해 무려 14도를 틀었다.
‘성전의 예상대로라면 이 정도 관성이 적용됐을 경우 알아서 방향을 틀어야 정상이다.’
이 전략이 가능한 이유는 마족의 행동 양식이 인간의 군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전쟁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마족은 전쟁 그 자체가 목적.
그저 인간을 괴롭힐 수 있는 장소로 돌진할 뿐이었다.
‘따라서 관성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다운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
또한 지옥의 군대에 군단장이 포함되지 않은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루피스트는 머릿속에 지도를 펼쳤다.
‘놈들이 이대로 직진한다면…….’
역시나 부족하다.
군대의 덩치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바슈카를 비켜 지나가게 될 터였다.
‘여기서 어떻게든 해보는 수밖에 없어.’
루피스트가 소리쳤다.
“전원!”
하지만 병사들의 얼굴을 본 순간, 루피스트는 돌격이라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모두의 눈에 절망감이 담겨 있었다.
“꽃밭이 점령당했어.”
생화의 위력은 두말할 여지가 없고, 병사들도 심리적으로 의지했을 것이다.
“끝났어. 이제는 이길 수 없다고.”
싸울 의지를 잃어버린 병사들을 보며 루피스트는 차마 다그칠 수 없었다.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다.
‘정말로 잘 싸웠다.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어.’
머리로 이해가 되어 버리면, 냉혹한 루피스트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전원 후퇴해라.”
예상치 못한 지시에 병사들이 놀랐다.
“협회장님.”
“후퇴해. 여긴 내가 맡겠다. 바슈카로 돌아가 훗날을 도모해. 너희들이 필요할 거다.”
정적이 흘렀다.
“죄송합니다, 협회장님.”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가 눈에 불을 켜고 무기를 전방에 겨누었다.
어느새 사방을 전부 포위한 마족들이 낄낄거리는 가운데 루피스트가 고개를 돌렸다.
“뭐 하는 거야?”
“그게, 정말로 살고 싶기는 한데 말입니다.”
백인장이 광소를 흘리며 말했다.
“도망치고 싶은 생각은 요만큼도 들지 않아서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요.”
함께 싸웠기에 긴말은 필요치 않았다.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