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08
그 한마디로 충분했고, 루피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무섭게 적을 노려보았다.
“……그렇지.”
연합군은 마지막 남은 의지를 한곳에 집중시키며 돌진할 자세를 취했다.
“전원!”
이제는 말할 수 있었다.
“돌진하라!”
마치 영혼이 끌어당기듯, 연합군은 어떻게 달리는지도 잊은 채 앞으로 나아갔다.
“크하하하! 마지막 연회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마족들이 앞으로 맛볼 인간을 상상하며 침을 흘리는 그때.
“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의 시선이 연합군 뒤편의 허공으로 향했다.
“뭐, 뭐야?”
끝도 없이 하늘로 치솟고 있는 천수관세음의 화신이 인자하게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반야바라밀.”
합장하고 있는 화신의 손이 둘로 열리는가 싶더니.
“극락장.”
순식간에 온 하늘을 채울 만큼 무수한 잔상을 일으키며 부채처럼 펼쳐졌다.
세계의 끝과 끝을 돌아서 들어오는 2개의 손바닥이 마족들이 있는 곳에서 맞부딪쳤다.
드드드드드드!
수를 셀 수 없는 잔상이 한 점에 밀려들더니 모든 충격이 한 번에 폭발했다.
“크아아아!”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마족의 벽이 한계를 모르고 찢어지는 광경에, 루피스트는 전율했다.
‘인지 부조화.’
모든 과정이 머릿속에 생생했으나 돌이켜 보면 찰나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연합군의 후미에서부터 길이 열리더니 마침내 진형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뭘 그렇게 놀라고 있어? 예쁜 여자 처음 봐?”
루피스트는 깨달았다.
‘그래, 우리에게는 아직 저것이 있었지.’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애매한, 인류 최강의 수비수이자 시대의 극선.
“아드리아스 미로.”
연합군의 시선을 즐기며 루피스트에게 다가온 미로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관심 있으면 연락해. 현재 싱글이니까.”
루피스트가 그저 지켜보는 가운데 단테가 다가와 삿대질을 했다.
“너무 늦잖아요. 시온의 다른 간부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요.”
“이 자식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미로가 단테의 뺨에 주먹을 대더니 홱 돌렸다.
“아욱!”
아프지는 않았으나, 상식을 파괴할 정도로 경우가 없음에 정신이 멍해졌다.
“어디서 그런 덜떨어진 놈들하고 비교해? 아드리아스 미로 몰라? 나, 바쁜 여자야.”
단테의 눈이 불이 들어왔다.
“당신이 지시한 임무였어요. 그리고 그들은 어려운 임무에 목숨을 걸었고요.”
“어려운 임무? 아니지, 불가능한 임무라고 해야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후후. 꼬마야, 너 되게 똑똑한 척하는데, 잘 들어. 이 누나가 말해 줄게.”
미로가 단테의 머리를 짚고 눈웃음을 지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세상은 그보다 훨씬 깊고 복잡하단다. 내가 하는 일에는 다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거야.”
“…….”
루피스트가 끼어들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듣고 싶군. 당신이 알고 있는 깊은 뜻이라는 게 뭐야?”
“이곳에 사탄은 없다는 거겠지.”
단테가 물었다.
“시온의 정예가 이탈시켜서?”
“아니. 어차피 오지 않았을 거야. 세계의 운행은 인간의 이치를 벗어나. 따라서 생각으로 계산해서는 안 돼. 본질을 알아야지.”
루피스트가 물었다.
“사탄의 본질이 뭔데?”
“우주에서 제일 비겁한 놈. 이런 대규모 전쟁에 애초부터 끼어들 일이 없어. 항상 뒤에서 승리의 달콤함만을 챙기지. 반드시 기억해. 사탄은 언제나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것을 머리에 박아 두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 세계의 율법에 그대로 휩쓸리게 되는 거야.”
“그래서 동료들을 사지로 보냈단 말인가요? 다 죽었을 수도 있어요.”
미로는 태연했다.
“인간에 치중하지 말고 전체를 봐. 나라고 아무나 보낸 건 아니잖아. 사탄을 잡으려면 율법부터 섬세하게 손보면서 들어가야 한다고. 시온의 정예들이 그걸 하러 갔잖아.”
단테는 수긍했다.
세계를 가장 높은 곳에서 관조하는 미로의 시야가 아니고서는 사탄을 가둘 수 없음을.
단테의 눈빛이 변하지 미로는 만족했다.
“물론 세상을 바꾸는 건 너희들이야. 이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지 않았다면 내가 도착할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죽음 또한 삶이라는 거지. 모두의 생명이 모여서 이 상황을 만들어 내는 거야.”
그것이 율법이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떡하기는.”
미로가 선두로 나서며 말했다.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지.”
끼아아아아!
마족들의 군대 저편에서 줄루와 강난, 아리우스를 태운 카이드라가 비행했다.
***
시로네는 금룡金龍 메티라를 선택했다.
‘과묵하니까 설명도 짧겠지.’
회색 머리카락이 좌우로 갈라져 고불고불 내려오고, 칼날처럼 각이 잡힌 코트를 입고 있었다.
상당한 미남자였으나, 눈동자가 강철로 되어 있어서 기괴한 느낌이 더 컸다.
“뭐?”
설명을 들은 시로네가 되물었다.
“이루키가 원소 폭탄을 떨어뜨린다고? 그것도 토르미아의 수도에?”
“네. 현재 인간의 군대가 작전을 수행 중이며, 성공 확률은 반반입니다. 다만 우리가 참가한다면 정황을 완전히 뒤바꿀 수는 있을 것입니다.”
“…….”
시로네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니까…… 바슈카의 모든 인구와 맞바꾸어 마족의 군대를 일망타진한다는 건데.’
빙룡 프리지가 말했다.
“좋은 전략입니다.”
단발의 은색 머리에, 앞머리를 수평으로 자른 몽롱한 표정의 여자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드래곤답게 평가도 직설적이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인 것이죠. 성공한다면 인류에게도 희망이 보입니다.”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시로네가 아는 이루키는 마족을 전멸시키기 위해 원소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루키답지 않아.”
그리고 시로네가 아는 가장 친한 친구로서의 이루키는, 절대로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사람이었다.
‘설령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고 해도…….’
어떻게든 해답을 찾아내는 성격이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친구였다.
‘……힘들었겠구나, 이루키.’
포이네가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원소 폭탄이 터질 바슈카, 이루키 총군사가 있는 성전, 혹은 세계 어느 곳이든 괜찮습니다. 모두 메시아님을 필요로 하니까요.”
12사도는 시로네의 뜻에 따라 싸울 뿐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시로네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이 죽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큰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어디선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맞아요, 메시아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검은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소녀.
풀과 짚으로 엮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초룡草龍 에이트라.
드레스 아래로 내려오는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다리를 보면 영락없는 소녀였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사도야.’
생명에 관한 정보를 다루는 그녀의 회복 능력은 드래곤의 모든 전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래, 고마워.”
사도 중에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누구도 불쾌해하지 않았다.
블리츠가 물었다.
“메시아님. 하오면, 어디로 모실까요?”
메티라에게 들은 세계정세를 꼼꼼하게 확인한 시로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
‘틀어지고 있다.’
적진 한복판에 들어온 상황에서도 루피스트는 거대한 관성을 읽을 수 있었다.
미약하지만 아주 조금씩, 마족들의 동선에 뒤틀림이 생기고 있었다.
‘4도. 4도만 더.’
수면 아래에서 작용하는 힘.
‘이제 3도.’
미로의 충격파, 리안의 충격파, 에이미의 충격파, 그 외의 모든 자들의 충격파가 합쳐져…….
‘2도!’
쿠쿠쿠쿠쿠쿠쿠!
‘1도!’
마침내 마족이라는 거대한 호수가 통째로 회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됐다!”
루피스트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마족들이 연합군의 진형을 뚫고 나아갔다.
방향은 서남쪽.
‘이대로 전진하면…….’
토르미아의 수도를 직격하게 되고, 바슈카의 상공에 원소 폭탄이 작렬할 것이다.
‘재앙인가, 기적인가?’
누구도 감히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옳은 선택(2)
***
“뭐야?”
발칸의 군중기가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전했다.
‘선봉의 궤적이 틀어졌어.’
순식간에 엄청난 각도로 방향을 돌렸고, 곧바로 전령이 행진을 역류해 달려왔다.
“급보입니다!”
들을 필요조차 없는 내용이었다.
“호호호! 뭐야? 결국 실패했잖아? 하여튼 인간이 그렇지. 군사로서는 최악이야.”
파이몬의 조롱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제타로, 스모도, 나타샤에 이어 발칸마저 적군의 군사에게 농락당한 상황이었다.
“……다시 방향을 돌린다.”
결심을 내린 발칸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바슈카로 가서는 안 돼. 이토록 필사적이라는 건 분명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파이몬은 발칸의 뻔뻔함에 질렸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상상할 수 없어. 하지만 결국 그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보는 게 맞아. 전군에게 명한다! 지금 당장 기수의 방향을 틀어…… 컥!”
둔탁한 충격이 뒤통수에 작렬하자 발칸의 시야가 핑 하고 회전했다.
“개소리하고 있네.”
파이몬의 목소리에 몸을 뒤틀자, 또다시 그녀의 손톱이 날아들고 있었다.
“흐윽!”
몸을 젖힌 발칸이 말 위에서 검을 휘둘렀으나, 거리감이 이상한 상태였다.
“호호호! 그래도 한 가지 재주는 있네. 하지만 괜찮겠어, 치사량의 독인데?”
말이 끝나는 즉시 발칸이 휘청거렸다.
‘제길! 배신을……!’
스키마로 혈류를 조절하여 독의 확산을 늦추고 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나에게 이런 짓을 한다는 것은…… 하비츠도 배신한다는 뜻이겠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 경고했으나, 파이몬은 비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무슨 소리야? 모든 게 그분의 뜻인데.”
“뭐?”
척추 신경이 마비되면서 발칸이 말 등에 쓰러지자, 파이몬이 다가와 그의 머리를 들었다.
“사탄께서 너희들에게 질렸다는 얘기야. 흥미가 떨어진 장난감은 취급 안 하시거든.”
“하비츠가…….”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론만 남은 채, 발칸의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다.
“흥, 약해 빠진 것들.”
파이몬이 발칸의 머리를 던지듯 내려놓자 여태까지 불만이 가득했던 마족들이 다가왔다.
“죽일까요? 아니면, 마족의 무서움을 보여 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