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09
“흐음.”
파이몬이 들은 전령의 보고에 의하면 하비츠의 인간성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다고 하비츠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녀가 지시를 내렸다.
“일단 수감시켜. 그 멍청이 4인방이 나란히 갇혀 있으면 참으로 보기 좋겠군.”
“알겠습니다. 그런데 나타샤는 어떻게 하죠? 정신을 차리면 골치 아플 텐데요.”
그녀의 무력은 마족들도 혀를 내두르는 수준이었다.
“후후, 문제없어.”
파이몬의 눈이 보랏빛으로 타올랐다.
“규정외식, 밴.”
특정 공간에 격리 구역을 만들어 그곳에 갇힌 자들의 운동성을 빼앗는 능력이었다.
“데려가.”
마족이 발칸을 들고 후방으로 날아가자, 파이몬은 발칸의 말에 올라탔다.
“후우.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네.”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파이몬 님,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저희들은 피를 원합니다. 인간의 고통을 원합니다.”
“호호호호!”
파이몬이 손을 내밀었다.
“이 시간부로 진형 따위는 무시해라. 전부 흩어져! 최단거리를 찾아서 바슈카로 모이도록!”
“크아아아아아!”
마족들의 포효가 굉음을 만들어 냈다.
“가자! 피의 축제다!”
썩은 음식에 모여 있던 바퀴벌레가 불빛에 흩어지듯, 지옥의 군대가 사방으로 퍼졌다.
***
성전의 지휘부는 소란스러웠다.
“마족들이 바슈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병력은 300만! 아니, 450만……!”
이루키가 손을 들어 보고를 차단했다.
‘이건 시작일 뿐이야.’
바슈카의 앞마당인 꽃밭이 뚫렸으니 1억의 군대가 모이는 건 시간문제였다.
“럭키 보이를 불러 주세요.”
때가 된 것이다.
“알겠습니다.”
비로소 현실이 피부로 느껴졌고, 지휘관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지휘부를 나섰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조용한 방에서, 이루키는 그저 눈을 감고 뜨는 일에 열중했다.
“이루키.”
네이드가 밝은 표정으로 들어왔으나, 차마 그를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비참하다.’
역사에 오명을 남기는 일에 친구까지 끌어들인 자신이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얘기는 들었어. 지옥의 군대가 바슈카로 오고 있다고. 드디어 역전의 기회가 생겼구나.”
애써 좋은 쪽으로 말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미안하다.”
네이드가 부드럽게 되물었다.
“……뭐가?”
“네가 나에게 이 일을 하겠다고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두 번의 기회는 없는 작전이니까. 그래서 입을 다물었어. 가족들, 리즈 씨, 네가 지켜야 할 것을 알면서도, 완벽하고 싶다는 내 욕심 때문에.”
성전에도 기술자는 많다.
하지만 이루키는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질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고 싶었다.
“만약 네가 돌아가라고 했으면, 나는 돌아갔을 거야.”
이루키는 처음으로 네이드를 돌아보았다.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리즈를 지켰겠지. 나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네이드가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앞으로 다시는 너를 보지 않았을 거다. 너에게 나는 고작 그 정도일 뿐이라는 거니까.”
“네이드…….”
“너만 고민한 게 아니야. 나도 성전에 오면서 수없이 많은 생각을 했어. 하지만 결론은 하나야. 내가 아니면, 너는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맡길 수 없어.”
이루키는 고개를 숙였다.
“기체에 결함이 생기면 어떡하지? 기폭 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측 못 한 변수가 남아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운반자가 마음을 바꾸면? 최선을 다해 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는 건 아닐까?”
시익, 시익,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라면, 네이드라면 어떤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반드시 해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거지?”
이루키는 대답하지 못했다.
“…….”
차오르는 눈물을 억누르며, 폐가 빨아들이는 숨을 받아 상체를 들썩일 뿐이었다.
“네가 침묵했을 때, 솔직히 진짜 안심했다. 돌아가라고 했으면 민망해서 죽었을 거야. 하하하!”
“큭큭큭.”
이루키가 울음이 담긴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하지 마. 잘 해낼 거니까. 그동안 고생했다. 이제 전부 나에게 맡겨.”
네이드의 말 한마디로, 이루키는 수천 톤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을 느꼈다.
“네이드.”
자리를 벗어나 문으로 향하던 네이드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응?”
“무조건 성공시켜라.”
인류의 무게를 떠넘기는 발언 앞에서도, 네이드는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들었다.
“문제없어.”
문을 열고 나가며 그가 말했다.
“나는 럭키 보이거든.”
***
마족의 흐름에서 빠져나온 연합군은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상황을 주시했다.
‘됐어. 방향을 돌릴 생각은 없는 듯하다.’
이미 파이몬이 수도로 집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단테가 말했다.
“피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작전이 성공하면 여기도 안전하지 않을 겁니다.”
원소 폭탄의 사정권이었다.
바슈카의 시민들을 남겨 두고 대피한다는 사실이 꺼림칙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자.”
미로가 책임을 지듯 말했다.
“심정이야 모두 똑같아. 여기에 남는다고 박수 쳐 줄 사람 아무도 없어. 지금 가자.”
에이미가 물었다.
“어디를 간다는 거죠? 마족들이 바슈카로 진격하면 우리도 따라 들어가야 되는 거 아닌가요?”
단테가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전쟁에서 군단장이 되었지. 아직 작전에 대해 모르는 거야.’
에이미가 재차 물었다.
“표정들이 왜 그래요?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거죠?”
어쨌거나 화계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를 무시하고 작전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바슈카에…….”
루피스트가 입을 여는 그때, 미로가 섬뜩한 기운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건?”
지평선 너머에서 빛으로 둘러싸인 한 무리의 군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천국의 군대.”
천사와 마라가 빠르게 비행하고, 거인을 허공에 띄운 요정들이 뒤를 따랐다.
“어어? 어?”
상공 1킬로미터에서 거인들이 추락하자, 연합군은 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찔했다.
쿵 소리를 내며 마른땅에 먼지구름을 일으킨 거인들이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크다.’
신장 8미터 정도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고, 정말로 큰 거인은 80미터에 육박했다.
“여기서부터 시작인가?”
이미르가 주먹을 어루만지며 걸음을 옮기자 주위에 있던 마족들이 길을 가로막았다.
“뭐냐, 너는?”
천국의 존재를 아는 마족도 있지만, 이곳에 있는 대부분은 거인이 처음이었다.
이미르가 불쾌한 듯 눈썹을 씰룩거리자, 팔이 낫처럼 생긴 마족이 걸어왔다.
“킁킁. 뭐야, 이거 냄새가 왜 이래? 인간하고 너무 다른데? 생긴 것도 멍청하고 말이야.”
이미르의 턱을 낫으로 들어 올린 마족이 얼굴을 가져다 대며 웃음살을 볼록였다.
“크크, 완전 얼어붙었군. 어이, 뭐라고 말 좀 해 봐. 뒤에 있는 형님이라도 불러 보라고.”
마족은 신장 80미터 거인을 대장으로 알았으나, 실상 그들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결정했다.”
이미르가 마족의 낫을 움켜쥐자 마치 엿가락이 휘듯이 팔이 꺾였다.
“으아아아! 내 팔! 내 팔!”
마족들이 분노에 눈을 치켜뜨는 가운데, 이미르가 몸을 풀며 걸음을 옮겼다.
“쓰레기부터 치우고 시작해야겠어.”
“죽여!”
마족들이 각자의 무기를 치켜들고 이빨을 드러내며 돌진하는 순간.
“흐으으으읍.”
이미르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허파를 부풀리더니 두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놀란 기르신이 손을 내밀었다.
“이미르 님! 잠시만……!”
그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자세를 낮춘 이미르가 두 팔로 땅을 내리찍었다.
…….
세상의 음이 소거되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건가? 아니, 빠른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연합군은 하나같이 약에 취한 기분으로, 생각했다.
‘저게 뭐지?’
대지가 해일처럼 높게 일어서고, 하늘에는 소용돌이가 나타나 색감을 뒤섞었다.
‘졸려. 집에 가고 싶다.’
이상하게 하품이 나왔다.
그들의 눈꺼풀이 천천히 감기며 시야가 좁아지고.
“……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실지렁이처럼 가느다란 형태로 귓속에 들어가더니 빠져나오는 게 보였다.
‘헤헤, 신기하다. 소리가 보이네?’
충격파에 의한 정신착란.
콰아아아앙!
그리고 그 상태를 경험한 자들은 예외 없이 다음 순간 세상에서 사라졌다.
끼이이이이이이!
그곳에서 2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매스 텔레포트의 섬광이 착지했다.
“다들 괜찮아?”
미로의 마법으로 긴급 탈출을 했으나 모두 구할 수는 없었던 상황이었다.
또한 애도할 시간도 없다.
“다시! 다시!”
매스 텔레포트가 하늘로 치솟는 동시에 엄청난 지진파가 그 자리를 휩쓸었다.
쿠르릉. 쿠르릉. 쿠르릉.
이미르를 중심으로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끝없는 메아리로 퍼져 나갔다.
“쯧, 짜증 나게 하고 있어.”
꽃밭에 남아 있는 마족은 없었고, 하늘의 천사들조차 질린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괴물은 괴물이야.’
최초에 이미르가 태어났을 때 떠올린 의문이 천국의 군대 모두에게 스며들었다.
‘어째서 이 세계에…….’
저런 게 필요하지?
옳은 선택(3)
***
태성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었다.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충격을 받아들이고 있던 그녀가 잠시 후 긴 숨을 토해 냈다.
“하아아아.”
조금 전의 충격파가 원인일 터였다.
‘여기까지 땅이 울릴 정도.’
태성의 상태를 지켜보는 오대성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정말 괜찮은 것인가?’
태성은 별이다.
하지만 화신의 상태로 존재하는 시점에서는, 생물계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행성의 변화를 관리하기 위해.’
곧바로 별이 쪼개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의 충격이 누적되면 계가 불안정해진다.
‘지진, 해일, 화산 폭발 같은 것들. 전쟁과 무관하게, 수많은 인간들이 죽게 된다.’
따라서 태성은 별의 시스템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행성에 가해지는 충격의 태반을 흡수하여 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프리드가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