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1
하비스트와의 의견 교환은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다. 거기서 1만 배가 더 빠르다는 건 상상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정확히 어느 정도지?
-도시에서 3초 동안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분석할 수 있을 만한 정보량이다. 상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전략이 필요해. 하지만 우리는 범죄자의 신분이야. 여기서 사고를 일으키면 상황을 불리하게 만들 여지가 있어.
카니스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이런 고집이야말로 그가 아케인의 수제자로 발탁된 이유겠지만, 역시나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하비스트가 필사적으로 설득하는 가운데 아린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 말은 결국, 당신도 시로네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요?”
이루키는 스피릿 존을 지웠다.
누구보다 냉철해야 한다. 감정에 휩쓸려 일을 그르치는 건 의무실에 있는 바보들만으로 충분하니까.
“시로네는 죽었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해법도 나오지 않아. 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뿐이야.”
“아뇨. 당신은 시로네가 살아 있다고 믿고 있어요. 어쩌면 저 방에 있는 두 사람보다 더.”
이루키는 불쾌했다.
서번트는 사건의 인과율을 계산할 뿐, 비논리적인 감성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저에게는 초경이라는 능력이 있어요. 모든 사물을 처음 보는 것처럼 인식하죠. 그래서 저는 사물의 형태를 기억하지 못해요. 매번 다르게 보이니까요.”
“그래서?”
“당신의 감정을 형태로 볼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죽은 건 죽은 거야. 감정이 끼어들 여지 같은 건 없어.”
“그렇다면 당신은 왜……?”
아린이 슬픈 눈으로 말했다.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울고 있는 거죠?”
이루키는 대답하지 못했다.
“…….”
아린의 말대로, 그녀의 초경 앞에서는 백 마디의 말이 무소용이었다.
***
그날 밤.
의무실의 문이 가만히 열렸다.
에이미는 울다 지쳐 간이침대에 쓰러져 있었고, 네이드는 구석에 의자를 붙여 두고 선잠을 자고 있었다.
이루키는 시로네에게 다가갔다.
자는 것과 죽은 것은 느낌부터 다르다. 차갑게 식어 버린 시로네의 얼굴을 보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아침이 되면 교사들이 시로네를 살피러 올 것이다.
사건에 휘말렸으니 우선 방부 처리를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살릴 방법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이루키는 감정을 추스르고 메스를 꺼냈다.
‘반드시 살려 줄게.’
에이미와 네이드를 살폈으나 이틀 동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탓에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그제야 이루키는 메스를 들이댔다. 달빛에 반사되는 칼날이 시로네의 피부를 가르고 들어갔다.
신을 만나다(3)
***
시로네는 멍한 기분이었다.
이곳이 저승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상태였지만 신을 만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당신이 신이라고요?”
“못 믿겠나요?”
“글쎄요. 신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있어도 이 정도로 인간적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자를 닮을 수밖에 없죠. 인간이 만든 어떤 물건이든 인간의 생각과 형태가 녹아들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과 같아요. 식물도, 동물도, 산이나 바다도 신을 닮았죠. 하지만 정도는 달라요. 기준은 창조성. 이를테면 다람쥐는 바위보다 창조적이죠.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꽤나 신을 닮았어요. 그리고 시로네, 당신은 그중에서도 가장 신과 닮은 사람 중 1명이죠.”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시로네, 나와 함께 세상을 창조하지 않겠어요?”
“네?”
시로네는 혼란스러웠다.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럽고 생소했다.
무엇보다 저승이 아니라는 여자의 말을 듣는 순간 새로운 희망이 싹텄다.
“돌아갈 방법은 없나요?”
여자는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시로네, 돌아갈 방법은 없어요. 삶을 마치기로 한 건 당신의 선택 아닌가요? 그렇기에 이곳에 온 겁니다. 이제 와 후회가 되나요?”
“그건 아니에요. 분명 각오했던 일이고, 당신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정신을 되찾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아, 이런 식으로 불러도 되나요?”
“물론이죠. 신이라는 건 개념에 지나지 않아요. 저는 이름이 없답니다.”
“그러면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후후, 무엇이든지요.”
“왜 거짓말을 하는 거죠?”
여자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것만으로 신전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존재예요.”
전지전능하다면 어떤 말도 사실이 되기에 거짓말도 성립되지 않을 테지만, 시로네는 여자의 눈빛에서 읽었다.
분명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
“돌아갈 방법이 있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했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돌아갈 방법이 있든 없든, 제가 없다고 한 이상 돌아갈 방법은 없으니까요. 그런 이유예요.”
“그게 거짓말이라는 거잖아요.”
“이해를 못 하는군요, 시로네. 제가 돌아갈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돌아갈 수 없어요, 절대로!”
“그렇다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당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어요. 제가 듣고 싶은 말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느냐는 거예요.”
“없습니다.”
“또 거짓말!”
여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시로네는 그녀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당신, 정말로 신이 맞나요?”
한동안의 침묵이 지나고, 여자는 무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로네, 우리는 신에 대해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오해가 생겼군요. 신은 당신의 생각만큼 숭고한 존재가 아니에요. 단지 설계자일 뿐이죠.”
여자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유리구를 탄생시켰다.
그 안에는 작은 마을이 담겨 있고 미니어처처럼 작은 사람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자, 보다시피 저는 마을을 창조했습니다. 물론 모형이죠. 하지만 이렇게 사람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여자의 손가락이 유리구를 관통하더니 말에게 여물을 주는 농부를 근처 밭으로 옮겼다.
“농부가 이동했습니다. 공간이 변했다는 것은 시간을 부여했다는 뜻이에요. 시로네가 살던 세상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나요? 없습니다. 이게 바로 신이죠. 저는 지금 이 마을의 신이 된 거예요.”
여자는 유리구를 내밀었다.
“신이란 결국 자신이 몸담은 차원보다 한 단계 낮은 차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설계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신이 절대자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뭘까요? 이게 바로 재밌는 점이죠. 이 농부는 자신이 근처의 밭으로 이동한 것에 대해 어떤 힘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거예요.”
여자는 유리구를 끌어와 양 손바닥으로 받쳤다. 그리고 두 팔을 활짝 펼치자 마을이 순식간에 확장되면서 그들이 마을 속으로 들어간 상태가 되었다.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여자와 마주 선 시로네는 주위를 살폈다.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가 농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우리에게는 그저 모형. 하지만 이 농부는 제가 만든 세계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모르고 있어요. 이곳 차원에서 태어났기 때문이에요. 알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이모탈 펑션이군요.”
“맞아요. 이모탈 펑션은 감각을 세계 전체로 확장시킵니다. 이 마을은 유리구 안에 담겨 있어요. 그렇기에 유리구를 넘어선 세계는 없다고 해도 무방하죠.”
여자가 농부의 어깨를 짚자 그의 육체가 빛으로 변하면서 하늘 전체를 덮었다.
그 상태에서 여자가 주먹을 내밀자 풍경이 축소되면서 마을 전체가 다시 손 위의 유리구에 담겼다.
빛으로 가득 찬 유리구를 시로네가 바라보는 가운데 여자가 설명을 이었다.
“지금 이 농부는 이모탈 펑션을 통해 전체로 확장된 상태예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저라는 존재를 인식할 수는 없겠죠. 그것은 시로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시로네는 농부의 상태가 남 같지 않았다.
만약 여자가 하이재킹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자신 또한 무의미한 빛으로 사라졌을 터였다.
“저에게 원하는 게 뭐죠? 그런 사실을 안다고 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바로 이겁니다, 시로네.”
여자가 유리구를 손바닥 사이에 두고 짓누르자 크기가 완전히 줄어들면서 점이 되었다.
“스폿…….”
“네. 이게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정체입니다. 당신이 머무는 세상도 결국 하나의 점에 불과하죠.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어요. 그리고 그 세계 안에 또 다른 세계가……. 시공간 매트릭스라고 부르는 구조입니다.”
시로네의 표정이 비로소 심각해졌다.
“제가 만든 시공으로 들어가 주세요. 그곳에서 당신의 시공을 창조하세요. 그런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하면 완벽한 우주가 되는 겁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의 세계에 혁신을 원하고 있는 듯했다.
거북스러운 제안은 아니었다.
죽음을 감수한 대가로 다른 세계의 신이 된다면 괜찮은 결말 아닐까?
“그럴 수는 없어요.”
여자가 되물었다.
“왜죠? 거절할 명분도 이유도 없을 텐데요.”
“제가 당신의 시공에 들어간다면, 또다시 나와 같은 사람을 희생시켜야 하기 때문이에요.”
누군가의 희생.
그 말을 듣는 여자의 눈에 언뜻 슬픔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감정의 변화는 잠시였고, 이내 차가운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시로네, 내 말을 따라야 합니다. 당신을 부른 건 호의가 아니라 목적이 있어서예요. 거절하겠다면 지금이라도 당신을 해체시킬 수 있습니다.”
여자의 도움으로 재구성되었으니 되돌리는 것도 자유일 테지만, 현실로 돌아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긴 이상 시로네는 순순히 따를 생각이 없었다.
“해체되지 않을 겁니다.”
“과연……?”
여자는 손을 내밀며 시로네의 자아를 흩어 버릴 의지를 품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해체되지 않았다. 이미 스피릿 존으로 들어간 상태였기 때문이다.
여자가 천천히 손을 내리며 말했다.
“또 하나의 문제를 풀었군요.”
“네. 이제 알겠어요. 스피릿 존도 시공간 매트릭스 구조의 스폿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육체가 없음에도 정신체의 상태로 다시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은…… 당신의 스피릿 존이고요.”
따라서 마법사다.
결론을 내린 시로네가 빛의 에너지를 집약시키자 여자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레이저라고 부르는 적색 광채가 흉흉한 느낌으로 몸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금강승(1)
시로네 사망 5일째.
학생들은 모두 기억을 되찾았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이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보통 사람보다 정신력이 특출했기에 예상보다 후유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물론 진정한 난관은 이제부터였다.
괴인에게 학교가 점령당한 사건은 보안 시설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특히나 기숙사 제도를 운영하는 학교의 규정상 안전은 최우선 고려 대상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학생 중에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학교의 유망주인 아리안 시로네였다.
현재 시로네의 시신은 이루키와 네이드의 요청으로 영안실이 아닌 의무실에 있었다.
이미 장례를 치러야 했지만 교사들도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정식으로 공표가 되었을 때 학교에 미칠 파급력을 아는 만큼 최대한 시간을 끌며 책임 회피의 전략을 짜는 중이었다.
물론 이런 방식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교사들도 적지 않았고, 그들은 회의실에 모여 사안의 긴박함을 강조했다.
“당장이라도 시로네의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학부형에게도 말해야 하고요. 지금 처리하지 않으면 훗날 학교의 방침이 비난을 받을 겁니다.”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학생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퍼지면 여파가 엄청날 거예요. 여태까지 쌓아 온 명성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죽은 학생을 살았다고 거짓말합니까? 결국에는 알려지게 되어 있어요! 지금 학교가 취해야 할 입장은 양심선언을 하는 겁니다. 명성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요? 공표는 언제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시로네의 지인들이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하자는 게 아닙니까?”
“고작 학생의 말에 휘둘릴 겁니까? 시간을 끌수록 여론은 불리해질 겁니다. 아케인의 제자들도 행방이 묘연한 지금, 빠르게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많은 교사들이 정치적인 계산을 하는 반면, 실제로 시로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사도 있었다.
당시 현장에 직접 관여했던 에텔라와 사드가 대표적이었고 시이나도 시로네의 사망을 의심하는 입장이었다.
“교장 선생님, 말씀해 주시죠. 오늘 학생회가 소집된다고 들었습니다. 교사들도 행동을 해야 합니다.”
교사진이 조급해하는 데에는 학생회의 영향도 컸다.
수많은 가문을 등에 업은 학생들이 학교를 고발하기 시작하면 손을 쓸 적기를 놓치는 셈이었다.
“나는 지켜보자는 입장이네.”
대다수의 교사들이 들고일어났다.
“교장 선생님!”
알페아스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다.
시간을 끌수록 학교는 불리해진다. 하지만 그에게는 학교의 존폐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바로 시로네에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시로네는 죽었는가?’
물론 지성의 상징인 마법학교에서 발의하기에는 허무맹랑한 안건이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만약 사망자가 시로네가 아니라면, 그래도 이런 의심을 했을까?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겠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모탈 펑션이란…….’
어쩌면 시로네만 특별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알페아스는 머릿속 한구석에 박힌 미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우리가 모르는 영역이야.’
금강승(2)
알페아스는 결정을 내렸다.
“시로네의 일을 속단하고 싶지 않네. 우리는 언로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일세.”
에텔라가 첨언했다.
“시로네는 대략 3개월 전에 이모탈 펑션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극단적으로 개방했죠. 수도회에서는 이모탈 펑션을 정신적 승화 작용으로 인식하는 바, 어쩌면 생명과는 별개의 문제일 수가 있다고 봅니다.”
교사가 반박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는 지금 수도회의 입장을 들으려는 게 아닙니다. 최대한 빨리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를 원하는 거예요.”
어떤 교사들은 에텔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모탈 펑션은 수준이 아닌 경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배움이 깊은 교사라도 깨달음의 영역에서는 길바닥 걸인보다 깊다고 자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교사는 알페아스에게 직접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