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11
‘이게 왕이다.’
한낱 인간이다.
‘이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루피스트에게 목숨을 걸고 간청한 덕분에, 그녀는 바슈카에 벌어질 재앙을 알게 되었다.
조만간 바슈카 상공에 원소 폭탄이 터질 것이고,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이제부터 잘 들으세요.”
“전하! 전하!”
왕족의 누구도 귀담아듣지 않자, 포니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모두 내 말을 들어라!”
왕족들이 인상을 찡그리며 돌아보았다.
하지만 바깥을 서성이는 거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시금 현실을 깨달았다.
“도, 도망쳐!”
그들이 문고리를 돌리려는 순간, 수력의 거친 물살이 전원을 휩쓸었다.
“포니! 이게 무슨 짓이냐!”
벽까지 밀린 왕족들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자 포니가 차갑게 말했다.
“왕위조차 계승하지 않고 어디를 가시려는 겁니까?”
“그, 그야……!”
혈통에 인생을 건 그들에게 왕위 계승은 목숨과 맞먹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당연히 차기 국왕은 여기 계신 아돌프 13세님이시지! 당연한 것을 왜 묻는 것인고?”
세 명의 왕자는 각자 이름이 있지만, 장자는 어느새 아돌프 13세가 되어 있었다.
왕족들은 긴장했다.
‘포니 저 계집애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왕성 수비대는 루피스트의 제안으로 이미 꽃밭으로 보내 버린 상황이었다.
소수의 근위대가 있지만, 마법학교 출신인 포니라면 사람하나 죽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테나르 오빠가 차기 왕이 된다면…….”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포니가 입을 열었다.
“짧게라도 계승식을 치르는 게 어떨까요? 왕의 정통성은 이어져야 하니까요.”
“응?”
왕족들이 눈을 깜박거렸다.
“바깥을 보세요. 국가 대위기 상황입니다. 빠르게 왕권을 수습하고 국민을 이끌어야지요.”
반역이라도 꾀할 줄 알았던 그녀가 순순히 양보하자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게 좋겠군. 한시라도 어전이 비어서는 아니 되오.”
왕족의 최고 연장자가 아돌프 12세의 왕관을 가져와 테나르의 머리에 얹어 주었다.
“됐소. 이제 갑시다. 빨리빨리!”
계승식은 순식간에 끝났고, 왕족들은 포니를 내버려 둔 채 황급히 빠져나갔다.
부리나케 멀어지는 친척들을 바라보며 포니는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최소한의 용기는 있네.’
루피스트의 제안을 들었을 때만 해도, 어쩌면 왕이 될지도 모른다는 꿈을 꾸었다.
“그딴 게 뭐라고.”
세상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남이 줄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네가 옳았어, 시로네.”
살아남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의 마지막은, 비참한 표정으로 죽어 있는 아돌프 12세와는 다를 테니까.
마치 소인국의 세계를 관찰하듯이 흥미롭게 안을 살피고 있던 거인이 굉음을 내질렀다.
“그아아아앙!”
작은 것들을 짓밟고 싶은 거인의 욕망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겠지만…….
“난 쉽지 않아.”
거인의 주먹이 부수고 들어온 벽의 틈새를 통해, 순간 이동의 섬광이 빠져나갔다.
***
암호명 럭키 보이.
“저기다!”
네이드가 탑승한 기체는 자가발전이 가능한, 마법사 전용의 비행체였다.
동력을 외부에서 끌어오기 때문에 중량이 가볍고 크기가 작아 기동 임무에 안성맞춤이었다.
‘바슈카.’
높은 고도에서 살핀 바슈카는 엄지손톱 크기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서 바글거리는 마족들의 개체가 하나하나 눈에 보이는 기분이었다.
역겨웠고, 할 수만 있다면 단단한 구둣발로 짓이겨 버리고 싶었다.
‘곧 그렇게 될 거다.’
비행체의 하부에 장착되어 있는 한 발의 원소 폭탄.
‘오직 한 발.’
불발탄일 경우 작전은 실패하고, 인류는 지옥의 군대에 멸망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루키는 한 발을 고집했다.
‘철두철미한 놈인데도…….’
세상의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걱정하지 마라. 반드시 성공시킨다.’
다시 아래를 살피자, 지옥의 군대 대부분이 바슈카 내부 혹은 인근 지역에 밀집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떨어뜨린다.’
막상 처음으로 현실적인 신호가 뇌리에 도착하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진짜로? 진짜로 하는 거야?’
마치 여태까지 상상했던 시뮬레이션은 말도 안 되는 허상이었던 것처럼.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것도 찰나의 시간에.’
생명, 삶, 문명, 그 안에 담긴 희로애락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감당할 무게가 아니었다.
“흐으으으.”
마음이 동하지도 않았건만 이상하게도 흐느낌이 새어 나오고 눈물이 흘렀다.
“타이머. 타이머.”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하는 거야. 바보처럼, 기계처럼. 사이코처럼, 그냥 내 일을 하면 되는 거야.’
원소 폭탄의 패널에 60초라는 시간이 뜨고, 비행체에서 분리되는 순간 1초에 1초씩 줄어들게 될 것이다.
‘계산대로라면 바슈카 상공 200미터 높이에서 폭발하고, 일단 폭발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은 없다.
“간다.”
네이드가 떨리는 손으로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인간을 잡아라!”
요정, 페어리의 군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
그들을 눈에 담는 순간 네이드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간 것은.
‘누른다.’
모든 상황이 함축되어 있는 순수한 전기신호.
딸칵, 소리를 내며 원소 폭탄이 기체에서 이탈하자, 요정들이 급격히 방향을 틀었다.
“저 물체를 잡아! 이카엘 님의 명이시다!”
폭발까지 남은 시간, 59초.
***
미로는 바슈카 시내를 휩쓸고 다녔다.
“바퀴벌레 같은 게!”
천수관세음의 화신이 장법을 펼칠 때마다 건물이 폭삭폭삭 주저앉고 있었다.
“저기다!”
누가 무뢰배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으나, 미로 일행은 사소한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깔깔깔! 날 잡겠다고?”
허공에 있는 수백 개의 포인트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파이몬이 비웃음을 지었다.
‘짜증 나는 능력이야.’
규정외식 밴.
특정 공간을 격리시켜 그곳에 갇힌 자들의 운동성을 대신 사용하는 능력.
그리고 현재 바슈카는,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도 필요 없는 비정상적인 인구밀도를 가진 지역이었다.
사방에서 파이몬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호호! 불을 탐하는 부나방들이여! 현세에서 가장 멋진 축제가 곧……!”
파이몬이 서 있던 지붕이 손바닥 형태로 먼저 짓눌리더니, 천수관세음의 장법이 연타로 내리꽂혔다.
“시작되리니.”
어느새 공간을 벗어난 파이몬이 황홀한 눈빛으로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원소 폭탄이 떨어지고 있었다.
“뭐야?”
일월광륜이 대기에 망원 효과를 일으키고, 미로 일행이 하늘을 살폈다.
“이런!”
죽음을 각오했다고 해도, 실제로 폭탄이 터지기 직전이라는 것은 정신이 아찔했다.
‘얼마나 남았지?’
세인이 확인한 타이머의 시간은 38초였다.
***
빗발치는 요정들의 공격을 회피하는 네이드의 비행체가 출력을 높였다.
“답답해서 미치겠네!”
전격 마법을 시전해도 비행체의 동력으로 흡수되기에 반격이 불가능했다.
‘어차피 시간 내에 탈출하기는 글렀어.’
결국 기체를 이탈한 네이드가 플라즈마를 주위에 깔며 본격적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백색의 전기가 폭발하듯 번뜩였다.
“꺄악!”
요정의 비명은 깜찍했으나, 결과는 끔찍했다.
번개에 맞은 요정들의 몸이 발광하면서 다람쥐 크기의 골격이 비치고 있었다.
‘대체 이것들은 뭐야?’
네이드 그룹의 회장으로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천국의 군대일 것이다.
선악공애의 역학 관계가 복잡하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존재는 결코 아니었다.
‘너무 많아.’
본진에 있는 요정의 숫자는 어림짐작으로 2만이 넘었고, 주위의 숫자도 1천은 되었다.
“내가 인간을 맡겠다. 너희들은 폭탄을 수거해!”
요정 부장 타노테의 지시에 수백 명의 요정들이 폭탄을 뒤쫓았다.
‘안 돼!’
이미 목숨은 버렸지만, 원소 폭탄만큼은 반드시 정해진 위치에서 폭발해야 한다.
“거기 서!”
네이드가 지상으로 향하는 것과 동시에 강력한 구속력이 몸을 감쌌다.
“크윽!”
타노테가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삼각의 정. 트라이앵글 필드.”
네이드는 주위를 크게 감싸고 있는 붉은 선을 빠르게 훑었다.
예각삼각형 안에 갇힌 상태였고, 꼭짓점에 불길한 형태를 가진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3개의 점이 직선으로 연결되었을 때, 그 영역은 나의 것이 된다.”
‘빌어먹을!’
폭발까지 남은 시간, 23초.
***
“이루키! 이루키! 문 좀 열어 봐!”
성전의 지휘실에 홀로 남은 이루키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대답이 없었다.
옆에는 텅 빈 술병이 나뒹굴고, 모든 일을 끝낸 눈에는 초점이 풀려 있었다.
“이루키, 제발.”
도로시의 목소리에 이어 지휘관의 외침이 들렸다.
“물러서십시오! 혼자 계시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래요? 만약 위험한 생각이라도 하면요? 지금 이루키가 어떤 심정인지 알면서!”
“알기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아니, 누구도 모르죠! 우리는 끼어들 수 없어요!”
다투는 소리가 다른 차원의 것처럼 아련했다.
“……옳은 판단을 내린 거야.”
럭키 보이의 성능으로 계산하건대, 앞으로 5분 후면 바슈카의 상공에 도착할 것이다.
이루키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해냈다. 내가 해냈어. 이보다 더 효율적일 수는 없어. 그렇기 때문에…….’
옳은 것인가?
“으아아…….”
심장에 갇혀 있던 공포가 터지면서, 자신도 모르게 오열이 새어 나왔다.
“으아아아…… 으아아아……!”
머리를 움켜쥐며 오들오들 떠는 자신의 모습에서 이루키는 확신했다.
“끝났어.”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끝났다고.”
“이루키! 제발! 나랑 얘기해! 응?”
도로시가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지옥의 사자가 다가오는 발걸음처럼 들렸다.
“으아아아! 날 그냥 내버려 둬!”
“…….”
문밖에서 소리가 사라지자, 이루키는 다시 머리를 감싸 쥐고 흐느꼈다.
“내가 죽으면 되잖아. 내가 죽어 버리면…….”
그때, 조금 전과는 다른 차분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