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13
‘그래, 죽자! 다 같이 죽어!’
4초.
그저 분했고, 그 분함을 넘어서는 허무함이 아득한 곳에서 밀려들었다.
3초.
“사탄이시여.”
파이몬이 폭탄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현세에 지옥을!”
2초.
마계가 열릴 기미를 보이면서 그녀의 피부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마음껏 맛봐라! 이것이 바로!”
1초.
“내가 만든 최악의 질병……!”
그 순간 찬란한 황금빛 연기가 폭탄을 휘감자, 파이몬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0초.
‘미라클 스트림!’
그대로 폭발했으면 뇌리에 남아 있지도 않을 만큼 빠른 과정일 테지만.
“아…….”
상공의 모두는 황금빛 연기에 갇혀 있는 거대한 에너지의 진동을 볼 수 있었다.
양자 신호로 시간을 초월한 미라클 스트림이 시로네의 형태로 탈바꿈했다.
“우와.”
두 손바닥 사이에서 폭발을 억누르며, 시로네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입자의 운동성이 엄청나다.’
물론 우주의 모든 역사에서 이 정도 규모의 에너지를 느껴 본 적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만들었다고?’
이루키는 인간의 지식이 파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었다.
“시로네…….”
200미터 상공에 떠 있던 네이드와 미로 일행은 시로네를 발견하고 넋이 나갔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사실은.
“말도 안 돼.”
찰나에 수 킬로미터를 날릴 에너지를 30센티미터의 영역에 가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에너지를 전환한다.’
바람으로 풍차를 돌려 전기를 생산하듯, 시로네는 입자의 운동에너지를 헥사로 전환시켰다.
‘어떤 에너지든 치명적이겠지만…….’
시로네는 광자 신호로 조합할 수 없는 유일한 에너지를 알고 있었다.
‘야훼의 궁극적 경지.’
아가페.
입자들이 거품처럼 부글거리더니 마치 태초의 빛처럼 상공에서 폭발했다.
“키이이이!”
파이몬의 팔과 다리가 빛에 녹아내리는 순간, 미로 일행 또한 고개를 뒤틀었다.
‘결국 막지 못한 건가.’
그 순간 문득, 폭탄이 터졌다면 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야?”
미로의 눈이 번쩍 뜨였을 때, 지상으로부터 엄청난 숫자의 비명이 솟구쳤다.
“크아아아! 아파! 아파!”
바슈카의 시민들은 바닥에 엎드린 채, 사방에서 터지는 비명을 듣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야훼! 빌어먹을 야훼……! 큭!”
주위를 가득 채우고 있던 수만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증발하자 정적이 찾아왔다.
“살, 살았어?”
사람들이 허리를 세우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모든 것이 빛에 파묻힌 상태였다.
“아아…….”
마음이 포근해지는 기분에,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눈을 감았다.
‘따듯하다.’
야훼의 마음, 아가페의 온도였다.
페이스 투 페이스(2)
‘보인다.’
아가페의 신호로 충만해 있던 세상이 풍경의 빛깔을 되찾기 시작했다.
지상으로 내려온 미로가 주위를 살폈다.
마족으로 바글거렸던 바슈카 시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황량하게 비어 있었다.
“아우우. 아우.”
마의 농도가 짙은 자, 강한 마족들조차 반쯤 녹아내린 상태로 땅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절반이 날아갔어.’
인구밀도로 짐작했을 때, 소멸한 마족은 최소 6천만 이상일 터였다.
물론 바슈카 시내는 거의 전멸.
그나마 생존한 군대는 아가페의 범위 바깥, 바슈카 성벽 너머에 있던 마족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족을 제외한 시내의 사람들은 일말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살았다.”
정신을 차린 시민들이 벌떡 일어났다.
“살았어! 우린 살았다고!”
그들의 함성 소리가 하늘까지 올라오는 순간에야 일행은 현실을 피부로 느꼈다.
‘시로네가…….’
언제나 반가운 얼굴이지만, 지금은 죽은 사람이 되돌아온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후우.”
마지막으로 지상에 내려온 시로네가 길게 숨을 내쉬더니 모두를 둘러보며 웃었다.
“안녕?”
늘 그렇듯 담백한 인사에도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시…….”
에이미가 입을 열며 다가가려는 그때.
“시로네!”
스파크 마법을 시전한 네이드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시로네를 끌어안았다.
“이 자식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한테는 말이라도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미안. 사정이 있었어.”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기에 네이드도 설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하아, 진짜…….”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루키는 생각하고, 네이드는 준비하며, 시로네는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니까.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고.”
원소 폭탄 타이머가 10초 아래로 떨어졌을 때는 솔직히 심장이 쫄깃했다.
퍼뜩 떠올린 네이드가 말했다.
“이루키에게 전해야겠어. 그 녀석, 1분1초가 위험한 상황이야. 자칫하면…….”
“괜찮아. 이루키도 알고 있으니까.”
“응?”
원소 폭탄의 존재를 알면서도 시로네가 성전에 먼저 다녀왔을 리는 없었다.
‘그럴 성격이 아닌데.’
마음은 급한 쪽으로 기우는 법.
하지만 그것 또한,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상식일 뿐이었다.
“시로네.”
리안의 목소리에 시로네가 돌아보았다.
“리안.”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이 끔찍한 전장 속에서 시로네를 잠시 잊고 싸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테니까.
그런 자부심의 발로인지, 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에이미의 등을 떠밀었다.
“아.”
네이드에게 선수를 빼앗겼지만, 차라리 다행일 정도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나는 시로네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기에, 따듯한 희망은 사라지고 차가운 현실만이 남는다.
그렇게 모든 것을 직시해야 하는 시점에서.
‘시로네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강해졌구나, 에이미.”
마치 위로하는 것 같아서, 에이미가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불안함이었다.
“열심히 했어. 발키리에 들어가고, 가르시아 선생님에게 특별훈련도 받고, 또…….”
최대한 많은 것들을 나열해 보지만.
“너랑 같이 싸우려고, 목숨을 걸고 전쟁터를 돌아다녔어. 그러다가 화계를…….”
시로네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죽을 뻔했는데, 그랬는데…….”
서러운 마음을 필사적으로 참는 에이미를 바라보며, 시로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진심이었다.
“너에게 상처를 줬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어. 나는 최악의 남자 친구야.”
“뭐가.”
에이미는 떨리는 입술에 힘을 주었다.
“뭐가 최악이야. 너는 최선을 다한 거잖아. 내가 약해서, 함께 싸울 수 없으니까…….”
“아니.”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약한 건 나였어.”
“…….”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경지에 오른 시로네의 첫 번째 진의를 기다렸다.
“내가 약해서, 그런 못된 말을 해 버렸어. 너도 나만큼 힘들었을 텐데, 내 고통까지 책임지게 해 버렸어.”
울티마 시스템이 가능한 이유는, 모두가 마음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태까지 에이미가 감당해야 했던 상처를 짐작하며 시로네가 말했다.
“함께 싸우자. 결과가 어떻게 되든, 네 곁을 떠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감정이 북받친 에이미의 어깨가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친구들이 미소를 지었다.
“……응.”
에이미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울지 않아.’
모두와 함께 이 전쟁을 끝내기 전까지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다.
한편 바슈카의 성벽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던 천국의 군대도 잠시 넋을 잃었다.
특히나 사티엘은 아가페의 빛이 터진 이후로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뭐지?’
헥사의 일종이라는 건 확실하지만, 단연코 경험해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거핀 말소에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
그것과도 조금 다르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특유의 불쾌감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모르는 것이라는 얘기군. 하지만 또한……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기억의 복구를 수없이 시도했던 그녀이기에 추론할 수 있는 경우는 하나.
‘거핀 그 자체일 경우.’
아가페는 경험하지 못했지만, 거핀과 연관되어 있을 경우 모순은 해결된다.
‘결국 저 빛의 느낌이 거핀이라면…….’
사티엘의 시선이 이카엘을 향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다.
‘어째서?’
만약 이카엘이 기억을 되찾았다면 조금 전의 빛에 충격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
‘설마, 기억을 되찾은 게 아니야?’
이카엘을 뚫어지게 관찰하며 생각에 잠겼던 사티엘이 사납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기억이 복구되지 않은 나조차 정신에 파문이 있었어.’
성광체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정신을 제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살았구나.’
이카엘은 마족들이 사라지고 수백만 명의 인간이 목숨을 구한 현장을 내려다보았다.
“안도했느냐?”
나네의 물음에 이카엘이 고개를 돌렸다.
“저는 인간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지. 마음이 담기지 않은 소리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
이카엘이 침묵하자 슈라가 나섰다.
“부처께서는 어떤 심정이신지요? 수많은 마족이 죽었고 인간들이 살았습니다.”
나네는…….
“내가 심령권을 열었다.”
삶의 기회를 되찾은 시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내가 마를 불렀고, 그 대가로 수많은 인간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잔인하다고 생각하느냐?”
“…….”
“저들이 살아서 기쁘냐고? 물론 기쁘다. 하지만 마魔란, 그 시대가 담고 있는 정신이다. 외계에서 온 괴물이 아니야.”
나네는 슬픈 표정으로 콧잔등을 구겼다.
“언제부터 인간이…… 고작 마魔 따위에 고통을 받고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지?”
이번에도 슈라는 대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