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14
“내가 지옥을 열었을까? 아니, 나는 시대를 연 것이지. 심령권이 열리기 전에도 누군가는 감당해야 했던, 그 끔찍한 고통들이 실체가 되어 모두를 덮친 것뿐이다. 지금 저기서 기뻐하는 자들 중에서, 이 시대의 지옥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자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인간이란 본래…….”
“한때는 있었다.”
앙케 라의 꿈을 삼킨 나네는 아주 오래전에 존재했던 인류를 알고 있었다.
“시대의 정신 따위는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정말로 강한 인류가.”
대천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실제로 천국의 역사에서 마魔가 강력한 힘을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이아인은 신과 싸운 종족이다. 그들의 신념 앞에 마魔는 발붙일 곳이 없었어.’
자신의 안에 담긴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다.
“그렇기에 아직은, 내 존재의 필必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가 없구나.”
나네가 말했다.
“직접 가서 듣겠다.”
바슈카의 성벽을 넘은 천국의 군대는 시로네가 있는 거리에 착지했다.
블록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대의 야훼와 시대의 부처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
하나둘씩 소리가 사라지고, 마침내 숨소리조차 없는 정적이 찾아왔다.
네이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당장 나네의 뒤편에 도열한 자들만 봐도, 세상을 압도할 정도의 기운이었다.
‘저게 대천사구나. 시로네가 말한 이카엘인가? 저 녀석은 아마도 이미르…….’
“긴장할 것 없어.”
미로가 네이드의 어깨를 짚었다.
“붙어 보기 전에는 몰라. 우리도 만만치 않으니까. 물론 너를 포함해서 말이야.”
극선의 미소에 마음이 진정되었다.
“아…….”
그러자 비로소 시로네를 호위하는 자들의 면면이 눈에 들어왔고, 전율이 일었다.
‘그리고 나.’
최강의(자칭) 전기 마법사 네이드.
‘이 싸움, 내가 끝낸다.’
그렇게 눈을 빛내며 앞을 돌아보는 그때, 시로네가 혼자서 걸음을 옮겼다.
“야, 너……!”
시로네가 돌아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다녀올게.”
네이드는 그제야 천국의 군대에서 나네가 홀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야훼와 부처가 서로를 만나기 위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영겁처럼 길었다.
심각하게 지켜보던 단테가 피식 웃었다.
‘추억 돋네.’
마법학교 시절, 이천번 대인 전투에서 시로네와 단테도 저렇게 걸어갔었다.
‘우리 둘 다 실패가 없었지.’
짧은 인생에서 연승만을 경험했던 두 사람이 맞붙었고, 결과는 단테의 패배.
‘그 패배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승리의 강박에서 벗어나 인생을 음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너는, 아직도 짊어지고 있구나.’
나네의 주위에 검의 잔상들이 일어서자 시로네도 육각형의 헥사를 띄웠다.
‘가라.’
단테는 시선으로 시로네의 등을 밀어 주었다.
‘거기가 세계의 종착지다.’
헥사를 황금빛 연기로 깨트린 시로네와, 검화를 일으키는 나네의 이마가 부딪혔다.
“…….”
그 상태로 두 사람이 서로를 응시하자, 지켜보는 자들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닮았다.’
순수한 인상의 시로네와 문신으로 가득 찬 나네의 인상은 결코 같지 않았지만…….
‘왜 이러지? 내 눈이 이상한가?’
마치 1명이 거울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좌우가 역전된 똑같은 사람 같았다.
“거울의 이면.”
미로가 말했다.
“그렇다면 진짜는…… 과연 누구일까?”
나네의 검화가 가시처럼 일어서고, 동시에 미라클 스트림이 갈라지며 치받았다.
쿠쿠쿠쿠쿠쿠쿠!
보이는 잔상만 수천 개인 검화가 빛의 연기에 휘감길 때마다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첫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싸움은 시작된 거야.”
단지 서로가 가는 길을 막아섰을 뿐, 어느 누구도 걸음을 멈춘 적은 없었던 것이다.
‘뚫고 간다.’
시로네가 이를 악물고 인상을 찡그리면 여지없이 나네도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무엇이 필必인가?’
그것을 묻는 억 단위의 개념이, 그 모든 조화들이 검의 형태로 시로네를 공격했다.
‘반드시는 없어.’
미라클 스트림이 나네의 검을 휘감자 그 모든 개념들이 망상처럼 흩어졌다.
‘그렇게 차갑지 않아. 그게 마음이야.’
헥사와 검화가 굉음을 내며 충돌하는 동안, 양측 진영의 누구도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같은 것이 부딪치고 있다.’
단지 서로를 마주 보고 있을 뿐인데도 세상의 율법이 파열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차피 세계는 하나.”
미로가 말했다.
“그 세계를 완벽하게 정의한 두 사람에게 남은 건 오직 관점의 차이겠지. 마치 거울처럼 말이야. 하지만 문제는, 누가 거울 속에 있는지 모른다는 거야. 또한 둘 다 완벽하기에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다.”
세인이 물었다.
“그렇다면?”
“따라서 부서지는 건 관점. 거울이 깨진 순간, 저들은 스스로 알게 될 거야.”
파편이 되어 쏟아지는 게 누구인지.
페이스 투 페이스(3)
‘대단하다.’
나네는 시로네에게 경의를 표했다.
깨달음의 경지야 그 스스로가 정점에 올랐기에 딱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
다만 시로네가 선택한 길.
‘마음.’
모두의 마음을 담은 채로 세상의 끝에 올라섰다는 사실이 대단한 것이다.
‘그래, 그런 길도 있었구나.’
거울의 대칭성처럼, 시작부터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같은 자리에 왔기에.
‘옳다고 해야겠지.’
헥사, 마음이 추구할 수 있는 궁극적 경지를, 나네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나네의 검화가 더욱 화려한 빛을 뿜어내면서 미라클 스트림을 찔러 대기 시작했다.
무엇을 상상해도 좋다.
나네의 검에는 이 세계가 가지고 있는 모든 조화가 담겨 있으니까.
‘설법, 빙氷.’
모든 차가운 개념들이 무한에 가까운 스펙트럼을 이루며 시로네를 찔렀다.
‘차갑지 않아.’
나네의 진리를 부정하는 시로네의 마음이 미라클 스트림으로 구현되어 설법을 파괴했다.
에이미의 얼굴이 충격에 휩싸였다.
“세상에…….”
빛의 입자와 개념의 검이 충돌할 때마다, 스파크 속에서 믿을 수 없는 게 보였다.
“저게 뭐지?”
눈동자.
사람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수를 셀 수 없는 눈동자가 그들의 망막에 아른거렸다.
“세계가 찢어지는 거야.”
미로가 말했다.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 우주에 생긴 오류인지, 그 이상의 무엇인지는…….”
네이드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우리가 나서면 어떨까요? 현재 팽팽한 상태니까 힘의 균형을 깨트리면?”
“저쪽은 바보일까?”
미로가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 심각한 얼굴로 기다리는 천사들이 보였다.
“저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시로네와 나네가 힘의 대결을 펼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야.”
“그럼 무엇으로 싸우죠?”
“삼라만상의 모든 정의.”
“…….”
“세계는 하나인데,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된 일인지 2개가 되어 버렸다. 그런 문제야.”
루피스트가 말을 이었다.
“내가 100톤의 질량으로 때렸을 때, 그 100톤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나네와 시로네가 각각 정한다. 결국 의미가 없어. 저들이 정하는 거라고.”
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두 가지의 계가 완벽하게 맞물려 있다. 저 안에서 내려지는 정의는 두 사람만 알고 있어. 내가 극선으로 나네를 공격한다고 해도, 오히려 시로네가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야.”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로네와 나네의 대결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이것도 깨달았나?’
질문을 던지는 건 언제나 나네였다.
‘그럼 이건 어떠냐?’
설법의 검이 우주의 끝과 끝의 개념을 모조리 조합시키며 시로네에게 쏘아졌다.
‘아가페.’
미라클 스트림이 무시무시한 빛을 뿜어내며 나네의 검을 휘감아 깨트렸다.
미로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거의 견주었다.”
만약 대화라고 한다면, 두 사람은 짧은 시간 동안 우주의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도 똑같다. 1명이라면 신이었을 테지만, 결국 둘이기에…….’
여전히 인간.
‘깨지는 쪽은 누구인가?’
미로가 얼굴을 감싸며 심각하게 지켜보는 그때, 천사들의 성광체가 흔들렸다.
동시에 연합군 쪽에서 탄성이 터졌다.
“어? 어어?”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미동이지만, 집중력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강력한 느낌이었다.
“시, 시로네가…….”
나네의 이마를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닮지 않았어.’
거울의 대칭성이 소멸하면서 야훼와 부처가 분리되자, 나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크으으으!”
검화가 폭발하듯 일어서고, 바슈카 전체가 강력한 진동으로 들썩거렸다.
‘관점이 깨지고 있다.’
세상이 둘로 쪼개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나 시로네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아.’
매서운 눈을 치뜨고 한 걸음을 내디디려는 그때, 나네의 미소가 보였다.
“응?”
시로네의 한 걸음이 땅을 내딛는 것과 동시에, 나네가 같은 거리를 물러섰다.
“뭐, 뭐야?”
연합군은 물론 천국의 군대도 눈을 가늘게 떴다.
‘스스로 물러섰어?’
거의 같았기에, 시로네조차 조금 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라면 하지 않았을 거야.’
패배가 무서워서 물러설 정도라면 애초부터 시대의 부처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므로.
“유익한 대화였다.”
나네의 말에 불쾌한 이유였다.
“대화라고? 우리는 세계를 걸고 충돌했어. 변수는 없지. 아니, 모든 변수를 검토했어. 무슨 짓을 꾸미든 결과는 변하지 않을 거야.”
“알아. 내가 졌다.”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천국의 군대의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부처시여…….’
가장 충격을 받은 건 슈라였다.
‘내가 알고 있다. 이토록 쉽게 물러서실 분이 아니야. 설령 야훼라고 해도……. 설마?’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만큼 어려우신 겁니까?’
나네가 물러서며 말을 이었다.
“방향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인간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지. 너의 박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진심으로 너를 이해하고 있어.”
나네의 시선이 처음으로 시로네에게서 벗어나, 뒤편에 있는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에이미.’
세상을 닫으면 에이미가 사라지고,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도 사라진다.
‘옳은 일일까?’
나네는 하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서 옳기에, 이것 또한 옳다고 믿어 버리면 그만.
‘그래서는 안 된다.’
100퍼센트가 아니라면, 부처의 설법은 진리가 아닌 폭언이 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