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18
파편으로 흩어진 기억 속에서, 자석에 빨려들듯 수많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앙케 라, 비밀스러운 대화, 아이의 죽음.
‘아니야.’
손끝이 파르르 떨리고, 온몸이 불타오를 정도로 정신이 뜨거워졌다.
“그럴 리가 없어.”
외면해 보지만, 정언定言의 존재인 천사의 사고에 망상은 불가능했다.
“이, 이유가…… 있었을 거야. 그렇지?”
이카엘은 대답하지 않았고, 그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사티엘은 미쳐 갔다.
“아니야! 네가 나빴기 때문이야! 그래, 그런 느낌이야. 전부 네가 저지른 일이라고!”
이오나스가 소리쳤다.
“고정하십시오! 더 이상 정신체가 붕괴되면……!”
“아아아아아!”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움켜쥔 사티엘의 성광체가 원의 형태를 잃어 갔다.
“죽여!”
피에 젖은 눈동자가 시로네를 겨누었다.
“죽이란 말이야아아아!”
명령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사라진 이오나스가 시로네의 눈앞에 나타났다.
극한분해-아토믹 무브먼트.
“원망하지 마라.”
오른쪽 주먹을 치켜든 이오나스의 팔이 원자 단위로 해체되더니 물리계 최고의 속도로 쏘아졌다.
***
에너미 제로.
절대적 안전지대를 뜻하는 군사적 용어.
또한 시로네의 핸드 오브 갓이 일시적으로 바슈카 내부에 조성한 상태이기도 했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어디서 정보가 새어 나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마족이 전멸했고, 크기만으로 쇼크를 일으킬 지경이던 거인들도 사라진 상황이었다.
“토르미아 만세! 토르미아 만세!”
그들은 하늘에서 폭발한 아가페의 빛에 대해 궁금했지만,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당장은 소리를 지르면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불쾌한 진실로부터 도망칠 뿐이었다.
“토르미아의 전 국민은 들어라!”
높다란 연단을 실은 마차가 대로변을 가로질러 광장의 중심에 정차했다.
단상에는 왕족 직계 서열 17위인 노인이 확성기를 들고 서 있었다.
시민들은 그를 몰랐지만, 토르미아의 상징이 수놓인 왕족의 의상을 보고 무릎을 꿇었다.
광장이 조용해지고, 그 정적은 파문처럼 퍼져 결국 모든 블록을 잠식했다.
“친애하는 토르미아의 국민들이여, 오늘 위대한 나라의 위대한 국왕, 아돌프 12세께서 별세하셨다.”
시민들의 눈이 충격에 물들었다.
“이, 이럴 수가…….”
그들의 시선을 잠시 빨아들인 노인이 입을 열었다.
“오직 이것만을 기억하라, 국민들이여. 바슈카를 침략한 괴한에 맞서, 우리 왕족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음을.”
실상은 원소 폭탄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이고, 노인은 남몰래 이를 갈았다.
‘감히 왕족을 패스해? 배후가 누구든지 잡히기만 해 봐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여전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안 되고 있지만, 일단 왕권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다.
“아돌프 12세께서는 마지막까지 거인과 싸우셨고, 용맹하게 전사하셨다.”
“아아, 전하.”
눈물을 흘리는 시민 중에 한 사람이 일어섰다.
“그렇다면 혹시 마족을 물리친 빛은 국왕께서 승하하시며 내려 준 빛이 아닐지요?”
노인의 한쪽 눈이 일그러졌다.
‘무슨 헛소리야? 짜증 나게.’
하지만 아무리 합리적인 자라도, 목숨이 오가는 곳에서는 신을 찾게 되는 법.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거인과 싸우고 숨을 거두시는 그 순간에도, 국왕께서는 오직 국민들을 걱정하셨다. 그리고 또한, 그것이 바로 토르미아의 왕족이다.”
“우와아아아!”
시민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그 기세를 몰아 노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위대한 왕의 혈통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선포하노니, 아돌프 12세님의 장자인 아돌프 13세를 새로운 왕으로 맞이하라! 싸우자! 우리는, 토르미아는! 절대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아돌프 13세 국왕 폐하 만세! 토르미아 만세!”
만세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파도를 타고 알로그 거리까지 들어왔다.
마법협회의 협회장실에서 서류와 씨름하던 루피스트가 인상을 찡그렸다.
“시끄러 죽겠네.”
플루가 창문을 닫자 소음이 줄어들었다.
“왕족의 움직임이 빠르네요. 사실 운이 따른 셈이지만요. 어쨌든 왕위 승계는 문제없을 것 같아요.”
“당연히 문제가 없어야지. 밥 먹고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놈들인데.”
누군가가 밖에서 강하게 문을 두드렸다.
“협회장! 루피스트! 지금 있지? 잠깐 나하고 이야기 좀 하세! 급한 일이야!”
왕족 직계 서열 7위의 목소리였고, 이곳을 찾은 이유도 대충 짐작이 갔다.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문 열어! 너는 알고 있었지? 바슈카가 조만간 쑥대밭이 될 거라는 사실을! 감히 왕족을 기만해?”
뒷짐을 지고 있던 플루가 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쫓아 버려. 정치인하고 씨름할 시간 없어.”
피해 상황을 빠르게 확인하고 도시의 병력을 재정비하는 게 급선무였다.
플루가 문을 반쯤 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협회장은 지금 공무가 바쁘니 나중에 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뭐가 어째? 그래, 너 비서실장이구나. 나 누군지 알지? 내가 바로 왕족 직계 서열…… 악!”
경비부장이 다가와 왕족의 팔을 비틀었다.
“잠시 무례를 범하겠습니다. 전시 상황이라는 특수한 경우이니 양해해 주십시오.”
“아파! 아프다고! 아아아!”
플루가 한숨을 내쉬면서 지켜보는 그때, 복도 끝에서 시로네가 걸어왔다.
“놔! 알았으니까 제발 좀 놓으라고! 아파!”
시로네는 바닥에 질질 끌리면서 곁을 지나가는 왕족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는 어느새 협회장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누나, 저 사람 누구예요?”
플루가 문을 활짝 열며 미소를 지었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 들어와.”
시로네가 협회장실로 걸음을 옮기자 루피스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양자 전송?”
“공간 이동요. 너무 가까우면 불편하거든요. 어차피 바슈카는 익숙하고요.”
랜드 마크도 다양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그래. 오면서 봤겠지만 왕족들이 활동을 개시했어. 안정적인 승계를 위해 이번 전쟁의 공을 전부 가로채려고 할 거야. 너의 업적도.”
“괜찮아요. 저는 상관없어요.”
“물론 그렇지. 다만 지금의 왕족들이 전시 상황을 제대로 이끌어 갈지는 미지수야.”
협회장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다분히 도발적이었기에 시로네는 눈을 깜박였다.
루피스트가 진심을 밝혔다.
“우리는 포니를 밀고 싶다.”
“흐음.”
시로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신중하게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녀는 원소 폭탄 프로젝트를 자력으로 간파한 몇 안 되는 인물 중의 하나지. 이번 기회를 틈타서 쿠데타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은 모양이야.”
시로네가 피식 웃었다.
“마법사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거야. 울티마 시스템 프로젝트 말이야. 포니가 토르미아의 국왕이 된다면, 인류의 통합에 큰 도움이 될 거다.”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진리였다.
“그렇다면 현재 국왕은 어때요? 보시기에 자격이 많이 부족한가요?”
“자격이라.”
루피스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전 국왕 아돌프 12세는 성군은 아니었지. 하지만 실용적인 인물이었어. 그 미치광이 가올드조차 협회장으로 받아들인 성격이니까.”
그것으로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3명의 아들을 두었지. 성격은 다 다르지만, 어쨌든 실용과는 거리가 멀어. 그것은 곧 전쟁과도 거리가 멀다는 거야. 인간에게 인품을 기대하는 건 어리석지만, 행동이 겉으로 드러나는 건 문제지. 소동이 생길 수도 있을 거야.”
시로네 또한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도 직접 보기는 해야겠다.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변했을 수도 있으니까.’
결정을 내린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가 볼게요.”
“명심해. 그들에게 박애니 메시아 같은 개념은 통하지 않아. 초반에 잡으려면…….”
시로네가 안주머니를 톡톡 두드렸다.
“네, 이걸 쓸게요.”
상아탑 통합우주관리부의 오대성을 무시할 수 있는 왕족은 없을 테니까.
동시 사건(3)
아돌프 13세와 왕족들은 지하 벙커에서 빠져나왔다.
천장이 무너진 왕실은 심히 불쾌했으나, 투덜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왕이 모르는 전투가 수도에서 벌어지다니. 지금 당장 이번 사안에 관련된 자들을 부르도록 하시오.”
“하오나 현재는 사태 수습이 우선인지라…….”
“숙부.”
아돌프 13세의 눈에 노기가 서렸다.
“네, 전하.”
“내가 왕이오. 아무리 전시라도 왕권이 회복되지 않으면 국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이제 막 왕이 된 자의 초조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렇기에 어려운 일이었다.
‘모두 거절했다.’
높은 직계 서열을 보냈음에도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돌프 13세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
직계 서열 1위, 아돌프 13세의 동생 로빈스가 말했다.
“전하, 이미 국민들은 전하를 위대한 왕으로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국민이 따르면 정치인들이 따르고, 결국 각 기관의 실무자들이 꼬리를 내리는 것은 금방입니다.”
“흐음.”
어쨌든 듣기 좋은 말이었다.
“또한 성전의 군대가 바슈카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은 큰 기회입니다. 토르미아를 세계대전의 중심국으로 만들면 타국에서 막대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왕족들이 동조했다.
“맞습니다. 특히 남부 대륙에는 거금을 매겨야 합니다. 우리가 방패의 역할을 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아돌프 13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상아탑의 인물이 와 있다고 하던데.”
“통합우주관리부의 오대성, 아리안 시로네입니다. 자국 출신으로 시대의 박애, 세계대전의 큰 축을 맡고 있는 자이옵니다.”
“흥, 박애는 무슨.”
아돌프 13세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않았다.
“아무튼 극진히 대접하시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소.”
어차피 상아탑의 인정을 받으면 타국의 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한 가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결?”
로빈스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말했다.
“직계 서열 127위, 포니입니다.”
“크흠.”
아돌프 13세의 얼굴에도 분노가 서렸다.
“현재 이곳에 있는 오대성과 포니는 마법학교에서 함께 수학한 사이입니다. 그녀가 먼저 시로네를 포섭한다면…….”
섬뜩한 상상을 한 왕족이 소리쳤다.
“죽여야 합니다! 아까도 보셨지 않습니까. 망설임 없이 마법을 시전했습니다. 왕권을 양보한 것도 당장 살기 위해서일 터. 도시가 안정된 지금, 분명 수작을 부릴 것입니다.”
아돌프 13세가 턱을 괴었다.
“그렇다고 제까짓 게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소? 상아탑 1성급 주민을 포섭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거늘, 하물며 오대성이야.”
“모르죠, 미인계라도 사용할지.”
“…….”
왕족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말이었으나, 그 대상이 포니라면 얘기가 달랐다.
“예전부터 낌새는 있었지 않습니까? 왕족 직계 서열에 들기 위해 세계 미인 대회까지 나갔던 여자입니다. 자신의 외모가 출중하다는 것을 알고 하는 일입니다. 이번에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예요.”
비로소 왕권 전복의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할 수 있겠소? 마법협회는 우리를 돕지 않을 것이고 현재 군사 지휘권은 성전에 넘어간 상태요. 확실하게 죽이지 못하면, 오히려 우리가 당할 거요.”
로빈스가 말했다.
“저에게 대책이 있습니다. 범죄자를 이용하는 것이죠.”
“감옥이라. 하지만 A급 이상의 범죄자 수용소 또한 마법협회에서 관리하고 있지 않나?”
“서쪽 감옥, 인페르노에 적임자가 있습니다.”
언젠가 아버지나 형을 죽여야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기에 대비했던 카드가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왕족이 의아하게 물었다.
“인페르노? 거긴 아무리 흉악해도 B급일 텐데?”
“그렇기는 하나…….”
범죄를 저질러서 갇혀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실력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히트맨인 군조 베디움의 아들이니까요. 또한 시로네, 포니와 같은 마법학교 출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