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19
“군조 베디움이라면, 블랙 라인?”
왕족들에게는 듣는 것만으로 치가 떨리는 이름이었다.
‘그런 자의 아들이 인페르노에 갇혀 있다고? 아니, 그 전에 로빈스는 어떻게 그자를…….’
순간 왕족들의 얼굴이 창백해졌으나,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하긴, 당연한 일이다.’
직계 서열 10위 안에 있는 자들은 누구라도 왕이 될 가능성이 있고, 나름대로 한 장의 카드는 가지고 있었다.
‘내색하지 말자. 당장은 포니를 제거하는 게 먼저야.’
어떤 위험도, 그녀가 시로네를 포섭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아돌프 13세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물론 알고 있겠지만, 그는 왕이었다.
“좋다. 포니 건은 로빈스, 너에게 맡기마. 단, 확실하게 처리해야 할 것이야.”
“네. 염려 마십시오, 전하.”
로빈스가 고개를 숙이는 그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상아탑의 오대성께서 알현을 청하옵니다.”
다급한 목소리였고 왕족들은 술렁거렸다.
‘너무 빠른데?’
토르미아의 입장에서는 호기지만, 언제나 사고는 좋은 일에 숨어서 따라오는 법이었다.
“모시어라.”
지시가 떨어지는 즉시 로빈스가 뒷문으로 빠져나가고 정문이 열렸다.
아돌프 13세는 직접 몸을 일으켜 시로네를 마중했다.
“어서 오십시오. 초임의 왕이 상아탑의 별을 뵙습니다.”
행동과 말투에 진심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었다.
“네. 상아탑의 오대성 시로네입니다.”
“누추해서 죄송합니다. 보다시피 큰 소란을 겪은 뒤라, 경황이 없었습니다.”
‘소란이라.’
얼마나 사람이 죽었는지 모르지는 않을 테지만, 시로네는 내색하지 않고 테이블에 앉았다.
시녀들이 급하게 공수한 고급 차를 내왔다.
“응당 연회를 베풀어야 마땅하오나 준비할 시간이…….”
“그건 됐어요.”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온 이유는 토르미아의 새로운 국왕에게 비전을 듣고자 함이에요. 현재 인류가 위태로운 상황이니까요.”
“물론입니다.”
올 것이 왔다는 듯 아돌프 13세가 자세를 바로 고쳤다.
“토르미아 왕국은 오늘, 세계대전에서 유례없는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마족을 전멸시켰고 거인을 몰아냈죠. 성전과 토르미아의 국민들이 힘을 합쳐서 이루어 낸 성과입니다.”
시로네는 일단 넘어갔다.
“우리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세계에 알릴 것입니다. 토르미아를 구심점으로 인류는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상아탑의 별이시여, 그 역할을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아돌프 13세.’
본명은 아돌프 테나르로 나이는 44세.
시로네는 오메가를 통해 그의 22세까지의 행적을 알고 있다.
‘어릴 때부터 야심가였고, 문제 해결 방식은 평균적으로 신속, 은밀, 잔인.’
아돌프 13세가 넌지시 말했다.
“토르미아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즉 열과 성을 다해 오대성을 도울 것입니다.”
“…….”
이 정도면 노골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시로네는 거핀이 남긴 말을 떠올렸다.
-모두의 이야기를 들어 다오.
“일단 알겠어요.”
아돌프 13세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야? 상아탑의 인물들은 괴짜라더니, 오히려 호구잖아?’
마음을 감춘 채 그가 말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만 하십시오.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아뇨. 비전을 들었으니 가 볼게요. 그런데 포니는 어디에 있죠? 여기에 없는 것 같은데.”
왕족들의 표정이 살짝 굳었고, 그 찰나의 변화를 시로네는 놓치지 않았다.
“부를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할 얘기가 있어서요.”
“당연히 따라야지요. 포니는 정말 용감한 왕족입니다. 아마도 바깥에 나가 직접 일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돌아오는 대로 오대성님을…… 윽!”
시로네의 얼굴을 쳐다본 순간 등골을 타고 전기가 흘렀다.
마치 시선으로 관통당하는 느낌.
‘갑자기 뭐야?’
정치계, 사교계를 막론하고 포커페이스에는 이골이 났지만, 이 정도로 관찰당하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시로네가 물었다.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거죠?”
완벽한 미소를 지은 아돌프 13세가 입을 열었다.
“숨기다니요. 제가 어떻게 상아탑의 별을 앞에 두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시로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고치지 못했네요, 그 습관.”
“네?”
“거짓말을 할 때 특유의 미소를 짓는 거요.”
“터무니없습니다. 미소야 늘 짓는 것입니다.”
“하지만 특정한 상황에서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죠. 어릴 적에 각인된 기억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가 선대에게 꿀밤을 세게 맞은 적이 있잖아요?”
장내가 정적에 휩싸인 가운데, 아돌프 13세의 목젖이 꿀꺽 넘어갔다.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아버지와 자신을 제외하면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다.
‘아니, 아버지가 살아 계셔도 기억이나 할까?’
본인도 망각하고 살 정도로 큰일이 아니었건만, 어떻게 시로네가 알 수 있단 말인가?
“완벽한 미소를 짓기 위해 피나는 훈련을 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딱 하나 연습하지 못한 게 있네요. 하긴…….”
시로네가 그를 가리켰다.
“토르미아의 왕자에게 꿀밤을 먹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됐겠어요?”
무릎에 얹은 아돌프 13세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통합우주관리부의 오대성은 귀신인가?’
통찰력이나 분석이 아니다.
‘너무나 사소한 일이야. 정신 계열 마법사라도 내 심층에서 족히 한 달은 헤매야 찾을 것이다.’
마치 영혼까지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마지막 기회를 드릴게요. 숨기고 있는 게 뭐예요?”
아돌프는 승부를 걸었다.
“허허. 무슨 말씀이신지 알 수가 없군요.”
식은땀을 흘리며 웃고 있는 아돌프 13세의 눈이 또다시 감겼다.
***
바슈카 서쪽 감옥, 인페르노.
급한 전보를 받고 도착한 포니는 관리부장에게 왕족의 인장이 찍힌 서류를 건넸다.
“이쪽입니다.”
왕이 다스릴 수 없는 국민은 하늘 아래 없고, 모든 국가의 왕은 면죄부를 작성할 권한이 있다.
‘불쾌한 일을 떠맡았군.’
바슈카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포니에게 급한 연락이 왔다.
국가 복원에 꼭 필요한 인력을 차출해야 하니 인페르노에서 범죄자를 석방시키라는 내용이었다.
인력이 부족한 상황은 알고 있기에 순순히 따랐지만, 권력에 대한 실망이 큰 만큼 회의감이 들었다.
“이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인페르노에서 가장 깊은 곳, E동의 음침한 지하 시설이 그녀를 반겼다.
특수 범죄자들이 수감된 곳으로, 하나같이 악독한 인물들이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인재를 찾아?’
이번 일만 처리하면 미련 없이 알페아스 마법학교로 돌아가리라 다짐하며, 그녀는 긴 복도를 걸었다.
가장 끝에 있는 방에서 여자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혼숙이 불가능하다는 건 알고 있으나, 간드러진 여자의 목소리 사이사이로 남자의 숨결이 새어 나왔다.
‘어떤 자식이야?’
인재라고 했으니 특별 대우를 받는 수감자라는 건 자명한 사실.
하지만 이미 혐오감이 든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죄수 번호 3824. 특수 보호 관찰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나와.”
신음 소리가 뚝 하고 그쳤다.
‘특수 보호?’
왕자 로빈스와 약속한 다섯 가지 키워드 중의 하나로, 그 의미는…….
너를 찾아온 자를 죽여라.
‘때가 되었군.’
천장에서 간수의 음성이 들렸다.
“30초 동안 E동의 마력 제어 장치를 해제하겠다. 사이렌이 울리는 동안 거동 수상한 자는 왕명에 의해 즉각 처결한다.”
곧바로 사이렌이 들리고 마력 제어 장치가 꺼지는 게 느껴졌다.
“오빠, 밖에 누구야?”
범죄자 수용소에서 들리는 간드러진 목소리에 포니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나와, 개자식아.”
간수에게 받은 열쇠를 부러질 듯 돌리고 문을 여는 순간.
“컥!”
어둠 속에서 손이 날아와 포니의 목을 붙잡았다.
쾅! 소리를 내며 수용소의 벽에 처박힐 때까지도 포니는 저항하지 못했다.
“큭! 이 자식……!”
마법을 시전하려는 순간 온몸에 전격이 차올랐다.
“허어어억!”
“쉬이.”
머리를 산발한 낯익은 남자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포니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너는?”
일렉트릭 몬스터 라이컨.
“어라?”
라이컨 또한 흥미롭다는 듯 약에 취한 입꼬리를 배시시 올렸다.
“포니? 오랜만이다?”
“너, 너 이 자식! 이거 놔!”
여자가 헐벗은 몸을 감추지도 않고 라이컨을 흔들었다.
“오빠! 이 계집애 뭐야? 설마 나 말고 다른 여자도 부른 거야? 언제는 나만…… 헉!”
라이컨이 손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퍽 소리를 내며 여자의 얼굴이 폭발했다.
‘엄청난 전격.’
“하긴, 너도 왕족이었지. 불쌍하군. 그래도 자부심을 가져. 네가 위협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증거니까.”
라이컨이 썩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죽어라.”
목을 조이는 손에 전기가 휘감기는 그때, 포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건…….’
라이컨의 등 뒤에서 익숙한 누군가의 모습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시로네?’
동시 사건(4)
***
입자로 분해된 이오나스의 주먹이 시로네의 코앞에서 급격히 형태를 갖추었다.
“큭!”
시로네가 고개를 틀자 대기가 밀리며 허공 저편에서 소닉붐이 터졌다.
“그래도 재주는 있군.”
시로네가 이오나스를 눈에 담았다.
‘극한분해의 이오나스.’
창백한 얼굴에 은발이 어깨까지 내려온 모습은 전체적으로 인간을 닮았다.
다만 동공이 없는 눈과 이중 치열은 보통의 사람에게는 섬뜩할 터였다.
‘아토믹 무브먼트. 이건 정말 까다롭다.’
자신의 신체를 극한으로 분해시켜 원자 레벨의 움직임을 구사하는 능력.
거기에서 파생되는 공격은 천변만화의 초식을 초월하는 변화의 정점을 달린다.
‘단지 빠르기만 한 게 아니야.’
화살을 눈으로 보고도 피하지 못하는 이유는, 감각의 수용 시간이 각기 다르기 때문.
11감으로 인지는 할 수 있지만 공격을 피하는 것은 온전히 시로네 본인의 역량이었다.
“본격적으로 해볼까?”
전신이 원자로 분해된 이오나스가 예측할 수 없는 궤도에서 공격을 퍼부었다.
‘미라클 스트림!’
빛의 연기가 시로네의 몸을 휘감는 것과 동시에 산탄에 맞은 듯 시커먼 구멍이 뚫렸다.
펑! 펑! 펑! 펑!
빛이 파편으로 퍼졌으나, 어느새 시로네는 20킬로미터 거리를 물러난 상태였다.
“그래, 결국 도망이지.”
입자의 상태로 이동한 이오나스가 얼굴만을 결합시킨 채 시로네의 주위를 회전했다.
“항상 의문했다.”
대략 1경에 달하는 입자들의 움직임이 울티마를 통해 통합적으로 감지되었다.
“이토록 강하거늘, 어째서 나는 최강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인가?”
시로네는 1경의 입자가 움직이는 패턴 속에서 하나의 초식을 발견했다.
‘레프트 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