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22
“초고속 활성화로군.”
“응. 생명력이 대략 20만 배 정도 올라가지.”
“20만…….”
수치만 놓고 상상했을 때, 죽음 외에는 어떤 상처도 치료할 수 있을 터였다.
“효과 좋지? 게다가 면역 체계도 강화되기 때문에 질병이나 독도 치유할 수 있어.”
미로는 진심을 담아 말했다.
“무적이네?”
“어떤 의미로는. 하지만…….”
에이트라의 눈빛이 슬픔에 잠기더니 시내의 구석에 있는 사람들을 향했다.
승리의 감상에 취한 사람들 사이사이로 여전히 웃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가족을 잃은 자, 공포에 정신이 나간 자, 마족에게 끔찍한 일을 당한 자.
태성만큼은 아니지만, 에이트라도 그들의 비참한 현실에 모성애를 느꼈다.
“상처받은 정신까지 치유할 수는 없지.”
“백룡이라면 가능하지 않아?”
혼의 정보를 다루는 백룡 아스라이커.
“아마 안 될 거야. 그녀의 극호가 기분을 좋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정신에 새겨진 상처 자체를 없앨 수는 없어.”
고통을 잊기 위해 마약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군.”
미로는 화제를 돌렸다.
“충전 시간이 있다고 들었는데?”
“생명의 치유 같은 경우는 100시간. 12사도 중에서는 내가 제일 길어.”
“100시간이라. 대략 4일 후네?”
에이트라는 미로의 질문에 담긴 진의를 파악했다.
“그래. 확실히 전투 중에는 타이밍 잡기 애매한 능력이지. 그래도 메시아님은 필요하면 팍팍 쓰라고 하셨어. 생명을 살리는 데 효율을 따지지 말라고.”
시로네다운 생각이었고 미로도 동의했다.
“하지만 4일이라는 시간은…….”
눈을 부릅뜬 미로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가고,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에 낙뢰가 떨어졌다.
“블리츠?”
에이트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으나, 블리츠는 설명을 하지 못할 만큼 긴장한 상태였다.
“온다.”
“온다고? 뭐가?”
바슈카의 성벽 쪽에서 굉음이 터지고, 미로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벌써?”
핸드 오브 갓이 세계 곳곳으로 뿌린 천국의 군대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최소 수천 킬로미터는 날아갔을 텐데.’
헥사가 마음의 궁극적 작용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강한 자일수록 멀리 날아갔을 터.
‘그렇다면 가장 빨리 도착한 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크하하하하!”
천국의 군대에서도 최강이라고 짐작이 되는 자였다.
“나와!”
이미르의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퍼지자 바슈카 시내의 모든 건물에서 유리창이 깨졌다.
미로는 쌍욕을 내뱉었고, 어느새 모인 일행을 데리고 매스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성벽 앞에 도착하자 가르시아가 이끄는 연합군이 이미르에게 떼로 덤벼들고 있었다.
“같잖은 장난을 쳐?”
이미르가 제자리를 돌면서 잽을 날릴 때마다 연합군의 머리가 연달아 폭발했다.
“가르시아!”
가르시아는 미로의 목소리를 듣고서도 오직 이미르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가 났다.
‘왜지?’
마족의 군대를 일격에 날려 버린 존재가 연합군의 병사들과 합을 교환하는 장면이란.
‘조롱하는 거냐?’
아니, 그런 느낌은 아니다.
이미르는 그저 이 상황을, 지금의 전투를 순수하게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가자! 우리가 인류의 수호자다!”
여태까지 피를 본 연합군은 공포를 망각한 상태로 이미르에게 덤벼들었다.
그리고 이미르의 일격, 일격, 일격이 정직하게 쏘아질 때마다 여지없이 몸이 터졌다.
“으……!”
가르시아의 콧잔등이 구겨졌다.
“으아아아아!”
이유 없이 화가 났고, 분노의 크기는 부모의 원수를 만난 것보다 더 거대했다.
“기다려!”
가르시아는 미로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미로가 혀를 차며 빠르게 뒤따랐다.
그녀의 옆으로 요정족의 대표 에녹스가 다가왔다.
“합공하자.”
그들 또한 막연하게나마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강렬한 위화감을 깨닫고 있었다.
‘헬파이어!’
가르시아의 화염 마법이 작렬하는 곳으로 에녹스가 바람을 일으켜 파고들어 갔다.
바람의 정을 이용한 고대 마법이 이미르를 할퀴고, 그 위로 천수관세음이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더니 폭발이 일어난 듯 펑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충격이 없어?’
근진동으로 공기를 팽창시킨 이미르가 연합군의 시체를 넘어 걸어오고 있었다.
“덤벼라.”
그 시점에서, 가르시아와 에녹스, 심지어 미로조차 걸음을 물리고 말았다.
리안이 이미르를 눈에 담았다.
‘모르겠다.’
핸드 오브 갓이 그를 날리기 전에도 잠시 합을 맞춘 적이 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
역량을 헤아리는 재주가 탁월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강자와 약자는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르에게서는 강함도, 약함도, 공포도, 살의도, 심지의 적의도 느낄 수 없었다.
“아…….”
리안의 마음에도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 거였어.’
아주 멀리 있는 것을 볼 수 없듯이, 이곳의 모두는 이미르를 느낄 수 없는 것이다.
“크크크, 뭐 해? 빨리 덤비라니까!”
이미르가 다가오는 거리만큼 물러서는 그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왜 이런 게 존재하지?’
그들이 분노한 이유는, 이미르라는 존재 자체가 그들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르는 존재해서는 안 돼. 왜냐하면…….’
그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그를 제외한 모든 물질은 존재할 가치가 없기 때문.
“푸우!”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는 모습에, 이미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내뱉었다.
“무엇이 두려운지는 알겠다.”
다시 전방을 바라보는 이미르의 눈에는 1퍼센트의 기대, 99퍼센트의 허무가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그런 거지. 죽고 싶지 않다. 소멸하고 싶지 않다. 생각을 계속 이어 나가고 싶다.”
이미르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하지만 그 욕망도 삶이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지. 나는 말이야,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
인간이 이미르를 느낄 수 없듯. 이미르도 우주를 제대로 감각하지 못했다.
“짜릿하더라고.”
이미르의 머릿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은 오젠트가 날린 일격.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어금니가 빠진 부위가 선명하게 욱신거렸다.
“나에게 약속했다.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이미르의 시선이 미로의 뒤편에 서 있는 청발의 검사를 향해 움직였다.
“약속을 지켜라.”
장고를 하는 건 리안답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다.
마침내 그가 걸음을 옮기자 미로가 말했다.
“같이해. 혼자서는 못 잡아.”
“알고 있습니다.”
공포마저 느낄 수 없는 강적을 상대로 자존심을 세울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어요. 다른 길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미르는…….”
모두를 지나친 리안이 선두에 섰다.
“종착지입니다.”
“…….”
미로는 알고 있다.
이미르에게서 불과 2미터 떨어진 저 거리까지 들어가려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아까는 짜릿했지.”
이미르가 말했다.
“하지만 오젠트를 만났다는 짜릿함이지. 이제 나를 만족시키려면 그 정도로는 안 될 거야.”
“걱정하지 마라.”
대직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그어졌다.
“죽을 때까지 싸워 줄 테니까.”
풍경에 수평선이 그어지고, 세상이 상하로 분리되는 중심에 이미르가 있었다.
팔뚝에 박힌 대직도를 타고 충격이 밀려들자 리안의 오른쪽 팔꿈치가 파열되었다.
“크으으으으!”
디나이의 장점은 관성을 무시하는 것.
이미르의 팔에 검을 댄 채로, 리안은 온 신념을 다해 상체를 뒤틀었다.
“으아아아아!”
율법의 뒤틀림이 세상을 일그러뜨리면서 이미르의 몸이 밀리기 시작했다.
“흐흐흐.”
어깨를 잘게 떨던 이미르가 사악하게 입꼬리를 찢으면서 상체를 내밀었다.
“어이가 없네.”
동시에 반대쪽의 팔뚝이 올라오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리안의 몸을 강타했다.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선 리안이 대직도를 세워 방어하자 주먹이 칼날을 쳤다.
충격파가 터졌다.
“……!”
뇌가 시간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빠르고 느린 것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사라졌다.
‘졸리다.’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수천 명의 테스가 몸을 빙빙 돌리며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자고 싶은데…….’
눈이 감기지 않았다.
‘눈을 감고 싶다. 너무 피곤해. 왜 누울 수가 없지? 서 있으면 잘 수가 없잖아.’
리안은 차분하게 기다렸다.
‘본가에 가야겠어. 레이나 누나는 왕성에 없는 것 같던데. 시로네를 데리고 갈까?’
그럼에도 다음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지루해.’
더 이상 생각할 것이 없자 리안은 무턱대고 1부터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이천삼백이십일, 이천삼백이십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으아아아! 으아아아! 으아아아!’
리안은 직감했다.
어쩌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상태가 영원히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뇌는 시간을 잊었고.
‘빠져나갈 수 없다.’
이 순간을 끝없이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
목만 남은 테스의 수많은 얼굴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며 광기의 웃음을 터트렸다.
테스의 입속에 테스가 있고, 테스의 입속에 테스가 있고, 테스의 입속에 테스가 있고…….
‘미쳐 가고 있다.’
무엇이 리안을 시간 속에 잡아 두는가?
‘집착.’
이미 육체도, 정신도, 마음도 파괴되어 더 이상 움직일 동력조차 없음에도.
‘이곳에서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 한다.’
절대 불변의 이데아가 생과 사의 중간 지점에 리안을 묶어 두고 있는 것이었다.
우주는 테스의 얼굴로 가득 찼고, 그녀의 웃음소리로 인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아…….’
그 광기의 절정에서, 리안은 비로소 오젠트가 전한 말의 진의를 깨달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
행복한 인생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포기하고, 수명을 포기하고, 신체를 포기하고.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도달할 수 없다면, 어쩌면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일 것이다.
집착을 버리거나, 집착을 빼고 다 버리거나.
‘나아간다!’
리안의 눈동자에 정신이 깃들자 비로소 시간이 미래를 향해 가속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