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25
충격이 뼈를 관통하고 빠져나갔다.
수십 미터를 밀려난 이미르를 멍하니 지켜보던 일행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우…….”
죽어 가는 소리, 골목의 그림자에서 누군가가 발을 내디뎠다.
처음에는 시체인 줄 알았다.
머리는 산발이고, 앙상하게 마른 얼굴은 해골을 연상시키는 남자였다.
“아, 아우…….”
말을 하는 것조차 힘들고 다리는 굳은 듯 뻣뻣했지만, 강난은 한눈에 알아챘다.
“가올드.”
반가움보다도, 어떻게 저런 몰골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으…….”
길을 잃은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죽기 직전의 순간에서 벗어난 미로를 눈에 담았다.
죽은 듯 시커먼 동공에 잠시 생기가 돌았다.
“울지 마라.”
가올드가 몽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웃어.”
세인이 다가갔다.
“가올드 너…….”
가까이 접근하자 악취가 풍겼으나, 그것조차 별게 아닐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미로가 말했다.
“왜 왔어?”
시로네 일행이 고개를 돌렸을 때 그녀는 무감동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죽지. 그런 꼴로 우리 앞에 나타나서 뭘 하겠다는 거야?”
강난의 눈이 부릅떠졌다.
“지금 그게 할 소리야? 누구 때문에 목숨을 구했는데?”
미로가 나서지 말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전천투영의 완전무결한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똑같은 말을 했을 터였다.
“돌아가. 이제 네 역할은 끝났어.”
“못 돌아가.”
“왜?”
미로가 이를 악물었다.
“진짜 구질구질하게 왜 이래? 내가 좋다고 했잖아. 원하면 네 여자가 되겠다고 했잖아. 그걸 거절한 건 너야. 그리고 이제 나도 너 같은 건 질색이라고.”
“……그래.”
“알았으면 꺼져!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야!”
“알았어, 미로야. 그러니까…….”
가올드가 턱을 치켜들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웃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미로는 눈에 힘을 준 채 입술을 깨물었다.
가올드가 걸음을 옮기자 찢어진 손바닥을 지켜보던 이미르가 고개를 들었다.
피골이 상접한 인간이 다리를 절며 다가오고 있었지만, 묘하게도 약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언가의 정점이다.’
이미르는 직감했다.
‘내가 감각에서 무한히 먼 존재라면…….’
이미르가 다시 살기를 드러내며 상체를 세웠다.
“가장 감각에 가까운 존재.”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한쪽 눈이 반쯤 감긴 가올드가 말하자 이미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기를 잘했어.”
모든 것을 부수고 우주의 존엄이 된다.
“내가 최강이다!”
이미르가 무거운 육체를 날리는 것과 동시에 가올드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바쿰 프레스.’
쿵 하고 돌진을 멈춘 이미르의 허리가 급격히 숙여졌다.
“크크! 제법인데? 하지만…….”
이미르가 몸을 떨며 천천히 고개를 들자, 가올드의 신경이 일제히 널뛰기 시작했다.
“크크, 크크크크!”
하지만 그의 표정 또한 이미르와 마찬가지로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너 따위가 거인의 왕이라고?”
가올드 특유의 조롱에,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세인이 손을 내밀었다.
“안 돼! 여기서 파계를 하면……!”
도시에 있는 모든 인간이 죽을 것이다.
“흐으으!”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가올드의 눈동자가 위로 말려들었다.
‘고통?’
빛이 없는 정신의 공간에, 끝없는 외길의 통로가 펼쳐져 있다.
‘고통이 뭐냐고?’
그 시작점에 서 있는 가올드는 도착 지점에서 뻗어 오는 칼날을 향해 걸어갔다.
칼날이 복부를 꿰뚫었다.
‘고통이다.’
칼날이 몸속을 계속 베고 지나가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전진하자, 어깨를 꿰뚫는 위치에 또 다른 칼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아간다.’
칼날의 개수는 갈수록 늘어나 이마가 뚫리고, 심장이 뚫리고, 허벅지가 뚫리고…….
마침내 가올드의 눈앞에 전신을 꿰뚫고도 남을 수많은 칼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아가는 것이다.’
온몸이 불에 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그의 두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멈추면 고통은 줄어들겠지만, 그것이 곧 죽음이라면…….
‘크으으으!’
가올드는 온 힘을 다해 돌진했다.
‘으아아아!’
수천 개의 칼날이 몸속을 베고 지나가도,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끝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멈추지 않아.’
눈앞에 보이는 고통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의 삶이다!”
가올드의 정신이 까마득하게 압축되자 시로네 일행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미친놈……!”
동시에 위력을 측정할 수 없는 에어 프레스가 이미르의 몸을 짓눌렀다.
부재의 존재(4)
이미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느끼는 무게보다도, 계속해서 가중되는 압력의 단위가 섬뜩할 정도였다.
‘이건 또 뭐야?’
한계를 모르고 치솟는 압력에 이미르의 무릎이 휘청 꺾이려는 순간.
쿠우우우웅!
땅이 먼저 3미터 정도 움푹 함몰되었다.
“흐음.”
땅속에 처박힌 이미르를 노려보는 가올드의 표정은 예상과 달리 심각했다.
‘버텼어?’
고작해야 3미터 깊이의 구덩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가올드만 알고 있었다.
“뭐, 뭐야?”
시로네 일행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르의 무릎이 꺾일 정도의 대기압이라면 이미 도시가 날아갔어야 정상이다.
“어떻게 된 거지?”
테스가 중얼거리는 그때, 하늘 저편에서 사납게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멍청한 자식아!”
고개를 들자 미네르바가 제트를 타고 빠르게 지상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가올드에게 다가간 그녀가 멱살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미쳤어? 너 따위가 설치라고 태성께서 희생하시는 게 아니야! 이러다가 도시가 날아가면……!”
뒤편에서 아만타와 프리드, 씽이 태성을 데리고 도착하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하아. 하아.”
예상했던 대로 거친 숨을 내쉬는 태성의 눈동자는 반쯤 위로 올라가 있었다.
‘가이아의 능력.’
조금 전 가올드가 행성에 가한 충격을 별의 화신인 그녀가 전부 흡수한 것이었다.
상황을 깨달은 미로가 새삼 놀란 표정으로 이미르가 있는 곳을 살폈다.
‘그럼에도 땅이 짓눌렸다는 것은…….’
태성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시로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충격에서 회복한 태성이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정도 충격으로 별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문제없어요.”
시로네도 알고 있지만, 그녀가 당하는 고통은 충격과는 별개인 것도 사실이었다.
태성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리안은…… 어디 있죠?”
시로네는 대답하지 못했고, 분위기를 파악한 그녀가 화제를 돌렸다.
“잘 들으세요.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이미르를 봉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으나, 결코 현실적으로 와 닿지는 않는 말이었다.
‘이미르를 봉인한다고?’
시로네의 핸드 오브 갓으로도 완벽하게 제압하지 못한 근력의 생물이었다.
태성이 손을 내밀었다.
“시로네, 헥사 행성의 열쇠를 주세요.”
통합우주관리부의 오대성이 되었을 때 태성에게 선물받은 행성이었다.
“아…….”
시로네가 품에서 펜던트를 꺼내자, 태성이 그것을 넘겨받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오망성의 율법을 발동하겠습니다.”
율법의 수에서 5는 ‘외력’을 상징하고, 모든 종류의 소환과 봉인이 이에 속한다.
특히나 지금 태성이 시도하는 것은 말 그대로 별, 행성을 사용하는 오망성이었다.
“별 같잖은 것들이 계속 몰려오는군.”
구덩이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이미르가 주먹에 힘을 주자 육체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근력만으로 중력을 이겨 내는 모습에 시로네 일행은 새삼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지상에 착지한 이미르가 태성에게 물었다.
“나를 봉인하겠다고?”
“그렇습니다. 애석하게도 당신의 존재는 우주에 무의미해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모르지만, 행동에 나선 지금 이 방법을 사용하는 수밖에요.”
이미르가 천천히 무릎을 들었다.
“그래?”
다음 순간 쿵 하고 땅을 내리찍자, 엄청난 충격이 태성의 화신에 깃들었다.
“흐윽!”
“태성님!”
오대성이 황급히 부축하는 가운데, 이미르가 짓밟은 땅을 내려다보았다.
“흐음, 제법 단단하군.”
일대를 붕괴시킬 각오로 내리찍은 자리에는 발바닥의 형태만 찍혀 있었다.
“어느 정도 인정은 해 주지.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나를 막을 수 있을까?”
의 율법으로도 존재를 소멸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 게 이미르였다.
“할 수 있습니다.”
태성이 5개의 펜던트를 손가락에 걸고 두 손을 합장하듯 맞댔다.
“잠시 동안 이미르를 멈춰 주세요.”
“…….”
이곳에 모인 자들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강자들이지만,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여태까지 이미르가 멈춰 있었던 경우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았을 때뿐이었다.
“재밌는 게임이군. 기꺼이 응해 주지. 하지만 나도 목표 의식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이미르가 하체를 낮추며 말했다.
“너를 죽이는 순간 게임은 끝이다.”
“막아!”
시로네 일행이 동시에 움직였다.
핸드 오브 갓에 일월광륜, 이제는 씽의 율법 ‘관철’까지 이미르에게 작용했다.
프리드가 치받았다.
‘태성께서 행성의 파괴를 막고 있다.’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진실로 마음이 아픈 일이지만.
“……그렇다 이거지?”
최강의 적을 상대하는 검사의 투지가 저절로 입가를 좌우로 밀어냈다.
“이야아아!”
검에 강철의 마법이 새겨지고.
‘팔뚝 정도는 끊어 주마.’
스키마의 한계치까지 몸을 휘두르자, 거대한 철의 고리가 잔상을 일으켰다.
파계의 경지까지는 아니지만, 이미르 또한 구속의 율법을 먹을 대로 먹은 상태.
짜릿한 손맛이 프리드의 뇌리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