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32
***
마차를 타고 알로그 거리로 가는 동안 시로네는 시선을 창밖의 풍경에 고정시켰다.
그런 시로네를 루피스트가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옆에 앉은 플루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것도 못 할 짓이네.’
함께 싸운 전우지만, 이제부터는 토르미아를 대표하는 자로서 입을 열어야 했다.
루피스트가 말했다.
“조만간 성전이 재편성될 거다.”
“……그렇군요.”
시로네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삼황계의 세력 구도가 바뀐다는 뜻이지. 원소 폭탄의 기술은 토르미아가 독점하게 될 거야. 물론 성전의 총군사와 이미 협약한 내용이다.”
‘이루키가…….’
본래 꽃밭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원소 폭탄의 기밀을 넘기기로 한 계약이었다.
“그런데 네가 바슈카를 지켜 내는 것으로 상황이 미묘하게 틀어졌지. 어쨌든 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총군사도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문제였다.
플루는 다소곳이 손을 모은 채로 시로네의 대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해 달라고 조를 수도 없고.’
누나 동생처럼 친한 사이지만, 인류의 안전과 조국의 미래가 달린 문제 앞에 정은 통하지 않았다.
시로네가 입을 열었다.
“원소 폭탄의 기술이라면 가능하죠. 카샨, 진천, 구스타프도 예전만큼 힘을 쓰지는 못할 테니까요. 그중의 하나를 밀어낼 생각인가요?”
“아니.”
루피스트가 상체를 내밀었다.
“그것도 힘의 균형이 팽팽했을 때의 이야기지. 나는 토르미아를 1국의 위치에 올릴 생각이다.”
야욕이라면 야욕이지만, 토르미아의 입장에서는 이런 호기를 놓치고 싶지 않을 터였다.
“물론 상아탑에서 인정한다면 말이야.”
통합우주관리부 오대성의 승인이라면 다른 별들도 무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원소 폭탄은 맡길게요. 이루키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저도 반대할 생각은 없어요.”
일견 쉬운 승낙처럼 보이지만, 플루는 빠르게 선을 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이상으로 왕국에 힘을 실어 주지는 않겠다는 뜻이지. 사실 이 정도도 성과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시로네가 수하로 두고 있는 요정족과 용족은, 한때 성전의 이군왕에 위치한 무력이었다.
“누나.”
생각에서 깨어난 플루가 고개를 들자 시로네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안해요.”
플루도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미안.”
하나에 집착하다 보면 정말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망각하는 경우가 있다.
시로네는 시로네.
마법협회에서 처음 만난 이후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좋은 동생이었다.
“그러고 보니 많이 컸네. 포스도 못해서 쩔쩔매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하하! 그러는 누나도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죠. 지금은 비서실장이지만요.”
쉴 새 없이 추억담이 오고 갔다.
“흐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지만 루피스트는 더 이상의 요구 없이 눈을 감았다.
“아, 맞다! 5대 명문 소집일?”
“네, 기억나요? 그래서 우리들 지나가는데 누나가 몰래 하이 파이브를…….”
정말로 중요한 건,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
알로그 광장을 중심으로 뻗어 있는 동서남북 네 방향의 사거리에 인파가 가득 찼다.
“토르미아 만세! 토르미아 만세!”
하루 만에 왕이 바뀌는 건 이례적인 일이지만, 의외로 시민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복잡한 세계정세의 틈바구니에서 빠르게 변화를 도모한다는 것이 안정감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대부분의 절차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아돌프 13세가 왕관을 전해 주는 일만이 남았다.
포니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가운데, 아돌프 13세가 자신의 왕관을 벗으며 다가갔다.
‘나는, 나는…….’
이미 체념했다고 생각했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 뜨거운 것이 솟구쳤다.
‘왜 내가?’
왕이 되기 위해 기다려야 했던 수십 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결국 왕이 되었고, 이제는 하루 만에 직계 서열 최하급의 포니에게 전부 건네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하?”
왕관은 포니의 머리 위에 오랫동안 떠 있었고 미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전하.”
관리의 두 번째 말에는 살기가 있었다.
시간을 끌수록 사람들의 의구심은 커질 테고, 그것은 루피스트가 바라는 그림이 아니었다.
아돌프 13세는 두 손에 힘을 풀었고, 왕관은 포니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맑은 소리는 정적의 힘을 받아 알로그 거리의 끝까지 메아리로 퍼져 나갔다.
“헛소리…….”
아돌프 13세가 이를 질끈 깨물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놀란 표정을 짓는 가운데, 이성을 잃은 그가 소리쳤다.
“이건 사기야! 나야말로 가장 고귀한 왕족이다! 내가 왜 이런 자들에게 휘둘려야 하는가?”
단상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던 시로네 일행도 술렁거리는 분위기였다.
네이드가 말했다.
“저러다 골로 갈 텐데.”
이루키가 말했다.
“이른바 왕의 분노라는 거겠지. 나름대로 버틴 모양이지만, 결국 여기가 한계야.”
아돌프 13세가 시로네 팀을 삿대질했다.
“속지 마라, 국민들이여! 바슈카의 상공에 폭탄을 던진 놈들이다!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야!”
단상 뒤편에서 사태를 주시하고 있던 루피스트가 플루에게 고갯짓을 했다.
“처리해.”
약속된 순서였고, 플루가 봉황정을 움켜쥐며 눈에 살심을 밀어 넣었다.
“이 왕관은 내 것이다! 왕으로 태어난 인간, 그것이 바로 나 아돌프…… 으아아아!”
바닥에 떨어진 왕관을 머리에 쓰려던 아돌프 13세가 갑자기 괴성을 내질렀다.
튀어 나가려던 플루가 동작을 멈추고, 시로네의 눈빛이 의아하게 변했다.
‘뭐지?’
처음에는 암습인 줄 알았으나, 그의 눈을 속일 수 있는 마법은 없을 터였다.
“아파! 으아아! 머리, 머리가……!”
왕의 채신도 잊고 머리를 붙잡고 뒹굴던 아돌프 13세가 이번에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칼, 칼날이! 칼날이 들어오는 것 같아!”
현실에서 벌어지는 게 아닌 연극을 보는 기분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아아악!”
누군가의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와 함께, 너도나도 자리에 쓰러져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아, 아파! 온몸이 아파!”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똑같은 고통이 시로네 일행에게 찾아왔다.
“크윽!”
시로네는 비로소 깨달았다.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프고 폐에는 불이 붙은 듯했다.
‘마법이 아니야.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일종의 시스템.
주위를 둘러보자 친구들은 물론이고 미로와 세인, 강난조차 괴로워하고 있었다.
광장의 모두가 땅을 굴러다니는 가운데, 유일하게 서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가올드 씨.’
오직 가올드만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트의 파열음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미네르바가 시로네의 앞에 착지했다.
태성을 부축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도 고통에 살며시 일그러져 있었다.
“깨어나셨군요.”
시로네가 다가가자 태성이 미네르바의 부축에서 벗어나 걸음을 옮겼다.
“시로네, 마계입니다. 파이몬의 마계가 열렸어요.”
“파이몬?”
아가페의 빛에 녹아 소멸되지 않았던가?
“간발의 차이로 회생했어요. 제 불찰입니다. 의식을 잃지만 않았어도…….”
시로네가 고개를 저었다.
“태성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설령 의식이 있었다고 해도 간파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천사의 ‘굽어보기’와 같은 딜레마였다.
“리안을, 일행을 모두 소집해 주세요. 마계를 제거할 방법을 말씀드릴게요.”
응당 그래야 할 일이나, 현재 시로네 일행은 모두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마계죠?”
“파이몬의 마계는 병원. 행성에 없는 종류의 질환이에요. 병명은 감정병. 감정의 척도에 따라 통각이 조절되는 끔찍한 질병입니다.”
“감정의 척도?”
태성이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인간의 육체는 정신에 따라 특별한 작용을 일으킵니다. 심박, 뇌파, 호르몬 등, 모든 게 변하죠. 감정병은 뇌하수체에 잠복해 있다가 육체가 특정 상태에 도달할 때 활성화되는 질병이에요. 간단히 말해서 무언가를 사랑할 때 통각이 치솟고, 그 대상이 제거될 때 안정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일그러진 시로네의 얼굴이 차분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그렇군요.”
“어떻게 한 거야, 시로네?”
“죽였어.”
시로네가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약간의 공기를.”
“…….”
“하지만 이건 나만 가능한 일일 거야. 하찮은 공기라도 똑같은 무게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
절대박애의 경지였다.
숨을 쉬어 공기를 없애는 행위조차도, 시로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것과 똑같은 무게인 것이다.
“산소호흡기로 생을 연명하는 사람이라면 나와 같은 방법을 쓸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도 박애가 아니면…….”
“숨을 계속 쉬어서는 안 된다는 거군. 공기 그 자체를 마음에서 도려내는 거니까.”
“그래. 힘들겠지만, 일단은 뭔가를 죽여 줘. 너희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
말을 내뱉은 순간 시로네는 소름이 돋았다.
‘그렇구나.’
정말로 끔찍한 질병이었다.
한편 시로네의 말에서 힌트를 얻은 친구들은 자신만의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됐다.”
가장 먼저 해결한 사람은 이루키였다.
“무엇을 죽였어?”
“성전의 총군사.”
일종의 심적살인이었다.
“아.”
인간이 살아가면서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은, 되짚어 보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 성전의 총군사를 택했다는 것은 이루키답다고 할 수 있지만…….
‘설령 이루키가 아니더라도.’
대체 그것 외에 무엇을 죽일 수 있겠는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네이드와 에이미의 눈에도 각오의 빛이 들어왔다.
“후우, 나도 됐어.”
두 사람이 버린 것은 각각 네이드 그룹의 총수와 발키리 제1군단장의 직위였다.
하나둘씩 고통에서 벗어나는 가운데, 아돌프 13세가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으아아아! 살려 줘! 아파! 아파!”
발버둥치고 있지는 않지만, 포니가 느끼는 고통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왕은 안 돼. 포기할 수 없어.’
감정병을 완화시키는 방법은 들었어도, 시로네의 친구들과는 사정이 달랐다.
‘내가 왕을 포기하면 시로네가 국가를 이끌 수단이 하나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죽여야 할까?
“전하! 왕의 권위를 내려놓으시옵소서! 그러면 고통이 사라질 것이옵니다!”
관리들 대부분이 이루키의 방법을 사용했다.
솔직히 쉬운 일이었다.
공기 대신에 유리 가루를 계속 삼켜야 한다면, 누구나 커리어 따위는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왕의 무게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 포기한다! 이제 나는 왕이 아니야! 포기하겠다고! 그러니까 제발……!”
아돌프 13세의 눈이 커지더니 그가 손으로 목을 움켜쥐었다.
“끄아아아! 아파! 더 아파!”
“말로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포기하셔야 합니다!”
“으아아아!”
그 처참한 광경을 지켜보던 시로네 일행은 감정병의 또 다른 무서움을 깨달았다.
‘완벽하게 도려내야 한다.’
그것은 곧 감정병의 증세가 진행될수록 인격이 변해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 끝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일까?
“흐으으으!”
한쪽 무릎을 꿇은 미로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아.’
그녀는 극선, 이미 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내쳤기에 포기할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