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33
‘통각이 계속 올라간다.’
심장이 뛸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고, 폐가 뜨거워서 다음 호흡을 삼키는 것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미로 씨, 하나라도 포기해요!”
강난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멀어지고, 식은땀이 물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질 무렵.
‘고통 수준이 아니야.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지옥…….’
미로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건 마치…….’
한 남자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많이 힘드냐?”
땅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던 미로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위를 살폈다.
유일하게 감정병에 고통받지 않는 인간.
아니, 이미 누구보다 끔찍한 고통 속에 살고 있기에 기별조차 가지 않는 것.
“너…….”
가올드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미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전제(4)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미로에게는 가올드의 앙상한 얼굴이 똑똑히 보였다.
당연히 자신보다 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을 텐데도 눈빛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어떻게…….’
머리로 알고 있던 모든 짐작이 파괴되고, 미로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떻게 이렇게 살았어?’
지금 당장 숨을 쉬는 것조차 두려운데, 이런 고통을 20년이나 버티면서 살아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로는 가올드의 말에서 감정병의 영향이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가올드가 평소에 느끼는 고통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었다.
“조금만 더 참아 봐. 고통과 싸우려고 하지 말고, 피하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거야.”
미로는 그저 자신을 내버려 두었다.
호흡이라는 생각을 잊은 채, 자연의 이치에 생물의 기본을 맡긴 것이다.
고통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훨씬 의연해졌다.
단상에서 아돌프 13세의 목소리가 들렸다.
“흐으으으! 나는 쓰레기다! 나는 하찮은 존재다. 나는 세상의 버러지다.”
결국 왕의 권위를 내려놓은 모양이었다.
또한 그것은 곧 아돌프 13세의 인격이 전과 완전히 달라졌음을 뜻했다.
“살려 주세요. 저는 불쌍한 놈입니다. 제발…….”
눈물콧물을 쏟으며 바닥을 기고 있는 그에게서는 더 이상 왕족의 품위를 찾아볼 수 없었다.
광장의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고통은 근거 없는 분노를 유발시키고, 특정 장소에서 폭력 행위가 발생했다.
누군가는 코가 깨졌고, 누군가는 짓밟혀 바닥에 쓰러진 채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얻어맞은 자들은 대부분 감정병의 고통이 사라진 상태로 정신을 차렸다.
‘육체.’
인간은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기에, 그것을 파괴하는 것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미로는 입술을 깨물었다.
‘미친……’
어째서 파이몬이 그토록 호언장담을 했는지, 하비츠가 왜 메이레이의 능력을 탐냈는지 비로소 납득이 갔다.
‘이 질병은 지옥이다.’
감정병이 무서운 이유는, 육체의 고통을 넘어 정신과 마음마저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때려! 그러면 아프지 않아!”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 가장 빠르고, 광장에서는 또 다른 방법이 제시되었다.
‘포기한 것은 도덕성.’
육체를 파괴하는 것도 좋지만, 준법 시민이기를 포기하는 것으로도 가능하다.
광장의 광경은 순식간에 난투극으로 변했다.
“이야아! 죽어! 죽으라고!”
통증은 사고를 마비시키고, 당장의 고통만 없앨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시민들은 흡사 짐승이었고 시로네는 그 광경을 슬픈 눈으로 지켜보았다.
‘이것이 하비츠의 세계.’
지금 상황은 비극도 아니다.
당장은 몇 가지를 포기하는 것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지만, 과연 언제까지 통할까?
‘살기 위해서는 계속 죽여야 한다. 처음에는 타인이지만, 친구, 가족, 심지어는 자기 자신도…….’
시간이 지날수록 단지 누군가를 때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끔찍한 일들이 자행될 것이다.
“됐어.”
마침내 포니가 성공했다.
친구들이 시선을 돌리자 그녀가 검지를 부러뜨린 채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강난이 미로에게 말했다.
“당신도 부러뜨려요.”
미로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
완전무결의 극선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먼저 버린 것이 자기 자신이 아니던가.
“제가 할게요.”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고 생각한 시로네가, 두 팔을 들고 미라클 스트림을 발동했다.
찬란한 빛이 정수리 위에 뭉치더니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입자가 되어 퍼져 나갔다.
“으아아! 짜증 나! 다 죽여 버릴 거야!”
광장의 시민들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지긋지긋한 남의 얼굴과 핏빛 세계뿐이었다.
단상에 모습을 드러낸 루피스트가 마법을 시전하자 거대한 철의 기둥이 광장 중앙을 내리찍었다.
쿠우우우우웅!
굉음과 동시에 땅이 들썩이자, 비로소 시민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동작을 멈췄다.
“하아. 하아.”
약간의 이성이 돌아온 그들은 더 이상 숨을 쉬는 게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어떻게?”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죽였을 테지만, 그러지 못한 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올드가 말했다.
“위험한 짓을 했구나.”
헥사를 통해 시민들의 마음을 통제하면 잠시 동안 감정병을 완화시킬 수 있다.
“고통이란 생물이 가진 삶의 증거다. 그런 식으로 쉽게 마비시키면 안 돼.”
“어쩔 수 없었어요.”
무언가를 계속 죽여야 현상 유지가 되는 구조라면, 강제적인 고통의 제거는 역치를 높일 뿐이다.
그렇기에 시로네도 사람들이 스스로 통증을 제거하도록 기다린 것이다.
“두 번째 파동에서는 더 큰 고통이 찾아오겠죠. 하지만 미로 씨는 이것 외에 방법이 없으니까요.”
미로가 퀭한 눈으로 혀를 내밀었다.
“그래, 고마워. 솔직히 좀 살 것 같아.”
포니가 단상으로 내려와 손등까지 꺾여 있는 검지를 보여 주며 말했다.
“행위의 역치도 문제야. 검지를 부러뜨린 것으로 내 뇌가 납득했다면, 이미 그것을 죽인 거잖아. 그렇다면 다음에는 반대편 검지를 부러뜨려도 잠복기로 돌아가지 못할 거야.”
네이드가 물었다.
“중지를 부러뜨리면 되지 않을까?”
“그게 애매해. 다른 종류이기는 해도 손가락 하나라는 개념은 똑같거든. 2개를 동시에 부러뜨리면 될 것 같기는 하지만, 거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최대한 오래 버틸 것 같은데.”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자료가 필요하겠지. 일단 세계보건기구에 가서 전달할게. 세리엘이 도와줄 거야. 블리츠, 먼저 가서 양자 전송의 토대를 만들어 줘.”
“네.”
고개를 숙인 블리츠가 즉각 하늘로 날아올라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에이미가 말했다.
“포니, 너무 육체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어. 왕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개념적인 것들은 많아. 만약 다음에 파동이 오면 나를 포기해. 친구라는 개념 말이야.”
“그럴 수 없어.”
포니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차라리 내 몸이 부서지는 게 나아. 절대로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어떻게 버티려고…….”
이루키가 말했다.
“포니의 말이 맞아. 감정병이 위험한 건 역치가 계속 올라간다는 거야. 에이미와 절교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다음에는? 같은 방식은 통하지 않아. 결국 절교를 넘어 위해를 가해야 될 것이고, 그렇게 계속 진행되면…….”
죽여야 한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은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네이드가 하늘을 바라보며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는, 그리고 이 세상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오오, 야훼시여.”
짧은 대책 회의가 끝났을 무렵에는 모든 시민들이 시로네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당신의 빛이 또다시 우리를 살렸습니다. 저희를 지켜 주세요.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시민들이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시로네 님! 저희 집에 있어 주세요! 당신의 빛을 계속 쐬게 해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빛을 독점하겠다고! 나는 딸린 자식만 3명이라고!”
사방에서 손을 떨며 다가오는 시민들의 모습에 시로네는 숨이 턱 막혔다.
“그럼 순번을 정해서 빛을 쐬는 것으로 하죠! 그게 가장 공평하잖아요!”
“헛소리! 사람이 몇 명인데 그걸 다 돌아? 그러지 말고 특정한 장소를 만들어서 거기에 모입시다! 그래, 이곳에 교회를 세우는 겁니다!”
시로네는 그들의 소리에 응답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는 거다.”
가올드가 말했다.
“바슈카 바깥에도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먼저인 거야. 사과를 먹느냐, 딸기를 먹느냐. 네가 모든 인류를 고통에서 해방시킨다면 저들도 납득할 것이다. 둘 다 주는 거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저들은 끝없이 너에게 욕심을 부릴 거야.”
태성이 말했다.
“첫 번째 파동은 많은 것 중의 하나를 버리면 되는 정도의 수준이었어요. 따라서 아가페, 마음의 강도도 그리 크지 않았죠. 하지만 사람들의 역치는 계속 높아질 테니, 헥사의 위력에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시로네 혼자만의 울티마 시스템으로는 전 인류를 구원할 수 없었다.
“긍정적인 면도 있어.”
미로는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았다.
“저들을 보고 느낀 건데, 마계의 개방은 상대적으로 울티마 시스템의 통합을 수월하게 만들어. 사람들이 고통을 받을수록 너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는 거야.”
“아이러니하군. 악이 애를 강화시키다니.”
세인의 말에 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악공애의 순환. 아마도 이것이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한 바퀴겠지. 어떤 바큇살이 부서지고 어떤 바큇살이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돌아가죠.”
포니의 지시로 병사들이 시민들의 접근을 막는 가운데 시로네가 몸을 돌렸다.
“한시라도 빨리 마계를 닫아야겠어요.”
시로네 일행은 매스 텔레포트로 왕성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포니가 내린 명령은 왕성 근무자 전원을 진급시키는 일이었다.
‘상급 관리 대부분이 직위를 포기했다. 업무를 처리할 사람이 태부족이야.’
다시 고용하는 방법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지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간부로 계엄령을 선포합니다. 왕성 근무자를 제외한 모든 시민들의 외출을 금지시키세요. 두 번째 파동에서 발생할 소란을 최소화시키는 게 관건입니다.”
급한 문제를 처리한 포니가 시로네에게 물었다.
“어때? 세계보건기구에 도착했어?”
“응, 지금 막 도착했어. 세리엘하고 얘기 중이야.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전할게.”
직접 경험한 그들조차 아직 감정병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태성이 말했다.
“이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이곳 중부 대륙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 5개의 마계가 열렸어요. 마계란 현실의 시스템에 새로운 시스템을 장착하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부분을 제거해야 합니다.”
시로네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이면 세계.”
“네. 마계의 시스템은 이면 세계의 율법을 현실로 끌어올린 거예요. 따라서 지옥을 완전히 정화시킬 수 있다면, 마계는 저절로 소멸하게 될 겁니다.”
세인이 말했다.
“이미르의 정신에 이어서 이번에는 이면 세계인가? 그러면 그곳에는 누가 가지?”
또다시 모두가 손을 든 가운데, 네이드가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나! 이번에는 양보 못 해! 시로네, 내가 간다!”
태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안 됩니다. 이면 세계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시로네는 박지를 열었기에 가능하지만, 5감의 존재가 지옥에 떨어지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해요.”
“그게 뭔데요? 저도 할 수 있어요.”
“죽는 겁니다.”
“…….”
“이면 세계는 현실의 극단적인 감정이 모이는 곳이에요. 생육신의 상태로 가려면 사탄과 계약을 하거나, 현실이라는 시스템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이 필요합니다.”
“현실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감정?”
“네. 시로네의 박애와 마찬가지로 어떤 감정의 극한에 도달해야 합니다. 죽음이 가장 일반적이고 쉬운 방법이지만, 특별한 경우도 있어요. 이걸 죄악이라고 합니다. 악에 매몰된 자들. 아마도 시옥이 이러한 경우일 겁니다.”
이루키가 턱을 괴었다.
“그럼 좀 곤란하군. 우리는 죄악을 쌓을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으니까.”
“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태성이 고개를 돌렸다.
“리안, 오직 당신만이 시로네와 함께 지옥에서 싸울 수 있습니다. 마계를 막아 주세요.”
“아…….”
모두가 깨달았다.
이데아의 복구 능력이 있는 리안만이 살아 있는 상태로 지옥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선택할 수 없는 것(1)
“리안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