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34
신적초월 이데아의 경지에 오른 검사가 기준이라면 네이드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테스가 말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이면 세계에 들어가죠? 거의 반 죽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네, 바로 그거예요.”
테스의 얼굴이 창백해졌으나 태성은 태연했다.
“사실은…… 반 죽는 정도로는 이면 세계에 갈 수 없어요. 보통 사경을 헤맨다고 하죠. 그렇다고 해도 현실과 이면의 경계에 걸칠 뿐, 완벽하게 들어간 것은 아니에요.”
시로네가 말했다.
“현실과 이면은 백지 한 장 차이야. 그래서 박지라고 하지. 하지만 정신적인 거리는 가히 끝과 끝. 그래서 고대의 사람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이라고 불렀대.”
“잠깐만, 시로네! 그럼 리안이 돌아올 수 없다는 얘기야?”
“구도자들은 저승과 이승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을 초에니 바르도라고 불러. 하지만 이제는 나조차도 불가능해. 진천의 황녀, 진성음이 이면 세계에서 현실로 넘어오는 통로를 완전히 봉인했기 때문이지.”
미로가 말했다.
“덕분에 인류에게도 희망이 생겼지.”
“네. 지옥 불에서 계속 태어나는 마가 현실 세계로 넘어온다면 승리는 불가능하니까요. 그만큼 엄청난 성과였고, 그 대가로 그녀는…….”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받아야 한다.
“그래서 감당하라는 거야? 진성음이라는 여자도 있으니까, 리안도 죽을 각오를 하라고?”
시로네는 테스의 마음을 이해했다.
“오해하지 마. 물론 절반은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지만, 돌아올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지옥에서 성음을 해방시키면 경계의 장벽도 사라질 테니까.”
“어떻게 해방시키는데? 가능한 거야? 여태까지 지옥을 정화시킨 사람이 있기나 해?”
거핀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태성이 말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시로네는 박지를 통해 이면 세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리안은 잔혹한 방법을 사용해야 하죠. 가장 좋은 방법은 불에 태우는 겁니다.”
테스는 졸도할 지경이었다.
“리안은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예요. 어지간한 충격에는 끄떡하지 않죠. 태우고, 끝없이 태워서, 현실이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을 응집시키는 겁니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불가능해.”
리안이 말을 끊자, 테스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받아쳤다.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살아 있는 사람의 몸에 불을 지르다니.”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경험해 보지 않아서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불에 태운다고 해도 내 정신은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더 강한 게 필요해.”
“…….”
테스가 멍하니 입을 벌리는 것과 반대로 태성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리안, 당신이 필요한 거예요. 이성을 잃은 채로 지옥에 떨어져 봤자 아귀에게 잡아먹힐 뿐입니다. 방법은 중요하지 않아요. 불은 감정을 모으는 데 도움을 줄 뿐,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당신의 의지입니다.”
“이해했어.”
그랜드 홀을 크게 돌아본 리안이 시로네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도 간다, 시로네.”
“응.”
눈빛으로 통하는 두 사람의 굳건한 신뢰를 확인한 테스는 슬픈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포니가 말했다.
“바슈카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문제야. 지옥의 군대가 방사형으로 퍼졌지만, 중부와 남부에도 상당수의 마족들이 남아 있을 테니까.”
시로네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응. 사실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어.”
에이미가 물었다.
“단테를 따라갔었지. 크레아스에는 도착했어?”
에이미의 본가와 리안의 본가가 있고, 무엇보다 시로네의 양부모가 있었다.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고? 무슨 일인데?”
“그게…….”
시로네가 입을 열었다.
크레아스 도시를 눈 아래 내려다보는 산 정상에서 단테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엄청나잖아…….”
족히 수십만은 되어 보이는 마족들이 성벽을 완전히 에워싸고 공성전을 벌이고 있었다.
거대 괴물들이 뿔을 앞세워 철판을 댄 성문을 뚫었고, 구멍으로 빨려 들듯 마족들이 뒤를 따랐다.
“가자. 시간이 없어.”
단테가 말하자 시로네가 뒤를 돌아보았다.
여태까지 각 지역에서 구출한 수천 명의 피난민들이 피곤한 몰골로 서 있었다.
“저, 저곳으로 가라니…….”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피난민을 대표해 말했다.
“우리들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산적이라면 모를까 저런 괴물들을 어찌…….”
에덴이 말했다.
“내가 남아서 사람들을 지킬게. 너희들은 가서 사람들을 도와.”
행렬이 대규모인 만큼, 비행 마족이라도 지나가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에덴의 방어 마법. 최악의 상황에서도 몇 시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야.’
결정을 내린 시로네가 말했다.
“좋아, 그럼 가자. 단테는 마법협회 크레아스 지부에서 사태를 파악해 줘. 리리아 씨는 성벽 쪽을 지원하세요. 저는 도시 내부로 들어가서 사람들을 구출할게요.”
말을 하는 도중에도 도시 안쪽에서 시시각각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시로네가 공간 이동 마법을 시전하려는 그때 단테가 황급히 불렀다.
“시로네.”
“응?”
“오젠트 가문에 먼저 들러라.”
시로네는 대답하지 못했다.
“가. 너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 네가 부모님을 먼저 구하지 않으면, 세상 어느 누구도 너에게 좋은 마음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거야.”
“……고맙다, 단테.”
단테가 고개를 끄덕였고, 시로네의 육체는 섬광으로 변해 도시를 향해 날아갔다.
오젠트 가문의 대직도 중앙에 정확히 착지한 시로네는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타하! 타하!”
본가의 건물 앞에서 레이나가 아귀들을 상대로 외롭게 활을 쏘고 있었다.
연사의 리듬은 탁월했고 아귀들이 픽픽 쓰러졌으나, 상대가 중대장급으로 올라가자 이빨도 먹히지 않았다.
온몸이 비늘로 덮여 있는 중대장이 팔뚝으로 화살을 튕겨 내며 다가왔다.
“크크크, 마족에게 덤비는 인간이라. 간만에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군. 팔다리를 하나씩 뜯어 주지.”
레이나는 침착하게 강궁의 시위를 끝까지 당겼다.
비늘을 뚫을 정도로 강력한 화살이 쏘아졌으나, 마족은 눈앞에서 그것을 잡으며 돌진했다.
“크하하하! 인간 따위가 나를……! 컥!”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 오브 갓이 날아와 중대장을 손등으로 후려쳤다.
동시에 빛의 손길이 바닥을 휩쓸며 아귀를 사로잡더니 하늘 저편으로 날렸다.
“…….”
말 그대로 신의 손이었다.
멍하니 지켜보던 레이나가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탁 소리를 내며 활이 떨어졌다.
“시로네!”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간 그녀가 시로네의 두 손을 맞잡으며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여기에 있어?”
“설명하자면 길어요. 비쇼프 아저씨는요?”
“성벽에서 싸우고 계셔. 네 부모님은 마법학교로 피신하셨어. 아마 거기가 제일 안전할 거야.”
‘하긴, 군대가 막아 낼 수준이 아니야.’
반면에 알페아스 마법학교에는 협회에서도 드문 공인 2급 마법사가 있었다.
‘올리비아 교감 선생님.’
레이나가 말을 이었다.
“부모님을 마법학교에 모셔다 드리고, 나는 잠깐 돌아왔다가 포위된 거야. 아무리 그래도 가문의 인장은 지켜야 될 것 같아서.”
“그랬군요.”
기사 가문에서 인장은 심장과도 같은 것.
그런 중요한 물건을 포기하고 자신의 부모님을 먼저 대피시켜 준 레이나가 고마웠다.
“정말 잘됐다. 솔직히 나도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빨리 마법학교로…….”
그 순간 도시 저편에서 펑 소리가 나며 불의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저긴?”
마법학교가 있는 곳이었다.
알페아스 마법학교는 다른 지역의 작은 마을에 비견될 만큼 부지가 넓었다.
산을 타고 넘어온 마족들이 요새처럼 변한 중앙 건물로 모여들어 공성전을 펼쳤다.
5대 명문 교사들의 높은 수준에, 마족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호전성을 버리는 종족이 아닌 만큼, 물량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화염 마법으로 지상을 폭격하던 사드가 알페아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교장 선생님! 저지선이 뚫렸습니다!”
알페아스의 눈가에 있는 주름이 깊어졌다.
“……교사들은 학생들과 시민들을 데리고 대피하게. 내가 시간을 벌어 볼 테니.”
시이나가 말했다.
“교장 선생님을 두고 떠날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제가 이곳에 남겠습니다.”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야. 교사보다 학생이 먼저 죽어서야 되겠는가?”
“그럼 내가 남으면 되겠네.”
올리비아가 차가운 시선으로 창문을 노려보며 알페아스의 옆에 섰다.
“다 늙어 빠진 영감탱이가 무슨 시간을 끌어? 나에게 맡겨. 죽지 않고 빠져나갈 테니까.”
허세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고, 알페아스는 입꼬리를 지그시 올렸다.
“크크크, 영감탱이는 맞지만…….”
창문으로 걸어가는 그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잊은 건 아니겠지?”
미르히 알페아스.
젊은 날의 모습과 겹치는 알페아스의 뒷모습에, 올리비아의 표정이 아련해졌다.
“……주책이야.”
이 나이를 먹고서도 삶의 마지막은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하고 싶다니.
알페아스에게 다가간 그녀가 다른 교사들에게 말했다.
“가세요. 여긴 우리가 맡겠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우러나는 고고한 분위기에, 교사들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사드가 방을 나서자 다른 교사들도 빠르게 뒤를 쫓았다.
지하의 철문을 개방하자 고급반 학생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유일한 졸업반인 마크와 마리아의 뒤편에는 시로네의 부모님도 함께였다.
학생들을 돌아본 사드가 말했다.
“이제부터 침착하게 행동해야 된다. 마법학교를 벗어날 거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마.”
그런 곳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고급반이라도 마법사 지망생이었고, 누구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교사들의 뒤를 따랐다.
뒷문을 통해 나가려는 그때, 먼저 길을 살피고 있던 시이나가 손을 들었다.
“마족이 오고 있어요.”
건물을 우회하여 침투하려는 작전조로, 숫자는 적어도 정예임이 분명했다.
“제길! 하필 이때…….”
“제가 유인할게요. 애들을 데리고 도망쳐요.”
그들이 문을 발견하기 전에 시선을 돌릴 생각으로, 시이나가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말릴 틈이 없었고, 설령 있었다고 해도 교사들의 역할은 명확했다.
“저기다! 쫓아!”
마족의 작전조가 멀어지는 시이나를 쫓아가며, 등에 박힌 폭발성 가시를 쏘아 댔다.
불기둥을 달고 날아오는 수백 발의 가시가 지상을 폭격하면서 부지 전체가 흔들렸다.
“크윽!”
냉기를 퍼트려 열은 막았으나, 충격파에 고막이 먹먹할 지경이었다.
‘무슨 이런 화력이…….’
빙결 마법을 끌어 올려 반격을 해 보지만 적들은 육체 능력마저 상상을 초월했다.
또다시 가시가 쏘아지고, 이번에는 의지를 가진 듯 시이나를 따라 궤적을 바꾸었다.
‘유도탄.’
입술을 짓깨물며 자리에 대기하던 그녀가, 정확한 타이밍에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가시들이 부딪히며 폭발을 일으켰고, 충격파에 날아간 그녀가 바닥을 뒹굴었다.
‘분하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너는 좋은 교사가 될 거야.
아르민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세상에 나타날 적들은 한낱 인간이 감당해 낼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웃기지 마.”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불어 넣은 시이나가 앱솔루트 제로의 전지를 끌어 올렸다.
국소 범위의 마법이지만, 적어도 몇 명 정도는 길동무로 삼을 수 있을 터였다.
“덤벼라, 이 자식들아!”
그녀의 입에서 이 정도로 험한 욕설이 나온 적이 생애 몇 번이나 있었을까?
죽음을 각오한 일갈에도, 마족들은 탐욕스러운 눈으로 몸을 날릴 뿐이었다.
“죽이지는 않을게. 들을 게 많거든.”
시이나의 손이 올라가고, 좌우에서 수백 발의 가시가 휘어지며 날아오는 순간.
‘응?’
세상이 급격히 한쪽으로 기울더니 가시들이 모조리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뭐야?’
행성이 뒤집히기라도 했나?
‘아니…….’
움직이고 있는 건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