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36
검을 갈무리한 쿠안이 되돌아오자 정신을 차린 그녀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맞아!”
사드는 무사히 빠져나간 것 같지만 여전히 중앙 건물에는 마족들이 모여 있었다.
“교장 선생님이 아직 남아 계세요. 마족들에게 포위당한 상태인데…….”
그 순간 중앙 건물 쪽에서 폭음이 터졌다.
“세상에…….”
시이나가 고개를 돌린 곳에, 거대한 버섯구름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크크. 크크크.”
건물 잔해에 깔린 알페아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알페아스! 괜찮아? 야!”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잊은 채 올리비아가 기어 와 그의 몸을 흔들었다.
“걱정하지 마.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조명 마법으로 살피자 거대한 기둥이 두 무릎을 짓뭉갠 상태였다.
“……왜 그랬어?”
마족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 올리비아는 자폭 마법을 시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알페아스가 더 빨랐다.
“폭탄이라고?”
지하에 쌓아 놓은 폭탄의 기폭 스위치를 누르면서 마법으로는 올리비아를 지킨 것이다.
“왜? 고소라도 하게?”
학교에 폭발성 물질을 저장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올리비아는 피식 웃었다.
“자신 있다는 게 이거였어? 그것도 마법사가.”
“상관없잖아, 마법이든 폭탄이든.”
“……너답네.”
빛의 입자든 파동이든, 아름다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알페아스처럼.
“기다려. 다리부터 빼 줄게.”
올리비아가 마법으로 기둥을 들려고 하자 알페아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아서. 아마 지하 10미터 아래까지 파묻혔을 거야. 여기서 잘못 건들면 깔려서 죽어.”
“마찬가지야. 곧 2차 붕괴가 일어날 테니까. 되든 안 되든 해 보는 수밖에 없어.”
“그러지 마.”
평소와 다른 알페아스의 목소리에 올리비아가 살며시 그를 돌아보았다.
“조금만 더…… 같이 있어 주겠나?”
이미 알고 있었다.
기력이 바닥난 두 사람의 힘으로 지하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그래.”
올리비아는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알페아스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고요했다.
“무슨 생각 해? 아내 생각?”
“그 정도로 파렴치하지는 않지. 이미 인사는 했어. 마족들이 오기 전에.”
“그럼?”
“이것도 주책인가…… 싶어서.”
알페아스가 고개를 돌렸다.
“마음에 없었던 것은 아니야. 당신이 고백했을 때,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 미안해. 용기가 없었어.”
올리비아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걸 이제야 말하고 있어? 멍청하긴.”
“크크, 어쨌든 살아서 들었잖아?”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알페아스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조명 마법을 끄고 천천히 입술을 가져다 대는 그때, 바깥에서 빛의 물길이 흘러들었다.
“응?”
다음 순간 건물 잔해 전체가 어떤 힘에 이끌려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 괜찮으세요?”
구덩이 위로 시로네의 얼굴이 보이고, 그 위로 거대한 빛의 손이 잔해를 움켜쥐고 있었다.
선택할 수 없는 것(3)
“시로네?”
두 사람이 무사하다는 것을 확인한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핸드 오브 갓이 산 정상의 공터에 건물 잔해를 쏟아 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어라? 그런데…….”
알페아스와 올리비아가 누워 있는 자세가 사뭇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두 분, 뭐 하고 계셨어요?”
여전히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올리비아가 황급히 몸을 떨어뜨렸다.
“윽!”
알페아스가 아픈 신음을 냈다.
“미, 미안해. 괜찮아?”
고통이 쉬이 가시지 않는지 오만상을 찡그리던 그가, 시로네에게 윙크를 날렸다.
“구해 준 건 고맙지만 다시 덮어 주면 안 되겠나? 지금 한창 중요한 대목이었거든.”
올리비아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미친 영감탱이가!”
시로네는 웃었다.
두 사람 모두 기운이 넘치는 걸 보아하니 내상은 없는 듯했다.
“지금 꺼내 드릴게요.”
핸드 오브 갓이 땅을 투과하더니 물에서 건져 내듯 두 사람을 들어 올렸다.
“흐음, 빛이라.”
알페아스는 미소를 지었다.
마법이 무엇이냐고 묻던 어린아이가 세상을 구하는 빛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지상에 도착하자 올리비아는 조금 전에 터진 폭탄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에…….”
반경 전체가 날아갔고, 그들이 있는 곳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형성되어 있었다.
시이나가 달려왔다.
“교감 선생님! 괜찮으세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학교가 폭발하다니!”
올리비아는 턱짓을 했다.
시로네에게 응급치료를 받던 알페아스가 엄지를 세우고 있었다.
“…….”
레이나가 말했다.
“무릎뼈가 으스러졌어요. 마법적 치료는 시로네가 했지만, 외과 수술을 병행해야 할 것 같아요.”
“군대로 가야겠군요. 이런 상황에서 서저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은 거기뿐일 테니.”
크레이터 밖에서 사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승님! 무사하신가요?”
순간 이동으로 일행 앞에 도착한 그도 시로네를 보고 잠시 말을 잃었다.
“어떻게 된 거야? 폭발은?”
시이나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사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행이다. 다른 사람들은 산에 숨어 있어. 시로네, 너의 부모님도.”
조명 마법을 하늘로 쏘아 올리자 10분 뒤에 학생들이 산에서 내려왔다.
“어? 시로네 선배님!”
마크와 마리아가 가장 먼저 달려왔으나, 시로네는 인사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학생들의 무리 속에서 초췌한 몰골로 서 있는 빈센트와 올리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엄마.”
아들이 있으리라고는 예상조차 못 했기에, 빈센트 부부도 자리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어떤 것도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시로네!”
“엄마!”
시로네가 올리나를 거칠게 끌어안자 빈센트가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감쌌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 수많은 질문들이 서로에게 쏟아졌고, 사람들은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시로네가 충동적으로 내뱉었다.
“친엄마를 찾았어요.”
어째서 이 타이밍일까?
실수했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지만, 지금이 아니면 어떤 타이밍도 없을 듯했다.
“어, 저기, 가장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당연히 아버지하고 엄마가…….”
“그래.”
남편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올리나가 시로네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정말 잘됐구나.”
“……네.”
결국 시로네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
계엄령이 선포된 바슈카의 밤거리는 유령도시처럼 스산하게 변해 있었다.
가끔 감정병에 걸린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귀신처럼 공기 중을 떠돌았다.
쾅 하는 충격음이 메아리쳤고, 또 어디에서는 공포에 질린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왕성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포니의 얼굴은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루는 넘길 수 있을 거야.’
손가락 2개를 추가로 부러뜨린 이후부터, 그녀는 자해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예상보다 역치의 상승폭이 훨씬 크다. 이 상태라면 며칠도 버티지 못해. 참는 수밖에 없어.’
마계를 없애는 게 관건이었고, 내일 동이 트는 대로 시로네와 리안이 이면 세계로 떠날 것이다.
‘괜찮을까?’
시로네가 귀띔한 바에 의하면, 생육신의 상태로 지옥에 가는 과정은 참으로 끔찍하다고 한다.
자칫하면 마가 된다.
설령 이성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정상은 아닐 거라는 게 시로네의 예상이었다.
정원 쪽으로 시선을 내리자 테스가 홀로 나와 달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리안의 연인인가. 심란하겠군.’
누가 누구를 동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포니는 시선을 접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아.”
테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가는 거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 들었기에 속이 타들어 갔다.
‘버틸 수 없어. 미친 짓이야.’
만약 전 인류가 멸망할 상황이 아니었다면, 시로네도 리안을 데려가지 않았을 터였다.
‘나쁜 자식.’
리안에 대해 화가 나다가도, 그가 느낄 두려움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래, 나라도 정신 차려야지.’
왕성으로 돌아간 테스는 간식거리를 챙겨서 리안이 머무는 숙소로 향했다.
“리안, 나야.”
“……들어와.”
역시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그녀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문을 벌컥 열었다.
“안녕? 맥주나 한잔…….”
테스의 동작이 병을 들어 올린 채로 굳었다.
“후우! 후우!”
방 안에 열기가 후끈했고, 리안이 상의를 탈의한 채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고개만 돌리며 말했다.
“뭐 해, 안 들어오고?”
뻐근한 표정이었으나, 내일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허탈하게 문을 닫은 테스가 침대에 앉았다.
“너, 괜찮아?”
“감정병? 당분간은 문제없어. 나는 어디를 부러뜨리거나 뜯어도 복구되니까.”
“아니, 그거 말고. 내일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너, 계속 불 속에…….”
테스는 황급히 말을 멈췄다.
자신이 당하지 않은 일이라도 끔찍한데 듣는 당사자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래, 내 몸에 불을 붙이는 거지. 그런 방법으로 이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잖아.”
“두렵지 않아?”
테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네 몸에 붙은 불이 이면 세계에서는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모른다잖아! 미쳤어? 아니면 진짜 바보야? 죽지 않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래서 더 끔찍한 거라고, 이 멍청아!”
리안이 운동을 멈추고 일어났다.
“테스.”
그리고 테스가 들고 있던 맥주병을 빼앗더니 뚜껑을 따면서 말했다.
“걱정 마. 잘할 테니까.”
“…….”
맥주로 해갈하는 리안을 멍하니 바라보던 테스는 문득 소름이 돋았다.
‘바보가 아니야.’
용기다.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야말로 리안의 재능이었던 것이다.
운동을 끝낸 리안은 테스와 맥주를 마셨다.
내일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하염없이 시간이 지나갔고 어느새 자정이 되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지는 그때, 병을 만지작거리던 테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남녀가 한방에 있는데도 이런 분위기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