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38
“일단 1명.”
델라가 손을 휘둘러 노인의 머리통을 날렸다.
“꺅!”
여자가 비명을 질렀으나, 그녀 또한 델라의 일격을 맞고 몸통이 뚫렸다.
“우는 놈도 죽는다. 자, 계속해.”
“흐으으으.”
남자가 울상을 짓자 델라는 심지어 사람을 지정해서 그에게 보여 주었다.
어린아이였다.
“자, 이번에는 얘를 죽인다. 뭐 해, 어서 도망치라니까? 아니면 다시 돌아올래? 다른 사람이 너를 죽여 줄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아?”
“살려, 살려 주십시오. 제발…….”
남자가 사정할수록 델라의 표정은 황홀해졌다.
“걸어. 아니면 이 꼬마와 너를 바꿀까? 이 꼬마는 네가 죽든 말든 도망칠걸.”
고개를 숙인 사람들의 눈에 핏대가 일어섰다.
‘악마다! 악마!’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는 한때 선의 의지로 충만했던 에텔라도 섞여 있었다.
“…….”
아직 선의 불씨는 남아 있지만, 다 타들어 간 숯처럼 미약한 감정일 뿐이었다.
‘내가 무엇을 바꿀 수 있지?’
은신하는 동안 인간이 떨어질 수 있는 나락의 끝까지 내려간 그녀였다.
‘어차피 다 죽어.’
악귀가 온다.
오직 그녀의 냄새만을 쫓아 행성을 배회하는, 사상 최악의 인간이 오는 것이다.
델라가 소리쳤다.
“좋아! 그럼 이 꼬마에게 기회를 주도록 하지!”
“크윽!”
눈을 질끈 감은 남자가 한 걸음을 물러서자 델라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
“호호호! 그럴 줄 알았어!”
아이의 머리를 수도로 쪼개려는 그때, 부두 저편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
마족의 비명이었다.
“뭐야?”
고개를 돌린 델라의 눈이 커지고, 그녀의 시야에 수많은 부하들이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역광을 받은 그림자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피 분수가 솟구치고 있었다.
“킁킁. 킁킁.”
개처럼 냄새를 맡는 소리.
이어서 철이 부딪치는 소리와 무거운 것이 질질 바닥을 끄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마차만큼 커다란 보따리를 한 손으로 끌고 오는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속사검의 샤갈이었다.
불청객에 의해 흥이 깨져 버리자 델라가 인상을 찡그리며 지시를 내렸다.
“뭐 해? 가서 죽여.”
마족들이 돌진하는 것과 동시에 샤갈의 두 팔이 벌의 날갯짓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크아아아!”
속사검 특유의 구조, 수십 장의 칼날 껍질이 쇄도하면서 마족들의 몸에 박혔다.
완전히 침투한 칼날의 구멍을 통해 마족들의 탁한 피가 분수처럼 터졌다.
“아…….”
페시아 왕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수의 등장에, 사람들의 눈에 희망이 깃들었다.
“살, 살려 주세요!”
한 여자가 뛰어가자,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전부 일어나 샤갈에게 달려갔다.
“구해 주시오! 저 나쁜 마족들이…… 컥!”
남자의 목에 속사검이 박히고,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살육이 시작되었다.
델라는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뭐야, 저건?”
인간답지 않았고, 인간답지 않았다.
다른 공간(1)
샤갈의 공격에 수십 명이 사망하자 남은 자들이 황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뒤에는 마족이 있고 앞에는 닥치는 대로 찔러 죽이는 악귀가 있었다.
“왜, 왜?”
샤갈이 다가오자, 목숨을 걸고 도망쳤던 그들이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왜 우리를 죽이는 거야? 당신도 인간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속사검이 여자의 복부를 사정없이 찔러 댔다.
“으아아아!”
그 순간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도망쳐!”
뒤에 있는 마족보다도 앞에 있는 남자가 훨씬 인간답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크으으으!”
이빨을 드러낸 샤갈이 크게 팔을 휘둘러 거대한 보따리를 하늘로 던졌다.
가죽이 찢어지고, 수백 자루에 달하는 속사검이 회전하며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땅을 박차고 돌진하며, 샤갈은 떨어지는 단도를 받아 무차별 살인을 시작했다.
단도에 찔린 자들이 뿜어낸 피로 항구는 순식간에 피바다로 변했다.
“깔깔깔! 재밌는 인간이로구나!”
마가 인간에게서 나왔다지만, 델라조차도 경험한 적이 없는 순수한 악이었다.
돌진하는 샤갈을 상대로 그녀가 하체를 구부리자 손가락에서 강철 손톱이 튀어나왔다.
입가가 기괴하게 찢어지며, 아름다웠던 얼굴이 금세 흉악한 짐승의 모습으로 돌변했다.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에텔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아직 아니야.’
기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살육의 경지에서 샤갈은 극에 도달해 있었다.
어쩌면 라 에너미가 그의 운명을 조롱했을 때부터 정해진 수순인지도 몰랐다.
‘광기가 아니야. 분명 어떤 능력. 이제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어.’
도피 생활을 하면서 일곱 번을 싸웠고, 그때마다 샤갈의 힘은 한층 강해져 있었다.
‘한 번의 기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그 기회를 잡아야 했다.
“제법인데!”
델라와 샤갈이 같은 곳을 빙빙 도는 와중에도 마족들과 사람들은 죽어 나가고 있었다.
“이건 어떨까?”
델라가 속도를 높이자 육체가 사라지고 폭풍 같은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순간이 영원처럼 길어지는 속도에서 샤갈은 미동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후후, 어차피 인간…….’
목표물을 중심으로 공전하던 그녀가 급격히 방향을 틀어 샤갈의 측면을 노렸다.
‘실컷 가지고 놀아 주지.’
날카로운 손톱을 한계까지 뽑아낸 그녀가 샤갈의 어깨를 노리고 휘둘렀다.
‘어?’
샤갈의 동공이 옆으로 움직였다.
‘나를 봤어.’
급하게 공격을 멈춘 그녀가 상체를 젖히려는 그때, 웅 하는 진동음이 들렸다.
‘어어?’
샤갈의 두 팔이 움직이자 시간의 시소가 역전되면서 델라의 동작이 정지했다.
여전히 비처럼 떨어지고 있는 수십 개의 속사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며 델라에게 파고들었다.
푹.
쇄골에 찍힌 1타를 시작으로 1센티미터 간격마다 속사검의 칼날이 파고들었다.
델라의 얼굴이 완벽한 악마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는 이미 일흔 번이 넘는 찌르기에 당한 뒤였다.
“캬아아아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선 그녀의 눈이 크게 뜨이고, 온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허어어억!”
샤갈은 다시 돌진했다.
강력한 마족은 이 정도로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억! 억! 억! 억! 억!”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다.
반쯤 풀어진 눈으로 공격을 받고 있던 델라는 문득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뭐지?’
샤갈의 육체 주변으로 현실의 색채가 아닌 것이 기괴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델라가 아닌 엉뚱한 곳을 향해 속사검을 찌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하지만 놀랍게도, 정말로 무언가를 찌른 듯이 속사검의 칼날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면 세계?’
다른 공간의 존재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깔깔깔! 깔깔깔깔!”
소멸하는 와중에도 기분이 좋은 것은, 샤갈의 처지도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에.
델라는 샤갈을 끌어안았다.
“얼마든지 찔러라. 지옥에서 기다리마. 그때는 지금의 몇억 배로 갚아 줄 테니.”
샤갈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그녀를 돌려세웠다.
그리고 더 이상 찌를 곳이 없는 그녀의 복부를 계속 찔러 대며 전진했다.
살을 찢고 들어가는 손의 감각.
마치 강박증 환자처럼, 샤갈을 움직이는 것은 그 짧은 순간의 타격감뿐이었다.
의식이 멀어진다.
‘티아.’
의식이 멀어질수록 현실에서 그를 괴롭혔던 수많은 번뇌들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티아!”
일타를 위해 아껴 두었던 마지막 속사검이 델라의 이마에 깊숙이 내리꽂혔다.
뿌직 소리를 내며 그녀의 안와에서 눈알이 튀어나오고…….
‘지금이다!’
에텔라의 정권이 샤갈의 옆구리를 노렸다.
고개를 돌린 샤갈의 눈동자는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탁하고 어두웠다.
‘스승님의 원수.’
그리고 이제는 그가 에텔라를 쫓아오면서 죽인 6천 명의 원수이기도 했다.
속사검을 전부 써 버린 샤갈이 주먹을 휘둘렀으나 에텔라는 각오하고 있었다.
일격을 어깨로 받으면서 몸을 뒤튼 그녀가 갈비뼈에 주먹을 욱여넣었다.
“크으으으!”
샤갈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에텔라는 빠르게 주먹을 거두고 재차 공격을 감행했다.
‘한 번만 더.’
파동의 간섭파를 일으킬 수 있다면 스키마의 고수라도 내장이 찢어질 터였다.
“크아아아아!”
샤갈이 괴성을 내지르며 상체를 펴자, 에텔라의 눈에 기이한 빛이 떠올랐다.
‘어떻게 이런…….’
샤갈이 어느새 속사검을 쥐고 있었다.
“흑!”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했으나, 수십 자루의 단도가 허공에서 탄생하기 시작했다.
‘물질 구현?’
그런 게 아니다.
샤갈과 충돌할 때마다 느꼈던 불안한 기운이 비로소 실체화된 것이었다.
“으아아아!”
칼날이 피할 틈조차 없이 빼곡하게 밀려드는 광경은 자체로 소름이 돋게 했다.
온 힘을 다해 물러섰으나, 결국 에텔라는 허벅지에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흐윽!”
대퇴부에 찍힌 칼날을 내려다보는 즉시 붉은 피 분수가 높게 솟구쳤다.
속사검의 껍질을 손으로 붙잡아 뽑아 버린 그녀가 근육을 조이며 지혈했다.
“티아.”
샤갈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지랑이가 일렁거리며 수많은 속사검이 후두두 떨어졌다.
이유는 에텔라도 알지 못했다.
다만 짐작하건대, 샤갈은 속사검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완벽하게 믿고 있는 듯했다.
‘그럴 수가 있나? 아무리 믿는다고…….’
에텔라는 깨달았다.
“아.”
인식의 한계.
샤갈은 라 에너미에 의해 가상과 현실의 중첩을 이미 한번 경험한 인물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는 것처럼, 샤갈에게는 속사검이 그랬다.
‘큰일이다. 이제는 막을 수 없어.’
일곱 번의 전투 끝에 에텔라가 궁리한 전략은 속사검이 소모되기를 기다리는 것.
하지만 이제 무기의 개수는 무한대였다.
“왜?”
에텔라가 소리쳤다.
“원하는 게 뭐예요? 죽이고 싶으면 죽이면 되잖아요. 왜 나를 괴롭히죠?”
치열하게 싸우기는 했지만, 단 한 번도 샤갈에게 기회가 없었다고는 보지 않았다.
“네가 미우니까.”
자신의 인생이, 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한낱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