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39
“너는 티아가 아니야.”
인간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
“너를 괴롭힐 거다. 절망에 울부짖을 때까지, 아니, 그래도 괴롭힐 거야! 계속! 계속! 영원히!”
모든 게 거짓이었다.
눈을 뜬 샤갈이 화를 낼 수 있는 대상은 티아였던 에텔라가 유일했다.
“당신의 삶은 동정해요. 하지만 이미 용서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였어요.”
“아직 멀었어.”
샤갈이 비릿하게 웃었다.
“전부 죽일 거야.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결국 이 세상에 나만 남게 되었을 때.”
그때가 되면.
“알 수 있겠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거짓인지. 내 삶은 무엇이었는지.”
허언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섬뜩했다.
“가. 어디든 가라. 내가 쫓아갈 테니까. 너와 연결되어 있는 모든 것을 죽일 거야. 너도 나와 똑같은 고통을 경험하게 될 거야.”
에텔라는 자살을 생각했다.
만약 여기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샤갈은 무의미한 살생을 중지할 것인가?
‘그렇지 않아.’
자신의 손으로 샤갈의 생명을 끊는 것만이 스승님과 희생당한 사람들, 인류를 위한 길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는 동안, 도망치지 못한 소수의 사람들이 살며시 몸을 일으켰다.
그 짧은 미동만으로도 샤갈의 손이 움직였고, 속사검이 모두의 뒤통수를 관통했다.
“크크크. 크크크크.”
휘청거리는 자세로 어깨를 들썩이는 샤갈의 주위로 또다시 풍경이 일그러졌다.
현세의 것이 아닌 풍경과 색감, 그리고 미약하게 새어 나오는 망자들의 비명 소리.
에텔라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렇구나.’
망상과 현실의 경계선, 이미 샤갈은 죽어 있는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닌 상태였다.
샤갈을 매섭게 노려보던 에텔라가 몸을 돌리더니 빠르게 항구를 벗어났다.
‘이게 마지막이야.’
도망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걸고 샤갈과 담판을 지으려는 생각이었다.
‘걱정 마세요, 스승님.’
사명을 깨달은 에텔라의 두 눈이 전과 달리 선의 의지로 강력하게 불타올랐다.
밤새도록 이어진 추격전은 아침에 끝났다.
아르도스 산맥의 정상에서 에텔라는 가지런히 무릎을 꿇고 명상에 잠겼다.
상쾌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갑자기 사라지더니 엄청난 악의 기운이 느껴졌다.
천천히 눈을 뜨자, 샤갈이 밤보다 더욱 거대해진 아지랑이를 일렁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군.”
말을 하는 샤갈의 얼굴에 반투명한 악마의 얼굴이 간헐적으로 겹쳐 보였다.
“예전에 썼던 방법이 아닌가? 사람이 없는 곳에 숨는다면 네가 죽을 뿐이다.”
“당신을 피해 수많은 장소를 다녔죠.”
악과 싸우기 위해 끝없이 아래로 추락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짐승의 우리, 사창가, 하수도……. 영혼의 빛은 꺼지고, 육체는 더러워졌습니다. 당신이 처음에 쫓던 에텔라는 이제 없어요.”
샤갈의 미간이 구겨졌다.
“무슨 소리야?”
“복수에 미쳐, 선의 의지가 사라지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깨달았습니다.”
에텔라는 미소 지었다.
“스승님이 하신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희생. 악을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
“죽여 버린다.”
에텔라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더 이상 저를 쫓을 필요는 없어요. 왜냐하면…….”
성큼성큼 다가오는 샤갈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두 팔을 벌릴 뿐이었다.
“당신을 용서하겠습니다.”
“으아아아!”
샤갈은 에텔라를 쓰러뜨렸다.
“닥쳐! 헛소리 지껄이지 마! 죽어!”
마구잡이로 휘둘리는 주먹에도, 에텔라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희생이군요, 스승님.’
삶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그녀의 눈앞에 반쯤 악귀로 변해 버린 샤갈이 보였다.
“왜! 네가 뭔데! 너 따위가 뭔데!”
티아.
반쯤 정신이 나간 그가 에텔라의 목덜미를 깨물며 짐승의 소리를 냈다.
“크르릉! 크르릉!”
동물적 욕구로 움직이는 샤갈의 등을 에텔라가 두 팔로 끌어안았다.
‘놓치지 않아.’
선을 범하는 것으로 악은 최대가 되었다.
그렇게 선악이 서로를 증폭시키며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극한의 감정을 만들어 내고…….
“으아아아!”
급기야 풍경이 끔찍하게 변하더니 생육신의 상태로 지옥에 빠지기 시작했다.
현실에서의 마지막 순간.
샤갈의 어깨 너머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에텔라가 건조한 입술을 벌렸다.
‘아아…….’
불의 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이 보였다.
‘이면 세계.’
현실에서 처리할 수 없는 감정이 흘러드는 영혼의 정화 시스템이었다.
다른 공간(2)
***
토르미아 왕성 크레타.
간밤에 수도 곳곳에서 들리던 비명 소리는 동이 틀 무렵에야 잠잠해졌다.
미로는 가장 높은 망루에서 창백하게 질린 새벽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나름의 방법을 찾은 거겠지.’
고통 앞에서 게으른 인간은 존재할 수 없기에.
“하아.”
미로 또한 그랬다.
선을 수호하기 위해 마음을 봉인한 그녀에게 소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한 방법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
‘괴롭다.’
혈관에 칼날이 섞여 있는 듯했다.
공기가 들어올 때마다 장기가 찢어지는 것 같아서 숨을 쉬는 것조차 두려웠다.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구나.’
매 순간이 고통인 삶 속에서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참아야 한다.’
적어도 가올드는 그랬기에, 그녀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크윽!”
고통의 신호가 뇌를 찌르는 그때, 망루의 문 쪽에서 가올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미로와 나란히 선 그가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화가 나지. 너무 화가 나면 고통과 싸우려고 들어. 상처를 후비고, 들쑤시고.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결국 아픈 건 자신이야.”
감정병에 걸리기 전에는 그저 아픈 것을 참아 내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다.
‘고통이란 그런 게 아니야.’
어떤 끔찍한 고통이라도, 언젠가 없어진다는 희망만 있으면 버틸 수 있다.
‘진정한 고통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버틸 수 있을까, 내가?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싸울 수 있을까?’
가올드처럼.
‘멍청한 자식.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살아?’
극선의 경지에 오르는 여정에서 인간의 모든 감정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오만한가.
‘인간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가올드의 고통,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죽을 만큼 힘들겠지. 내 손이 베인 것보다 수천, 수만 배는 더 아프겠지.
그건 정말 끔찍하겠는걸.
‘……이라고.’
침묵했어야 했다.
적어도 그의 고통에 대해서만큼은 어떤 판단도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
가올드가 물었다.
“정말로 갈 거냐?”
100억 가이아인이 통합되어 있는 이미르의 정신에서 살아남을 방도는 없다.
“목숨을 지불하고 관광을 할 생각이라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아니.”
미로가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생겨 먹은 정신이든지 관심 없어. 악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것이 거기에 있을 뿐이야.”
“어떡하려고? 정말로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미로가 가올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방법은 네가 찾아내야지.”
“…….”
“찾아내. 쫓아와서 나를 지키든, 적과 싸우든, 이미르를 두들겨 패든, 해결하란 말이야. 어떻게든 내 손에 울티마 시스템이 들어오게 만들어.”
“싫다고…… 말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할 수 없다면? 불가능한 일도 있는 거야.”
“그래?”
미로가 두 손으로 가올드의 옷깃을 붙잡았다.
“그럼 나는 죽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가 행복할 수 없다는 얘기야. 고통 속에서 죽어 가기를 원해?”
미로의 악에 받친 시선을 받으면서도 가올드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하아.”
한숨을 내쉰 미로가 가올드의 가슴에 이마를 댔다.
“뭐가 가장 화가 나는 줄 알아?”
“뭔데?”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거. 너라는 인간이 짜증 나고 귀찮아 죽겠는데, 이용할 가치가 남아 있으니까 쫓아 버릴 수가 없잖아. 그게 너무 화가 나.”
“……어떻게든 해 볼게.”
미로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같이 들어가자, 이미르의 정신으로. 내가 수단을 내 볼 테니까 너는 감정병이나 신경 써.”
가올드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통각을 지금보다 훨씬, 그러니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리면 될 것이다.
“시로네에게 말하러 간다.”
가올드가 망루를 벗어나려고 하자, 그의 등을 보고 있던 미로가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물어볼게.”
가올드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왜 내가 좋아?”
예상치 못했다는 듯 그가 고개를 갸웃하자, 미로가 쏘아붙이듯 물었다.
“내가 그렇게 예뻐? 몸매가 좋아? 아니면 그냥 오기야? 항상 널 힘들게 하잖아.”
“그러는 너는?”
별 얘기를 다 듣겠다는 듯 황당한 미소를 지은 그가 문고리를 당기며 말했다.
“왜 나를 싫어하냐?”
가올드가 계단을 내려간 뒤에도 미로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
바슈카에서 32킬로미터 떨어진 삼거리.
쌍두마차가 멈추고, 큼지막한 여행 가방을 멘 이루키와 네이드가 내렸다.
“여기 맞지?”
이루키가 표지판을 확인했다.
“맞아, 여정의 분기점. 우리가 빨리 도착한 건가?”
시간을 확인하려는 그때 두 사람의 눈앞에 미라클 스트림의 연기가 응집했다.
“시로네!”
양자 전송으로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시로네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오래 기다렸어?”
네이드가 말했다.
“아니. 우리도 이제 막 왔어. 그런데 마차는 어떡하지? 여기다 두고 갈까?”
2일 동안 태세를 정비하고 본격적으로 임무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이루키와 네이드는 시로네를 따라 세계를 순례하며 울티마 시스템을 전파할 예정이었다.
“오지를 중심으로 돌 거니까 그러는 게 좋겠지. 그리고 미안해. 도로시와 리즈 씨, 사실 함께 가도 괜찮은데.”
이루키가 고개를 저었다.
“왕성에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이럴 땐 없는 인맥도 끌어다 써야지. 도로시가 발굴 팀을 데리고 온다고 그랬어.”
네이드가 말했다.
“리즈도 포니 쪽에 합류할 거야. 원소 폭탄 제조 공장에 관한 건은 전부 인계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