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41
시로네가 상아탑에 들어간 이후로 추가된 인물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명단이었다.
“추적 결과 전원 사망. 하지만 상아탑 후보군에 들 정도라면 서류 조작은 일도 아니야. 물론 몇 사람은 진짜 죽었겠지만, 적어도 위저드는 살아 있을 거야.”
“어떻게 장담하죠?”
“죽을 수 없으니까. 사실 좀 모순적인 얘기지만, 전투에 절대라는 말은 없잖아? 하지만 내가 조사한 위저드의 특징을 고려하면…….”
“절대라는 건가요?”
미로는 찝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태어나서 세계를 배우고, 그 세계를 정복할 능력을 갖추게 되지. 하지만 위저드는 아니야. 태아 때부터 세계에 속해 있었어.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아이가 어떻게 죽을 수 있는지 그게 더 의문이야.”
그녀가 시로네를 가리켰다.
“예를 들어 네가 나를 공격한다고 하면 나는 찰나의 순간 모든 변수를 고려해서 최선의 선택을 내리지. 뭐가 어떻게 됐든 생각과 계산을 통한다고. 하지만 위저드는…….”
“그냥 안다는 건가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흐음.”
시로네는 생각에 잠겼다.
“모든 마법사는 전지를 이용하지. 그 정점이 시로네, 바로 너일 테고. 위저드는 그 기본부터 달라.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선지先知라고 해야 할까?”
“선지.”
“그래. 계산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냥 대응하는 거야. 마치 자연처럼.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시로네가 말했다.
“순수하다.”
하비츠를 인지할 수 있다.
“응. 아직 일곱 살. 나이가 들면 인식의 한계가 생겨 선지가 퇴화될 수도 있겠지. 그래서 지금 해야 하는 거야.”
“하지만 너무 가혹하지 않나요. 정말로 순수하다면, 하비츠를 상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너나 나, 심지어 나네조차 하비츠를 죽일 수 없으니까.”
“충돌 불가능이니까요.”
“그래. 하비츠는 죽는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 않아. 우리가 어떤 계산을 해 버리는 순간 율법이 충돌 경계선 바깥으로 전부 뱉어 버린다고. 근접하려고 갖은 노력을 해 봐도 결국 해내지 못했어. 하지만 위저드는 가능해.”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비츠의 혼돈은 욕망으로 증식하는 아메바 같은 거야. 너무나 난폭하고, 어디로 촉수를 뻗을지 예측할 수도 없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말이야.”
그녀의 통찰에 의하면.
“순수성. 그러니까 하비츠를 정의하지 않을 때는 거짓말처럼 고요해지는 것 같아. 마치 혼돈이 잠든 것처럼.”
어떤 생각이 뇌리를 관통했다.
“이데아와 카오스. 율법의 수 2예요. 혼돈을 정의하지 않으면, 혼돈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위저드를 찾아야 해.”
미로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하비츠는 마음의 파동을 들을 수 있어. 이제 위증조차 불가능한 시점이야. 모태각성자 외에는 방법이 없어.”
시로네도 이해했다.
“에이미와 함께 갈게요. 람파 씨의 도움을 받으면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
테스는 거의 울 지경이었다.
“어떡해…….”
멀쩡히 살아 있는 리안에게 시커먼 기름을 바르고 있으니 제정신일 수가 있겠는가.
‘아플 텐데.’
자신더러 모닥불에 3초만 손을 가져다 대라고 해도 견디지 못할 터였다.
“이건 아니야.”
순간 정신이 핑 하고 돌면서,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았다.
“시로네, 잠깐만 기다려. 아무리 그래도…….”
그때 무언가 무거운 것이 어깨에 얹히자 테스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
리안의 할아버지 클럼프였다.
테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던 시로네가 그를 발견하고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오냐.”
클럼프는 2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가부좌를 튼 리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준비는 잘되어 가냐?”
“네. 죄송합니다.”
이미 크레아스에 있는 리안의 가족에게도 전했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터였다.
테스가 말했다.
“할아버지, 정말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불을 질러요. 만약 이러다가 견디지 못하면…….”
리안의 이데아가 사라지는 순간 그의 육체도 재로 변해 버릴 터였다.
“당연히 안 되지, 내 귀한 손자를.”
테스의 눈이 크게 뜨이자 클럼프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어떤 놈도 내 손자에게 불을 지를 수 없어. 저 바보가 제 손으로 저지르는 짓만 하지 않으면.”
“할아버지이.”
“가자꾸나. 당당하게 가슴을 펴. 적어도 리안의 용기에 응해 줘야 하지 않겠니?”
클럼프의 팔을 끌어안고, 테스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리안에게 다가갔다.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 어떠냐?”
명상에 잠겨 있던 리안이 한쪽 눈을 떴다.
“모르겠어, 할 수 있을지. 이런 쪽으로는 젬병이라서.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테스가 소리쳤다.
“그게 아니고! 네 기분 말이야. 버틸 수 있겠어? 하다가 안되면 좀 쉬었다가 해.”
포기하란 말이 나오지 않아서 내뱉었지만, 오히려 더 잔인한 말이 된 것 같았다.
“힘들 거다.”
클럼프도 비로소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견디고 싶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것이 지옥으로 가는 열쇠겠지. 원한다면 자리를 피해 주마.”
고통에 절규하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여 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리안은 대답을 하는 대신 멀리 있는 성벽을 바라보았다.
흑발의 검사가 서 있었다.
‘라이.’
바슈카에서 전투가 끝난 이후에도 형은 한 번도 리안을 찾아오지 않았다.
“시작하자, 시로네.”
시로네가 다가오자 클럼프와 테스는 리안을 눈에 담으며 뒤로 물러섰다.
테스는 초조했다.
‘성으로 돌아갈까? 여기 있어야 하나? 아니, 내가 있어서 리안이 더 괴로우면…….’
“테스.”
창백하게 질린 테스가 고개를 들자 리안이 한쪽 눈을 감으며 웃고 있었다.
“똑똑히 지켜봐. 내가 얼마나 멋지게 해내는지.”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가까스로 억누른 테스가 이를 악물며 고개를 연거푸 끄덕이는 가운데, 시로네가 손을 들었다.
“지옥에서 보자, 리안.”
손바닥 위에 작은 불꽃이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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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 염라.
지룡 가이탄과 백룡 아스라이커를 대동한 시로네가 염라의 대문을 두드렸다.
신원을 확인하기도 전에 문지기 병사들은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이런 미녀가…….’
백룡 아스라이커.
모든 생명체의 극호에 도달한 그녀의 외모에 병사는 물론 관리까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상아탑의 오대성 시로네입니다. 진천의 황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아스라이커에게 고정되어 있자 시로네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저기, 황제 폐하를 뵈러 왔는데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익숙한 상황에 시로네가 한숨을 내쉬자 아스라이커가 직접 입을 열었다.
“이분은 상아탑의 오대성이십니다. 황제 폐하를 알현할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지식하기로 유명한 염라의 문지기조차 기꺼이 따를 정도로 백룡의 극호는 강력했다.
3분 뒤에, 작지만 호화로운 마차를 대동한 근위병들이 성문에 도착했다.
3분 전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심지어 시녀들조차 그녀에게 혼을 빼앗겼다.
‘……사람 많은 데는 다니면 안 되겠다.’
몇 마디를 나누는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아스라이커가 특정 인물과 5분 이상 대화를 나눌 경우 상황은 심각해진다.
‘목숨을 걸어야 할 거야.’
역사상 수많은 왕과 지도자, 예술가, 학자, 성직자가 상사병에 시달리다 죽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1,400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느 왕의 유언이었다.
‘그녀를 모르고 영생을 사는 것보다, 지금 죽어도 그녀를 알고 있는 게 낫다, 라고 했다지.’
혼을 다루는 백룡의 무서움이었다.
내전에 도착하자 진천의 대장군 오룡장이 높은 단상에서 비무를 펼치고 있었다.
검의 화신이라 불리는 유청, 패도의 악마라는 별칭을 가진 황이성이 그들이었다.
‘박빙이구나.’
시로네는 현란하게 검과 도끼를 휘두르는 두 사람의 무용을 잠시 감상했다.
오대성의 방문에도 비무를 멈추지 않는 것은 진천 제국 특유의 기세일 터였다.
“타하!”
황이성이 도끼를 치켜들고 돌진하자 마치 배후에서 파도가 일어나는 듯한 기세가 느껴졌다.
검을 앞으로 내민 유청이 섬광처럼 돌진해 파도를 깨부수자 강풍이 몰아쳤다.
가이탄은 팔짱을 낀 채 무심했으나 아스라이커의 표정은 점점 안 좋아졌다.
‘이것들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를 앞에 두고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부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진천 제국의 장수들은 하나같이 이리 무례한 것입니까? 조금 서운하네요.”
“아, 죄송합니다!”
그냥 장수가 아닌 군사의 정점인 대장군이었으나, 관리는 즉각 응답했다.
‘나에게 기대하고 있다.’
아스라이커의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대장군님!”
문관답지 않게 목소리를 굵게 만든 그가 포권을 하며 크게 소리쳤다.
“상아탑의 오대성, 시로네 님께서 오셨습니다! 응당 예를 갖추셔야 할 것이옵니다!”
유청과 황이성의 동작이 우뚝 멈췄다.
‘미친 것인가?’
시로네의 방문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천의 힘을 상징하는 오룡장의 비무는 황제조차 말리지 않는 게 법도였다.
“무사의 비무를 막는 것은…….”
도끼를 어깨에 얹은 황이성이 오만상을 찌푸렸으나 이내 표정이 풀렸다.
“응?”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여자를 본 순간 혼이 승천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인가, 저 여성은?’
황이성은 우직한 성격이다.
게다가 아내 또한 문 왕국 최고의 미녀인 연 공주였으나, 극호의 기분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한마디 대화라도 나누어 보고 싶구나.’
꿀꺽 침이 넘어가고, 옆에 있는 유청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
황이성이 뒤늦게 예를 표했다.
“혼신의 전투를 치르느라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대장군 황이성입니다.”
유청이 질세라 검을 든 채로 포권했다.
“진천의 오룡장, 유청입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검에 있어서는 타협이 없는지라…….”
시로네는 그저 내전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황제 폐하께 급히 일러 드릴 말이 있어서 왔을 뿐이에요.”
아스라이커가 덧붙였다.
“친절한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모쪼록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 계속 단련해 주시길.”
“아, 네. 그럼…….”
2명의 대장군이 다시 비무를 펼치자 시로네는 내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스라이커를 의식해서인지 전보다 냉병기의 충격음이 몇 배는 크게 들렸다.
‘보고 있다.’
단상의 옆을 지나가던 아스라이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비무를 지켜보았다.
‘나를 보고 있어.’
똑같은 생각을 한 유청과 황이성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끌어냈다.
염라 전체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야아아!”
황이성의 일격에 뒤로 밀려난 유청의 얼굴이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다.
‘크윽!’
여전히 느껴지는 아스라이커의 시선.
‘이게 무슨 망신이냐!’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하찮게 볼 것인지 생각하니 안타까워 죽을 것 같았다.
“황이성! 나를 우습게 보는가!”
실력을 겨루는 비무에 살초가 전개되고, 황이성도 질세라 회심의 비기를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