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42
누구 하나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시로네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소리만 듣고서도 비무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간다, 유청!”
동료를 향하는 살의의 일격을 아스라이커는 무심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이긴다! 그녀에게 사랑받는 건 바로……!’
냉병기가 서로의 육체를 부수려는 그때, 눈이 멀 정도로 강력한 빛이 폭발했다.
“큭!”
주위에 있는 모든 자들의 마음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허억! 허억!”
가까스로 검을 멈춘 2명의 대장군이 멍한 표정으로 숨을 헐떡거렸다.
‘뭐지? 어째서 나는…….’
동료를 죽이려 했을까?
문득 깨달은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정면을 향하고 있는 시로네가 보였다.
“아스라이커.”
차가운 목소리에 그녀의 어깨가 움찔했다.
“네, 메시아님.”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절대로 특정 인물을 오랫동안 주시하지 말라고.”
백룡은 존재 자체가 병기.
단지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끓게 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메시아께서 얼마나 희생하는지도 모르고 자존심을 세우기에…….”
심정은 이해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이면 인류의 통합은 어려워진다.
“사람이 죽을 뻔했어. 강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더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내 곁에 있을 필요가 없다.”
시로네의 강수에 아스라이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가자.”
시무룩하게 뒤를 따르는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내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으나, 그녀는 누구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어전에 도착하자 진강이 입을 열었다.
“왔느냐?”
‘진천의 황제 진강.’
강철 같은 눈빛은 여전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위태로워 보였다.
앙상하게 마른 것은 제쳐 두고, 사람이라면 당연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마계에 의한 건이라면 이미 보고받았다. 제국의 의사들이 총력으로 대책을 세우는 중이다.”
진강은 시로네의 좌우를 지키고 있는 2명의 사도를 시선으로 훑었다.
아스라이커가 눈을 맞췄으나 진강에게서는 감정의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이런 혼이라니.’
그녀는 안타까웠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구나. 더 이상 쥐어짜 낼 수도 없는 상태야.’
자식이 영원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떤 부모라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이면 세계에 갈 겁니다.”
진강의 눈에 일순 빛이 깃들었다.
“지옥을 정화하면 마계는 소멸합니다. 현재 토르미아 왕국에서 준비 중에 있어요.”
“……그렇군.”
성음에 대해 묻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그가 진천의 황제이기 때문이리라.
“구할 수는 없어요. 다만 지옥이 정화되면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는 있을 겁니다.”
진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진성음이란 마법사는 인류를 절망의 늪에서 구해 낸 사람입니다. 그녀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싸울 수 있었어요. 만약 지옥에서 그녀를 만난다면, 책임지고 제가 죽이겠습니다.”
진강은 애써 참았다.
진천이 원하는 황제는 만민을 통치하는 천자이지, 가족애에 얽매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곧 이면 세계로 들어갈 거예요. 그 전에 성음의 소멸에 허락을 구하려고 왔습니다.”
굳이 허락을 구하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내 딸이 소멸하면 심령권이 다시 열리겠군.”
“네. 물론 지옥이 정화되면 문제가 없겠죠. 하지만 만약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지옥의 정화와 성음의 소멸.
“저는 성음을 해방시키는 쪽을 선택할 겁니다. 설령 심령권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요.”
이제는 황제가 답할 차례였다.
“그러면 진천은 패하겠지. 물론 인류도. 날더러 제국을 버리고 딸을 구하라는 것인가?”
“황제 폐하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성음의 결말, 알고도 선택하셨죠. 따님을 그렇게 보낸 것을 후회하시나요?”
“후회……하냐고?”
고개를 돌린 진강은 당시의 감정을 떠올렸으나, 더 이상 입은 열리지 않았다.
“선택할 수 없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시로네가 사도를 이끌고 어전을 빠져나가려는 그때, 쉰 목소리가 들렸다.
“나라면…….”
진강이 일어섰다.
“나라면 내 딸처럼 하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시로네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진천의 영웅을 해방시켜 주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남기고 문으로 향하자 모든 신하들이 일제히 절을 하며 소리쳤다.
“진천의 영웅을 해방시켜 주시옵소서!”
***
살아 있는 인간이 불타는 것은 그 어떤 불꽃보다도 아름다운 게 아닌가 하고…….
“후우우우!”
한순간 그런 미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리안!”
생명이 눈에 보인다면 아마도 저런 형태로 타오르고 있지 않을까?
선 채로 숨을 쉬어도,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도, 불꽃은 언제나 위를 향하고 있었다.
‘불이 붙었어. 이제 어떡하지?’
고통이 전부인 육체를 끝없이 복구하며 리안은 정처 없이 주위를 걸었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크기를 키우며 정신을 덮쳤다.
“크으으으으!”
비명 따위는 지르지 않을 것이다.
리안은 그렇게 다짐했고, 자신의 다짐을 마지막까지 지켜 냈다고 생각했다.
3시간 동안 바닥을 뒹굴며 악을 지르는 모습에 테스가 눈물을 쏟아 낼 때까지도.
“리안, 리안!”
그로부터 2시간이 더 지나서, 클럼프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깨물 때까지도.
“으아아아아!”
리안은 절대로 악을 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시로네! 이제 한계야. 이러다가 미쳐 버릴 거야! 잠시라도 쉬게 해 줘.”
시로네는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멈추면 처음부터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해야 돼. 이게 최선이야.”
리안의 고함 소리에 테스가 귀를 막았다.
“제발! 제발 그만해!”
“……크크.”
리안의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흐흐흐! 흐흐흐흐!”
처음에는 미친 줄 알았다.
하지만 분명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그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보인다, 시로네.”
불꽃이 넘실댈 때마다 현실의 것이 아닌 수많은 풍경들이 중첩되고 있었다.
“어…….”
테스의 망막 속에서, 아귀들이 절규했다.
카르마 체인(1)
이면 세계.
지옥이라 불리는 이곳은 현실 세계만큼 넓고 인간만큼 체계화된 사회를 이루고 있다.
다만 인간 사회가 이성의 산물인 반면 지옥 사회는 감정의 산물로, 시스템의 궤가 달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현실의 베이스가 물이라면 지옥의 베이스는 불이라는 점이다.
하늘은 대부분 불의 구름으로 덮여 있고, 차가운 비 대신에 뜨거운 불꽃이 내리는 세계.
지상에 떨어진 불은 용암처럼 녹아내려 거대한 불의 강으로 흘러든다.
강의 지류를 따라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예외 없이 정화 시설이라 불리는 장치가 있다.
불의 양을 조절하는 용암 댐과 불의 질을 조절하는 영혼 처리장, 24시간 지옥 불이 끓고 있는 불판 등.
그리고 이 모든 정화 시설을 총괄하는 곳이 지옥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화자원관리공사였다.
“아아아아!”
화자원관리공사, 일명 화공사의 사장실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픈 것처럼 들리지만, 음절의 사이사이에는 쾌락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문이 급하게 열렸다.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테이블에 두 다리를 올리고 있던 사장이 황급히 몸을 웅크리며 돌아섰다.
“꺅! 뭐야!”
비서실장 모노라스가 태연하게 말했다.
“아니, 소리가 들려서 왔는데요.”
화공사의 사장, 레테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모노라스를 싸늘하게 훑었다.
적갈색 피부에 돼지의 머리, 지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최악, 최저의 마족.
‘어째서 저딴 놈이…….’
화공사의 비서실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킁킁. 킁킁.”
모노라스가 무언가를 탐색하듯 시종 냄새를 맡자 레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해?”
“아무것도 아닌데요. 흐읍, 하. 흐읍, 하.”
“…….”
코가 막힌 맹맹한 목소리도 듣기 싫어 죽겠지만, 가장 짜증 나는 건 지옥에서 가장 뻔뻔한 놈이라는 사실이었다.
“모노라스.”
“네, 사장님.”
레테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잠깐 이쪽으로 와 봐.”
“이제 일하러 가야 되는데요. 바빠서요.”
둔한 몸이 꿈쩍도 하지 않자, 예상했다는 듯 그녀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잠깐 와 보라고.”
눈을 끔벅거리던 모노라스가 싫은 티를 있는 대로 내며 책상으로 걸어갔다.
“왜요? 먹을 거라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책상을 짚고 뛰어넘은 그녀가 모노라스의 턱을 주먹으로 후렸다.
“이 자식이 진짜!”
사장실의 벽을 뚫고 날아간 돼지의 육체가 복도의 벽에 둔탁하게 처박혔다.
전력으로 달려간 레테가 그의 배를 발로 까더니 작신작신 밟아 대기 시작했다.
“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3억 번도 넘게 말했잖아! 너 지금 나 무시하냐?”
레테의 일격이 들어갈 때마다 고기를 반죽할 때와 똑같은 소리가 났다.
“꾸익! 꾸익!”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복도를 구르는 모노라스를 레테가 성큼성큼 따라갔다.
“얼마나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릴래? 내가 사장이야! 알았어? 대답해! 누가 사장이라고?”
“내, 내가 사장이다!”
“아아악! 짜증 나!”
모노라스의 배를 걷어차자 거구의 몸이 천장에 부딪혔다가 수직으로 추락했다.
“하아! 하아!”
배를 움켜쥐고 눈물을 흘리는 돼지의 얼굴을 노려보며 레테가 숨을 골랐다.
“내가 사장이라고! 내가! 그러니까 너한테는, 내가 아니고 네가……!”
“사장님.”
복도 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지옥과 어울리지 않는 청량한 목소리.
하지만 이것이 바로 그들의 직업이었다.
인포메이터.
염소처럼 머리에 뿔이 자란 여성이 서류철을 가슴에 끌어안은 채 고양이처럼 다가왔다.
“여전히 사이가 좋으시네요.”
“…….”
숨을 몰아쉬던 레테가 초점 없는 눈으로 모노라스를 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아, 네. 생육신 2명이 들어왔어요. 바라마온 제7구역, 등뼈의 무덤에서요. 진성음의 희생과는 다른 유형이에요.”
심령권의 봉인으로 정화 시스템이 꼬여 버린 일을 떠올린 레테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떤 유형인데?”
“태극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