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46
“미안하지만, 내 몫을 누군가에게 주는 것은 자유예요. 당신의 말에는 따를 수 없어요.”
기사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장관을 돌아보자, 데시카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송아.”
물소리를 내며 뽑힌 기사의 검이 시로네의 목덜미 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거냐?”
태연한 시로네와 달리 포이네의 눈빛에는 가공할 악의가 깃들었다.
‘하찮은 생명체가…….’
그녀가 기사의 목을 180도 돌릴 생각을 하는 그때, 시로네가 물었다.
“여기가 어딘데요?”
“바다 한복판. 식량은 부족하고, 언제 큰 파도가 닥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아니,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지.”
기사의 표정이 잔인하게 변했다.
“좋은 식량이 될 테니까.”
칼날이 인간이 감각할 수 없는 영역에서 시로네의 피부에 닿는 순간.
“결정했다.”
시로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데시카의 인상이 구겨졌으나, 기사는 검을 겨눈 상태로 얼어붙은 듯 움직임이 없었다.
‘뭐야?’
시야가 아득히 멀어지고, 마치 뇌에 갇힌 것처럼 몸의 통제권이 사라진 상태였다.
마음의 기술-감금.
‘살려 줘! 누가 좀……!’
오감은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자신이 경험하는 게 아닌 듯했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가운데 시로네가 데시카를 돌아보며 말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생물의 당연한 본성. 그것마저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데시카는 아직 말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작은 것이라도 나누지.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은 없지만…….”
시로네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 마음까지 조롱하지는 마라.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이것 또한 생존을 위한 위대한 본성이니까.”
내무 장관에게 일침을 가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데시카를 살폈다.
“흐음.”
데시카가 턱을 괴며 물었다.
“자넨 누군가?”
시로네가 대답이 없자 그가 입꼬리를 올리며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아마도 마법사인 모양인데, 내 밑에 들어오는 게 어때? 자네에게는 내 몫의 절반을 주지.”
내무 장관을 호위하는 기사라면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그 수준이 낮지 않다.
그런 실력자를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면 회유책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멍청하군.”
데시카의 눈썹이 꿈틀했으나, 시로네는 더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여긴 바다 한복판이야.”
저 멀리서 바다의 등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너희들 자신을 구원해라.”
시로네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선원들이 비상벨을 울리며 바쁘게 움직였다.
“대형 파도다! 모두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보자 선장이 직접 나와 그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안으로……!”
쿠쿠쿠쿠쿠쿠!
귀청이 멀어질 듯한 소리에 선장이 말을 멈추고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빌어먹을.”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높이의 파도가 배를 집어삼킬 듯이 덮치고 있었다.
“키헤헤헤! 인간이다, 인간!”
수륙양용의 마족들이 해일 속에 몸을 담근 채 저마다 병장기를 치켜들고 있었다.
“너 스스로를 구원하라.”
그렇게 중얼거린 시로네가 미라클 스트림을 온몸에 휘감으며 싸울 준비를 했다.
“크윽!”
거짓말처럼 오감이 되돌아온 기사가 머리를 부여잡더니 해일을 살폈다.
‘……버틸 수 없어.’
인간이 어찌해 볼 만한 스케일이 아니었다.
“장관님! 이쪽으로! 도망쳐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장관을 챙긴다는 점에서는 그도 1명의 기사로서 자격이 있다고 할 테지만…….
“메시아님.”
“내버려 둬.”
이미 누군가가 계시했던 종말의 세계에서 마음을 잃은 자가 어떻게 되는지 시로네는 알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데시카와 기사는 400미터 앞까지 다가온 해일을 보고 창백하게 질렸다.
그 순간 배의 뒤쪽에서 수십 개의 거대한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앙!”
천지를 울리는 굉음을 내며 수룡 카이오스가 날아올라 해일을 마주했다.
충전 시간 24시간을 자랑하는 수룡의 브레스가 용언을 통해 작렬했다.
천문학적인 수량이 꽈배기처럼 꼬이면서 해일을 강타하자, 바다가 출렁이면서 그들을 태운 배가 수백 미터 높이까지 떠올랐다.
“으아아아아!”
배 위는 아수라장이었고, 시로네와 포이네만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마족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포이네, 결정했다.”
적어도 희망을 보았다.
시로네의 두 손에서 미라클 스트림이 강하게 응축하더니 강렬한 빛이 되어 폭발했다.
“키에에에에!”
빛에 휩싸인 마족들이 재가 되어 소멸하고, 반대로 사람들은 마음이 정화되는 감동을 느꼈다.
“아아…….”
하늘에서 낙하하는 느낌이 아찔했으나 그것조차 어루만지는 따스한 마음이었다.
‘핸드 오브 갓.’
빛의 손이 하늘에서 내려와 배를 받치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수면 위에 띄웠다.
풍랑은 여전히 거칠었으나 핸드 오브 갓이 배 주위를 휘휘 젓자 금세 가라앉았다.
“이, 이럴 수가…….”
데시카와 기사는 물론 그에게 도움을 받은 사람들조차 시로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야훼.”
바다 건너 들은 소식으로는, 금발의 소년이 세상을 위해 싸운다고 한다.
내무 장관은 그 소년의 신상과 신체적 특징 또한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미처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탓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말이 되지 않았다.
‘야훼가 여기에 있다고? 왜?’
세상을 구원할 자가 고작해야 수십 명의 사람들을 태운 피난선에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데시카.”
“네, 네!”
사태를 파악한 데시카가 납작 엎드렸다.
“디오나스 왕국에 도착하면 임시정부를 꾸려라. 조만간 토르미아 왕국에서 사람이 올 거야. 그들과 협력해서 최대한 수재민들을 도와.”
시로네의 말에서 정세를 읽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은 정치인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거대한 지각변동, 세계가 토르미아를 중심으로 재편성되려 하고 있었다.
“하오나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야훼께서 힘을 써 주시면 금세 육지로…….”
시로네의 눈을 바라본 데시카가 흠칫했다.
“흐윽!”
정신이 관통당한 느낌 앞에서는 어떤 입에 발린 말도 통하지 않을 터였다.
“이 배의 사람들만이라면 당장 육지로 갈 수도 있겠지.”
시로네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함께 가는 거야.”
그 모습을 따라 고개를 돌린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하늘을 나는 카이오스를 따라 셀 수 없는 배들이 수평선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이면 세계.
통곡의 골짜기는 본래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지옥 불이 흐르던 강이었다.
하지만 심령권이 봉인된 이후로 용암은 완전히 말라 버렸고, 수백 미터 깊이의 절벽이 되었다.
구르는 자갈을 타고 에텔라와 샤갈이 골짜기의 밑바닥까지 내려왔다.
‘먹을 것을 구해야 돼.’
생육신의 상태로 지옥에 떨어졌기에 배가 고팠으나, 음식을 찾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에텔라가 주위를 살피며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허벅지에 강력한 통증이 왔다.
“큭!”
한쪽 다리를 구부린 채 뒤를 돌아보자 샤갈이 자신의 허벅지에 칼을 박아 넣은 상태였다.
비릿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노려보며 에텔라가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자꾸 왜 이러는 거예요?”
“몰라서 묻는 건가?”
샤갈이 사슬을 가리켰다.
“너와 나는 이 사슬의 지옥에 갇힌 거야. 고통도, 감정도, 느낌도 전부 공유되는 사슬에.”
두 사람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사슬이 점차 줄어들자 에텔라가 이를 악물었다.
“흐으으.”
버텨 보려고 했으나 통제할 수 없는 힘이었고, 그것은 샤갈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완전히 몸이 맞대지자 에텔라가 싫은 표정으로 고개를 홱 틀었다.
“알겠어? 이건 벌이야. 감히 나를 용서한 대가를 치르는 거지. 너는 영원히 나를 벗어날 수 없을 거다.”
반박할 말은 없었다.
샤갈을 현실에서 제거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책임을 지는 수밖에는.
“괴롭히는 건 나중에 하고 일단 쉴 곳을 찾아요. 밤에는 어떤 마족이 나올지 모르니까.”
에텔라가 샤갈을 밀어내자 다시 사슬이 길어졌으나, 그래 봤자 한계는 2미터 정도였다.
샤갈이 자신의 허벅지에 속사검을 박자 앞서던 에텔라가 풀썩 쓰러졌다.
이제는 대꾸조차 하지 않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샤갈은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벌이겠지.’
에텔라를 괴롭히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몸을 해쳐야 하는 숙명이었다.
‘응?’
얼마나 걸었을까, 샤갈의 초인적인 감각이 섬뜩한 기운을 감지하고 뇌에 전달했다.
“멈춰.”
뒤늦게 에텔라가 걸음을 멈추고, 샤갈의 주위에 속사검의 환영이 아른거렸다.
섬뜩한 기운은 여전히 거리가 먼, 골짜기의 어둠 끝에서부터 밀려 나오고 있었다.
에텔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느껴진다. 범접할 수 없는 감정, 분노, 희생, 고통.’
오지 마.
마치 뇌에서 직접 울린 것처럼, 여자의 목소리가 굉음처럼 크게 들렸다.
에텔라가 들은 것을 샤갈이 듣지 못했을 리는 없으나, 그는 천천히 전진했다.
“흥, 어차피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인가?”
사슬로 연결되어 있기에, 샤갈이 간다고 하면 에텔라도 말릴 도리가 없었다.
깊이 들어갈수록 감정은 더욱 커졌고, 급기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공포가 밀려들었다.
“저건?”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양쪽의 암벽에 수백 개의 사슬이 박혀 있고, 거기에 구속된 한 여성이 보였다.
“오, 오지 마…….”
진천의 공주, 진성음이었다.
카르마 체인(5)
에텔라는 성음의 심장에서 뻗어 나온 수백 개의 사슬이 사방에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면 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지는 못해도 그 사슬이 정체를 말해 주고 있었다.
‘진성음.’
인류를 위해 심령권을 봉인한 여자.
생육신의 상태로 들어온 것이 분명했고, 그 감정이 어떠했는지는 자신과 샤갈에게 연결되어 있는 사슬에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었다.
“당신은…… 진성음인가요?”
에텔라가 한 걸음을 더 다가가 물었다.
“우우우…….”
성음이 몸을 부들거리더니, 통곡의 골짜기 끝에서부터 사슬이 출렁거렸다.
사방에서 어떤 힘이 그녀를 향해 밀려들었다.
-아아아아아!
결코 입으로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영혼의 절규가 바람을 타고 전달되었다.
“짜증 나는군.”
샤갈은 속사검을 손에 쥔 채 성음을 주시했다.
그녀가 누구인지는 관심이 없지만 사슬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지는 게 당연했다.
“오, 오지 마…….”
사슬로 감긴 성음의 입에서 탁하게 쉬어 버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에텔라가 말했다.
“안심하세요. 나 또한 선의 수호자, 당신의 고통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철컥, 철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