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48
20인의 심판 당시에 그녀를 선택하지 못한 것이 생의 가장 큰 후회일 정도로.
물론, 가올드에게 상처를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럴 자격도 없고,’
미로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 건 가올드뿐이고, 그렇기에 미로의 마음에도 균열이 갔었던 것.
‘하지만…….’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것이다.
미로의 얼굴을 바라보던 세인은 마주 보고 있는 강난과 시선을 마주쳤다.
“…….”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서로가 잘 알고 있지만, 결국 내색하지 않고 눈길을 돌렸다.
“그나저나.”
가올드가 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확실히 맨정신으로 다닐 곳은 아니군.”
크아아아아앙!
괴물의 소리 같은 굉음은 사방에서 돌아가는 기계장치에서 나오고 있었다.
“여기가 드리모의 중심.”
몽유라고 불리는 세계가 시로네 일행의 눈앞에 정신없이 뻗어 나가고 있었다.
강난이 입을 벌렸다.
“세상에…….”
어떤 미치광이의 머릿속도 이렇지는 않을 듯했다.
불가사의한 구조물이 조립과 해체를 반복하고, 개중에는 시로네의 행성에 있는 고대 유물도 보였다.
추상파, 인상파의 그림들, 폭죽처럼 터지는 음의 파동, 미지의 수학 공식들.
루버가 말했다.
“비논리적인 감정이 이성적인 기호로 표출되는 과정은 경이롭죠. 그래서 혹자는 꿈을 영감의 원천이라 부르기도 한다지요.”
수많은 정신을 도굴했던 아리우스도 이번에는 찬사밖에 내뱉지 못했다.
“굉장하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들이 뒤집어지고, 전혀 다른 카테고리에 속한 개념들이 무리 없이 결합하고 있어요.”
몽아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꿈속에서 모든 개념은 불가사의한 결합 과정을 거쳐요. 거기에서 논리와 비논리가 구분되죠. 꿈에서 깨면 논리적인 부분만 남지만요.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만약 비논리적 코드가 현실에 올라오면…….”
“세계가 변하게 되니까.”
시로네가 말했다.
“세계를 정의하는 건 인간의 마음이야. 따라서 비논리적인 기준으로 세상을 인지하게 되면, 급기야는 세계 자체가 뒤틀리게 되는 거지.”
세인이 물었다.
“규정외식?”
몽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그건 등가교환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작은 부분이라고 할까요?”
루버가 말을 받았다.
“인위적으로 개념을 조작하는 경우가 있어. 그 대표적인 예가 일세.”
“아…….”
“본래 논리 세계로 나와서는 안 되는 개념이 시스템의 편법을 이용해 관철되는 것이지. 그런 짓을 하는 자를 인간은 도굴꾼이라고 부른다지?”
루버가 시선을 돌리자 아리우스가 어깨를 움츠렸다.
“하,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오브제가 전부 도굴꾼의 소행은 아니잖아요? 리안 씨가 가지고 있는 도 자가 발현의 대표적인 예고요.”
“신념을 가진 사용자라면 시스템도 어찌할 수 없지. 하지만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야. 내가 자네의 꿈에 들어가 벌을 내리지 않은 이유도 규칙 때문인 것이고.”
“……죄송합니다.”
루버는 더 이상 꾸짖지 않았다.
“됐네. 어쨌거나 오브제가 세상을 위해 일조한 부분도 있으니까. 게다가 나도…….”
루버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규칙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는 건 아니니.”
“루버 씨가 규칙을 어겼다고요?”
시로네도 듣지 못한 얘기였다.
“그렇습니다. 딱 한 번, 제 의지로 오브제를 현실로 반출시킨 적이 있지요. 그게 오대성께서 사용하시는 오브제, 입니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루버라면 모든 오브제의 출처를 알고 있을 테지만, 아르망이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상당히 기묘한 느낌이었다.
“아르망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녀는 화족이었죠?”
“네. 그녀가 원한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루버가 시로네에게 숨길 것은 없다.
그렇기에 말을 피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갔으리라 짐작이 갔다.
‘아리우스라면…….’
카즈라의 왕자 지온에게 아르망을 넘긴 인물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아리우스조차 찜찜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루버가 이끈 곳은 거대한 피라미드의 최하층이었다.
“이곳입니다.”
루버가 가리킨 작은 분수에 점성이 강한 붉은 액체가 거울처럼 담겨 있었다.
“비물리 엔진, 흔히 꿈의 엔진이라고 부르죠. 가동하면 논리와 비논리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시간은 물론 공간의 경계마저 사라집니다.”
시로네가 말했다.
“그래서 몽인이 모든 사람의 꿈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거군요.”
“네. 동시 사건처럼 논리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그냥 시공간 자체가 없는 거죠.”
루버가 꿈의 엔진을 작동하자 피처럼 붉은 액체가 허공에 뭉치더니 카오스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몽아가 손을 내밀었다.
“현재 이미르의 꿈에 부정적 에너지, 나이트메어를 주입하고 있어요. 몽력은 최대치, 이미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건을 구현하게 될 겁니다.”
아리우스가 덧붙였다.
“정말 그런 게 있다면 말이죠.”
모든 준비가 끝나자 붉은 액체가 엄청난 속도로 형태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사람의 얼굴인 것처럼, 괴물인 것처럼, 어쩌면 이 모든 게 착각인 것처럼.
“들어갑니다.”
꿈의 엔진이 드리모를 돌리면서 주위의 풍경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미르의 꿈이었다.
어두웠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마치 그들을 삼킨 이 세계가 그들의 존재를 외면하는 것 같은 적막이었다.
가올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공을 닮았군.”
그 말이 너무나 정답에 가까웠기에, 일행은 오히려 대답을 하지 못했다.
미로가 머릿속으로 읊조렸다.
‘이미르의 꿈은 진공을 닮았다.’
하찮은 미물조차 꿈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르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강난이 물었다.
“이거 악몽이에요? 아니면 꿈이 없는 거예요?”
몽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걸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예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악몽일 확률이 높아요. 정말로 진공이라면, 의사소통은 물론 우리의 존재도 지워졌겠죠.”
미로가 말했다.
“샤이닝 마법을 썼는데 빛이 켜지지 않아. 시로네, 미라클 스트림은 어때?”
“마찬가지예요. 분명 시전은 되는데 이 공간이 현상을 통제하고 있어요.”
세인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순한 진공이 아니다. 시로네의 능력조차 무시하는 위력의 세계. 어쩌면 여기서…….’
전멸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뭔가 있군.”
가올드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춘 시로네는 허공에 떠 있는 눈동자를 보았다.
빛이 없는데도 볼 수 있는 이유는, 저것만이 이 꿈의 실체이기 때문이리라.
“악몽입니다.”
몽아가 말했다.
“어째서 이게 악몽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이트메어가 통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흐음, 이미르의 공포라.”
턱을 짚은 아리우스는 눈이라는 키워드에 담긴 심리를 분석했다.
‘관음, 주시, 감시. 아니면 감각 계통 쪽인가? 신체적인 약점일 수도 있다.’
눈은 너무나 많은 상징성을 갖지만 적어도 진공의 무한보다는 훨씬 나았다.
“점점 많아지는군.”
걸음을 옮길수록 눈동자의 개수가 계속 늘어났다.
그럼에도 거리를 측정할 수 없었고, 마침내 어둠 속이 온통 눈동자로 가득 찼다.
‘다수의 눈. 피동적인 개념이야. 감시인가? 아니면 관음에 대한 저항?’
아리우스가 계속 머리를 굴리는 가운데 미로가 말했다.
“앙케 라?”
“아뇨.”
걸음을 멈춘 아리우스는 스피릿 존을 개방해 눈동자의 개수를 느꼈다.
공감각의 통찰은 빗나가는 법이 없지만, 이번에는 많아도 너무 많았다.
“눈동자의 개수는 대략 100억 개 이상. 이건 아마도 가이아인의 눈일 겁니다.”
일견 납득이 갔으나 미로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100억 개지? 눈은 2개가 한 쌍이잖아. 그럼 200억이 넘어야 되는 거 아냐?”
“그게 핵심이죠. 왜 눈이 하나인가? 심리적 단일화입니다. 싫어하는 친구들이 꿈에서는 1명의 인간으로 압축되어 나타나는 것과 같죠.”
일행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문제. 어째서 눈이라는 개념 자체는 단일화가 되지 않는 것일까요? 단지 감시나 관음 같은 공포라면, 거대한 눈 하나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글쎄. 앙케 라가 있기 때문에?”
“그것도 하나의 대답이 되죠. 개념적으로 중복이 되는 형태를 피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많은 숫자를 출력하지는 않아요. 어쩌면 이 숫자 자체가 이미르에게는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시로네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100억 개의 눈. 이게 왜 두려운 것일까?”
“하나가 아니니까요.”
아리우스가 말을 이었다.
“눈에는 관철, 실체화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100억 개의 눈이 정의하고 있는 거죠. 바로 이미르를. 그리고 그는 이런 상황이 두렵습니다. 따라서…….”
아리우스는 한 바퀴를 맴돌더니 눈동자가 향하는 시선의 중심을 겨누었다.
“저기에 이미르가 있는 겁니다.”
아리우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무것도 없던 어둠에서 하나의 형체가 드러났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이미르가 턱을 괸 채로 이쪽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정답이다.”
“이미르.”
모두가 전투 자세를 취했으나, 솔직히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 본인들도 몰랐다.
‘감각이 없어.’
100억 개의 눈이 그들을 정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
“그래. 말하자면…… 여기는 꿈인가?”
보통은 꿈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이미르는 보통의 범주에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래, 좋은 방법이구나. 아마도 너희들이 찾고 있는 건 이것이겠지?”
이미르가 손을 내밀자 전기로 이루어진 구체가 푸른 빛을 내뿜었다.
‘울티마 시스템.’
시로네가 바벨에서 얻었던 것과 거의 비슷한 형태였다.
“솔직히 기분이 나쁘군. 어떤 적도 내 정신에 침투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설마 관리자인가? 하긴, 세계가 파멸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시로네가 말했다.
“이미르, 그것을 넘겨줘. 네가 정말로 강하다면 세상을 위해 힘을 사용해라.”
이미르가 선뜻 손을 내밀었다.
“좋아, 가져가라.”
잠시 지켜보던 시로네가 몸을 날렸으나, 아무리 발을 굴러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야.’
솔직히 발이 있는지도 의문스러웠다.
“크크, 거봐, 못 가져가잖아. 나는 너희들이 누군지도 몰라. 이유가 뭔지 알아?”
이미르가 입가를 찢으며 말했다.
“신경조차 쓰이지 않거든.”
100억 개의 눈이 그들을 정의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울티마 시스템을 손바닥으로 흡수시킨 이미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한 방 먹었다는 건 말해 주지. 하지만 날 만나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거야. 왜냐하면 내 기억은…….”
이미르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신들의 무덤이니까.”
신들의 무덤(2)
이미르는 떠났다.
아마도 모태 심리, 심층 1단계의 가장 깊은 곳에서 시로네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강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악몽이 맞는 거야? 그런 것치고는 이미르가 너무 태연하잖아.”
아리우스가 답했다.
“태연하지 않았을 겁니다. 곧바로 자리를 떠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물론 겁에 질려 울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불쾌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미로가 물었다.
“무엇이 불쾌했을까?”
“먼저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몽아가 말했다.
“현재 꿈이 통제되지 않고 있어요. 이미르가 우리를 무엇으로도 정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일종의 텍스트 상태라고 할까요. 난관입니다.”
“아리우스, 방법이 없겠어?”
“심층 5단계,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는 키워드를 찾으면 됩니다. 다만 눈동자뿐이라는 게 문제고, 100억 개가 넘어간다는 게 더욱 큰 문제죠.”
가올드가 중얼거렸다.
“뭔가 특별한 눈동자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