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49
모두가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매 순간 전체의 3분의 1 정도가 깜박거릴 뿐이었다.
“공포. 공포.”
아리우스는 다시 눈을 살폈다.
“결국 이 꿈이 유일한 힌트예요. 왜 100억 개의 눈동자가 이미르를 두렵게 만드는 것일까요? 울티마 시스템의 해체? 정의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
“눈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로네가 말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꿈에는 눈동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진공을 닮은 상태와, 우리들도 있으니까요. 정확히는, 정의되지 못한 우리들 말이에요.”
“흐음, 그렇군요.”
생각에 잠겼던 아리우스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신들의 무덤.”
어떤 계시를 받은 듯 중얼거리던 그가 상기된 목소리로 모두에게 말했다.
“그래요, 이건 악몽입니다. 이미르가 그랬죠, 자신의 기억은 신들의 무덤이라고.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간과하고 있었는데, 이미르라면 납득이 가는군요.”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
“렘 영역인 이곳 6단계를 기준으로 의식과 무의식이 분리됩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곳은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인 중간 지대. 하지만 이 꿈을 보세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세인이 물었다.
“너무 강하기 때문에?”
“네. 이미르에게는 모든 물질이 공기보다 가볍습니다.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특별한 자극이 전무하다는 것이죠. 바로 이 진공을 닮은 상태입니다.”
“청각이 전부라는 거군. 하지만 그게 왜 악몽이 되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잖아.”
“현실에는 있거든요. 이미르는 탄생 이후 수많은 강적을 쓰러뜨렸습니다. 어떤 문명권에서든 신으로 추앙받은 존재들이겠죠. 이미르에게 감각의 경험이란, 기껏해야 그 정도인 겁니다.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강적.”
시로네의 머릿속에 이미르가 여태까지 싸운 적들의 면면이 스쳐 지나갔다.
“보통 그런 종류는 의식의 영역에 배치됩니다. 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미르는 오히려 그 반대일 겁니다. 감각이 부족한 무의식이 스펀지처럼 그 자극을 빨아들이거든요.”
“그럼 의식의 영역에는?”
“껍질만 남죠. 실상 표층에는 별게 없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더 심각한 겁니다. 아마도 렘 영역 아래, 심층 5단계부터는…….”
아리우스가 엄숙한 목소리로 일렀다.
“이미르에게 생애 최고의 자극을 선사했던 강적들이 버티고 있을 겁니다.”
신들의 무덤.
“현실에는 있습니다. 우주 어디에든 있겠죠. 하지만 이 꿈에는 없어요. 그래서 악몽입니다. 모든 강적이 사라지고, 어떤 자극도 느끼지 못하는 꿈을 꾼 거예요. 우리를 도발한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겁니다.”
미로가 말했다.
“이해했어. 그래서 내려가는 방법은?”
“결국 저 눈이죠. 악몽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이미르가 싸운 상대에 필적하는 자극을 주는 겁니다. 신들의 무덤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정적이 흘렀다.
평소라면 자원자가 넘쳐흘렀겠지만 상대가 이미르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미로가 물었다.
“그러면…… 누가 할래? 아니, 그 전에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엄청나게 세게 때리면 되나?”
아리우스가 말했다.
“애초에 저 눈은 우리의 육체조차 정의해 주지 않아요. 강난 씨의 스키마라면 약간의 가능성은 있겠지만, 일단 마법이 좋을 것 같군요. 시로네 씨나, 가올드 씨가 하시죠.”
“야, 나는?”
미로의 말에 아리우스는 직답을 피했다.
“공격을 해 보죠. 시로네 씨와 가올드 씨 중에서 단일 파괴력이 높은 사람이 하면 되겠습니다.”
“…….”
두 사람 모두 대답이 없자 미로가 피식 웃었다.
“그래, 말 잘했다. 가올드, 너랑 시로네랑 마음먹고 치면 누가 더 세?”
가올드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애도 아니고, 유치하게…….”
물론 그렇지만, 가올드가 확답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은근히 놀라웠다.
“어, 뭐야? 설마 가올드도 시로네 앞에서는 한 수 접어주는 건가? 왜? 자신 없어?”
“너는 사탄이냐?”
결국 가올드가 나서기로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에어 프레스가 시전되었다.
“크으으으으!”
엄청난 고통이 밀려들었으나 100억 개의 눈은 마법을 정의하지 않았다.
“……안 된다고?”
가올드이기에 안심하고 기다리고 있던 모두는 비로소 심각성을 깨달았다.
“제가 해 볼게요.”
시로네의 목소리가 들리자 가올드가 말했다.
“기다려.”
강난이 타일렀다.
“자존심 세우지 말아요. 이미르는 최강의 적이잖아요.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국에…….”
“그런 문제가 아니야.”
가올드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내가 시전한 마법인데도 위력이 가늠이 되지 않아. 시로네도 마찬가지일 거다.”
미로는 직접 시도해 보았다.
“그러네. 현실감이 아예 없어. 최선을 다해 달려야 하는데, 상상만 하는 격이야. 이래서야 기준을 잡을 수 없지.”
“하지만 나는 잡을 수 있다.”
가올드가 말했다.
“통각을 기준으로 잡으면 돼. 그렇게 계속 위력을 올리면 현실적인 최선, 즉 전력에 도달하게 될 거다.”
강난은 걱정스러웠다.
“괜찮겠어요? 현실적인 최선에 도달하더라도 악몽이 깨지지 않으면…….”
오직 가올드만이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녀가 아는 가올드는 포기할 인간이 아니었다.
“신이라.”
가올드가 입가를 찢었다.
‘어디 낯짝 좀 볼까?’
에어 프레스가 시전되면서 가올드의 통각이 끝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으!”
이미 전력에 도달한 상태지만 여전히 악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 네가 주인이다 이거지?’
강난의 우려대로 가올드는 눈앞에 펼쳐진 칼날의 통로를 향해 더욱 빠르게 달렸다.
“으아아아아!”
가올드의 처절한 절규가 들리자 강난이 스키마를 극한으로 발동시켰다.
“가올드! 가올드!”
약간은 신체감각이 느껴지는 것 같았으나 여전히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만 멈춰요! 싸우기도 전에 죽을 셈이야!”
“조용히, 기다려.”
미로가 차갑게 말했다.
“어차피 우리가 도와줄 방법은 없어. 가올드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강난은 지금 당장 미로의 멱살을 잡을 수 없는 게 분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으아아아!”
가올드의 비명 소리야말로 악몽이었고, 결국 세인이 입을 열었다.
“미로야, 너무 길다.”
찰나에 상대를 제압하는 가올드가 에어 프레스를 이토록 오래 끈 적은 처음이었다.
“이러다 죽어.”
미로가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 가올드는 절대로 멈추지 않을 터였다.
“죽으면 죽는 거지. 여기서 살 거야?”
세인 또한 그녀를 사랑하지만, 역시나 이럴 때면 섬뜩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결국 시로네가 나섰다.
“아무래도 일단…….”
그 순간 눈동자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모두의 몸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감각이…….”
정의되고 있다.
짐승처럼 울부짖는 가올드의 형체가 몸을 지나는 신경들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마침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악몽의 바닥에 수백 미터 반경의 구멍이 탄생했다.
형태를 갖춘 몽아가 말했다.
“악몽이 끝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가올드가 털썩 바닥에 쓰러지더니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악! 하악!”
“가올드!”
강난이 몸을 날리는 순간 미로가 먼저 다가와 그의 등을 두드렸다.
“이야, 멋진데? 잘했어. 아주 잘했어.”
가올드의 어깨가 푸들푸들 떨리는 것을 본 강난은 순간 이성을 잃었다.
“그래도 한 건 했네? 역시 데려온 보람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로의 멱살을 붙잡은 강난이 그녀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팔을 치켜올리자, 미로의 발끝이 땅에 송곳처럼 일어섰다.
“너 미쳤냐?”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는 강난을 내려다보는 미로의 시선은 지독히 차가웠다.
“뭐야, 갑자기?”
“네가 정신병자라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똑똑히 들어. 한 번만 더 가올드를 가지고 놀면 그때는 내가 널 박살 내 버릴 줄 알아.”
미로는 잠시 가올드를 살폈다.
“나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네가 멍청하다는 걸.”
“뭐가 어째?”
“세상을 위해 싸우러 온 거 아니야? 결국 활로를 뚫었잖아. 내가 가올드를 말렸으면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 같아?”
“그게…… 극선이냐?”
“그래. 너처럼 나약한 감정에 휘둘리다가 악에 얻어터지는 애들이 있으니까 내가 싸우는 거야. 모든 걸 짊어지고 마지막까지 막아 내는 거라고.”
강난은 미로를 더욱 끌어 올렸다.
“말해, 다시는 가올드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싫은데? 너에게 그런 자격이 있기나 해? 무엇보다 가올드가 하겠다잖아.”
강난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너, 그러다 진짜 한 대 맞는 수가 있어.”
폭력으로 번질 조짐이 보이자 일행이 다가왔으나, 미로의 살기가 먼저였다.
“손 놔.”
천수관세음의 화신이 높게 솟구치며 수천 개의 팔이 강난을 겨누었다.
“마지막 기회야.”
당장이라도 천수관세음이 움직일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가올드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미로야.”
전보다 거대하게 느껴지는 등에서 불처럼 뜨거운 기운이 뿜어지고 있었다.
“네 말이 맞아. 우린 싸우러 온 거지. 나도 이 정도로 쓰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직한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강난은 건드리지 마라.”
강난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가고, 미로의 눈동자가 짧은 순간 흔들렸다.
‘천국에서도 그랬지.’
삶을 바쳐 미로를 구했으면서도, 다시 강난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향했던 가올드였다.
“아저씨…….”
가올드가 건조한 미소를 지었다.
“크크, 걱정하지 말라니까.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잡으러 가야지, 신.”
미로는 모른다.
가올드가 지옥에 떨어져 의식을 잃었을 때, 열네 살의 소녀가 어떻게 그를 지켜 냈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겠지.’
인간적인 감정이 심장에 파고들자 미로는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깨져서는 안 돼. 깨져서는 안 돼.’
눈빛이 빠르게 식은 그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으며 두 팔을 들었다.
“알았어. 미안. 이제 이것 좀 풀어 줄래?”
강난은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가올드의 상태가 더 신경 쓰였다.
멱살을 푼 그녀가 가올드를 부축하며 멀어졌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괜찮다니까. 하여튼 성질머리 포악하기는. 대체 언제쯤 그 버릇 고칠래?”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왜요? 설마 진짜로 한 대 칠까 봐 겁나서 그래요?”
“하하! 너나 안 죽으면 다행이지. 하긴, 그래도 그 정도 깡은 있어야 그런 소리를 하지 않겠어?”
“응?”
강난의 무릎에 누워 숨을 고르고 있던 가올드가 검지로 그녀를 가리켰다.
“세계 최강의 여자가 되겠다며?”
“아.”
확실히 기억은 나지만, 그런 이야기를 가올드에게 한 적이 있었던가?
“그때가 몇 살인지 알아요?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꼭 될 거다.”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더니 가올드는 이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빠졌다.
“…….”
미로는 가올드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웃고 있는 강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예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신들의 무덤(3)
그로부터 10분 정도가 지난 뒤에야 가올드는 의식을 되찾았다.
머리는 하얗게 탈색되었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해 보였다.
미로가 물었다.
“좀 어때?”
“괜찮아. 100퍼센트 회복했어.”
사람이 그럴 수는 없지만, 지금의 가올드라면 어쩌면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잃지 않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