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5
“이상의 마법학적인 소견을 토대로 피험자, 그러니까 해석하자면 현재 의무실에 누워 있는…….”
용뢰의 소견서가 내밀렸다.
“아리안 시로네를 사망 상태로 단정 지을 수 없음.”
“…….”
시위대의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 또한 마법사이기에 알고 있는 것이다, 용뢰가 분석한 의견에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학생 중에 없다는 사실을.
가장 놀란 사람은 네이드였다.
“이루키, 너 대체 언제부터 이걸…….”
그런 네이드를 돌아보며 이루키가 입꼬리를 올렸다.
“어때? 내가 찾아낸 죽은 사람을 살리는 방법.”
네이드는 머쓱하게 코를 만졌다.
정말로 있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방법이.
한편으로는 모두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혼자서 외롭게 싸웠을 이루키에게 미안했다.
“자, 직접 확인해 봐.”
이루키에게 소견서를 건네받은 아미라가 살핀 것은 소견서의 첫 장뿐이었다.
용뢰의 인장이 확실히 찍혀 있었다.
“후우.”
더 이상의 투쟁은 무의미했다.
왕국 최고의 학술 기관이 교사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말하고 있다. 고소장을 제출해 봤자 법원은 학교 측의 손을 들어 줄 터였다.
“고생이 많구나, 아미라.”
알페아스가 건물 입구에서 걸어 나왔다.
“교장 선생님.”
아미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강철 같은 의지도 알페아스의 얼굴을 보자 녹아내릴 수밖에 없었다.
왜 아니겠는가? 이불에 오줌을 싸던 시절부터 따르던 사람이었다.
“미안하다, 너에게 이런 수고를 하게 해서.”
고개를 숙인 아미라는 주먹을 움켜쥐고 눈물이 흐르는 것을 막았다.
“교장 선생님을 고통스럽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 존경을 받는 분일수록 덮어 두고 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리고 이대로 가다가는 학교마저…….”
“왜 모르겠느냐. 두려워하지 말거라. 여기 있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단다.”
이곳에 모인 학생들 모두 알페아스가 기른 업둥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식 같은 그들에게 상처를 준 것이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금강승(6)
“교장 선생님…….”
아미라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알페아스는 어린 시절의 그때처럼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 번만 나를 믿어 주지 않겠니? 시로네의 일이 마무리되면 투명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하마. 어떤 벌이 내려진다고 해도 사랑하는 제자들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도록 하겠다. 결코 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미라는 결국 울고 말았다.
“정말로 돌아오실 거죠? 제가 존경하는 그 모습…….”
“그럼. 나를 벌하는 데 한 치의 속임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걸고 약속하마.”
아미라는 황급히 눈물을 훔쳤다. 울보 꼬맹이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리 말씀하시니 학생회에서도 교장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들여 안건을 다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명예에 누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알페아스는 흐뭇했다.
혀 짧은 소리로 ‘교장 던댕님!’ 하고 달려오던 아이가 어느새 이렇게 야물어졌을까?
‘에리나, 내 인생도 헛된 것은 아니었는가 보오.’
학생회장의 결정에 시위대는 즉각 해산했다.
그러자 반대파도 뿔뿔이 흩어져 건물 앞은 순식간에 황량해졌다.
유일하게 남은 페르미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잘나가다가 막판에 망쳤네.”
알페아스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껄껄! 이번에는 뜻대로 안 된 모양이로구나, 페르미.”
“할 수 없죠. 솔직히 교장 선생님이 나서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만 졸업해야지? 너도 내년이면 스물두 살이야.”
“글쎄요. 아직은 여기만 한 돈벌이도 없어서.”
“흐흐, 그러하냐?”
페르미가 이번 사태를 크게 키웠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알페아스는 그저 학생들을 선동할 정도로 거물이 된 제자가 대견할 뿐이었다.
“게다가 아직은 여기가 재밌거든요. 그럼 이만.”
별다른 안부도 전하지 않은 채 페르미는 경례를 하고 멀어졌다.
아마 오늘 이후로는 학생회에 출입하지도 않을 터였다. 평화는 돈이 되지 않으니까.
한편 의무실로 향하는 이루키와 네이드는 말이 없었다.
심각하게 다툰 건 5년 전 그 사건 이후로 처음이었기에, 여전히 어색함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네이드는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했다.
“야! 너 어떻게 말 한마디 안 할 수가 있어? 나까지 속일 필요는 없잖아! 너만 멋있게 보이려고 그런 거지?”
“웃기고 있네. 슬픔의 바다에서 접영하고 있는 놈이랑 무슨 작전 토의를 해? 게다가 우리 쪽의 전략이 미리 유출되면 그쪽에서도 수단을 강구할 거라고. 왜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
“그래, 나 바보다! 아주 자기만 잘났지!”
화를 내든 욕을 하든 일단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어색한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루키가 그제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너는 어때? 아무리 성질이 나도 그렇지 예전 성격을 드러내서야 되겠냐?”
네이드도 후회가 막심한지 머리를 감쌌다.
“아, 몰라. 나도 그때는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었어. 아무튼 싸움은 안 했으니까 됐어.”
“하긴 내가 워낙 멋있었으니까. 너는 이미 기억에서 지워져 버렸을지도 모르지.”
“웃기고 있네. 결국 다 계산했던 거구만?”
“크크크, 뭐 어때? 나한테 절이라도 해라.”
의무실에 도착하자 에이미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네이드라면 모를까 그녀를 편하게 대하기는 아직 어려운 이루키가 난감하게 듯 말했다.
“뭐, 이렇게 됐어. 어쨌든 시로네는 지켰으니…….”
에이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고마워. 고마워, 이루키.”
이루키는 공포에 질렸다.
“쳇! 됐어!”
도망치듯 의무실로 들어갔으나 그곳에는 또 하나의 감정체인 세리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루키!”
두 팔을 벌리며 달려오는 것을 위빙으로 피한 이루키는 의무실 구석으로 숨었다.
‘으, 이래서 여자는 질색이라니까.’
반면 남은 세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네이드는 위화감이 없었다.
“우아아! 살았어! 이제 시로네는 살았다고!”
오랜만의 밝은 분위기에 이루키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이내 쓸쓸하게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서류상 사망을 유예시켰을 뿐 기적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졸업 후에도 함께하자는 약속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돌아와. 언제까지고 기다릴 테니까.’
***
시로네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정확히는 미친 상태에서 다시 미친 것이다.
N극과 S극을 회전하는 나침반처럼 정상과 광기를 반복하는 과정이었다.
“으으으으!”
천 번을 미친 듯했다.
아무리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해도 온갖 번뇌가 본질에 스며들어 성향을 뒤바꾸어 놓았다.
-너는 주워 온 아이야. 너의 부모는 네가 아닌 누구라도 괜찮았겠지. 너를 키우면서 한 번도 힘든 적이 없었을까? 그럴 때마다 후회했겠지. 괜히 주워 왔다고 말이야. 친부모였다면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야! 그렇지 않아!”
-너는 사생아야. 이 세상 누구라도 양자가 될 수 있지. 그들은 너의 부모가 아니야.
외치는 소리도, 내면의 목소리도 모두 자신의 것이라는 걸 시로네는 알고 있었다.
영혼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오오오오오오!
-너의 본질은 비열한 포식자. 우월한 능력으로 모두를 짓밟는 존재. 너의 승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실패를 부르지. 너는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야.
오오오오오오!
정신에서 악취가 나는 기분이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나는 무엇이 될까?
악귀? 야차? 악마?
오오오오오오!
미치는 사이클이 한계에 다다르자 급기야 두 가지 성향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어어? 어어어?”
신세계였다.
어떤 마약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쾌락과 그에 준하는 절망감이 뒤섞인 상태.
‘끝났어. 난 끝장이야.’
모순 앞에서 자아가 흩어질 때, 시로네는 마지막 남은 하나의 자신을 발견했다.
원점이었다.
‘아…….’
모든 것의 시작. 그 어떤 모순도 침범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하나의 지점.
누군가는 그것을 스폿이라 하고, 누군가는 태극이라 한다.
그리고 마법사는…….
‘끝이 아니야.’
원점을 이렇게 불렀다.
“무한.”
온갖 모순들이 그 자체로 결합되면서 원점을 중심으로 복원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나였어.’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괴롭히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시로네를 이루고 있는 정신체의 강도가 마치 금강석처럼 단단하게 결합되기 시작했다.
번뇌의 끝에서 비로소 맞게 되는 금강승의 경지.
금강불괴.
빛으로 타오르는 시로네는 순식간에 다가온 출구 앞에 가볍게 착지했다.
“후우.”
어떤 것도 혼란스럽지 않았다. 모순의 존재, 인간으로 돌아갈 준비가 끝난 것이다.
“결국 떠나는군요, 시로네.”
시로네는 몸을 돌렸다.
아주 멀리 날아왔다고 생각했건만 입구는 등 뒤에 있었다.
“미안해요. 저는 가야 해요.”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할 필요 없어요. 사상의 지평선을 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당신은 자격이 있어요.”
막상 떠나려고 하자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래서일까. 이제 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시로네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외로웠던 건가요?”
여자는 잠시 눈썹을 올리며 생각하더니 이내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상냥한 사람이군요. 하지만 신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답니다. 그저 당신이 떠나는 게 조금 서운할 뿐이에요. 아주 조금요.”
“돌아갈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여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기억해 두세요. 두 번의 기회는 없습니다. 금강승의 경지에 오른 당신은 더 이상 저에게 초대를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시로네는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다른 차원으로 정신체가 흘러들면서 의식이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다.
여자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알페아스 교장 선생님에게 안부 전해 주세요.
‘……응?’
그녀가 어떻게 알고 있을까?
하지만 의문도 잠시, 시로네의 정신체가 완전히 녹아내리면서 그를 이루는 모든 것이 육체로 흘러들었다.
***
시로네 사망 10일째.
“으음.”
에이미는 졸린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의자에 앉은 상태로 허리를 젖히자 우두둑 소리가 났다. 친구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물을 마시고 세안을 끝낸 그녀는 늘 하던 대로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시로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잘 잤어, 시로네? 오늘은 돌아올…….”
에이미는 꺽 소리를 내며 숨을 멈췄다.
심장 뛰는 소리가 고막까지 들리고, 등골을 타고 전율이 올라오면서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시로네가 눈을 뜨고 있었다.
“어? 어?”
에이미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고 있는 네이드와 이루키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여, 여기…… 여기, 여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최소한 소리라도 내야겠는데 목구멍이 무언가에 막힌 기분이었다.
결국 그녀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 온 힘을 다해 내질렀다.
“꺄아아아아아!”
의무실이 떠나갈 듯한 비명 소리에 네이드와 이루키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 뭐야!”
일상으로(1)
알페아스는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시로네가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는 공인 4급의 마법사인 그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