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50
그만큼 전투에 집중하고 있다는 얘기였고 근본적인 원인은 미로일 터였다.
팀의 입장에서는 호기였다.
‘정신이 멀쩡하다면, 가올드는 무적이다.’
아리우스가 이미르의 꿈에 뚫린 거대한 구멍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심층 5단계입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탐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죠. 가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지금 출발하자.”
그때 몽아가 말했다.
“잠시만. 저는 여기에 남는 게 좋겠어요.”
시로네가 물었다.
“어째서?”
몽아의 능력 나이트메어는 심층에서도 충분히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이미르가 정말로 이 악몽에서 불쾌감을 느꼈다면, 저는 여기에 남는 게 좋아요.”
아리우스는 납득했다.
“그렇군요. 이미르는 악몽을 파괴하기 위해 우리를 심층으로 초대했어요. 따라서 에고이스트가 발동하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자신이 그걸 원하고 있으니까.”
“네. 반대로 악몽을 없애면 에고이스트가 순식간에 우리를 덮칠 것입니다. 몽아 씨의 말이 옳아요. 누군가는 이 악몽을 유지시켜야 합니다.”
루버가 시로네에게 말했다.
“도어가 없으니 돌아올 때도 드리모를 통해야 합니다. 몽아가 남는 게 옳은 판단 같습니다.”
“그럼 우리들은 아래로 내려가죠. 몽아, 부탁할게.”
몽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아리우스를 따라 시로네 일행은 구멍 아래로 뛰어들었다.
이미르의 정신, 심층 5단계였다.
***
시로네가 각자의 팀을 데리고 수많은 세계로 떠난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세계에는 마계의 피바람이 불었다.
하루가 다르게 사망자가 늘어났고 중부 대륙에서는 감정병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죽여! 으아아! 차라리 죽이란 말이야!”
더 이상 버릴 게 없는 사람들은 온전히 고통에 몸을 맡겨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시로네를 만나 잠깐의 평온을 되찾기도 했지만 미봉책일 뿐이었다.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는 전부 죽는다.’
지진도, 한파도, 작열하는 태양도, 감정병만큼 끔찍하지는 않은 듯했다.
‘방법을 찾아야 해.’
시로네의 시선이 중부 대륙 어딘가를 향했다.
세계보건기구.
시로네는 긴 복도를 따라 설치되어 있는 유리창으로 환자들을 보았다.
하나같이 몸이 압박되어 있는 그들이 악을 질렀으나 소리는 넘어오지 않았다.
“수용 인원도 한계야.”
시로네는 세리엘을 돌아보았다.
감정병이 발생하고 2주도 지나지 않았건만 그사이에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사실 구속과 실험 외에 의미가 없어. 어떤 마취제도 통하지 않는다고.”
마계란 그런 것이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나도 백방으로 찾고 있으니까.”
복도의 끝에 세리엘의 상관 테노스가 서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테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은 아침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군. 새벽에 긴급 후송되었어. 가족들은 전원 사망이야.”
테노스가 가리킨 곳은 입원실이 아닌 환자들을 상담하는 작은 방이었다.
문에 달린 창문으로 들여다보자 한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저 사람이 클레인인가요?”
옷 밖으로 드러난 곳에도 자해의 흔적이 있고 얼굴은 시체처럼 앙상했다.
하지만…… 어딘가 홀가분해 보였다.
“그래. 바슈카 외곽에 살고 있던 농부야. 역학조사 결과, 아마도 최초의 감정병 감염자로 추정된다.”
시로네는 말이 없었다.
“딱히 의미는 없지만 말이야. 이미 중부 대륙을 지나 남부 대륙까지 퍼져 나갔어. 이곳 수용 시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귀족들이 돈 보따리를 들고 찾아와.”
금연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곳 앞에서 테노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뭔가 희망을 품고 오는 거겠지, 의학의 총본산에. 최소한 고통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아직 치료약은커녕 통증을 완화하는 방법도 찾지 못하고 있어.”
“전부 고위 관료나 왕족이던데요.”
테노스가 비소를 지었다.
“당연한 거 아냐? 저치는 운이 좋은 거지. 최초 감염자라는 명패를 달고 여기에 왔으니. 아니, 그런 식으로 따지면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하나? 이제는 자살할 수도 없게 되었으니 말이야.”
어떤 경우 전문가의 말은 듣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기에, 세리엘이 빠르게 말을 끊었다.
“일단 들어가죠.”
문이 열리는 동안에도 클레인은 미동은커녕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풀린 동공, 멍하니 벌어진 입, 어딘가 모르게 행복해 보이는 듯도 했다.
‘고통이 사라졌다.’
무언가를 버린 것이고, 시로네는 그게 무엇인지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시로네의 입장에서 감정병이 다른 마계보다 위험한 이유는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로 위험한 것은 파괴되는 마음.’
세계보건기구에서 감정병을 이모션 스케일이라고 부르는 이유였다.
“예를 들어 물질은 감정에 중요하지.”
테노스가 말했다.
“물질은 곧 생명이야. 식량, 옷, 쉴 수 있는 곳, 물론 그걸 총합하는 게 돈이라는 것이지. 자네 같은 구도자들은 하찮게 여길 수도 있겠네만,”
세리엘이 선을 그었다.
“시로네는 하찮게 여기지 않아요.”
“어쨌든…… 가진 게 많은 자는 버릴 것도 많다는 거야. 게다가 약삭빠르지. 고통을 억제하기 위해서 아무거나 막 버리지 않아. 잘게 분류해서 하나씩 써먹는다고. 하지만 이 농사꾼은 둘 중 어느 하나도 하질 못했어.”
얼핏 듣기로는 감정병 감염 3일 만에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 후에는 그저 끔찍한 고통.
그리고 오늘 새벽에 그는 자식을 잃었다.
“이자의 탓만은 아니라는 거야. 적어도 고통은 줄여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로네가 미라클 스트림으로 감정병을 억제하는 대상은 연구원까지였다.
만약 환자들에게 고통을 없앨 방법이 있다고 한다면 세계보건기구는 전쟁터가 될 터였다.
테노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한 시로네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기준은 명확해요. 세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으로써의 사용이에요. 감정에 치우치다가는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그렇겠지.”
일국의 왕족이나 장관이 시로네의 신비를 알고 가만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하지만…….’
테노스는 클레인을 눈에 담았다.
‘세상의 야훼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저 남자가 내가 될 수도 있었겠지.’
클레인이 입을 열었다.
“죽여 주십시오.”
세리엘이 걸어가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건 사고였어요. 3일간의 고통으로 이미 클레인 씨는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고요.”
“내가 죽었어야 했습니다. 설령 미친 상태였다고 해도, 내가 죽었어야 했어요.”
“우선 안정을 취하세요.”
클레인이 고개를 쳐들었다.
“살 생각 없습니다. 여기에 오면 무슨 실험을 한다죠? 하십시오. 무슨 짓이든 하세요. 배를 가르든 내 머리통에 있는 것을 꺼내든, 마음대로 해 주십시오.”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세리엘과 테노스가 말을 아끼는 이유는 솔직히 그런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귀족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건 한계가 있어. 심지어 이곳에는 성전의 중진도 입원해 있다. 치료법이 나오면 가장 먼저 낫기 위해 알을 박은 것들.’
세리엘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이런 걸 따져야 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인간은 살 만한 것인지도.’
어차피 바꿀 수 없는 문제이기에 세리엘은 잡념을 없애고 다시 집중했다.
‘최초 감염자로 추정되는 클레인.’
이미 가족을 잃었기에, 또 자신의 책임이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을 터였다.
‘몇 가지 확인하고 싶은 가설이 있어. 적어도 금지 약물에 대한 생동성 실험만이라도…….’
세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이성을 잃지 말자. 급할수록 규칙은 중요해.’
평온을 되찾은 그녀가 클레인을 다독였다.
“마음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는 제13차 성전 협약에 의해…….”
“부탁드립니다!”
클레인이 눈물을 쏟아 내며 엎드렸다.
“분해서, 분해서 미칠 것 같아요. 이 지랄맞은 병에게 복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제발 저를 써 주십시오!”
세리엘은 시로네의 눈치를 살폈다.
‘인체 실험.’
이미 음지에서는 자행되고 있을 테지만, 세계기구의 이름값은 차원이 달랐다.
“쓰지 않겠다면 차라리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겠습니다. 더 이상 끔찍한 고통 속에서 살고 싶지 않아요.”
시로네는 테노스에게 물었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실패할 수도 있어. 하지만 데이터 수집에서는 질과 양에서 차원이 달라지지. 어쨌거나 여기는 세계 최고의 생물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사망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장담 못 해. 사망할 수도 있어.”
“설령 그렇더라도,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험을 진행하면 안 돼요.”
테노스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무슨 생각이야?”
시로네는 땅을 짚고 있는 클레인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었다.
“힘들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각오가 되어 있나요?”
“각오 말입니까? 지금 저더러 아무거나 시켜 보십시오. 그게 뭐든 해 버릴 테니까.”
시로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뜻을 따르겠습니다. 인류는 당신에게 큰 빚을 지게 될 거예요.”
세리엘이 소리쳤다.
“시로네, 지금 무슨……!”
그때 시로네가 두 손을 들더니 미라클 스트림의 연기를 풍부하게 끌어 올렸다.
하늘에서 뭉친 빛의 구체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자 클레인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마법이라고는 본 적이 없는 그였다.
“이, 이게 무슨…….”
“당신의 죄를 사하겠습니다.”
아가페의 빛이 클레인의 몸을 타고 내리면서 감정병의 잠복기가 연장되었다.
“앞으로 감정병으로 아플 일은 없을 거예요. 당신의 각오에 대한 제 마음입니다. 그래도 실험에 응하실 건가요? 거절해도 제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클레인의 눈에 불이 타올랐다.
“아내를 잃었고, 자식을 죽였습니다. 속죄하고 싶습니다. 절대로 변하지 않아요.”
세리엘의 눈빛이 따스해졌으나 테노스는 여전히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환자에게 그 능력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나?”
“기준은 똑같아요. 다만 이제 클레인 씨는 이곳에 입원해 있는 환자가 아닙니다.”
몸을 일으킨 시로네가 말을 이었다.
“저나 세리엘, 테노스 씨와 마찬가지로 인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이죠.”
“…….”
테노스는 안경을 올렸다.
‘세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 이것이 야훼의 기준인가.’
오랜만에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부탁해, 세리엘. 꼭 치료제를 만들어 줘. 적어도 고통을 줄여 줄 수 있는 방법이라도.”
세리엘은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낸다. 반드시 해낼 거야. 내가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자격은 오직 그것뿐이니까.’
그날, 세계보건기구에는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팀이 만들어졌다.
신들의 무덤(4)
***
이미르의 정신.
심층 5단계에 도착한 시로네 일행은 무려 7일 동안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미치겠군.”
아리우스는 초조해졌다.
기존의 예상대로 심층 5단계는 상당히 이성적인 환경이었으나, 변별력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안녕하세요, 시로네 씨.”
목각 인형에 하얀 계란 하나를 올려놓은 듯한 주민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조금 전의 주민과 똑같이 생긴 자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시로네 씨.”
시로네는 대꾸 없이 지나갈 뿐이었다.
‘누군지 모르겠어.’
주민들은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없었고, 주위에 보이는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단순한 원, 삼각형, 사각형 같은 구조물들이 아무렇게나 배치된 세계였다.
“기분 나쁘네.”
미로가 참지 못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그들이 보는 주민과 풍경이야말로 이미르가 세상을 보는 눈일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모든 주민이 똑같다는 게 말이 돼? 적어도 인상에 남는 자는 있었을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