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54
반면에 그들은 시로네 일행을 볼 수 없었다.
“빨리 말이나 해! 마을 사람들을 동굴에 가둬 두고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으아아! 악귀, 악귀다!”
보이지 않는 것과 다르게 도망치는 것에 있어서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지형을 외운 모양이네. 쫓을까?”
네이드가 전격 마법을 일으키며 물었으나 시로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것부터 살피자.”
시체는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고, 살점들이 거의 떨어져 나간 상태였다.
“토할 것 같아.”
네이드와 달리 이루키는 담담했다.
“적어도 식량이 없지는 않았군. 이런 방식이라면 3주 이상은 버틸 수 있지. 문제는 이유야.”
“…….”
동굴의 깊은 곳을 동시에 응시하는 세 사람의 눈에 싸늘한 분노가 담겼다.
무한이란(3)
“어떡하지?”
이루키의 말에는 그들이 상상하는 것이 맞았을 경우가 전제되어 있었다.
“우선 전후 사정을 파악해야지.”
하나의 사건을 두고 섣불리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은 마법사의 성향이었다.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일이야. 만약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곳에 갇혔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상태였다면…….”
네이드가 물었다.
“죄가 아니다?”
“글쎄, 거기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겠지만……. 나는 그저 굶주린 생물이 무언가를 먹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이루키가 말했다.
“차가운 세계라는 거군.”
“응. 내가 그들에게서 알고 싶은 건 하나야. 이 행위의 기준이 율법인지, 마음인지.”
시로네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서늘한 기운에 친구들은 입을 다물었다.
“가자. 아직도 이곳에 있다는 것은 출구가 없다는 얘기일 테니까.”
“출구가 있는데도 이런 짓을 하는 거면?”
시로네는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들어 보자고.”
끝없이 뇌리에 차오르는 망상을 거부한 채, 시로네는 깊은 어둠으로 발을 옮겼다.
길이 점차 좁아지는가 싶더니 끝에 도착하자 커다란 공간이 생겼다.
누군가가 들고 있는 횃불에 눈이 아파 오자 시로네는 적외선 시야를 해제했다.
“당신이 촌장인가요?”
판단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지만 말투는 거칠었다.
너무 과하게 또렷한 노인의 눈빛과 그에게서 풍기는 피 냄새 때문이리라.
“내가 카시람의 촌장이오. 어디서 왔소?”
네이드가 말했다.
“어디서 오긴, 밖에서 왔지. 마을에서 일어난 참상에 대해 해명하지 않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촌장이 납작 엎드렸다.
“저희를 구해 주십시오!”
시로네 일행이 당황한 듯 쳐다보고 있자 그가 고개를 번쩍 쳐들고 울먹였다.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입구가 무너졌어요. 그 여자가 저지른 짓입니다. 우리들 모두 속고 있었던 겁니다. 아아, 라비카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편지에 의하면 마을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인 사람은 라비카인 듯싶었다.
“지금 어디 있죠? 살아 있나요?”
촌장이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활로가 없어지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렸죠. 우리는 최선을 다해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허사였어요. 하나둘씩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루키가 물었다.
“생존자는?”
“저와 이 친구들까지 해서 총 7명입니다. 처음 들어올 때는 100명이 넘었지요.”
시로네의 표정이 찜찜하게 변했다.
“100명 중에 7명이라고요? 얼마나 오래 있었기에 그 많은 숫자가 희생당했죠?”
“모르겠습니다. 오늘이 며칠인가요? 여기는 온통 어둠뿐이에요. 출구를 찾기 위해 탐사대를 꾸렸으나 결국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촌장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부디 우리를……. 우리에게 출구가 어디인지 알려 주십시오!”
“우선 생존자들에게 가죠.”
시로네가 앞으로 걸어오자 촌장은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응?”
예상보다 훨씬 어렸고, 심지어 누구 하나 무기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떻게 불도 없이 여기까지…… 아니, 정말로 출구가 있기는 한 겁니까?”
네이드가 쏘아붙였다.
“있으니까 들어왔지. 빨리 안내나 해요.”
흠칫 놀란 촌장이 뒤편의 남자들을 돌아보더니 샛길 쪽으로 몸을 옮겼다.
이어서 남자들이 돌아섰고, 시로네는 그중의 1명이 가지고 있는 피 묻은 몽둥이를 놓치지 않았다.
샛길을 따라 들어가자 사람들의 옷가지를 겹쳐서 바닥에 깔아 놓은 작은 방이 나왔다.
촌장이 이방인을 데리고 들어오자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3명이 벌떡 일어섰다.
40대 중반의 여자와 자식으로 보이는 어린 남매였다.
‘여자와 어린아이.’
만약 생존자가 힘이 센 남자들뿐이었다면 의심의 추는 더욱 기울어졌을 터였다.
“촌장님, 이 사람들은?”
“인사해라. 우리를 구하러 바깥에서 와 주신 분들이다. 이제 살 수 있어.”
여자의 눈이 잠시 흔들렸으나 이내 감동에 겨운 듯 얼굴을 가렸다.
“정말…… 정말 나갈 수 있게 된 건가요? 세상에, 신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셨던 거예요.”
“그건 얘기를 들어 봐야죠.”
이루키가 말했다.
“마을에서 편지를 발견했어요. 당신들, 라비카의 아이를 죽인 겁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촌장이 두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그러려고 했습니다. 그 사악한 여자의 꼬임에 속아서요. 사실, 마을은 궤멸 직전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동식물이 말라 가고, 산에서 길어 온 물도 마시기만 하면 설사와 구토를 했죠. 그때 그 여자가 마을에 왔어요. 신에게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였죠. 마을에서 어린아이는 라비카의 자식밖에 없었어요.”
가능한 짧은 시간 내에 상황을 설명한 그가 눈빛을 바꾸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습니다. 동굴 입구가 무너지고, 결국 속았다는 걸 깨달았죠. 아마도 오지 않은 마을 사람들은 다 죽었을 거예요. 그 여자는 마녀예요. 아이도 분명 데리고 갔을 겁니다.”
“알겠어요.”
들은 내용을 머리에 기억하며 시로네가 물었다.
“그럼 여기에서 벌어진 일을 말해 보죠. 이곳에서 3주가 넘도록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어떤 식으로든 희생자가 있었기 때문 아닌가요?”
“저기, 그건……!”
시로네가 촌장의 말을 끊었다.
“비난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들 또한 같은 주민이었을 텐데, 어떻게 희생하게 된 거죠?”
촌장은 여자를 돌아보더니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는 버티려고 했습니다. 사람이 이래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점차 지쳐 갔고, 1명이 죽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굳이 이름을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합의가 된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굶주리고 배가 고파서…….”
네이드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다음은?”
“한 번이 어려운 거죠. 왜 희생자가 많았냐고요? 당시만 해도 입이 90개가 넘었습니다. 시체 1명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어요. 남은 거라도 얻으려고 싸우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아비규환이었고, 결국 제비뽑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여기까지 버틴 겁니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시로네가 되물었다.
“제비뽑기라고요?”
“네, 그렇게 살아남았습니다.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자면 저도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 아이들이 증명해 줄 겁니다.”
소녀가 말했다.
“정말이에요. 오빠, 제발 살려 주세요. 너무 힘들어서 버틸 수가 없어요.”
자신의 생명을 확률에 맡긴다는 것은 곧 율법에 맡긴다는 뜻과 같다.
‘차가운 세계에서 죄는 없다.’
신은 무심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조작도 가해지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시로네가 다시 물었다.
“희생자들의 사체는 어디 있죠? 유골까지 없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아, 그건…….”
촌장이 눈에 띄게 당황하자 기회를 엿보고 있던 네이드가 윽박질렀다.
“빨리 얘기해! 어디다 숨겼어?”
그 순간 몽둥이를 든 남자가 흉악한 눈을 치켜뜨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든든하게 먹은 데다 원체 강골인지라, 갓 스물을 넘긴 애들의 협박이 같잖을 뿐이었다.
“그만두게. 우리를 구하러 온 청년들이 아닌가.”
촌장이 남자를 말린 이유는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들어왔지?’
적외선 시야라는 개념조차 모르는 그가 시로네 일행의 정체를 알 턱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유골은 먼 곳에 치워 두었습니다. 곁에 두기에는 너무 무서운지라…….”
남자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제발 보내 주세요. 빨리 나가고 싶어요. 네?”
“거의 완벽했다.”
시로네가 한 걸음을 내딛자, 울음소리가 뚝 그치고 촌장과 남자들이 물러섰다.
‘뭐야?’
시로네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무형의 검이 심장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그 여자를 처음 봤을 때처럼.
“무, 무슨 말이십니까? 완벽하다니. 저희들이 거짓말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유골을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봤어.”
시로네의 스피릿 존이 동굴을 넘어 산 전체를 공감각으로 훑은 상태였다.
“뭔가 이유가 있기를 기도했다. 저 밑에 있는 생존자들을 감춘 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촌장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어떻게 알았지?’
시로네가 움직일 때마다 물러서던 마을 사람들이 결국 벽에 바짝 달라붙었다.
“내가 의아한 건 딱 하나야. 그토록 참혹한 짓을 저지른 네가 이 여자와 아이들을 남겨 두었다는 것.”
“그, 그건 측은한 마음이…….”
시로네의 시선이 매섭게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너희들 누구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몽둥이를 들고 있는 남자가 시로네에게 달려들었다.
“죽어어어어!”
그와 동시에 네이드가 남자의 품으로 들어가 옆구리에 전격을 처박았다.
“으아아아아!”
몸 전체가 진동한 남자가 눈을 뒤집으며 쓰러지고, 촌장이 도망치며 소리쳤다.
“막아!”
“키이이이!”
본색을 드러낸 눈은 제정신이 아니었으나 어차피 상대가 되지 않았다.
포톤 캐논에 2명이 나가떨어지고, 여자가 아이들을 앞세우고 소리쳤다.
“죽여! 나쁜 사람들이야!”
아이들이 저마다 칼을 쥐고 돌진했으나 시로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판단이 끝난 것이다.
“……포톤 캐논.”
섬광에 직격을 당한 아이들이 여자의 좌우로 날아가자, 그녀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당신들, 도대체 뭐야?”
네이드가 팔에 전기를 휘감으며 다가갔다.
“너야말로 정체를 밝혀. 순순히 부는 게 좋을걸. 나 엄청 무서운 사람이거든.”
시선을 피하던 그녀가 갑자기 혀를 내밀더니 이빨로 질끈 깨물었다.
시로네 일행은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
착각을 깨달은 여자가 단도를 꺼내며 피가 철철 흐르는 입으로 소리쳤다.
“날 그냥 내버려 둬!”
일격에 자신의 심장을 관통한 그녀가 숨이 막힌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죽었어.”
여자를 살핀 이루키가 고개를 돌렸다.
“촌장을 쫓아가자. 생존자부터 구해야 돼.”
샤이닝 마법을 시전한 시로네는 대낮처럼 밝은 동굴 속을 빠르게 달렸다.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구덩이를 타고 내려가자 생존자들이 갇힌 철창이 보였다.
대략 20명의 사람이 갇혀 있었고, 그중에 젊은 여성이 철창을 붙잡고 물었다.
“누구시죠?”
정상적인 눈을 보고 시로네는 확신했다.
“라비카.”
잠시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짓던 그녀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촌장을 잡아요! 그 여자가 오기 전에 죽여야 해요! 저자는 악마라고요!”
네이드와 이루키가 후방을 지키는 가운데 시로네가 옆으로 난 길을 걸어갔다.
“흐흐. 흐흐흐.”
모퉁이를 돌기 전부터 들리는 심상치 않은 웃음소리, 그리고 역겨운 냄새.
네이드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개자식.”
20구가 넘는 시체에 파묻힌 촌장이 황홀한 표정으로 두 팔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