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55
기다란 것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잘 왔네, 신의 성지에.”
무한이란(4)
시체들이 엉켜 있는 광경은 살아생전의 존엄까지 무너진 듯한 느낌이었다.
“신이란 무엇인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촌장이 말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인간을 초월하는 것은, 초월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체의 손목을 들어 올린 그가 사랑스러운 눈으로 육체를 훑으며 말했다.
“이상한 능력을 쓰더군. 하긴, 어떤 의미로는 그것도 강함이라 할 수 있겠지.”
촌장이 손을 놓자 시체의 팔이 떨어졌다.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했나? 더 안전해지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하지만 그건 신이 아니야.”
네이드가 쏘아붙였다.
“그게 이런 짓을 저지른 것과 무슨 상관이야? 너는 그저 흉악한 살인마야.”
“살인마? 그런 저급한 개념으로 나를 정의해서는 안 되지. 적어도 이곳에서는 말이야.”
촌장은 시체의 눈꺼풀을 들어 생명이 꺼진 동공을 황홀하게 들여다보았다.
“내가 신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마.”
그러다가 고개를 홱 하고 틀더니 시체들을 손으로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네이드가 역한 표정을 지었다.
“큭!”
“이것들은 말이야, 저항하지 못해.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느낌이 뭔지 알겠나? 평생 그런 걸 느껴 본 적은 있나? 하지만 나는 느끼고 있지. 설령 이런 짓을 해도, 아니면 이런 짓을 하더라도…….”
네이드의 몸에서 전기가 피어올랐으나 시로네가 팔을 들어 가로막았다.
“누구도 나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지. 완벽한 강함이다. 그렇기에 시체는, 육체는, 이 향긋한 피는…….”
손으로 무언가를 끌어 올린 촌장이 그것을 앙 하고 깨물더니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신이 주신 금은보화인 것이다.”
“알겠어.”
시로네도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다.
“내가 듣고 싶은 건 하나야. 배후가 누구지? 그 여자라고 불리는 사람 말이야. 지금 어디에 있어?”
“푸하하하!”
촌장이 폭소를 터트리자 피가 튀었다.
“배후?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신이다! 너희들의 시체도 이곳에서 내 손에 농락당하게 될 것이야!”
“그렇다고 치고…….”
네이드가 소매를 걷으며 다가갔다.
“일단 좀 맞자.”
푸른 전기에 휘감긴 육체가 공기가 타는 소리를 내며 촌장에게 쇄도했다.
손가락 5개가 얼굴을 낚아채려는 순간.
“멈춰.”
뒤에서 들린 여자의 목소리에 네이드는 저항하지 못하고 힘없이 착지했다.
시로네가 뒤를 돌아보자 조금 전까지 감옥에 갇혀 있던 여자가 서 있었다.
“라비카?”
네이드의 말에 시로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달라.”
딱히 짚으라면 찾을 수 없겠지만, 사람이 풍기는 기질 자체가 변해 있었다.
‘변한 것은 마음.’
감정의 영역이라면, 이 모든 일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모습을 드러내라, 편견의 5시.”
시로네에게 들은 바가 있는 이루키와 네이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편견의 5시라면, 시옥?”
라비카는 그저 미소를 짓고 있었고, 촌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일어섰다.
“키키키!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신이라고!”
이루키는 ‘그 여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면 세계의 존재는 현실에서 감정이다.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니야.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든 악이다.’
네이드가 바짝 긴장하며 물었다.
“시옥이라고? 사탄을 지키는 게 아니었어?”
“시공간의 개념은 무의미해. 0.666초는 율법이 처리하지 않는 시간이니까. 스톱 마법을 시전하면 아마도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아마도 라비카는 자결할 것이다.
편견의 5시에 세뇌당한 두 남매의 어머니가 스스로 심장을 찔렀듯이.
“깔깔깔! 바로 그거야! 이 여자, 제법 마음의 기술이 뛰어나더군. 하지만 나를 이길 수는 없지.”
“일부러 내버려 두었다는 건가?”
“몰랐어? 악이 이기는 이유는 선이 나약하기 때문이야. 없애지 못해서 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에 남겨 두는 거라고. 전부 악이 되어 버리면, 대체 우리가 어디에서 쾌락을 얻겠어?”
그것이 악의 본질.
따라서 악을 이기려면 악만큼이나 인간의 기준에서 동떨어진 철인이 필요하다.
라비카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 진리는 지금 상황에서도 유효하지. 자, 봐. 유일하게 이 마을을 구하려고 한 선인이 눈앞에 있어. 네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감춘다고 감춰질 것도 아니기에 이루키가 순순히 자백했다.
“죽일 수 없겠지. 하지만 그건 나약한 게 아니야.”
“알 게 뭐야, 네 생각 따위? 중요한 건 사탄께서 또 이기셨다는 거야. 가련한 야훼여, 너는 절대로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어. 마족 따위 얼마가 죽든, 인간이 악에 유혹당하는 한, 전쟁은 우리의 승리다.”
네이드가 걸음을 옮겼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야훼는 시로네야. 그리고 나는 지극히 감정적인 평범한 인간이지.”
그의 몸에서 푸른 전기가 뿜어지자 동굴 내벽이 눈이 아플 정도로 번쩍였다.
“내가 죽인다, 시로네. 너를 위한 게 아니라 내 선택이야. 말리지 마라.”
시체에게 몸을 비벼 대며 촌장이 소리쳤다.
“으히히히! 어리석은 것들! 아직도 모르겠느냐! 육체의 기쁨이야말로 신의……!”
이루키의 아토믹 봄이 폭발했다.
굉음을 내며 튕겨 나간 촌장의 몸은 시체들과 뒤섞여 구별이 가지 않게 되었다.
이성을 잃은 네이드가 튀어 나가려는 그때 라비카가 검지를 겨누었다.
“시로네는 너의 원수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이드의 마음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크윽!”
편견의 5시.
어떤 것을 정의하면,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시로네는 너의 가족을 죽인 원수야. 야훼의 탈을 쓴 자에게 현혹되지 마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계속 의심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시로네를 죽여. 복수해라.”
“닥쳐! 이유가 있었을 거야! 시로네가 내 가족을 죽인 건…… 무슨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편견의 5시는 새삼 놀랐다.
‘이걸 버텨? 실제로 시로네가 가족을 죽였다고 해도 참을 수 있다는 뜻인데…….’
이루키 또한 시로네를 언짢게 보고 있으나 행동에 나설 생각은 없어 보였다.
“킥킥, 눈물 나는 우정이네.”
라비카가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죽여! 시로네는 너의 가족을 잔혹하게 학살했어! 그것도 웃으면서 죽였다고!”
“으아아아!”
뇌전이 폭발할 듯 엉키자 시로네가 말했다.
“네이드, 버틸 필요 없어. 내가 막을게. 너의 진심이 아니야. 저 여자의 능력이지.”
“……싫어.”
네이드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악마의 능력이라고 해도, 네가 가족을 죽였다고 해도, 그것도 웃으면서 죽여…….”
말을 내뱉을 때마다 분노가 증폭되고 있었다.
“그래도…….”
무시무시한 네이드의 얼굴 반쪽이 서서히 풀어지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니지, 시로네? 거짓말이지?”
‘편견의 5시.’
시로네의 눈이 살의에 부릅떠졌다.
‘죽여 버리고 싶다.’
여전히 버티고 있는 이유는, 네이드가 만들어 줄 한 번의 기회 때문이었다.
편견의 5시도 비로소 심각성을 깨달았다.
‘히든 코드가 안 들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마음의 기술이 아무리 탁월해도…….’
가장 억제하기 힘든 감정인 분노를 여기까지 다룰 수 있다는 건 경이로운 일이었다.
“어? 어? 어?”
그 순간 네이드가 몸을 움찔움찔 떨더니 점차 눈동자가 위로 말려들기 시작했다.
‘온다, 온다!’
모든 생각이 창백하게 사라지고, 분노의 뇌전이 동굴 천장을 박살 내며 솟구쳤다.
“크아아아아!”
분노의 화신.
전기로 이루어진 뇌신전생이 포효하며 공간에 있는 모든 자들을 손톱으로 할퀴었다.
“흑!”
라비카의 눈동자에 한순간 청명한 기운이 반짝이는 것을 시로네는 놓치지 않았다.
‘지금이다!’
스톱.
시간이 멈추자, 라비카에게서 빠져나가는 검은 로브를 걸친 여자가 보였다.
“이야아아아!”
여태까지의 분노를 담아 핸드 오브 갓이 편견의 5시를 붙잡고 올라갔다.
깊은 동굴에 구멍이 뻥 뚫리면서 하늘이 보였고, 히든 코드가 해제되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네이드가 바깥으로 나가자 정신을 차린 이루키가 소리쳤다.
“시로네! 여긴 내가 맡을게!”
“부탁해!”
동굴 밖으로 날아오른 시로네는 깊은 그림자로 내려가는 편견의 5시를 발견했다.
“죽인다.”
핸드 오브 갓이 대지를 내려찍자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산이 흔들렸다.
이어서 네이드의 뇌신전생이 땅을 치받으며 주위를 순식간에 전기로 지졌다.
수천 개의 번개가 역류하는 광경은 장관이었고, 식물들이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하아! 하아!”
이성을 되찾은 뒤에도 네이드는 편견의 5시에 대한 분노에 몸을 떨었다.
“빌어먹을! 개 같은……!”
시로네가 옆으로 달려왔다.
“네이드, 괜찮아?”
“그래, 미안해.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아니야. 덕분에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어. 라비카 씨도 무사할 테고.”
네이드는 전방을 살폈다.
“죽었나? 아니, 죽일 수는 있는 거야?”
“현실의 0.666초에서 시옥은 생육신의 상태야. 제대로 맞았다면 살 확률은 희박해.”
이루키가 생존자를 데리고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
“보다시피.”
백 마디 말보다 일대가 초토화되어 있는 광경을 보여 주는 게 효과적이었다.
라비카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아아, 요르 신이시여. 악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저를 벌하여 주소서.”
시로네가 그녀의 어깨를 짚었다.
“자책하지 마세요. 그 여자는 요라조차 버거워하는 최강의 악입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했어요.”
“남편, 남편하고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됐나요?”
시로네는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당신의 기도가 통했어요. 남편분은 아이를 데리고 마을을 빠져나가려고 했습니다.”
‘내가 왕이다’라는 글귀가 마음에 남았지만, 굳이 밝힐 필요는 없을 터였다.
이루키가 마을 입구 쪽을 가리켰다.
“시로네, 저기 봐.”
기다란 횃불의 행렬이 들어오더니 철컥철컥 철갑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앗빛의 갑옷으로 무장한 대략 80명의 병사들이 시로네 일행에게 다가왔다.
“정지!”
말에 타고 있는 대장이 병력을 세우더니 턱까지 내려오는 투구를 벗었다.
금발 머리에 콧대가 높은 여성이었다.
“너희들은 뭐야?”
말투부터 곱지 않았고, 횃불이 이글거리는 장검이 시로네의 미간을 겨누었다.
“악의 기운으로 가득 찬 곳에 아직 사람이 있다니. 신속히 정체를 밝혀라. 그러지 않으면…….”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네이드가 손가락으로 칼날을 튕기며 다가갔다.
“그러는 당신은 뭔데 다짜고짜 칼질이야?”
병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물러서지 못하겠느냐! 감히 라미교의 성기사, 팰러딘에게 위협을 가하다니!”
시로네의 눈이 커졌다.
“응? 라미교?”
세계 최대 종교이자 유일하게 교황이 있는 교단이었다.
“그렇다! 세계의 악을 토벌하고자 교황께서 친히 보내신 신의 원정대다! 어서 무릎을 꿇어라!”
여자가 손을 들었다.
“아니, 됐다. 조금 전에 일어난 지진과 번개. 분명 이 산에 머무는 악이 만든 것이겠지. 놈은 어디로 갔지?”
네이드가 산 아래를 가리켰다.
“그거라면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