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58
시로네가 미라클 스트림을 시전했으나 히든 코드에 막혀 비틀렸다.
“이루키! 위험해!”
고개를 번쩍 치켜든 이루키가 피로 범벅이 된 눈을 드러내며 일어섰다.
‘됐다.’
혼돈에 논리적인 패턴은 없다.
하지만 특정 순간을 마치 사진으로 찍듯 고정시키면, 그 형태는 분명 수학적이다.
‘일회성 패스워드.’
그리고 수학적이라면, 이루키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캔슬레이션.”
정보가 모조리 역전되면서, 나태의 4시가 가진 히든 코드가 파괴되었다.
“으아아아!”
방심하고 있던 편견의 5시, 정확히는 라비카의 왼팔이 세이나의 검에 잘렸다.
‘뭐야! 왜 잘려!’
나태의 4시의 환청이 들렸다.
-히든 코드가 해킹당했어. 단발적이지만,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해커가 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네이드의 뇌신전생이 밀려드는 게 보였다.
“제길!”
라비카의 얼굴뼈가 다시 뒤틀리자, 시로네가 월척을 잡은 기분으로 스톱을 시전했다.
율법의 시간이 사라지고, 0.666초의 시간 속에 2명의 시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저, 저 씨…….”
머리끝까지 화가 난 시로네와 이루키, 네이드가 동시에 날아들었다.
“죽어어어어!”
뇌신전생이 벼락으로 변해 쇄도하고, 최강의 기폭 방정식으로 만든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천지가 개벽하는 굉음에 정신을 차린 세이나와 성기사들이 하늘을 살폈다.
“제길! 놓쳤어!”
편견의 5시가 나태의 4시를 허리에 감고 먼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네이드가 말했다.
“아니, 아직 한 발 남았어.”
성기사들이 뒤편에서 들리는 공기의 파열음에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거대한 빛의 주먹이 지평선에서 넘어오고 있었다.
“이야아아!”
시로네가 상체를 숙이며 팔을 휘두르자, 핸드 오브 갓이 섬광의 속도로 쇄도했다.
그 순간 편견의 5시가 나태의 4시를 섬광으로 집어 던지며 자리를 피했다.
“너…….”
노인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너어어어! 감히 나를…… 커억!”
핸드 오브 갓에 강타당한 노인의 얼굴에서 눈이 튀어나오더니 폭죽처럼 터졌다.
“흥, 쓸모없으면 죽어야지.”
종이 쪼가리처럼 떨어지는 나태의 4시를 비웃으며 편견의 5시가 공기 중에 스며들었다.
“하아, 하아.”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던 시로네가 화가 덜 풀린 듯 발을 굴렀다.
“1명 놓쳤어.”
이루키가 다가왔다.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손맛은 봤잖아.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야.”
피로 얼룩진 얼굴을 보고 시로네는 마음을 다잡았다.
“미안해.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어.”
“무슨 소리야?”
이루키가 피를 닦으며 웃었다.
“이제야 좀 살아 있는 기분이 드는데. 역시 너를 따라오기를 잘했어.”
그때 성기사 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놔! 죽을 거야! 이거 놓으라고!”
이루키를 공격하려 했던, 악에 굴복했던 남자가 동료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진정해! 누구라도 그럴 수 있는 거야!”
“아니야! 난, 난……. 으아아!”
시로네 일행은 말문이 막힌 남자가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 강했어. 아마 평생을 단련했을 거야.”
“하지만 마음은 거기에 미치지 못했나 보군. 물론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사소한 욕망, 악이 들어갈 빈틈조차 없는 인간이 세상에 얼마나 있겠는가.
‘있다면 극선이겠지.’
시로네는 미로가 무력이 아닌 정신의 깊이를 강조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투쟁의 시대(2)
세이나는 낯이 뜨거워졌다.
신탁관리부의 팰러딘은 라미교에서도 가장 고결한 사명을 가슴에 품고 있다.
그런 자가 한낱 인간의 감정에 치우쳐 악에 굴복했으니, 시로네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책망할 자격은 나에게 없다.’
시로네의 세례가 아니었다면 그녀 또한 스스로 목을 찔러 생명을 끊었을 것이다.
“떠날 채비를 해라.”
성기사에게 지시를 내린 세이나가 분한 표정을 지으며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빚을 졌구나. 하지만 이것이 라미교의 전부는 아니다. 교황청의 최고위 팰러딘은…….”
“그런 건 상관없어요.”
시로네가 말했다.
“시옥이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어요. 라미교에서도 좌시할 수 없는 문제일 텐데요.”
가장 인간적인 악이었다.
“우린 교황청으로 갈 것이다. 사건의 전말을 보고하고 새로운 신탁을 받아야겠지.”
세이나는 온몸의 뼈가 뒤틀려 죽은 라비카를 살폈다.
‘안타깝구나. 살아 있으면 증언을 해 줄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생존자라도 데려가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시선을 돌렸으나, 누구 하나 성기사 쪽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리석은 것들.’
단지 눈앞의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그들에게 화가 났으나, 오늘은 그녀의 패배였다.
“마을 사람들은 두고 가마.”
세이나는 말에 올라탔다.
“그렇다고 너를 인정하는 건 아니다. 조만간 이단관리부의 심판관이 너를 찾을 것이야. 자중하도록 해라.”
라미교 내에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부서.
‘그리고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하지.’
신탁관리부가 믿음으로 움직인다면, 이단관리부는 증오로 움직이는 자들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부서의 존재를 언급했다는 것만으로도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가자.”
세이나가 성기사를 데리고 마을을 떠날 때까지 시로네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악과 싸우지만, 신념은 다르다.’
시로네의 박애가 세상을 향해 퍼져 나갈수록 충돌하는 횟수는 많아질 터였다.
네이드가 물었다.
“시로네, 생존자들은 어떻게 하지? 전부 데리고 여행을 떠날 수는 없잖아.”
시로네는 이루키의 상태를 살폈다.
더 이상 피는 흘리지 않았지만 오버 드라이브를 사용한 후폭풍은 가시지 않았을 터였다.
“오늘은 산 밑에서 야영을 하자. 람파 씨에게 말해 뒀으니 저들이 지낼 만한 도시를 찾아 줄 거야.”
얼굴의 피를 닦아 내며 이루키가 생각했다.
‘아놀드 람파. 상아탑 최고의 정보 마법사라면 잘 찾아낼 수 있겠지. 그보다는…….’
시로네의 기적을 경험한 생존자들이 도시에서 말을 퍼트린다는 게 중요했다.
‘이런 식으로 씨앗을 심으면 언젠가는 열매를 맺게 될 거야. 어쩌면…….’
라미교와 정면충돌하는 시점이 예상보다 훨씬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토르미아의 남부 도시 가스파.
수도 바슈카를 기점으로 마족들은 방사형으로 퍼지며 끝없이 남하했다.
왕성의 빠른 대처로 궤멸은 막았지만, 오히려 감정병의 여파가 더욱 무서웠다.
거리에는 집을 버린 부랑자들이 넘쳐 났고, 치안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날마다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심각하군.”
소중한 것을 하나씩 파괴한 사람들의 눈에는 독기를 넘어 살의마저 엿보였다.
시로네가 말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수집한 케이스를 토대로 감정병에 대응하는 행동 지침을 세웠어. 크게 17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고, 생명에 직결되는 항목을 나중에 배치하는 것으로 감정병의 역치를 통제하는 거야.”
“크로스 가문도 받았지. 나는 보지 않았지만. 행동 지침대로 정확히 따랐을 때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최대 두 달. 그 안에 치료법을 찾아내겠다는 게 목표지만, 아직 성과는 없어.”
시로네의 시선이 부랑자에게 향했다.
“거주지 포기에 대한 항목은 카테고리 8에 해당하는 거야. 이건 최소 4주 이후의 행동 지침이지만, 이미 집을 버린 자들이 속출하고 있어.”
“하긴, 만인을 만족시키는 규칙은 없지.”
오랫동안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던 케이든도 실제로 세상을 보자 감회가 새로웠다.
‘모두가 하나의 고통을 안고 있다. 어쩌면 저들에 비해 내 고민은 하찮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시로네가 물었다.
“케이든, 그런데 너는 어떻게 해결한 거야, 감정병?”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어. 아버지는 소중한 것을 하나씩 포기하며 버텼지. 가보, 재산, 먼 친척들……. 크로스 가문은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 몰락했어.”
케이든이 고개를 돌렸다.
“다만 나는 좀 경우가 다른 것 같군. 적십자성의 운명은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재능을 100퍼센트 끌어낸다. 내가 마야를 포기하지 않는 한 감정병은 문제가 되지 않아.”
에이미가 황당하게 물었다.
“신경이 예민해지지 않는다고?”
“그래.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몰라. 어쨌든 감정병도 병의 일종이라면, 나는 병에 걸려 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시로네가 물었다.
“거의라는 말은…… 있기는 있다는 거네?”
“아주 어릴 적에. 할머니에게 흑사병 얘기를 듣고 무서웠지. 병에 걸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바로 다음 날 감기에 걸려 버리더군.”
정말로 원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후로 1년 정도 계속 아팠다. 병이 낫고 싶었거든.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하셨지만 허사였어.”
케이든이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적십자성의 운명에 대해서는 태어날 때부터 들으며 자랐지. 만약 병에 걸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면, 아마도 아픈 게 나았겠지만…….”
시로네는 이해했다.
“마음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 어릴 때에는 더더욱. 어쨌든 심각하지는 않았어. 열심히 검술을 익혔고 몸도 건강해졌지. 그러면서 점차 마음도 강해지기 시작한 거야.”
시로네는 적십자성의 운명이 얼마나 잔혹한 율법인지 새삼 깨달았다.
‘그런 기괴한 일을 평생 경험했다면,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에이미가 물었다.
“지금은 어때? 마야를 사랑하기 때문에 감정병을 이겨 낼 수 있는 거잖아. 그건 다행이 아닐까?”
“이렇게 말해 두지.”
케이든의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이 저주받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감정병이든 뭐든 상관없어. 단 한순간이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면, 죽어도 괜찮아.”
케이든의 삶을 누구도 정의할 수 없을 터였다.
“간절히 자고 싶으면 잠이 오지 않고, 간절히 먹고 싶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 집착하지 않는 훈련을 받아야 했지. 무슨 뜻인지 알아?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원하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는 얘기다.”
시로네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구나. 이모션 스케일.’
케이든의 감정 척도는 무엇이 우선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뒤틀려 있었다.
‘어쩌면 면역 체계의 문제만은 아닐지도.’
케이든이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마야가 있지? 대형 가수잖아? 발키리와 계약을 했다고 들었는데.”
“감정병.”
시로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누구나 그렇지만 자신이 소중하게 여겼던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되지. 하지만 정말로 소중한 것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거야.”
에이미가 물었다.
“마야에게는 그것이 노래라는 거네?”
“응. 듣기로 공연 기획사와 계약을 해지한 모양이야. 대표는 잡고 싶었지만, 그것 또한 감정의 척도가 되어 돌아올 테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야.”
“그렇다고 해도…….”
큰길을 벗어나 음침한 골목으로 들어가자 케이든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필이면 왜 이런 곳이야?”
“나도 정보만 들었지 마야를 직접 만난 적은 없어. 이 정도가 아니면 노래를 부르지 못할 정도로 감정을 디테일하게 쪼갰는지도 몰라.”
마침내 도착한 곳은 붉은 간판에 여자의 속옷이 그려져 있는 주점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좁은 곳에서 싸구려 음색의 악기에 맞춰 노랫소리가 들렸다.
“마야…….”
케이든은 듣는 순간 그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손님인가?”
입구 옆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시로네가 대답하지 않고 있자 그가 담배를 던지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테이블값은 5골드야. 술은 따로 계산하고. 무대로 올라가거나 물건을 던지면 안 돼.”
당연한 얘기를 특별히 말한다는 사실이 에이미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럼 다른 짓은 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5골드라니, 그게 얼만지는 알아요?”
남자가 귀찮은 표정으로 귀를 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