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59
“다 알고 온 거 아냐? 여기 마야가 있다고. 토르미아에서 제일 끝내주는 가수.”
시로네가 금화를 건넸다.
“여기 있어요.”
액수를 확인한 남자가 다시 입구 옆에 쪼그려 앉아 새로운 담배를 물었다.
“들어가 봐. 미리 경고하는데, 여자는 거기 있어 봤자 별로 재미없을 거야.”
돈을 받아 놓고 미리 경고라니.
“케이든, 들어가.”
어차피 시로네는 이곳에 남을 생각이었다.
“나 혼자?”
“응. 아무래도 내가 들어가는 건 마야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
간판을 올려다보던 케이든이 크게 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칸씩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드럼 소리가 커졌고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지하 입구를 돌자마자 매캐한 담배 냄새가 났고, 무대를 제외하면 온통 어두웠다.
블루스 연주에 맞춰 마야가 허밍을 하고 있었다.
“…….”
싸구려 조명 아래에서 율동을 하는 마야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왜, 왜?’
그녀의 차림새는 남자들의 열기로 뜨거운 공기 속에서도 너무나 춥게 느껴졌다.
케이든은 손님들을 살폈다.
죽은 눈으로 음담패설을 지껄이며 변태 같은 짓을 자행하는 남자들.
‘마야.’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테이블 위의 허공을 응시하는 마야의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
주먹을 움켜쥐고 이를 뿌드득 갈던 케이든이 결국 참지 못하고 일갈했다.
“그만두란 말이야!”
악사들이 연주를 멈추고, 마야의 눈에 비로소 감정이랄 것이 깃들었다.
‘누구지? 술이 많이 취했나?’
어두워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주위에 있던 취객들이 들고일어났다.
“너 뭐야? 지금 한창 달아올랐는데 산통을…….”
취객의 가슴을 손으로 떠민 케이든이 무대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어…….”
마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케이든?”
바닥에 벗어 던진 코트를 황급히 걸쳐 입은 그녀가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네, 네가 어떻게 여길 알고……?”
“마야.”
케이든의 머릿속에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수많은 단어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그녀를 향한 진심은 결국 적십자성의 운명 앞에 비극이 되어 돌아올 터였다.
“밖…….”
케이든이 울먹이며 말했다.
“밖에 시로네가 와 있어. 그러니까 같이 가자. 우리가 너를 지켜 줄 거야.”
“시로네?”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하게 질렸다.
“시로네.”
불안하게 시선이 흔들리던 그녀가 황급히 돌아서서 무대 뒤편으로 도망쳤다.
“마야! 기다려, 마야!”
케이든이 뒤를 쫓으려는 그때, 취객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이 자식아! 깽판 쳐 놓고 어딜 가? 컥!”
엄청난 속도로 돌아서며 휘두른 주먹에 취객의 몸이 허공에서 회전했다.
취객이 거꾸로 추락하자 술이 번쩍 깬 손님들이 주춤주춤 물러섰다.
“이……!”
취객을 때릴 수 있었던 것은, 그보다 더 간절하게 때리고 싶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시로네!”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오른 케이든이 시로네를 향해 검을 내밀었다.
대검호에 준하는 기세였으나 역시나 검은 시로네를 찌르지 못했다.
“크윽!”
온몸에 힘이 빠지고, 검을 어떻게 쥐는지조차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흥분하지 마.”
케이든이 힘겹게 목을 좌우로 꺾더니 사선으로 시로네를 노려보았다.
“묻는 말에 대답해라. 너는…… 감정병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했지?”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야.”
“대답해!”
“……그래.”
“그런데 왜 마야를 치료해 주지 않았지? 어째서 그녀가 저 지경이 되도록 놔둔 거야?”
“그래서 너를 데려온 거야.”
케이든이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시로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투쟁의 시대(3)
케이든의 검은 시로네의 목덜미 앞에서 무서운 속도로 진동하고 있었다.
끝없이 무언가가 압축되는 느낌이었으나, 결코 시로네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다.
‘한 끗 차이.’
케이든의 스위치가 진심으로 돌아서는 순간 율법은 그의 의지를 꺾을 것이다.
“헥사의 능력, 아가페로도 감정병을 완전히 치유할 수는 없어. 지금 당장은 편해질지 몰라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더 끔찍한 재앙이 벌어질 뿐이야.”
누군가의 능력에 의지한 채로는 마족과 천국의 군대에 대항할 수 없다.
“그게 이유인가? 너에게 마야는 고작 그 정도였나? 네가 두 눈으로 그녀를 직접 봤다면…….”
“내 결론은 똑같아.”
냉정한 대답에 에이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친구이기 때문에 구한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어떻게 잡지? 나와 특정 시간 이상을 함께한 사람?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순서대로 줄을 세울까?”
케이든은 시로네의 말을 이해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반발하고 있었다.
‘마야.’
시로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겁에 질린 그녀의 표정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래서 마야를 도와줄 수 없다고?”
“감정병에 대한 내 기준은 하나야. 이 세계를 가장 빠르게 안정화시킬 수 있는 전략의 일환으로서만 돕는다.”
“마야는 강한 사람이다.”
케이든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싸우는 것만이 전략은 아니지. 그녀의 노래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어. 인지도도 충분하다. 너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텐데?”
“어젯밤, 이루키는 죽을 뻔했다.”
에이미가 놀란 표정으로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덕분에 강력한 악을 제거했어. 놀라운 성과야. 네이드도 목숨을 걸고 싸웠어. 내 친구 리안은 불에 타는 고통 속에서 지옥을 헤매고 있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마야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니.”
시로네가 케이든의 검을 아래로 내렸다.
“만약 내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마야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겠지. 정말로 그걸 바라는 거냐?”
“…….”
“이루키가 오버 드라이브를 시전했을 때, 나는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어. 오히려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싸움을 전개했지. 바로 그런 거야.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함께 죽음을 도모할 수 있는 전우이지, 위험할 때마다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그리고 그런 전우들이라면, 최강의 수행 능력을 갖추기 위해 감정병은 당연히 억제되어야 해.”
“마야는…….”
시로네가 말을 끊었다.
“케이든, 너에게도 자격은 없어. 전쟁이 뭔지나 아냐? 마족에게 붙잡힌 여성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마야는 소중한 친구야. 그래서 전장으로 보내지 않은 거야.”
케이든은 반박할 수 없었다.
“조만간 성전이 열릴 거야. 토르미아는 물론, 아직 건재한 왕국들이 패권을 다투게 되겠지. 이미 마족과 손을 잡거나 천국의 군대와 결탁한 국가도 있다는 소문이야. 잘 들어, 케이든. 세상은 너무나 빠르고, 도무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다.”
오직 시로네만이 전체를 그리고 있었다.
“강요하지 않아. 신경 쓰기 싫다면 방에 처박혀 있으면 돼. 감정병과 싸우면서 다른 사람들이 결과를 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란 말이야.”
“내가 뭘 하면 되지?”
케이든이 아는 시로네는 해결책이 없는 상태로 잔소리를 늘어놓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를 데리고 온 이유가 있다고 했잖아. 마야가 행복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마야를 지켜.”
케이든이 유일하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설령 그녀를 마음에서 도려내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
“그런 다음에는?”
“마야의 감정병을 억제시킬 거야. 아마도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겠지. 조만간 성전은 세계의 모든 정세를 축소시킨 전쟁터가 된다. 마야가 필요할 일이 있을 거야. 하지만 내가 지켜 줄 수는 없어.”
케이든이 지켜야 한다.
“내가 마야를 포기하면 되는 거로군. 진심으로, 영원히 그녀를 사랑할 수 없도록.”
“네 마음이 하찮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니, 사실은 정말로 중요한 거지. 하지만 시대의 끝이 오고 있어.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다면, 세계를 책임질 각오를 해야 돼.”
“그래, 알았다.”
마야가 다시 노래를 부를 수만 있다면, 자신의 감정이야 무에 대수겠는가?
“마야를 데리고 오지.”
검을 갈무리하고 지하로 내려가는 케이든의 눈빛은 전보다 생기가 없었다.
에이미는 동정의 눈길을 보냈지만, 실상 그녀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시로네는 그녀의 감정병을 억제시켰다.
‘전우.’
인류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에이미도 시로네도, 기꺼이 죽음을 선택할 터였다.
‘괜찮아. 그래도 함께 싸울 수 있으니까. 지금 내 곁에 시로네가 있으니까.’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다면 세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그런 의미일 터였다.
시로네가 말했다.
“케이든은 잘할 수 있을 거야.”
마야에 대한 감정이 집착이 아니라면, 사랑은 자신을 불사를 수 있는 힘이 있다.
“마야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시로네의 미소가 슬펐기에 에이미는 평소보다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술집으로 되돌아간 케이든은 사장으로부터 마야가 퇴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만약 나를 속이는 거라면…….”
“정말입니다! 제가 여기서 뭘 더 해 먹겠다고 거짓말을 합니까? 믿어 주십시오!”
케이든에게 멱살을 잡힌 사장은 쩔쩔맸다.
‘젠장! 재수 옴 붙었어.’
마야라는 거물이 오디션을 보러 왔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올 줄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고용한 이유는, 사업 전략 외에 개인적인 감정도 들어갔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가수가 타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재밌는 유희도 없기 때문에.
사장을 바닥에 던진 케이든은 무대로 올라가 후문을 통해 가게를 빠져나갔다.
‘집에 있어야 할 텐데.’
일단 약도를 얻었으니 그녀가 머무는 여관으로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사장이 벌떡 일어나 침을 뱉었다.
“카악, 퉤! 별 거지 같은 게 찾아와서는.”
마야를 이용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으나, 이제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치 중독처럼, 마야를 직원으로 거느렸던 시간들이 뇌리를 자극했다.
“쳇! 이럴 줄 알았으면 건드려나 보는 건데.”
까드득, 까드득.
가게 구석에서 딱딱한 땅콩을 씹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거기 누구야?”
사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니 한 남자가 여전히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가게 망했어. 영업 끝났다고. 빨리 꺼져.”
“……야훼가 아니네.”
“뭐?”
사람 같지 않은 칼칼한 목소리에, 사장이 얼굴을 구기며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 뭐야? 술 취했으면…… 컥!”
어둠에서 날아온 포크가 사장의 이마에 박히자 몸이 무대까지 날아갔다.
정적 속에서, 어둠 속의 존재가 입을 열었다.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의자를 밀고 일어선 그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벽을 향해 걸어갔다.
벽에 닿는 순간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물질을 관통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인파에 섞인 그가 향한 곳은 도시의 광장이었다.
분수조차 깨져 있고 흙탕물이 철철 흐르는 곳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여러분, 회개하십시오.”
그 중심에서는 짧은 턱수염에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신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지금 겪는 고통 또한 신이 내리신 시험. 그러니…….”
“개소리 지껄이지 마!”
술병을 들고 있는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소리쳤다.
“도대체 신이 몇 명이야? 여기에 와서 그딴 소리 지껄이던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 다들 돌 맞고 튀었어! 신이라고? 날마다 아파 죽겠는데 뭐가 어째? 자식도 마누라도, 집도 다 버리고 혼자 남았어! 이런 나에게 신이 해 줄 수 있는 게 대체 뭔데?”
사람들은 맞장구를 칠 기력도 의욕도 없었지만 눈빛에는 싸늘함이 담겨 있었다.
잠시 남자를 지켜보던 사제가 가느다란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든. 당신이 신을 믿는다면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습니다. 좋은 집도, 더 멋진 아내도, 심지어 고통까지 없애 주실 겁니다.”
그제야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진짜야? 진짜로 이 개 같은 병이 고쳐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