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60
수많은 종교인이 이 자리에서 설교를 했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교리는 처음이었다.
사제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앙상하게 마른 여자가 물었다.
“그 신이 누구인데요? 어떤 신이지요?”
“이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많은 신의 이름을 들었겠지요. 하지만 사실 신은 이름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모든 신이, 사실은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신의 정체인 것입니다.”
황당하지만, 그럴듯했다.
“그럼 증명해 봐! 신이라면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을 되찾아 줄 수도 있겠지!”
“좋습니다. 저에게 오십시오.”
바로 승낙을 하자 분위기가 뜨거워지면서 사람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남자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다가가자 사제가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신의 교리에 따를 준비가 되었습니까?”
“물론이지. 병만 낫게 해 준다면. 아, 아니 꼭 그것 때문에 하는 건 아니지만…….”
“하하, 괜찮습니다. 신은 자애롭습니다. 당연히 원하는 것을 이루게 해 주어야지요. 고통만 주면서 따르라고 하는 신은 가짜인 것입니다.”
“그, 그렇다면 믿겠습니다. 뭘 하면 되나요?”
어느새 존대로 바뀐 남자의 말을 들은 사제가 시선을 마주치며 말했다.
“원하는 것을 하세요.”
“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무엇을 원하죠? 집을 갖고 싶습니까? 멋진 여자를 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물을 가지고 싶습니까?”
남자가 무언가에 홀린 듯 대답했다.
“……네.”
“하세요.”
사제가 주위를 가리켰다.
“원하는 집이 있으면 거기가 당신의 집입니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차지하십시오. 당신을 무시하면 때리세요. 아무 걱정 할 필요 없습니다. 신의 존재 아래, 당신은 완벽하게 안전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솔직히 듣기 싫은 말은 아니었다.
감정병에 모든 걸 버린 뒤로, 대체 누가 자신에게 이런 위로를 해 주었단 말인가?
“잘 보세요. 이게 바로 신입니다.”
사제가 목에 차고 있던 역십자가의 펜던트를 꺼내 눈앞에 내밀었다.
“…….”
“거짓 신들이 주는 고통 속에서 괴로웠습니까? 그것이 죄입니다. 진정한 신은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아요. 회개하십시오. 잘못을 구하십시오.”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신이시여, 제발 제 기도를 들어주세요.”
사제가 남자를 돌려세웠다.
“자, 이제 거짓 신을 믿는 자들의 것을 빼앗으세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신이 당신의 얼굴을 기억했으니 이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왕이 된 것입니다.”
“내, 내가 왕.”
남자가 걸음을 옮기자 겁에 질린 사람들이 슬금슬금 물러서기 시작했다.
“아, 아아…….”
잔뜩 공포에 질린 얼굴을 보자 가슴에서 무시무시한 충동이 일어났다.
“다 내 거야!”
도망치는 사람들 중에서, 한 여자가 남자의 손에 머리채를 붙잡혔다.
“내놔! 이것도, 이것도!”
새벽의 추위를 버티게 하는 허름한 망토와 먹다 남은 빵 쪼가리 하나를 갈취했다.
행동 지침에 따라 많은 것을 포기한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었다.
“안 돼요! 그것 말고는 먹을 게 없단 말이에요!”
“닥쳐!”
남자가 주먹을 치켜들자 여자가 히익 소리를 내며 두 팔로 얼굴을 가렸다.
“하, 하아.”
거칠게 숨을 내쉬던 남자는 비로소 자신이 얻은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빵이다. 게다가 망토, 이제 내 망토야.”
이렇게 쉽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니.
“오오, 신이시여.”
남자가 빵을 한입에 넣고 우물거리자 침이 바깥으로 질질 새어 나왔다.
“맛있습니다, 신이시여. 맛있습니다.”
무언가를 깨달은 남자가 헉 하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사제를 돌아보았다.
“아프지 않아. 감정병이…….”
행동 지침에 의하면 음식의 종류를 세분화하여 하나씩 포기하라고 되어 있다.
다만 생존을 위해서는 마지막 하나의 음식만은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여자에게는 빵이었고, 남자는 술이었다.
“빵을 먹었는데도 아프지 않아. 이럴 수가! 정말로 병이 나았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도망치던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투쟁의 시대(4)
빵을 즙처럼 녹여서 먹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본 순간 사람들은 깨달았다.
‘이건 진짜다.’
왕성의 행동 지침에서 술을 마지막으로 남겨 둔 사람은 의외로 많았고, 남자 또한 그중의 1명이었음을 아는 이들 또한 많았다.
그런 그가 행복하게 빵을 먹고 있자 거칠 것이 없었다.
“회개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진정한 신이시여, 저에게도 안식을 주십시오. 사는 게 너무나 힘이 듭니다.”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다른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배불리 먹고 싶을 뿐입니다!”
사제는 그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거짓 신에게 조롱을 당한 자들이여, 지금 신께서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다. 가지세요. 원하는 것을 이루세요. 당신들이야말로 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진정한 어린양입니다.”
“우아아아아!”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사방으로 튀어 나가 지나가는 행인의 것을 갈취하기 시작했다.
옷을 벗기고, 음식을 빼앗고, 그들이 가진 재물을 남김없이 약탈했다.
“진짜야! 아프지 않아!”
행동 지침에 의해 포기해야만 했던 삶을 되찾은 그들의 마음은 날아갈 듯했다.
“그래, 맞아! 이게 바로 신이야! 전지전능한 신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줄 이유가 없잖아!”
피골이 상접할 만큼 굶주렸던 자들이 빼앗은 음식을 마구 집어삼켰다.
실제로 감정병은 발현하지 않았다.
‘파이몬의 감정병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할 때 발현된다. 하지만…….’
사제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남에게서 빼앗은 것은 소중하지 않거든.”
인류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
아니, 이미 분석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절대로 공표할 수 없는 사안일 터였다.
광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단순히 논리의 회로가 역전된 것만으로도 인간은 충분히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신.”
사제가 말했다.
“사탄이다.”
“기요르기 씨.”
여태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술집의 남자가 사제에게 걸음을 옮겼다.
“굴탄인가?”
술집의 남자가 후드를 벗자 붉은 피부에 쫑긋한 귀를 가진 얼굴이 드러났다.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그렇군.”
기요르기가 당황하지 않은 이유는, 누구보다 야훼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굴탄이 보고했다.
“마야라는 여자에게 접근한 자는 다른 인간입니다.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야훼는 이곳에 있다.”
박애의 관철자라면 누군가를 미끼로 사용할 만큼 어리석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냄새가 나거든. 이 정도로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자는 우주에서 하나뿐이지.”
굴탄이 코를 킁킁댔다.
“……아무튼. 어떻게 할까요? 직급이야 같지만 총책임자는 기요르기 씨니까요.”
조직의 이름은 카타콤.
지옥의 군대에서 만든 사조직으로, 시로네 암살의 특명을 받은 7명의 사단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많은 사단장 중에서 그들이 발탁된 이유는 대對야훼전에 특화되어 있는 능력 때문.
특히나 기요르기는 마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시로네의 대척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야훼를 죽이려면 마음부터 흔들어야 해. 설령 그것이 분노라도 말이야. 마야에게 미요를 보낸다. 그녀라면 최고의 비참함을 선사할 수 있겠지.”
미요는 서큐버스 중에서도 가장 음탕하며 강력한 마를 지닌 몽마였다.
“그렇게 전하죠. 그럼 야훼는?”
기요르기는 광장 바깥까지 전염되고 있는 폭력의 현장을 눈에 담았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니…….”
역십자의 펜던트를 집어넣은 그가 공기의 냄새를 맡으며 방향을 살폈다.
“인사라도 해 볼까?”
굴탄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돌아보았다.
“괜찮겠습니까? 물론 기요르기 씨의 실력은 알고 있지만, 상대는 야훼입니다.”
“악이 이긴다.”
지옥의 바이블을 손에 든 기요르기가 광장을 벗어나며 말을 이었다.
“선의 이름으로 포장되었을 뿐, 언제나 승자는 악이었어.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약탈이 난무하는 인파 속으로 그가 사라졌다.
“신은 사탄이다.”
케이든이 마야가 묵고 있는 여관방 문을 두드렸다.
“마야! 마야!”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스피릿 존을 통해 그녀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나야, 케이든! 문 좀 열어 줘!”
“……돌아가.”
마야의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너도, 시로네도. 그냥 혼자 있게 해 줘. 부탁할게.”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대답은 들리지 않았지만, 공기의 기질이 바뀌었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시로네가, 너의 감정병을 치료해 준다고 했어. 그러니까 가자. 더는 이런 곳에 있지 않아도 돼.”
“왜?”
마야가 물었다.
“시로네가 왜 내 병을 치료해 주는데?”
“그건…….”
마법적 재능은 탁월하지 않지만 그녀 또한 합리적인 사고는 할 줄 알았다.
“치료할 수 있었으면 전부 치료했을 거야. 시로네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데 왜 굳이 나를 찾는 거지?”
케이든은 솔직히 말했다.
“시로네가 너의 도움을 원하고 있어. 세상을 위해 싸우기를 바라고 있다고.”
“…….”
한참 후에야 대답이 들렸다.
“나는 시로네를 도와줄 수 없어. 아니, 도와주고 싶지 않아. 그러니 돌아가.”
“마야! 감정병을 치료할 수 있어! 더 이상 아프지 않아도 된다고!”
“그게 더 아프단 말이야!”
갑자기 터지는 목소리에 케이든은 입을 다물었다.
“이런 꼴로 춤을 춰도, 사람들이 희롱해도 상관없어. 시로네가 보지 않으니까 버틸 수 있단 말이야. 하지만 시로네를 만나면…….”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해도 안되는데,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시로네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케이든은 깨달았다.
어쩌면 적십자성의 운명은 크든 작든 누구에게나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마야.”
심장이 벌렁거리고, 공포에 이빨이 딱딱 부딪혔다.
“마야,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지만 심장이 목소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너를 사랑해. 예전부터……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한 번도 마음이 변한 적 없어.”
이것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열병에 걸린 것처럼 전신이 아프고 뇌리에서는 절규의 비명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마야, 네 생각이 어떻든 상관없어. 나를 싫어해도 좋아. 그냥 네 곁에 있을 수…….”
그때 쾅 하고 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꺅!”
마야의 비명에 문을 박살 내고 들어간 케이든이 침대를 향해 눈을 크게 떴다.
“넌…… 뭐야?”
검은 붕대를 엑스 자로 교차해 눈을 가린 여성이 마야를 뒤에서 붙잡고 있었다.
“나? 육욕에 미친 짐승, 미요.”
‘서큐버스.’
케이든은 직감했으나, 마법학교에서 배운 평균적인 느낌과는 상당히 달랐다.
오직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엄청난 육체미를 과시하고 있었다.
“케이든…… 허억!”
미요가 마야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목을 아껴. 잠시 후면 그 예쁜 목소리로 나를 위한 찬가를 불러야 할 테니까.”
“그녀를 풀어 줘.”
케이든이 검을 겨누었으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팔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