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61
‘제길.’
마야를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괜찮겠어, 팔이 심하게 떨리는데? 그 꼴로 싸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어때?”
미요의 피처럼 붉은 혓바닥이 마야의 목덜미에서 젤리처럼 꿈틀거렸다.
“같이 놀래? 끝내줄 건데.”
“이 개자식아!”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도 케이든은 몸을 날려 검을 휘둘렀다.
‘마법조차 시전되지 않아.’
흔한 청년의 검을 손쉽게 피한 미요가 마야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날아올랐다.
“호호호! 생각 있으면 따라와.”
“거기 서!”
겨우 플라이 마법을 시전하게 된 것은, 태어날 때부터 훈련한 마음의 기술 덕분이다.
사단장급을 따라가기에 벅찬 게 당연하지만, 미요는 속도를 조절하고 있었다.
“심장이 빨리 뛰네?”
미요가 마야의 볼에 입을 맞췄다.
“걱정 마. 일단 나에게 몸을 맡기면 너라는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게 되니까.”
마야의 눈이 크게 뜨였다.
“허억!”
등골을 타고 감각이 올라오자 의식이 뇌리 바깥으로 튕겨 나가는 듯했다.
‘시로네…….’
눈앞이 캄캄해졌다.
“케이든이 늦네.”
창문 밖에 테이블이 놓인 골목 카페에서 시로네는 케이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에이미가 말했다.
“그러게. 얘기가 길어지는 건가?”
복잡하게 얽힌 사정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지만, 시로네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안 되겠어. 가 보자.”
찻값을 계산한 에이미가 뒤를 따르는 그때, 시로네가 팔을 들어 접근을 막았다.
“기다려.”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전방을 보자 사제복을 입은 처절한 눈빛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마족.”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이지만 마족 특유의 기질은 감출 수가 없었다.
‘아니, 일부러 감추지 않는 건가?’
그런 확신이 들 정도로 기묘한 분위기에, 시로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누구야, 너?”
“기요르기.”
그렇게 대답한 그가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악마의 바이블을 펼쳤다.
“신의 대리인이자, 야훼 암살 조직의 수장이다. 현재 내 조직원이 마야를 데리고 있다.”
“지금 어디 있지?”
“산에. 미요는 감각을 다루는 데 탁월하지. 지금쯤이면 인격을 상실했을지도 몰라.”
시로네의 몸에서 미라클 스트림이 피어오르자 기요르기가 옆으로 돌아섰다.
“가라.”
“뭐?”
“소중한 사람이라면 구해야지. 또한 그것이야말로 신의 뜻에 합당하다. 단…….”
기요르기의 눈에는 심연이 담긴 듯했다.
“네가 이곳을 떠난다면 마을에 있는 모두를 죽이겠다. 선택은 너의 몫이다.”
에이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우리가 너를 없애고 마야를 구하면 끝나는 일이잖아.”
“불가능하니까.”
악마의 바이블을 강하게 덮은 그가 다시 몸을 돌려 시로네의 앞을 막아섰다.
“야훼여, 너는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다. 너 또한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자꾸 헛소리를 지껄이면…….”
에이미가 따지려고 했으나, 문득 시로네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시로네, 왜 그래?”
“마魔.”
시로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마는 인간의 감정이야. 극단적인 감정이 모여들어 특정 형태를 이루게 되지.”
“갑자기 당연한 소리를…….”
“나야.”
잠시 눈을 깜박거리던 에이미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앞을 돌아보았다.
“설마…….”
“그래. 저 마족은 내가 버린 감정으로 이루어진 존재. 즉, 야훼의 어둠이야.”
기요르기가 말했다.
“버렸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군. 야훼가 나를 버린 게 아니라, 내가 야훼를 떠난 것이다.”
그의 전신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미라클 스트림과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회개하라, 야훼여. 더 이상 거짓 신의 이름으로 인간을 조롱하지 말지어다.”
“에이미, 마야를 부탁할게.”
“하지만…….”
“이번에는 좀 거칠지도 모르겠어.”
침을 꿀꺽 삼킨 에이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걱정하지 마! 반드시 구할 테니까!”
공간 이동의 굉음이 거셌으나, 시로네는 이미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한 상태였다.
“……장소를 옮기자.”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인가?”
“그래.”
기요르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다, 야훼여.”
땅을 박차고 튀어 나가는 그의 육체에서 검은 연기가 무섭게 피어올랐다.
“그래서 내가 이기는 거야.”
빛과 어둠의 충돌로 태극 작용이 일어나면서 무채색의 영역이 도시를 뒤덮었다.
시민들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뭐야! 갑자기 내 몸이 왜 이래!”
중력붕괴로 물질이 떠오르고, 시간의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엉키기 시작했다.
“래이 왜 이몸 내! 야뭐! 아아아으!”
인간의 어떤 억양과도 다른 괴상한 소리에 시로네는 섬뜩한 소름이 돋았다.
“어겠지어떨 다러이! 려살 줘!”
더욱 놀라운 것은 울티마 시스템으로도 인과가 완벽하게 복원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라하원구 을신자 너 서에실진 한찍끔. 라마 지믿 도것 무아. 다있 고하시주 를너 이들그.”
신의 그림자(1)
산에 도착한 에이미는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는 특별한 장소를 발견했다.
‘없어.’
마야는 보이지 않았고, 산 하나를 넘은 거리에서 쾅 하는 폭음성이 터졌다.
“상당히 빠른데.”
공간 이동을 시전하려던 에이미의 눈에 긴장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몸을 뒤틀자 후드를 쓴 남자가 지척까지 다가와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크윽!”
두 팔로 방어하는 순간 명치에 불이 붙는 듯하더니 등을 뚫고 빠져나갔다.
“허억!”
“기요르기 씨도 참…….”
에이미를 관통해 지나간 자가 후드를 등 뒤로 넘기며 중얼거렸다.
“야훼에게 집착한다지만 동료를 보내면 안 되죠.”
그러는 동안 에이미는 옷깃을 좌우로 뜯으며 고통이 깃든 곳을 살폈다.
‘뭐야, 이게?’
가슴 사이에 시커멓게 탄 흔적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옅어졌다.
에이미가 돌아섰다.
“너는 뭐야?”
붉은 피부에 쫑긋한 귀, 이마에 더듬이가 있는 형태가 흡사 불개미였다.
“굴탄. 대야훼전에 특화된 암살자입니다. 사실 야훼 외에는 싸우고 싶지 않지만…….”
카타콤의 선별 기준은 야훼와 전투 시 기본 능력의 6.8배 이상의 효율을 내는 자들이었다.
“그래도 사단장이라고요.”
굴탄이 반경을 크게 우회하며 다가오자 에이미가 시선으로 뒤쫓았다.
두꺼운 나무들을 투과하는 모습에서 조금 전의 방어가 실패한 이유를 깨달았다.
‘물질을 투과한다.’
황급히 상체를 젖힌 에이미의 눈앞으로 굴탄의 주먹이 빠르게 지나갔다.
“호오?”
굴탄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신체 능력도 뛰어나군요.”
마족과의 전쟁을 통해 에이미의 스키마는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화인.”
몸에서 피어오른 불의 거인이 굴탄을 향해 포효하듯 화염을 내뱉었다.
반경 수십 미터가 불에 타들어 갔으나, 에이미의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크크!”
동시에 뜨거운 기운이 등을 강타했다.
“허억!”
뒤에서 당했기에 볼 수 있는 것은, 가슴을 통해 빠져나오는 검은 연기뿐이었다.
‘피할 시간은 없었어. 어떻게 된 거지?’
물질 투과 능력.
“땅이구나.”
“네. 물리적 장벽은 중요하지 않죠. 그나저나, 이것으로 두 번째입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슨 뜻이지?”
“당신의 마음을 두 번이나 만졌다는 거죠. 아, 걱정하지 마세요. 죽지는 않습니다.”
굴탄의 능력은 심상공예.
육체를 양자로 바꿔 대상을 관통하고, 그 대상의 마음을 조형한다.
“내 마음을…… 뭐가 어째?”
“공예는 섬세한 작업이죠. 원하는 형태를 만들려면 몇 번이고 만져 줘야 하거든요.”
에이미는 그저 듣고 있었다.
“하지만 숙련된 공예가라면 몇 번의 터치로도 대충 형태는 잡을 수 있습니다. 즉, 두 번의 터치로 대충 틀은 잡혔다는 얘기입니다.”
“틀?”
굴탄이 두 팔을 벌리며 웃었다.
“장담하죠. 이 전투가 끝나면 당신은 나를 미칠 정도로 사랑하고 있을 겁니다.”
또한 그것이야말로 야훼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카타콤의 핵심 전술이었다.
‘제길!’
불길했던 이유는, 두 번째 일격을 허용하고부터 굴탄에 대한 적개심이 줄었기 때문에.
‘이것들, 장난이 아니다.’
야훼에 대해 치밀하게 분석한 자들이었다.
“당신에게 홍안이라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타깃의 주변 인물을 조사하는 건 암살의 기본이죠. 하지만 소용없어요. 제가 어루만지는 마음은, 정신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습니다.”
에이미는 애써 부정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저런 불개미같이 생긴 마족을 사랑한다고?’
“너무 혐오스러운 반응이군요. 나도 딱히 당신이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 인간 여자는, 괴롭히는 건 재밌어도 내 취향은 아니거든요.”
“……원상 복귀는 가능한 거겠지?”
“애초에 마음에 고정된 형태는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변하겠지만,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세 번째 터치는 상당히 디테일할 겁니다.”
“아니.”
에이미의 눈이 붉게 타올랐다.
“얼마든지 해 봐. 네가 내 몸에 두 번 다시 손을 대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 마음부터 고쳐야겠군요.”
땅으로 스며든 굴탄이 에이미의 등 뒤에 나타나 주먹을 치켜들었다.
‘절대로 못 피한다니까.’
조금 전 에이미가 일격을 허용한 이유는 반사 신경이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양자화.’
굴탄이 물질을 투과하는 동안에는 시간과 거리가 무시되기 때문이었다.
조건과 제약이 있지만, 현재 에이미의 상태에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만져 주지, 너의 마음을.’
주먹이 에이미의 등에 닿기 직전.
“뭐야?”
그녀의 육체가 불로 흩어지면서 굴탄이 앞으로 쓰러질 듯 발을 내디뎠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자연발화.”
한 손에 화염을 휘감으며 서 있는 에이미의 모습에 굴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불의 이동술? 이런 건 처음인데.’
확인을 위해 굴탄이 재차 공격했으나, 손에 잡히는 건 열기의 잔재뿐이었다.
‘알았다.’
고개를 돌린 곳에 불이 피어오르더니 에이미가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이동속도는 빠르지 않아. 그보다 문제가 되는 건 오히려 반응속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