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62
굴탄이 밀고 들어온 바람이 에이미의 불을 촛불처럼 꺼트린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불씨를 일으켜 다시 발화. 이동속도는 대류와 비슷하겠지만…….’
이동 중에는 무적에 가깝다.
“뭐 해? 안 덤빌 거야?”
에이미가 손을 까닥거리자 굴탄이 이를 악물었다.
‘공기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특정 구간이 있을 터. 결국 아주 느리게 움직이든가…….’
바람을 관통할 정도로 빠르든가.
‘음속을 넘는 속도로 주먹을 뻗는 건 나에게 무리다. 그나마 내가 손을 쓰기 전에는 저 여자도 발화할 수 없다는 게 위안거리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덤비지 않을 거면, 내가 공격해도 되지?”
에이미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상기하기 전까지는.
“홍염.”
몸을 타고 올라간 불길이 높은 하늘에서 거대한 구체의 형태로 응집되었다.
“…….”
거리감이 사라질 정도의 크기에 멍하게 입을 벌린 굴탄이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잠깐! 협상, 협상하자!”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섭씨 6천 도에 달하는 불덩어리가 정상에 처박혔다.
순식간에 산이 불타올랐다.
“으아아아!”
마법을 시전한 사람마저 태워 버릴 위력이었으나 에이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불을 끄려면…….”
화염이 강물처럼 산등성이를 타고 회전하더니 거대한 소용돌이가 되어 하늘을 관통했다.
“저건?”
기요르기와 태극을 이루고 있는 한편 시로네는 산에서 치솟는 불기둥을 살폈다.
‘에이미의 완전연소.’
화계의 극치를 사용할 정도라면 상대도 그에 준하는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생각하지 말자. 그냥 믿는 거야.’
그것이 전우일 테니까.
‘그보다는…….’
태극의 영역에서 들리는 수많은 소리 중에서 유독 뇌리에 거슬리는 게 있었다.
울티마가 음절을 재배치하고, 시로네가 역으로 분석한 정보는 이렇다.
‘그들은 너를 지켜보고 있다. 아무것도 믿지 마라. 끔찍한 진실에서 너 자신을 구원하라.’
시민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기요르기도 아니야.’
그렇다면 누가 이런 말을 했단 말인가?
시로네가 내린 결론은 ‘도시의 누구도 이런 말을 꺼낼 수가 없다.’이다.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니다?’
신문의 글자를 오려 문장을 만들듯, 특정 신호를 추출하여 조합한 것이라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
율법이 붕괴되었을 때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가설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좋아, 생각해 보자. 우선 그들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들이 누구지? 왜 정체를 말해 주지 않는 거야?’
일종의 검열일까?
‘그리고 아무것도 믿지 마라. 이 세계가 가짜라는 뜻이라면, 이건 마치 씽의 철학 같잖아.’
그녀는 자신만이 인간이라 생각한다.
‘아니야, 내가 옳아. 세상이 무엇이든 마음을 던지는 곳이 진짜야. 이건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문득, 소름이 돋았다.
‘끔찍한 진실에서 너 자신을 구원하라.’
대체 진실이 무엇이기에, 메시지를 보낸 자는 끔찍하다는 표현을 쓴 것일까?
“…….”
모르겠다.
단 하나 느껴지는 것은, 지금의 메시지가 이 세계의 가장 깊은 곳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통찰.’
태극의 공간이 도시를 넘어 광활한 대지 위를 잠식해 나가고 있었다.
심각한 상처를 입은 케이든이 풀숲에 쓰러진 상태로 절규를 터트렸다.
“으아아! 그만해!”
마야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미요를 눈으로 지켜보는 것조차 지옥이었다.
“호호호! 그러게 왜 고집을 부려?”
“케이든.”
마야는 눈의 초점이 풀려 있었지만 끝까지 이성을 유지하며 인격을 지켰다.
“도망쳐. 나는…… 괜찮으니까…….”
“으아아아!”
그 말에 더욱 비참해진 케이든은 땅에 얼굴을 처박고 악을 질렀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마야를 마음에서 도려내지 못하는 한, 그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죽어도 상관없어! 아니, 마야를 포기하겠다! 포기해! 포기해! 그냥 포기하라고!’
평생 만나지 않아도 좋다.
“포기해! 포기…….”
하지만 마음이란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서, 그저 발버둥일 뿐이었다.
“제길! 왜 안 되는 거야. 왜…….”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깔깔깔! 너 정말 웃긴 놈이구나? 나약해 빠진 주제에 뭘 할 수 있다고…….”
그때 저편 산이 통째로 불타오르자 미요의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미요는 비로소 카타콤의 전략을 수행할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만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게.”
마야의 입을 크게 벌린 미요가 입속으로 손을 욱여넣기 시작했다.
“욱! 우욱!”
괴로워하는 마야를 보며 그녀가 말했다.
“단, 목소리는 빼앗아 가야겠어.”
그래야 야훼가 미칠 테니까.
“안 돼, 안 돼!”
넋이 나가 있던 케이든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으나 막을 방도가 없었다.
“목젖을 뜯어내서 야훼에게 선물로 줘야지.”
“우욱! 우욱!”
눈물을 질질 흘리는 마야의 모습에 케이든이 두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
“움직여! 움직이란 말이야!”
이제는 물러설 곳이 없었으나, 마음을 되돌리는 방법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으으…… 으으으!”
온 힘을 다해 땅을 미는 케이든의 눈에 붉은 핏발이 거미줄처럼 일어섰다.
‘포기해! 포기하란 말이야!’
포기할 수 없어, 이대로는 마야가, 차라리 죽는 것도, 마야를 구해야 돼, 불가능, 내가 할 수 있는 게, 빌어먹을 운명, 사랑하는데, 마야, 마야가, 마야가 죽어…….
마야의 입에 주먹을 집어넣은 미요가 케이든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자, 개봉 박두!”
“흐으으으!”
미칠 것 같은 공포에 눈앞이 흐려지고 미요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멀어졌다.
“호호! 이 아름다운 목소리는 내가……!”
쩍.
케이든의 뇌리에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
다음 순간, 미요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상태를 살폈다.
“어째서?”
팔이 깔끔하게 잘려 나간 상태였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며 케이든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어떻게 된 거지?’
긴장으로 굳은 얼굴을 옆으로 돌리자 미요의 팔을 벤 검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베었다고?’
분명 자신의 팔이고 감각도 살아 있지만, 뇌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였다.
신의 그림자(2)
하늘에서 바라본 산은 수십만 개의 불빛이 별처럼 반짝이는 거대한 숯이었다.
열기만으로 생물이 타 죽을 정도의 온도에서 에이미는 차분하게 숨을 내쉬었다.
‘야훼의 암살 조직이라고.’
굴탄의 능력 심상공예는 분명 자신보다는 시로네에게 훨씬 치명적이었을 터였다.
“마야.”
수많은 생각을 뒤로하고, 에이미는 삼림이 우거진 건너편 산을 바라보았다.
‘이미 늦었을까?’
마야를 습격한 자가 굴탄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백 번은 죽었을 시간이었다.
“응?”
홍안이 붉게 타올랐다.
‘뭐야?’
숲의 깊숙한 곳에서 자연현상과는 전혀 다른 인위적인 흔들림이 포착되었다.
아직 싸우고 있다는 뜻이었다.
에이미는 곧장 그곳을 향해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팔이 잘린 미요는 지혈할 생각조차 없이 조금 전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팔이 잘릴 수는 있으나,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는 사단장이다. 그리고 저 녀석은 1초 전만 해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약골이었어.’
깨달음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거대한 간극에 미요가 케이든을 돌아보았다.
“너는 뭐야?”
케이든은 대답할 수 없었다.
‘왜 팔을 움직일 수 없지?’
여전히 그의 오른팔은 검을 수평으로 뻗은 채로 공간에 고정되어 있었다.
‘내려! 팔을 내리라고!’
의식을 밀어 넣자 손잡이의 감촉과 칼날의 무게가 선명하게 전달되었다.
‘감각의 문제가 아니야.’
그럼에도 여전히 팔은 움직이지 않았고, 지시를 내리는 법을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문제는 뇌. 대체 어떤 일이…….’
조금 전에 들었던 무언가가 찢어지는 소리와 관계가 없지는 않을 터였다.
‘생각하지 말자.’
케이든은 깁스를 한 것처럼 굳어 있는 오른팔을 그대로 두고 돌아섰다.
‘마야를 지키는 게 우선이야.’
미요의 모습을 눈에 담는 순간, 그의 검이 미친 듯이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
케이든은 태연했다.
분명 감각은 살아 있지만, 그 감각을 뇌가 처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너 뭐 하냐?”
미요의 말에 비로소 깨달은 케이든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팔을 보고 놀랐다.
“이게 뭐…….”
의식을 밀어 넣는 순간 생각이 사라지면서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키야아아아!”
미요의 남아 있던 팔이 잘리고,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산을 수놓았다.
“이 개자식!”
몽당하게 짧아진 두 팔을 앞으로 내민 그녀가 입을 크게 벌리며 이빨을 드러냈다.
“심장을 씹어 주마!”
케이든은 의식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신체의 주도권을 찾은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미요가 머리를 앞세워 돌진했다.
단순한 박치기라도 사단장의 신체 능력이라면 뼈를 부수기에 충분할 터.
동시에 케이든의 오른팔이 검을 땅에 박으며 두꺼운 철벽을 일으켜 세웠다.
쿵!
미요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아욱!”
털썩 무릎을 꿇은 그녀가 머리를 잡고 부들거리자 철벽에 쩍쩍 금이 갔다.
케이든은 비로소 직감했다.
‘2개의 뇌.’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좌뇌와 우뇌의 네트워크가 끊어져 버린 듯했다.
‘오른팔을 움직이는 뇌는 더 이상 나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통제가 안 되는 거야.’
그렇게 가설을 세운다면, 조금 전 전심을 다한 일격에서 생각이 증발한 것도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나에게 신호를 보내지 않는 뇌가, 순간적으로 육체를 지배할 경우…….’
케이든은 어떤 신호도 받지 못하게 되는 것.
“흐흐. 흐흐흐.”
아무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