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68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른을 만나다.
악의 역습(3)
***
황성 아가노스.
고블린의 차림새는 금은보화로 치장되어 있는 복도의 풍경과 극명하게 달랐다.
넝마 같은 망토를 걸치고 등에는 투박한 창을 메고 있는 몬스터의 이름은 키도.
우오린의 방에, 그것도 직접 음식을 전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근위병이었다.
“멈춰라.”
검은 돌풍이 불어닥치더니 올빼미처럼 하얀 가면을 쓴 풍장이 길목을 가로막았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편대의 선두에 선 자가 음습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지?”
“이거 안 보여? 그 여자가 꿀물 좀 타 오라잖아.”
키도가 들어 올린 황금 쟁반을 빤히 바라보던 풍장이 살기를 드러냈다.
“여황님이 총애한다고 기고만장하지 마라. 그래 봤자 너는 애완동물에 불과해.”
측근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풍장에게도 카샨의 주인은 오직 테라제였다.
몸으로 유체역학을 구현하며 테라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검의 달인들.
하지만 키도가 황성에 들어온 뒤로 그 자부심은 산산조각 깨지고 말았다.
‘한낱 고블린 따위가.’
멀리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우오린 또한 키도를 중히 여기는 건 아니었다.
시종처럼 부리거나 화를 냈으며, 때로는 목줄을 매고 산책을 나가기도 했다.
“내가 애완동물이면 너희들은 가축이냐? 비켜. 늦으면 그 여자가 또 지랄한단 말이야.”
풍장이 집단 살기 ‘각시’를 발동하자 수천 개의 칼날이 피부를 찌르는 듯했다.
“말을 가려서 해라. 또다시 여황님을 모욕하면 내가 직접 보고하겠다. 그 냄새나는 고블린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고 말이야.”
“…….”
키도를 경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우오린에게 연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기르는 개가 주인을 넘봐?’
애초부터 ‘기억의 맛’이라는 특수한 능력이 없었으면 우오린이 곁에 두지도 않았을 터.
“비켜.”
키도는 싸울 생각이 없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편대의 선두가 검을 뽑아 들자 남은 9명이 잔상처럼 똑같은 동작을 취했다.
“중성화 수술을 시켜 주지. 그러면 여황님도 훨씬 안전하게 너를 가지고 놀 수 있을 터.”
풍장은 진심이었다.
키도의 눈빛이 차가워졌으나 여전히 두 손은 쟁반을 붙잡고 있었다.
육체가 움직이기 전에 나타나는 미묘한 진동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순간.
“그만두어라.”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율라 님.”
풍장이 검을 갈무리하고 고개를 숙이자 키도가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어느새 후미를…….’
풍장의 리더, 율라.
똑같은 올빼미 가면을 쓰고 있지만 다른 풍장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풍장은 오직 여황님의 지시에 따른다. 너의 거만함이 조직 전체를 궤멸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죄송합니다.”
율라의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이래서 신입이 문제야. 아무리 말로 가르쳐도 겪어 보기 전까지는 모르니.’
편대장이 될 정도로 실력은 출중하지만, 풍장이라면 반드시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테라제.’
그 이름에 담긴 잔혹한 광기를.
‘단지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만으로 풍장 전체를 몰살시킬 수 있는 분이시다.’
율라가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부하의 무례는 불문에 부쳐 다오. 여황님이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가라.”
키도가 돌아섰을 때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어차피 율라 또한 없을 것이기에, 굳이 뒤를 확인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쉽지 않아.”
우오린의 방문을 노크했으나 응답은 없었다.
“들어간다.”
키도는 두 손으로 쟁반을 잡은 채로 오른발을 들어 문고리를 돌렸다.
“뭐야, 있었잖아?”
몸단장을 마친 우오린이 창가 옆에 있는 테이블에서 밖을 살피고 있었다.
“키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린 그녀의 외모가 창가의 후광보다 더욱 빛났다.
‘정말 예쁘구나.’
고블린의 미적 기준은 인간과 다르지만, 그의 눈에 우오린은 완벽한 존재였다.
‘사람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인간의 기억이 스며들었으니까.’
애써 생각을 돌려 보지만, 사실은 알고 있다.
‘나는 이 여자를 사랑한다.’
함께 웃고, 산책하고, 어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짐승처럼 뒤엉키고 싶은 모든 욕망.
그 당연한 욕망을 누군가 혐오스럽게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하나.
키도가 고블린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셔. 속이 안 좋다며?”
쟁반 위에 놓인 물방울 모양의 찻잔을 바라보던 우오린이 웃음살을 볼록였다.
“얍.”
손으로 쟁반 아래를 치자 찻잔이 쓰러지면서 꿀물이 전부 흘러내렸다.
“…….”
분노를 억누르는 키도의 얼굴을 가리키며 우오린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하하하하! 표정 봐.”
“지금 뭐 하는 거야?”
“응? 쟁반을 쳐서 꿀물을 쏟았는데? 아, 맞다. 꿀물 좀 가져다줄래? 속이 안 좋아서.”
쟁반을 내팽개친 키도가 소리쳤다.
“이게 진짜 고블린을 뭐로 보고! 내가 그렇게 우습냐! 왜 나만 보면 장난이야!”
“역겨우니까.”
충격을 받은 키도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하자 우오린이 씩 하고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됐어.”
키도가 몸을 돌렸다.
“애완동물이 필요하면 다른 놈 찾아봐. 나는 그만둘 테니까. 카샨을 떠나겠어.”
“오늘따라 왜 그렇게 예민해? 무슨 일 있었어?”
풍장을 만났기 때문일까?
‘아니, 이건 내 문제야.’
그녀의 곁을 지킬수록 비참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어? 너 진짜로 갈 거야? 키도, 키도!”
우오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어젖힌 키도는 복도로 빠져나왔다.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사라지자 방 안에서는 처음처럼 기척이 없었다.
“흥, 결국 그 정도였던 거지.”
정말로 카샨을 떠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키도가 황성을 나설 무렵.
“…….”
테이블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우오린의 눈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조심해, 키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는 풍경 속에, 피를 흘리는 시체들이 속출하고 있었다.
카샨의 수도에 도착한 하비츠의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어 악귀처럼 보였다.
“짜릿하군.”
마계수에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 공사 현장에 들어갔으나 누구도 그를 인지하지 못했다.
“더, 더 겁에 질려라.”
우오린의 마음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이, 자재 창고에서 벽돌…….”
하비츠가 팔을 휘두르자 옆을 지나가던 인부의 목이 뚝 하고 끊어졌다.
“자, 자! 빨리 시작하자고!”
사람들은 여전히 분주했고, 홀로 외로운 하비츠는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죽어라.”
한 번의 칼질에 1개의 생명.
“죽어라.”
그 지루한 작업에 골몰하는 와중에도 도시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
끔찍한 충돌을 예상했던 교사들은 눈을 뜨는 순간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세상에…….”
위저드가 울고 있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한번 물꼬가 트이자 위저드의 감수성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래. 용기 있는 사람만이 잘못을 인정할 수 있어.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이지.”
눈물을 그친 위저드가 훌쩍였다.
“이기는 것과 상처를 주는 것은 전혀 다른 거야. 앞으로는 그러면 안 돼.”
“네.”
고개를 끄덕이는 위저드를 바라보며 시로네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천재, 어른보다 강한 마법사, 온갖 미사여구에 취해 있지만…….’
사실 아이는 모든 게 불안한 것이다.
‘자신의 감정도, 타인의 감정도, 심지어 발밑에서 돌아다니는 이름 모를 곤충마저도…….’
모든 게 무섭다.
‘누구도 이 아이에게 세상을 가르쳐 주지 못했어. 덕분에 순수성은 유지되었지만…….’
그래서 힘든 것이다.
‘나는 정말로 이 아이를 사탄에게 보내려는 것인가? 하비츠를 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복잡한 심정을 갈무리한 시로네는 위저드의 손을 잡고 훈련장을 빠져나왔다.
그러는 동안 혼자 생각에 잠겨 있던 위저드가 교사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전담 교사가 울먹이는 표정을 짓더니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아니야. 위저드는 정말 잘했어. 장하구나. 선생님은 너무나 자랑스러워.”
그 모습을 훈훈하게 지켜보고 있던 람파가 고개를 돌리며 본론을 꺼냈다.
“그럼 이제…… 협상 테이블을 펼칠까요?”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관리의 마음속에서는 천불이 끓고 있었다.
‘제길! 최악의 상황이다.’
어느 누구도 길들이지 못한 위저드가 순한 양이 되어 버릴 줄 어찌 알았겠는가?
“하하! 네. 그럼 학교로 돌아가실까요? 위저드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교사들을 남겨 두고 학교로 들어가자 교장이 위저드의 부모를 대동하고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공인 4급 마법사 니콜라이입니다. 상아탑의 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법사에게 시로네는 살아 있는 전설.
악수를 건네는 그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네, 반갑습니다. 명성은 익히 들었어요.”
오메가를 통해서였다.
“과찬이십니다. 아, 그리고 이분들은 위저드의 부모님입니다. 인사하시죠.”
40대 중반의 남녀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위저드의 아빠입니다. 제 딸이 결례를 끼쳤다면 부디 용서를…….”
보지도 않고 말이 나오는 것을 보니 위저드의 평소 행실이 짐작이 갔다.
“아니에요. 오히려 우리가 도움을 받는 입장인데요. 따님을 잘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류를 대표하는 말이었다.
시로네가 어머니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얘기를 듣고 싶네요. 위저드가 어떻게 태어났고, 또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지.”
어머니가 쩔쩔매며 답했다.
“저희는 그냥 농사꾼이라 잘 몰라요. 그 뭐냐, 마법인지 스프릿 존인지도…….”
아버지가 정정했다.
“스피릿 존.”
“아, 네, 그거요. 저희는 그냥 위저드가 안전했으면 좋겠어요. 어휴, 악마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어머니가 눈물을 훔쳤다.
“그렇군요.”
당신의 딸이 그 악마들의 대장과 싸울 것이라는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다.
“엄마! 아빠!”
그때 뒤늦게 몸을 씻고 도착한 위저드가 손을 흔들며 현관으로 달려왔다.
“위저드!”
부모의 품에 와락 안기는 것은 영락없는 일곱 살 아이였기에,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위저드가 해 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위저드가 시로네를 가리키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