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71
깨물고 물어뜯고 불에 태워도, 배를 갈라 솜을 끄집어내도 여전히 웃고 있는 인형.
“…….”
질문에 대한 답을 미룬 채 나타샤가 마족들에게 끌려가자, 스모도가 뼈다귀를 던졌다.
“에이, 씨. 더럽게 맛없네. 하여튼 이상한 애야. 우리랑은 좀 다른 거 같다고.”
“바로 그거야.”
고기를 툭 하고 떨어뜨린 제타로가 충격을 받은 눈으로 손을 부르르 떨었다.
“찾았어. 진짜로 재밌는 것을 찾았다고. 하비츠는 이걸 느끼고 싶었던 거야.”
“무슨 소리야?”
제타로가 고개를 홱 틀었다.
“하비츠가 우리를 버렸잖아? 얼마나 재밌는 상황이야? 완전 짜릿했을 거 아냐?”
스모도가 눈을 깜박거렸다.
“하긴, 그렇지. 발칸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확실히 놀 줄 아는 놈이야.”
“이번에는 우리가 하자. 하비츠를 죽이는 거야. 붙잡아서 사지를 잘라 놓고 조롱하면서…… 이히히히!”
상상만으로 짜릿한지, 제타로가 무릎을 꿇더니 두 팔을 좌우로 펼쳤다.
“마지막에는 눈을 마주치며 메스로 천천히 목을 긋는 거지. 그러면 하비츠는…… 하비츠는…….”
그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얼마나 즐거워할까?”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황홀감.
“상상해 봐. 막 반격하고 싶은데 팔다리가 잘려서 그러지도 못하는 거지. 얼마나 웃기겠어? 이건 걸작이야. 분명 눈물 콧물 쏙 빼 놓을 수 있을 거라고.”
“흐음.”
발칸이 비로소 흥미를 보이는 가운데, 스모도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하비츠는 다시 말해 줄 거야. 나에게 이렇게 말해 줄 거라고.”
팔을 내린 제타로가 울먹거렸다.
“역시…… 제타로가 최고야.”
“크크크, 그래. 뭐, 나는 하비츠가 아니지만, 확실히 네가 만든 놀이가 최고야. 이번에는 진짜 재밌겠어.”
스모도가 일어섰다.
“그럼, 더 놀다 가는 거지?”
세 사람이 동시에 뼈 감옥의 바깥을 돌아보았다.
“하비츠, 노올자.”
물밑 작업(2)
***
아라크네 범선.
감미로운 악사의 연주가 들리는 고급 식당에서 케언즈는 양고기를 즐겼다.
“란기는 어디 갔어?”
왕국 권력 서열 3위이자 외교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그의 나이는 고작 서른네 살이었다.
“잠시 일이 있다고 해서 피난민 범선으로 갔습니다. 돌아오라고 할까요?”
“피난민 범선이라.”
고기를 씹다 말고 생각에 잠긴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시로네라는 놈을 만나러 갔군. 상아탑 오대성이라. 어떤 놈이야?”
케언즈의 곁을 지키고 있던 정장 차림의 마법사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
“네. 세계 4대 초인 중의 1명으로, 상아탑 통합우주관리부의 수장입니다. 현재 세계 각지에…….”
케언즈가 나이프를 흔들었다.
“아아, 서류에 적힌 건 읊을 필요 없고, 얼마나 강해? 너랑 싸우면 누가 이겨?”
유치한 질문이라도, 특정 경지 이상으로 올라가면 경우가 다른 법이었다.
“강한 자입니다. 상아탑의 별이니 당연하겠지만, 마법 최고의 경지인 무한의 영역에 발을 들인 자니까요.”
“어라? 그 정도야?”
어떤 마법사의 이름을 대도 자신의 비서가 한 수 접어주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장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만약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게 된다면…….”
비서의 이름은 베나하르.
“근소한 차이로 저의 우위를 점치겠습니다.”
용병계의 정점으로, 공인 제1급의 대마법사를 다수 꺾은 전적이 있는 마법사였다.
“흥미롭군.”
케언즈가 양고기를 썰며 말했다.
“상아탑이라고 해 봤자 어차피 마법사. 일단 자리를 만들어 봐. 내가 포섭을 해 보지.”
“데려오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 거절하면 힘으로 끌고 오면 되니까요. 다만 상아탑의 별은 대부분 물욕이 그다지 없습니다. 협상이 될지는…….”
“쯧쯧쯧.”
케언즈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뭔지 아나? 돈, 여자, 권력, 이런 거에 초탈한 인간들이 있다고 믿는 거야. 하지만 그런 인간은 없어. 왜냐하면, 인간이기 때문이지.”
그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어떤 놈들은 100골드만 쥐여 줘도 깜박 넘어가. 그런데 어떤 놈은 1억 골드를 줘도 콧방귀를 뀐단 말이야. 그럼 협상은 불가능할까?”
베나하르는 경청했다.
“아니지. 1억을 거부하면 10억을 줘. 10억을 거부하면 100억을 줘. 결국 양과 질의 문제야. 자네라면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 텐데?”
“물론입니다.”
케언즈가 베나하르를 고용하기 위해 투자한 금액은 280억 골드에 달했다.
“여자에 초탈한 남자도 있을 수가 없어. 그게 어떻게 생물이겠어? 물론 콧대를 세우는 놈도 있겠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으로 밀어붙이면 돼. 외모는 물론 신체, 성격, 성향, 지성, 품위, 관심사 등, 그 인간에 대한 맞춤형으로 제작해서 때려 버리면 된다고.”
베나하르는 새삼 느꼈다.
‘정치인도 제정신은 아니군.’
허세라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현재 외교부 장관인 것과 일맥상통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협상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케언즈는 식기를 내려놓고 입을 닦았다.
“시로네라는 인간, 내 앞에 데려와. 30분 정도 있어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오니까.”
“알겠습니다.”
베나하르가 식당을 나서자 직원들이 수레를 끌고 와 접시를 치웠다.
“잘 먹었어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금화를 건네주자 직원의 고개가 더욱 숙여졌다.
‘언제나 같은 반응. 인간도 기계와 다르지 않아. 욕망에 사로잡힌 기계.’
케언즈는 야심가였다.
일찍이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어린아이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 20대 중반에 장관이 된다.
‘아라크네의 왕은 중간 단계일 뿐. 이번 원정을 통해 나는 거대한 도약을 할 것이다.’
세상의 정점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란기가 문득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맞다. 돌려줄 게 있어요.”
사선으로 멘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낸 그녀가 시로네의 앞으로 내밀었다.
“어? 이건?”
“세계 미인 대회 때, 시로네 씨가 호텔에 놔두고 갔던 책이에요.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아, 맞다. 이 책.”
책을 돌리자 표지 상단에 ‘드래곤 패는 대마법사’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흥미로운 책이로군요.”
포이네의 말에서 가시를 느낀 시로네가 어색한 눈웃음을 지었다.
“이거 그냥 여행 중에 심심해서 산 건데. 아! 이게 호텔에 있었나 보네요.”
“네. 처음에는 웃겼는데 읽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이 드래곤의 심장을 뽑을 때는 정말 통쾌했어요. 아, 혹시 안 보셨나?”
두 사도의 살기가 무섭게 피어오르자, 시로네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하하.”
포이네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무튼 저도 일이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아니, 딱히 그럴 필요까지는…….”
란기가 시로네의 팔을 끌어안았다.
“어머! 그럼 우리 갑판 구경해요. 이 배는 처음이거든요. 고맙습니다, 할머니.”
두 사람이 갑판의 끝으로 멀어지자 카이오스가 그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때?”
포이네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보통내기가 아니야. 살기를 눈치채지 못했으니 전투력은 전무. 하지만 감정이 잘 안 읽혀. 프로야.”
“그래? 진심도 있는 것 같던데. 어쨌든 메시아님께 호의적이면 된 거 아닌가?”
“순진하기는.”
포이네가 뒷짐을 지고 돌아섰다.
“인간의 호의는 향기로운 독이야. 달콤한 향기에 취했다가는 폐부가 썩어 버리지.”
카이오스가 뒤를 따르며 말했다.
“나는 다음 해일을 막기 위해 출동한다. 너까지 자리를 떠도 괜찮겠어? 아라크네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포이네는 아라크네 범선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이상할 정도로 기운이 강하지. 대체 누가 저 강자들을 한배에 태웠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봤자 인간일 뿐.”
바다를 바라보는 란기의 얼굴은 슬펐다.
“타국보다는 피해가 적었지만,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어요. 만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나를 구하려다가 떠내려갔죠.”
“그랬군요.”
“한동안 자포자기 심정으로 살았어요. 그러다가 시로네 씨가 온다는 말을 들었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인생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사람.”
란기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위험한 임무라는 걸 알면서도, 시로네 씨를 만나면 뭔가 숨통이 트일 것 같더라고요. 하아! 정말로 살 것 같아요. 이런 얘기 아무에게도 못 했는데.”
란기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는 그때, 시로네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곳에 온 진짜 이유가 뭐예요?”
란기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고, 시로네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란기 씨의 매력은 충분히 알고 있어요. 하지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저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게 뭐죠?”
“난 거짓말이…….”
변명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란기는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내 진심은 전해질 수 없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란기의 눈빛은 달랐다.
“시로네 씨, 사실은…….”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계셨군요.”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정장을 입은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베나하르 씨.”
“한참 찾았습니다. 아무리 란기 씨라고 해도 규칙은 지켜야죠. 외출 시간은 30분입니다.”
란기가 고의로 드러낸 어깨를 가리며 돌아섰다.
“가 볼게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아직 남아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 시로네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혹시 이따가 시간 되면 같이 저녁이나 먹을까요? 제가 그쪽으로 찾아갈게요.”
란기의 걸음이 우뚝 멈추고, 베나하르의 짙은 눈썹 한쪽이 일그러졌다.
“네.”
란기가 해맑게 웃었다.
“기다릴게요.”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시로네는 의문스러웠다.
‘아라크네.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야?’
베나하르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약속은 취소하겠다. 너에게는 선약이 있거든. 란기 씨에게는 내가 전해 주지.”
“누구세요?”
시로네의 역량을 눈으로 어림한 베나하르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아라크네 외교부 비서실장, 베나하르다.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 상아탑의 오대성.”
시로네는 권위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오대성에게 존칭을 쓰지 않는 자에 대한 의문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아, 예. 반갑습니다. 그런데 약속 취소라뇨? 저하고 란기 씨가 한 약속인데요?”
“장관님께서 너를 보자고 하신다. 조용히 자리를 마련할 테니 아라크네 쪽으로 넘어와라.”
“아니, 그러니까. 란기 씨와 저녁 약속이 있다고요. 왜 그쪽의 말에 따라야 하는데요?”
“하아.”
베나하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 란기조차 장관님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우선순위가 뭔지 모르겠나?”
“먼저 한 약속이 우선이죠. 그리고 사람은 물건이 아니에요. 그 말 취소하세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우리는 거래할 수 있는 것을 물건이라고 한다.”
정확히는 케언즈의 철학이었다.
“거래?”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 시로네가 베나하르의 손을 뿌리쳤다.
“장관에게 전하세요. 나를 만나고 싶으면, 내가 원하는 시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오라고.”
그렇게 내뱉고 선장실 쪽으로 멀어지자 베나하르가 손가락 관절을 풀었다.
“할 수밖에 없나.”
상아탑의 별과 자신이 전력으로 충돌하면 범선이 통째로 폭발할 테지만…….
“그것도 괜찮은 일이지.”
양손에 빙결과 화염 마법을 전개한 그가 갑판을 박차고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크윽!”
시로네가 돌아섰다.
‘뭐야, 이 느낌은…….’
마법을 시전하기도 전에 느껴지는 스피릿 존만으로도 심장이 터질 듯했다.
‘아니야. 이런 건 없어. 분명 기술이야.’
파훼법이 있을 터였다.
‘화신술인가? 아니면 소문으로 듣던 야훼의 능력? 정신 계열의 일종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