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75
콰아아아아앙!
멀리서 보기에도 화력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연쇄 폭발이 터졌다.
“푸하하하! 뭐야? 야훼라더니 별것도 아니잖아? 이제 누구를 지키려나?”
하늘에 떠 있는 드래곤은 안중에도 없는 쟈크라의 태도에 단원들이 몸을 떨었다.
‘우리 대장이지만 진짜 미친놈이야.’
전력의 우위는 안중에도 없으면서 항상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 신기했다.
“어이! 열 받으면 내려오지 그래? 예전부터 드래곤 한번 잡아 보고 싶었거든!”
쟈크라가 칼을 뽑아 들고 도발하자, 포연을 지켜보던 포이네가 고개를 돌렸다.
“너를 벌하는 건 내가 아니다.”
그 순간 망원경으로 수평선 쪽을 살피고 있던 단원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단장님! 저, 저기……!”
미간을 찌푸린 쟈크라가 관자놀이를 누르자 그의 눈동자에 빛이 들어왔다.
버드론의 포연이 사라진 자리에 있는 건 피난선이 아닌 핸드 오브 갓이었다.
“뭐야? 다 어디 갔어?”
마치 그에게 보여 주듯 핸드 오브 갓이 손바닥을 펼쳤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쟈크라의 표정이 싸늘해진 가운데 핸드 오브 갓이 빠르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바다를 내리치자, 삼백 척에 가까운 피난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
해적도 피난민도, 심지어는 포이네조차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는 가운데.
“핸드 오브 갓.”
시로네가 말했다.
“슬레이트 오브 핸드(손의 기술).”
전기 문명(2)
삼백 척의 배에 타고 있던 피난민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살았어?”
버드론이 날아왔을 때 삶을 기대한 자는 아무도 없었으나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공간 장막이 일렁거리더니 어느새 수천 개의 폭탄이 전부 폭발한 것이다.
시로네는 내심 안도했다.
‘실제로 해 보니 굉장히 까다롭네.’
슬레이트 오브 핸드는 마법이 아닌, 일종의 트릭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그 트릭이 양자 단계에서 일어나기에 율법조차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뿐.
포이네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그런 방법이…….’
마술사가 눈을 속인다면, 시로네는 인지를 속인다.
‘관객 전원이 미래를 확신하는 순간, 마음은 예측 가능한 어떤 것, 즉 율법이 된다.’
그리고 율법이라면, 시로네는 그들이 인지하는 사건을 뒤틀 수 있다.
‘그럼에도 트릭인 이유는…….’
사람들의 인지가 되돌아오면 사건 자체도 논리적 개연성을 되찾게 되기 때문.
“크크.”
만약 누군가 다른 미래를 의심했다면 삼백 척의 배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2만 명의 목숨을 건 마술이라.”
모두의 인지를 사각으로 집중시킨 순간 벌어진 찰나의 예술이었다.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지.”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떡할 거냐? 지금 나한테 죽을 테냐, 아니면 메시아님이 올 때까지 기다릴 테냐?”
포이네가 해적선을 돌아보자 갑판에 서 있던 쟈크라의 얼굴이 구겨졌다.
“흐음.”
“단장님, 어떡할까요?”
상대가 1등룡이라면 고민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기다릴 필요 있나?”
쟈크라의 눈에 전기가 흐르더니 강력한 자기장이 그의 주위를 구체로 감쌌다.
“가자, 얘들아!”
진심을 깨달은 단원들이 기계를 작동시키자 해적선이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스텔스? 같잖구나.”
높은 단계의 기술이지만,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대처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크아아아앙!”
흐릿한 경계선만 남아 있는 해적선을 향해 포이네가 날개를 접고 추락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빨에 닿은 것은 해적선이 아닌 짜디짠 바닷물이었다.
“푸우!”
바다에 잠긴 포이네가 물기를 털며 주위를 살피자 먼 곳에서 경적이 들렸다.
“크하하하! 여기다, 여기!”
어느새 6킬로미터를 이동한 쟈크라의 해적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덤벼라, 도마뱀.”
갑판에 서 있는 쟈크라가 도발하듯 손을 까닥거리더니 중지를 치켜세웠다.
“…….”
아마도 어떤 전기에너지.
“크르르르…….”
현존 인류가 만들어 낸 적이 없는 수준의 에너지를 다루는 기술이겠지만…….
“크아아아앙!”
이미 눈이 돌아간 포이네는 거칠 것 없이 날아오르며 사방에 마법진을 띄웠다.
“용해진.”
용언의 힘으로 만든 마법진에서 맹독성 산성액이 엄청난 수압으로 뿜어져 나왔다.
쟈크라가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저거 보이냐, 도마뱀 눈 돌아간 거?”
전기의 힘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해적선은 크기와 질량에 관계없이 기민했다.
“단장님! 저기…….”
“됐어! 갈겨 버려! 에너지 건 최대출력을 허락한다! 오늘은 도마뱀 파티야!”
“아니, 그게 아니고요!”
단원들이 코를 막으며 소리쳤다.
“배가 녹아내리고 있어요!”
눈을 가늘게 뜬 쟈크라가 주위를 살피자 인근 바다가 온통 초록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떠올라 마치 사체로 뒤덮인 육지를 연상시켰다.
부단장이 다가왔다
“이제 그만 빠지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정도면 체면치레는 충분히 했습니다.”
“……란기는?”
아라크네 범선으로 고개를 돌린 쟈크라가 관자놀이를 누르자 풍경이 당겨졌다.
기사단과 해적단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크하하! 너무 쉬운데?”
스텔스 무기를 장착한 해적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사단의 목을 벴다.
“제길! 뭐가 보여야 싸우지!”
갑판에서 연거푸 후퇴한 기사단은 케언즈가 지키는 내실 입구까지 밀렸다.
“멍청한 것들! 그러고도 아라크네의 기사야!”
일단 적들이 내실로 들어가면 안쪽에 있는 금은보화를 약탈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니, 그보다는 란기가…….’
디오나스의 왕 칼트가 원하는 유일한 공물을 떠올린 그는 퍼뜩 깨달았다.
‘어디 갔지?’
시로네의 범선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갑판에 있었던 란기가 보이지 않았다.
“허억! 허억!”
수많은 방이 늘어서 있는 내실의 복도를 뛰어가며, 란기가 뒤를 돌아보았다.
“흐윽!”
유령처럼 무언가 아른거리는 것이 여전히 따라붙고 있음을 확인하자 오금이 저렸다.
‘방은 안 돼. 막다른 곳이야.’
하지만 길을 따라 달린다고 해도 결국 망망대해에 갇혀 있는 범선일 뿐이었다.
“꺅!”
고개를 돌린 란기가 얼굴에 둔탁한 충격을 느끼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네가 란기야?”
흠칫 놀란 그녀가 고개를 들자 스텔스 모드를 해제한 쟈크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이 좋아할 만하네.”
“살, 살려 주세요.”
악인을 꽤나 상대한 란기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쟈크라의 눈은 정상이 아니었다.
“뭘 또 빌기까지……. 그냥 좋게 따라오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알았지?”
란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간절한 표정을 지켜보던 쟈크라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더니 방문을 열었다.
“안 되겠어. 일단 우리 얘기나 좀 할까?”
“꺄악!”
란기는 발버둥을 쳤으나 쟈크라의 강력한 완력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시로네.’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오르고.
“크크, 오늘 아주 횡재…….”
방문을 여는 쟈크라의 눈앞에 빛의 연기가 빠른 속도로 뭉치기 시작했다.
‘포톤 캐논.’
양자 전송으로 도착한 시로네가 마법을 시전하자 쟈크라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손목이 풀리자마자 머리를 움켜쥔 채 주저앉은 란기는 뒤를 살폈다.
“…….”
내실의 벽을 계속 뚫으며 사람이 날아간 흔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란기 씨, 괜찮아요?”
앞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시로네가 걱정스럽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어, 어떻게?”
다른 곳도 아니고 밀폐되어 있는 방 안에서 시로네가 나올 일이 없는 것이다.
“일단 일어나요.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줄게요.”
란기가 손을 잡고 일어서는데, 벽의 구멍을 타고 쟈크라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 개 같은……!”
지척에서 목소리가 이어졌다.
“자식이!”
눈앞에서 나타난 쟈크라가 주먹을 휘두르자 시로네는 란기를 데리고 물러섰다.
‘공간 점프 능력.’
플리커와 스파크의 혼합에 가까웠지만, 문제는 마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마이카의 유물인가?”
쟈크라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크크, 왜, 알고 싶냐? 알고 싶으면 그 여자 내놔.”
해적과 협상을 할 바보는 없다.
“싫어? 정말로 싫다 이거지? 그렇다면…….”
관자놀이를 누른 쟈크라의 육체가 투명해지더니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었다.
“시, 시로네.”
란기가 시로네의 팔을 끌어안은 가운데 사방에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어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지? 네 목을 잘라 줄까? 아니면 여자의 손목을?”
시로네는 전방을 매섭게 주시했다.
“배를 부수는 건 어때? 바다 밑에 보물을 잔뜩 쌓아 두면 인기 좀 끌 텐데.”
목소리는 미끼, 쟈크라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시로네의 등 뒤에서 칼을 들었다.
‘죽어라.’
그 순간 쟈크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뭐야, 이게?’
그의 뇌와 연결된 비전에서, 시로네의 모습이 진동하는 것처럼 여러 개로 보였다.
난수들이 빠르게 카운트되고, 해독이 불가능한 고대 문자가 깜박거렸다.
-형태화 레벨, 전자 등급.
‘알 게 뭐냐.’
칼날이 정수리를 노리고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가 허리를 뒤틀었다.
‘피했어?’
정확히는 확률이었다.
포톤 캐논을 손에 띄운 시로네가 돌아서는 관성 그대로 복부에 처박았다.
“크윽!”
자기장 방어막이 펼쳐지고, 또다시 떠오른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자.
-방어 불능. 전자기장 허용 한계치 초과.
‘염병할! 도대체……!’
또다시 반대편 벽을 뚫고 날아가는 신세가 된 쟈크라가 짜증 섞인 외침을 토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아아아!”
쿵 하고 마지막 벽을 뚫자 차가운 바닷물이 그의 육체를 집어삼켰다.
스콜처럼 시원한 물소리가 밀려들자 시로네가 란기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나가죠. 외벽이 뚫렸어요.”
“배가 가라앉으면 보물은 어떡하죠? 여기에 실은 보물만 20톤이 넘는데.”
“우리 것도 아니잖아요. 왜요, 아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