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76
“……네.”
시로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빨리 대처하면 전복은 막을 수 있을 거예요. 일단 쟈크라를 잡는 게 우선이에요.”
마이카의 유물.
‘전기를 이용하는 문명이다. 바깥 세계하고 연관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해.’
란기의 손을 잡고 갑판으로 나오자 기사단의 대부분이 사망한 상태였다.
케언즈가 화색을 드러냈다.
“별이시여! 우리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로네는 광폭을 시전해 해적들을 배 바깥으로 날렸다.
“쟈크라는 어디 있지?”
해상 저편에서 포이네가 해적선의 대부분을 가라앉히고 있는 게 보였다.
‘돌아갈 곳은 사라졌다. 그리고 망망대해.’
바다를 뛰어넘을 정도의 공간 점프라면 이미 란기는 이곳에 없을 터였다.
의문에 대답하듯, 시로네가 거주하는 범선 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물에 젖은 쟈크라가 중년 여성의 목에 칼을 댄 채로 비틀거리고 있었다.
‘으, 짜증 나. 망할 놈의 기계.’
공간 점프를 시도했지만 머릿속에 스파크만 터질 뿐 반응이 없었다.
시로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포기해. 순순히 항복하면 정당한 절차에 의해 법의 심판을 받게 해 주마.”
“지랄하고 있네.”
여자를 끌고 갑판 끝으로 걸어간 쟈크라가 바다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
‘여긴 독이 없다.’
자신의 장기인 잠수 능력을 발휘하면 충분히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 터.
“아무도 움직이지 마. 쫓아오는 순간 여자의 목을 따 버릴 줄 알아. 알겠어?”
“…….”
쟈크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크크, 완전 쉬운데? 사람 목숨 파리 목숨이지. 대체 여기 인질이 몇 명이야?’
슬금슬금 난간을 오른 그가 여자를 끌어안은 채로 바다로 뛰어내렸다.
“안녕~!”
혀를 내밀고 풍덩 하고 빠지는 그때까지도, 시로네는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
“가륵! 가르륵!”
바다에 잠긴 여자가 발버둥을 쳤으나 쟈크라는 태연하게 잠영질을 했다.
‘잠수 기록 23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폐활량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스키마 의태 능력자이기 때문.
‘보통 사람은 3분도 못 버티지. 이 여자도 마찬가지. 하지만 그 3분 동안…….’
시로네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
‘심해로 숨어 버리면 제까짓 게 어쩔 거야? 제발 오래 버텨 주라. 나 좀 살게.’
“가르륵! 가르륵!”
여자의 목에서 거품이 튀어나오는 소리가 쟈크라에게는 흥겹게 들렸다.
“허억! 허억!”
여자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하하! 멍청아! 여긴 바닷속…….”
비로소 이상함을 깨달은 쟈크라가 주위를 둘러보자 물의 장벽이 펼쳐져 있었다.
“어? 어어?”
직경 200미터 크기의 수면만이 끝없이 낮아진 가운데 마침내 심해 바닥에 도착했다.
바다의 장벽이 불룩 튀어나오더니 투명한 손의 형태를 이루며 다가왔다.
핸드 오브 갓-엘리멘탈 핸드.
수족관처럼 심해어가 헤엄치는 액체의 손이 여자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리고.
“…….”
시로네가 뒷짐을 진 채로 내려왔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냐?”
“어, 저기, 그러니까…….”
여전히 황당한 심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쟈크라가 두 손을 들고 말했다.
“항복?”
거대한 수량이 쏟아져 그를 바닥에 처박았다.
전기 문명(3)
***
쟈크라 해적단과의 전투가 끝나자 피난민 선박은 전열을 재정비했다.
쟈크라를 빠르게 포획한 덕분에 아라크네 범선은 겨우 전복을 막을 수 있었다.
“보물은 무사합니다.”
케언즈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이었다.
“또다시 빚을 졌군요. 아라크네 기사단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정치적 발언이 없는 것은 이미 시로네의 성향을 파악했기 때문이리라.
“결과는 모든 원인의 총합입니다. 부분을 놓고 공과를 매기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네요.”
시로네는 몸을 돌렸다.
“그나저나…….”
포승줄에 묶인 쟈크라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마음의 기술, 감금을 통해 쟈크라의 자아를 뇌의 깊은 곳에 가두어 버린 상태였다.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앞으로 영원히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가게 될 수도 있어.”
쟈크라의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으나, 보일 수 있는 반응은 그게 전부였다.
“소용없을 겁니다. 쟈크라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자가 그의 형, 칼트니까요.”
대해적이라 불리는, 디오나스의 왕.
“어떤 사람이죠?”
시로네가 오메가로 기억하는 칼트는 스물네 살까지로, 중급 해적단의 전투병이었다.
당시에도 뱀의 심장을 가진 자였으나 쟈크라의 광기에 비하면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군요. 그는 스스로를 선각자라고 부릅니다. 자신만의 교리에 파묻혀 살아가는 자. 외교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유형이기도 하죠.”
“흐음, 선각자라고.”
고대 문명, 전기 기술, 선각자.
의문의 파편들이 어떤 형태를 이루었으나 그것조차 거대한 의문에 불과했다.
“손익계산이 통하지 않는 자라 그동안 아라크네도 애를 먹은 것입니다. 란기를 원하는 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었죠. 물론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포이네가 말했다.
“메시아님의 오메가에 공란이 생긴 이유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아는 걸 말씀드리자면, 마이카는 인류가 초고대 문명으로 부르는 가상의 대륙입니다. 열도 10왕국, 남태평양의 어딘가에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는 게 정설이지요.”
“가상의 대륙이라. 검증하지 못했다는 건가요, 드래곤의 능력치로도?”
“카라토르사, 무등룡이 수호하신 오메가는 오직 메시아님께 전달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열람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전송 오류는 특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코어가 계실 때에는 12사도 간에 정보 교환이 가능했지요. 그것을 바탕으로 몇 가지 단서가 떠오릅니다만, 저보다는 수룡 카이오스가 자세히 알고 있을 겁니다.”
똑같은 정보를 공유하고도 카이오스에게 말을 떠넘긴 이유는,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전달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 때문이었다.
휴식을 취하며 기다리자 해일을 막아 내고 돌아온 카이오스가 갑판에 착지했다.
“메시아님, 복귀했습니다. 대륙판의 움직임을 분석했을 때 다음 지진은 48시간 이후일 것입니다.”
“수고했어.”
시로네는 해적단과 전투를 벌인 일부터 마이카의 유물에 대한 얘기까지 털어놓았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곁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있었더라면…….”
“그건 됐어. 알고 싶은 건 마이카 유적이야. 대륙이 가라앉았다면 전 세계의 바다를 순회하는 너에게 확인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카이오스가 무겁게 입을 떼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마이카 문명은 실존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추정?”
“네. 우선 메시아님이 궁금하신 해적단의 능력, 그것은 아마도 오파츠의 영향일 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유물이라는 뜻으로, 이 명칭은 나름 정확합니다. 제가 조사한 초고대 문명의 연대기는…….”
카이오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최소 20억 년 전이니까요. 다른 말로 하면, 용족마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입니다.”
오메가의 기록과 대조해 본 시로네가 눈을 깜박였다.
“그런데 왜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 아니, 그 전에 오파츠가 있다는 건 마이카가 실존했다는 거잖아?”
“그게 문제입니다. 남태평양에 가라앉았다는 게 정설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유적은 바다 각지로 흩어진 상태입니다. 제가 확인한 것만 해도 일흔 군데가 넘으니까요. 다만 그 유적지에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인간이나 생물이 살았던 흔적이 없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오파츠는…….”
“네, 인위적인 가공품이죠. 공간 점프나 자기장 방어막 같은 기술을 담은 물건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길 수는 없으니까요. 유적지에도 문명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
“참으로 이상한 일이죠.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주체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마이카는 반대예요. 문명도, 터도, 도구도 있는데, 주체가 없습니다.”
“인과의 바깥이라…….”
문득 수족관에 사는 물고기가 떠올랐다.
‘물고기는 그저 자신의 세계에서 헤엄친다. 그런데 어떤 인간이 수족관에 반지를 떨어뜨린다면…….’
물고기에게 그 반지는 주체가 없는 인위적인 가공품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물고기가 수족관의 오메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반지를 알 수는 없다.’
카이오스가 말을 이었다.
“초고대 문명에 흥미를 잃은 이유는 결국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문명을 향유한 주체가 없기 때문에 어떤 상상력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오파츠는?”
“거기에 대해서는 무어라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분명한 쓰임새가 있는 도구일 테지만, 저로서는 사용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으니까요. 한마디로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감조차 못 잡겠다는 것이죠.”
포이네가 끼어들었다.
“생물의 지성도 우주가 한계라면, 우주에 없는 개념이 접목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12사도 모두 시도해 보았으나 결국 실패했습니다.”
시로네는 쟈크라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사용했잖아? 아니, 그 전에 어떻게 공간 점프가 오파츠의 기능일 거라고 확신했던 거지?”
“전기니까요.”
카이오스가 말했다.
“주체가 없는 물건은 그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오파츠를 획득하고 내린 유일한 결론은 미약한 전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시로네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놀라운 일이었죠. 20억 년도 더 된 물건이 아직까지 방전되지 않고 있다니.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심도 깊게 파고들어 가려고 했으나…….”
“했으나?”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뭐가? 오파츠가?”
“모르겠습니다. 사라진 것은 오파츠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제 기억일 수도 있죠.”
포이네의 눈빛이 어둠에 잠겼다.
“메시아님, 저희는 오파츠에 대해 모릅니다. 전기를 이용한 어떤 도구라는 것만 알고 있죠. 그 이상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경우, 용족의 정신 네트워크가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카이오스가 말을 받았다.
“강력한 자기장으로 짐작됩니다. 물론 정말로 오파츠가 사라진 것일 수도 있지만, 당시의 느낌은 굉장히 이질적이었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뇌가 감각을 거부하는 현상이라고 할까요.”
포이네가 말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카라토르사께서는 오파츠에 대한 조사를 금지시켰습니다. 자칫 그분이 수호하시는 오메가의 로그에 타격이 올 수도 있고, 인류의 역사를 수호하는 시간의 사도에게는 20억 년 전의 유물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시로네가 물었다.
“어떻게 생겼지? 오파츠 말이야.”
“종류는 다양하지만 형태 자체는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큐브 같은 것도 있고, 쟁반 같은 것도. 물론 쓰임새는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만.”
“흐음, 하나 구할 수 없을까?”
“왜 그러시죠?”
“드래곤의 지성으로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인간의 통찰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시로네는 형태에 대한 통찰이 인류의 정점에 달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아린.’
선입견이 없는 그녀의 초경은 만물의 형태에 대한 진의를 꿰뚫는다.
‘카니스와 함께 고고학 유적지를 탐사하고 있을 거야. 위치부터 파악해야겠다.’
동시 사건을 통해 람파에게 카니스의 소재를 물은 시로네는 말을 이었다.
“어쨌든 실제로 쟈크라는 오파츠를 사용했으니까. 기능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말이야.”
포이네가 쟈크라를 돌아보았다.
“그럼 차라리 직접 듣는 게 어떨까요? 저에게 맡겨 주시면 2시간 안에 입을 열게 만들겠습니다.”
시로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발설할 의지가 없는 걸 보면 진짜로 모르는 것 같아요. 감금 상태라는 거, 인간이 견디기 힘든 공포거든요. 어차피 내일이면 디오나스에 도착하니 칼트에게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아요.”
포이네가 인자한 눈웃음을 지었다.
“속는 셈 치시죠.”
그날 밤.
“으아아아! 으아아아!”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아라크네 범선의 갑판을 강렬하게 수놓았다.
그리고 약속했던 2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처음으로 비명이 아닌 사람의 말이 들렸다.
“몰라요! 진짜 모른다고요!”
탈수가 일어날 정도로 땀을 흘린 쟈크라의 머리를 포이네가 잡아당겼다.
“호호, 그래. 모르겠지. 자, 그럼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 이번에는…….”
쟈크라가 울음을 터뜨렸다.
“진짜로 몰라요! 형이 알아요! 정말이라니까! 나는 기억에도 없다고!”
“자신을 너무 비하하지 말게. 자네는 똑똑한 사람이야. 그리니까 곧 기억이 날 거야.”
“진짜야……. 뭔가 넣었어. 형이 나한테, 내 머리에 뭔가를 넣었다고.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안 나. 그냥 나도 모른다고! 염병할!”
포이네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사실인 것 같다.’
시로네의 생각대로 오파츠의 자기장이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종류라고 한다면…….
“앞으로 2시간만 더 버텨 봐. 그때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면 믿어 주지.”
“아니, 잠깐만. 야, 이 미친…… 으아아아!”
저녁내 들리던 비명이 사라지고,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새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