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78
2명의 사도가 생명을 던지는 순간, 시로네의 육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디? 어디로 가셨지?”
카이오스가 감은 눈을 잔뜩 찡그린 채로 칼트에게 검을 겨누었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메시아께서 어디로 가셨지? 죽기 싫으면 말해야 할 거야.”
“글쎄.”
칼트는 어딘가 모르게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끔찍한 진실.”
초고대 문명 마이카.
“허억! 허억!”
시로네는 망막을 감싸고 있는 듯한 푸른 색감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시야가 열리자 주위를 살폈다.
“마이카.”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오메가에 있는 어떤 지역과도 다르기 때문이었다.
계단식으로 지어진 도시는 실제 문명처럼 수많은 건물들이 서 있었다.
‘문명이 아니야.’
하지만 막상 건물로 들어가면 누군가 살았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건…… 일종의 장치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심에 도착하자 뿔처럼 생긴 휘어진 탑이 20미터 높이로 나란히 서 있었다.
“……모르겠어.”
탑을 따라 문자가 새겨져 있었으나 어느 것 하나도 해독할 수 없었다.
‘울티마 시스템이 통하지 않아.’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신호라는 결정적인 증거 앞에서, 시로네는 전율했다.
‘만약 바깥 세계가 있다면…….’
가장 근접한 상상은 공겁의 메커니즘을 토대로 구현한 상위 계층일 테지만.
‘사실 그건 의미가 없어.’
현실을 기준으로 끝없이 내려가 봤자 결국 상상의 끝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직접 가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라.’
시로네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정신 차리자. 저곳에 무엇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아. 정말로 중요한 것은…….’
왜 존재하는가?
“응?”
마치 머나먼 기억처럼, 도시가 흔들리더니 땅 밑을 타고 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크윽!”
전류를 느끼며 이를 악무는 그때, 2개의 탑 사이에 불투명한 장막이 펼쳐졌다.
“…….”
그 장막 안쪽에서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시로네를 주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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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하는 세계(1)
시로네는 마이카 유적의 게이트 사이에 떠오른 거대한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불투명한 장막에 가려져 있지만 확실히 눈처럼 보였고, 생물 같았다.
“당신은 누구죠?”
대답은 없었으나, 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게이트를 기준으로 옆으로 걸어가자 놀랍게도 눈동자가 시로네를 따라 움직였다.
‘나를 보고 있어.’
만약 바깥 세계의 존재라면 여태까지 인류가 알고 있는 모든 진리가 깨질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있죠. 무엇이든 좋으니 증거를 보여 줘요.”
초고대 문명의 게이트가 열렸다고 해서, 그것이 바깥 세계라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직접 들어야 돼. 아니, 설령 소리가 아닌 어떤 것이라도, 증거가 될 만한 것.’
게이트 안쪽에서 기계적인 반응 이상의 것이 나오지 않고서는 의미가 없다.
그때 눈동자가 눈꺼풀을 깜박였다.
특별한 신호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시로네는 기대감을 가지고 물었다.
“그곳은 바깥 세계인가요? 말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눈꺼풀을 두 번 깜박이세요.”
반응은 없었다.
어떤 말로 설득해도, 눈동자는 시로네의 존재와는 별개의 활동을 하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 진실을 앞에 두고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 시로네는 화가 났다.
“말해 줘. 우리는 왜 존재하는 거지? 어디에서 온 거고, 어디로 가는 거야?”
“…….”
무심한 눈동자를 보고 있노라면 애초부터 흥미조차 없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포기할 수 없어.’
시로네는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방법들을 하나씩 전부 시도해 보았다.
결과는 대실패.
어느 하나도 유의미한 반응을 얻어 내지 못한 시로네는 정신적 탈진에 이르렀다.
“어렵다.”
어쩌면 시로네가 시도한 모든 것들이 눈동자에게는 단순한 하나일지도 모른다.
‘벌레가 무슨 짓을 해도 인간의 눈에는 그저 꿈틀대는 것처럼 느껴질 뿐.’
자리에 주저앉은 시로네는 사람의 흔적이 없는 마이카 유적을 둘러보았다.
‘쓸쓸한 곳이야.’
진실로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은, 마치 신이 무심하다는 증거인 듯했다.
‘마음을 가진 신이 있었지.’
잠시 회상에 잠겨 있던 시로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동자에게 물었다.
“거핀은 거기에 있을까?”
단지 그리웠을 뿐,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맥클라인 거핀 말이야. 우리 아빠야.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는데. 보고 싶다.”
그 순간 눈동자가 처음으로 두 번 깜박거렸다.
“응?”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일어난 획기적인 변화에 시로네가 벌떡 일어났다.
“방금 대답한 거야? 만약 뭔가 알고 있다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동자가 장막 바깥으로 사라지자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돌아와. 돌아오란 말이야.’
시로네의 마음이 전해진 것은 아니겠지만, 눈동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끼……!
강력한 고주파가 터지자 인상을 찡그린 시로네가 허리를 굽히며 물러섰다.
“크윽!”
무언가 말을 전하려는 것 같지만 울티마 시스템으로도 전혀 해독이 불가능했다.
‘이해하지 말자.’
눈동자가 전하는 신호의 아주 작은 단편조차 나네의 설법을 초월할 터였다.
의문형에 가까운 감정들이 전해지더니 잠시 후 고주파가 안정을 되찾았다.
“신당.”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해석이 된다.’
기요르기 때처럼 역으로 들어오는 정보지만, 분명 이곳 세계의 프로토콜이었다.
“……금지 은핀거 인라클맥.”
거기까지 들은 순간, 엄청난 굉음이 터지면서 시로네의 정신을 날렸다.
‘안 돼! 여기서 끝낼 수는……!’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지만 마이카의 유적 전체가 먼지로 흩날리고 있었다.
“큭!”
시로네가 자기장에 휩싸인 채로 현실로 돌아오자 포이네가 달려왔다.
“메시아님! 괜찮으십니까!”
“허억! 허억!”
현실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시로네는 조금 전의 상황을 복기했다.
“들었어.”
“네? 그게 무슨…….”
아직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았지만, 당시의 충격만큼은 기억 속에 생생했다.
“나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했어.”
포이네와 카이오스가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칼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가.”
시로네가 고개를 쳐들자 칼트가 황홀한 표정으로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칼트가 앉아 있는 의자 뒤로 뇌수와 핏물이 산탄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포이네가 말했다.
“머리가 폭발했습니다. 그다음 곧바로 메시아님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셨죠.”
계단을 오른 시로네가 칼트의 앞에 도착하자 죽어 가는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 눈동자가…… 너에게는 말을 걸던가?”
오파츠를 통해 궁감을 얻은 이후로 끝없이 그를 괴롭혔던 의문이 있다.
무엇이 있는가?
“칼트.”
시로네는 동질감을 느꼈다.
비록 그의 철학이나 생각은 모르지만, 전기장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은 하나였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쩌면 스피릿 존을 열었을 때부터 오직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달려온 것이 아닐까?
‘분한 거야.’
하루를 살고, 먹고 자고, 생식하는 와중에도 우리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인간은, 인류는…….’
그 사실이 분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야. 죽기 전에 확인할 수 있어서. 아니, 죽는다는 것도 웃기지.”
칼트의 눈에서 생기가 식어 갔다.
“나는…… 정말로 이 세상을 살았을까?”
유언이었다.
시로네는 그가 해적이라는 것을 잠시 묻어 두고 칼트의 눈꺼풀을 감겨 주었다.
‘위험한 여정이었어.’
강제적으로 초고대 문명의 정보에서 차단당했을 때 칼트의 뇌가 날아갔다는 것은…….
‘만약 나였다면?’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바깥 세계를 상대로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가 직접 찾아야 돼.’
오파츠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형, 형.”
감금에서 풀린 쟈크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칼트에게 다가갔다.
“진짜 죽었네?”
의자 뒤로 돌아가 머리통이 날아간 것까지 확인한 그가 두 손을 쳐들었다.
“으하하하! 형이 죽었다! 이제 끝났어! 오늘부터 디오나스의 왕은 나다!”
다른 해적들도 동참했다.
“젠장!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고! 날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만 지껄이고 말이야!”
그 광경을 지켜보던 카이오스가 물었다.
“어떡할까요?”
“일단 전부 구속시키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세요.”
시로네의 말을 들은 쟈크라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살기를 드러냈다.
“하하! 이미 늦었어! 내 능력이…… 응?”
다른 해적들도 쟈크라와 똑같은 짓을 반복했으나, 공간 점프가 되지 않았다.
“오파츠는 칼트뿐이었어. 그의 인지가 사라진 이상 너희들은 평범한 인간이야.”
해적들이 멍한 표정으로 굳어 있는 가운데, 시로네가 케언즈에게 말했다.
“난민들을 들여보내세요. 그 외의 외교적인 절차는 전담하겠습니다. 그리고 란기 씨는…….”
눈치 빠른 케언즈가 고개를 숙였다.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녀가 원하면 바로 본국으로 송환시키겠습니다.”
란기가 문제겠는가?
디오나스의 제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면 아라크네로서는 엄청난 기회였다.
‘물론 성전에서는 채무가 되겠지만…….’
어차피 정치란 그런 것이다.
해적들을 지나 시로네가 성을 나서자 포이네가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메시아님, 우리는 어떡할까요?”
“일단…… 조금 쉬는 게 어떨까요?”
2만 명의 피난민을 지키면서 오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던 그들이었다.
“좋은 판단이십니다. 헌데, 그다음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바깥 세계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해서 오늘의 일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심란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궁극적인 해답을 찾아낼 거예요. 그리고…….”
시로네는 포이네를 돌아보았다.
“그날이 오기 위해서는 우선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또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군요.”
박애의 마음이 여전히 세상에 있음을 깨달은 포이네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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