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79
월면月面.
나네는 인간의 행성을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본다?’
우주 공간에 덩그러니 떠 있는 달에서 방향은 무의미하겠지만, 실제로 그러했다.
“무엇이 중요한가?”
달에서 관조하노라면 저 푸른 행성에서 벌어지는 비극도 마치 남의 일 같아서…….
“어째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나네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부처시여.”
슈라는 반경 100미터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설법의 검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슬슬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생물이 우주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설법이기에 파괴되면 낭패였다.
괴성이 무형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왔다.
“키아아아! 키아아아!”
정신체로 이루어진 우주 생물 ‘데스튜라’가 나네의 사념에 이끌린 것이었다.
“크르르르! 부……처!”
낫처럼 휘어진 손이 방어벽을 뚫자 황금빛 전기가 균열처럼 퍼졌다.
“우주가 나를 거부하는가?”
타인의 사념을 통해 실체화되는 데스튜라는 인류의 행성 탈출을 가로막는 주범이었다.
점차 방호벽 안으로 침투하는 괴물을 지켜보며 슈라는 침을 삼켰다.
‘특정 사념이 우주를 인지하면, 여지없이 놈들이 몰려온다. 참으로 끔찍한 종족.’
그녀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600년 전에 행성 탈출을 시도한 드래곤조차 데스튜라에게 붙잡혀 갈기갈기 찢긴 상태로 추락했다고 한다.
“크아아아! 크아아아!”
거대 괴물체가 방어벽 안으로 상반신을 집어넣자 균열 사이로 공기가 빠져나갔다.
“제가 막겠습니다.”
슈라가 두 손을 교차하며 게슈탈트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그때, 나네가 말했다.
“손님이 오는구나.”
슈라는 자세를 유지한 채 행성 쪽을 돌아보았다.
“……뭐?”
마치 운석이 대기권을 뚫을 때처럼, 붉게 달아오른 무언가가 달 쪽으로 오고 있었다.
‘행성의 중력을 벗어나는 것만도 힘든 일일 텐데.’
조금 더 지켜본 슈라는 화염에 휩싸인 자의 정체를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필이면…….”
돌원숭이의 화신 손유정이 땅에 박은 여의를 무한대로 늘리며 오고 있었다.
달의 중력에 이끌려 착지한 그녀가 여의봉을 줄이며 사납게 내뱉었다.
“드디어 찾았다. 염병할.”
입 모양으로 이해한 나네가 미소를 지었다.
“천둥벌거숭이의 손녀라면 달에 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테지만…….”
부처를 노리던 데스튜라들이 목표를 바꾸어 그녀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딘지는 아는고?”
달구어진 쇠처럼 타오르는 그녀가 괴물을 살피더니 또 다른 여의를 꺼냈다.
일전에 리안이 둘로 쪼갰으나, 길이를 조절할 수 있기에 2개나 마찬가지였다.
나네가 피식 웃었다.
“이곤류?”
곤봉을 양손에 늘어뜨린 손유정이 삐딱하게 고개를 꺾으며 중얼거렸다.
“별 거지 같은 것들이…….”
월면의 표면에서 체고 8미터의 데스튜라가 두 팔을 쳐드는 순간.
“키이이이이!”
눈에서 황금빛 광채를 뿜어내는 손유정이 원숭이의 송곳니를 드러내며 튀어 나갔다.
“……!”
진공에 가까운 정적 속에서, 두 자루의 여의가 데스튜라를 미친 듯 두들기기 시작했다.
순환하는 세계(2)
데스튜라가 괴성을 내질렀다.
“……!”
생물에게 위협을 주기 위한 음성기관일 테지만, 우주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뭐 이런 것들이 다 있어?’
나네의 사념과 결합한 데스튜라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이 뒤집어진 형상을 하고 있다.
전신의 관절이 반대로 꺾인 것처럼 느껴져서, 눈에 담는 것만으로 섬뜩한 형태.
‘의외로 강한데?’
하지만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손유정의 시야에는 벌레를 닮은 끔찍한 괴물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육체를 뜨겁게 달군 손유정이 제트처럼 화염을 분사하며 우주 공간을 비행했다.
나네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근두운이라.’
한때 천계를 어지럽혔던 돌원숭이의 기술을 실제로 보자 감회가 새로웠다.
여의를 휘두를 때마다 데스튜라의 살점이 터졌으나, 음이 소거되어 현실감은 없었다.
마침내 데스튜라가 사념체로 소멸하자 손유정이 두 자루의 여의를 늘어뜨렸다.
“후우우우!”
그녀의 입에서 마치 장작을 태우는 것처럼 괄한 연기가 끝없이 뿜어졌다.
나네의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구름을 뚫고 손유정이 천천히 걸어왔다.
설법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오자 쇳물처럼 달구어진 육체가 빠르게 식었다.
나네가 말했다.
“귀찮은 일을 해결해 주어서 고맙구나. 헌데,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원숭이가 적막한 달에 무슨 볼일이지?”
손유정이 여의를 겨누었다.
“다 알고 있잖아? 나는 할아버지와 달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 거라고.”
슈라가 수인을 맺었다.
“손유정, 적의를 거두어라. 아무리 철이 없어도 부처 앞에서 방종한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슈라.”
손유정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도 그래. 모르타싱어가 잡혀갔잖아. 같은 십로회로서 지켜보고만 있을 거야?”
“십로회는…….”
슈라의 눈에 잠시 그리움이 스쳤다.
“와해되었다. 베론이 떠난 이후로 우리를 이끌 수장은 존재하지 않아.”
“그 아미타를 죽인 자가 부처라며. 그런데도 너는 저 녀석 옆에 있겠다는 거야?”
슈라는 입을 다물었다.
‘베론은…….’
그녀에게 시로네를 찾아가라고 했다.
‘아직은 그럴 수 없어.’
유언에 따르지 못한 이유는, 여전히 ‘살아가는 방법’ 따위는 모르기 때문에.
‘온통 거짓, 허무에 갇힌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이 세상의 비밀을 깨닫기 전까지 그녀는 부처의 곁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흥! 천둥벌거숭이가 뭘 알겠어? 너는 그냥 친구가 잡혀가서 짜증 난 거잖아!”
사실이 그랬다.
“그래,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 하지만 부처에게는 볼일이 있어. 그러니 슈라.”
손유정의 눈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말리면 두들겨 패 버린다.”
화안금정.
만물의 진리를 꿰뚫는 눈이라면 슈라의 게슈탈트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래, 증조할아버지 잘 만나서 좋겠다.’
애초에 모르타싱어와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깨달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그럼에도 세상 좋은 건 다 가지고 있으니, 슈라의 입장에서는 배가 아플 따름이었다.
나네가 물었다.
“그래, 나에게 원하는 게 뭐냐?”
“지옥으로 가는 방법, 당신은 알고 있을 테지? 나를 보내 줘. 친구를 되찾을 거야.”
“지옥이라…….”
물론 알고 있지만, 박지의 깨달음을 원숭이에게 가르치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네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떤 지옥이냐에 달렸지.”
“무슨 소리야?”
손유정은 생각해야 알 수 있는 것을 싫어했다.
“현실에서 감당할 수 없는 업을 짊어졌을 때, 지옥이 너를 부를 것이다. 그러니 결정해라.”
나네의 좌우에 서리를 뿜어내는 검과 화염에 불타는 검이 탄생했다.
“팔한지옥이냐, 팔열지옥이냐? 독사지옥도 좋고, 도산지옥도 좋을 테지. 그것도 아니라면…….”
나네의 뒤편으로 수많은 검이 부채처럼 펼쳐지며 오색 빛깔을 뿜어냈다.
“원하는 곳을 말해 보아도 좋다.”
달이 흔들렸다.
인간의 행성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런 생각조차 미처 하지 못할 만큼 거대한 화신.
“여래.”
달의 지평선 너머에서 일어선 부처의 잔상이 마치 우주의 끝에 있는 듯했다.
“…….”
입술을 오므리고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손유정의 얼굴에 장난기가 깃들었다.
“하하하! 그러니까 날 지옥으로 떨어뜨리겠다는 거지. 좋아, 승부를 받아 주마!”
슈라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저 미친 원숭이가.’
범우주적인 경지를 보고도 덤비는 것은 태생적으로 타고난 정신 질환일 터였다.
‘하지만 여래.’
나네의 진심을 끌어낸 손유정의 무력은 분명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크으으으!”
자세를 낮추고 허리를 뒤튼 손유정이 무기질의 육체를 뜨겁게 달구었다.
“오라.”
나네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순간, 눈에 불똥이 튄 그녀의 제트가 폭발했다.
“키아아아아!”
길어진 여의봉이 불의 궤적을 그리고, 우주 끝에서 설법이 밀려들었다.
***
이면 세계.
통곡의 골짜기를 빠져나온 에텔라와 샤갈은 마을을 찾기 위해 지옥을 떠돌았다.
‘너무 넓어.’
현실에서 70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으면 무엇이라도 나와야 정상이었다.
“큭!”
생각에 잠긴 채로 걷고 있던 에텔라의 팔을 나뭇가지가 스치고 지나갔다.
숲의 모든 것들은 철로 만들어져 있어서, 칼날에 베인 거나 다름없었다.
“짜증 나게 하고 있어.”
사슬을 통해 똑같은 고통을 느낀 샤갈이 에텔라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뒈질 거면 혼자 뒈지라고. 괜히 나까지 말려들게 하지 말고.”
샤갈의 신경 또한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미안해요. 하지만 며칠을 걸었는데도 마을 같은 게 보이지 않잖아요. 생각을 해야 돼요.”
“내가 왜? 여기서 벌벌 떠는 건 너뿐이지. 나는 그냥 지켜보고 있는 거야.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을 말이야.”
“적당히 해요! 싸울 만큼 싸웠잖아요! 대체 언제까지 날 물고 늘어질 거예요!”
“영원히.”
샤갈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널 싫어하는 것 같아? 천만에. 현실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지. 적어도 너는 진짜니까. 그러니 계속 울어. 날 더 즐겁게 해 달라고.”
“……당신은 쓰레기야.”
에텔라는 절망했다.
“동정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 처음부터 당신 따위 무시해 버렸어야 했어. 내가 아니라도 쓰레기를 처리할 사람은 넘치고 넘쳤으니까!”
분노에 눈을 치켜뜬 샤갈이 에텔라를 끌어당기더니 강제로 입을 맞췄다.
“하지 마!”
이성을 잃은 에텔라가 샤갈을 밀어내며 강력한 일격을 턱에 꽂았다.
사슬이 철컹 흔들리고, 똑같은 충격을 받은 두 사람이 동시에 쓰러졌다.
“아우우우…….”
음양파동권에 정통으로 맞은 샤갈이 힘겹게 몸을 뒤집더니 어깨를 들썩였다.
“킥킥! 킥킥킥킥!”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이-히히히! 미치겠네! 아, 진짜 미치겠어!”
반면 에텔라는 비참한 심정에 몸을 부르르 떨며 흐르는 눈물을 참아 냈다.
‘어째서 나에게…….’
업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 이 남자와 함께하는 현실이 끔찍하게 싫었다.
‘참자. 이겨 내는 거야.’
진성음의 고통을 생각하면 자신에게 닥친 일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상체를 세운 에텔라가 말했다.
“우리 둘, 너무 예민해져 있어요. 조금 쉬죠. 당신도 마족에게 당하는 건 싫을 거 아냐.”
초인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건넨 말이었으나, 샤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킥킥킥! 으아아, 사람 환장하겠네! 크하하하하!”
화가 난 표정으로 지켜보던 에텔라가 바닥에 누워 차갑게 등을 돌렸다.
‘상대를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