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80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응?’
자신이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에텔라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뭐야?’
잠들었던 장소와 전혀 다른 풍경을 깨달은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푹신한 흙이 있는 장소였고, 심지어 10미터 전방에는 작은 옹달샘도 보였다.
‘물, 물이다.’
마시지 않는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탈수의 고통은 현실하고 다를 게 없었다.
그곳으로 기어가자 물가 근처에 앉아 있는 샤갈이 한 움큼의 흙을 코에 대고 있었다.
“……당신이 날 데려온 거예요?”
샤갈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고, 손의 흙을 털어 낸 뒤에야 입을 열었다.
“물 냄새를 맡아서 움직였을 뿐이야. 목이 타서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탈수가 심해 기억마저 흐릿했다.
‘어떻게 지옥에 물이 있을까?’
생각은 잠시였고, 에텔라는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입술을 수면에 처박았다.
꿀꺽꿀꺽.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듣는 사람마저 해갈이 될 정도로 시원하게 들렸다.
“하아! 하아!”
정신이 또렷하게 돌아오자 비로소 다음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
“여기는 어디죠?”
“나도 모르지. 너, 철 숲을 계속 헤매고 있었던 거 알아? 방향감각을 상실시키는 자기장이 있기 때문일 거야.”
“아니, 그걸 왜 이제야…….”
따져 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에텔라는 말을 삼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얘기해 봐요.”
샤갈이 일어섰다.
“여기라면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물이 있고, 시체 냄새가 나거든. 아마 여기는 시체를 이용해서 만든 인위적인 장소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지옥에 이런 아늑한 곳이 있을 턱이 없지.”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대체 누가? 지옥에서 물이 필요한 존재라면 생육신 외에는…….’
그 순간 수풀이 흔들리자 에텔라는 생각을 멈추고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누가 있잖아?”
현실에는 없는 식물, 마치 동물의 찌꺼기 같은 수풀을 가르고 일단의 무리가 나타났다.
하나같이 인상이 험악했고, 지옥이란 이름에 걸맞게 기도 또한 남달랐다.
애꾸의 사내가 외눈을 크게 떴다.
“여자? 여자다.”
그것도 타락한 영혼이 모이는 흑암지옥과 어울리지 않는 청순한 분위기였다.
“너희들은 뭐야?”
샤갈이 앉은 채로 물었으나 7명의 괴한은 들은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들 사슬이 있어. 업에 걸린 놈들이군. 어디 보자, 무슨 개짓거리를 하다가…….”
혀가 세로로 쪼개진 남자가 사슬을 들더니 샤갈과 에텔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라, 인연의 사슬이잖아?”
폭소가 터졌다.
“흥미진진한데. 어이, 너희들 뭐냐? 무슨 짓 했어? 불륜이냐? 아니면 근친?”
샤갈이 일어섰다.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꺼져. 이 장소는 앞으로 내가 접수한다.”
“아이고, 그러세요? 이 천박한 변태들. 너, 우리들이 누군지 알아? 한때는 세상을 호령했던 연쇄살인마야, 인마. 진짜 무서운 놈들이라고.”
기척조차 없이 뒤로 다가온 사내가 손도끼를 샤갈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움직이지 마라. 목 떨어지면 앞으로 남은 지옥 인생 무지하게 고달파진다.”
2명이 샤갈을 포위한 가운데 남은 자들이 에텔라에게 다가갔다.
“미인인데? 살아생전에 남자 좀 홀렸겠어. 식량으로 쓰기에는 아까울 정도야.”
에텔라는 물러섰으나, 샤갈과 연결되어 있는 사슬 때문에 거리를 벌릴 수 없었다.
“멈춰.”
샤갈이 말했다.
“그 여자한테 손대는 순간 너희들은 죽는다.”
말을 꺼내면서도 소름이 돋았으나, 에텔라의 고통은 자신의 고통이었다.
“푸하하하! 애틋한데? 지옥에 떨어져도 사랑은 지킨다 이거냐?”
샤갈의 뒤를 잡고 있는 남자가 도끼로 목을 탁탁 치며 위협을 가했다.
“착각하지 마, 인마. 네가 제일 나쁜 놈이야. 그러니까 여기 떨어졌지.”
‘탁탁, 탁탁.’
목을 치는 리듬을 몸으로 기억한 샤갈이 오른손에 단도를 탄생시켰다.
‘속사검.’
엄청난 속도로 애꾸의 목을 찌르자 픽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
박힌 칼날에서 핏물이 뿜어진 뒤에야 살인마들은 상황을 이해했다.
“이 개자식이!”
도끼의 속도와 똑같이 상체를 숙인 샤갈이 몸을 뒤틀며 왼손을 내밀었다.
“컥!”
남자의 목을 움켜쥐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의 속사검이 빠르게 왕복했다.
퍼퍼퍼퍼퍼퍽!
진동처럼 보였고, 17개의 칼날이 박힌 복부에서 피와 내장이 동시에 쏟아졌다.
“끄으으으…….”
“뭐, 연쇄살인마?”
남자가 눈을 까뒤집고 쓰러지자, 샤갈이 새로운 단도를 손에 쥐고 돌아섰다.
“그다음, 누가 죽을래?”
숲은 고요했다.
순환하는 세계(3)
남아 있는 5명은 샤갈의 신속한 살인 기술 앞에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준비해라.”
에텔라를 중심으로 흩어진 그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며 살기를 드러냈다.
“우리와 동류다.”
“동류?”
샤갈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들보다 고고하다는 생각은 없지만, 살인 기술에도 급이 있는 법이었다.
“나는 어디에도 섞이지 않아. 소름 돋는 소리는 치워 두고 죽을 놈만 덤벼.”
“한때는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지.”
소갈머리가 없는 배불뚝이 남자가 강선을 손바닥에 몇 바퀴 감으며 다가왔다.
“어느 시대에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여긴 지옥이야. 우리 같은 놈들이 준법 시민인 사회라고. 알량한 자부심으로 버티다가는 흑승의 세례를 받을 거다.”
“흑승?”
배불뚝이가 웃었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군. 지옥의 무서움을 천천히 가르쳐 주지. 혹시 교살자 에드론이라고 들어 봤나?”
샤갈의 표정은 무심했으나 에텔라는 놀란 표정으로 남자를 돌아보았다.
‘교살자 에드론. 180년 전에 109명의 인간을 잔인하게 목 졸라 죽인 살인마.’
에드론이 강선을 팽팽하게 당겼다.
“뭐든지 상관없어. 살아 있는 것의 숨통을 조일 수 있다면 말이야. 물론 인간이 제일 재밌지. 혀를 길게 빼물고, 눈이 돌아가는 그 표정. 살기 위해 다리를 버둥거리는 그 동작들이 나를 미치게 하거든.”
에텔라의 기억에 의하면 그는 감옥에 수감되고 44일째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인간 절단기 아베리오.”
심각한 뻐드렁니의 남자가 큼지막한 절단기를 가위처럼 움직이며 말했다.
“287명을 죽였지. 취미는 해체. 공학적, 생물학적 기능의 최소 단위에서 3,287개의 부품으로 인간을 해체한 게 생애 최고 기록이지. 오늘 기록을 경신할지도 모르겠군. 참고로 말하자면…….”
그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
“지옥에서는 쉽게 죽지 않아.”
샤갈이 속사검을 찔러 넣었던 2명의 살인마는 여전히 꿈틀대고 있었다.
“……확실히 정보는 필요하겠어.”
에텔라를 돕고 싶지는 않지만 모르는 것에 당하는 일도 기분이 나빴다.
“기회를 주지. 살고 싶은 놈은 손 들어라. 딱 1명, 나에게 정보를 제공할 1명은 남겨 주마.”
“흐흐, 그럴 줄 알았지.”
족제비같이 생긴 남자가 사슬낫을 꺼내 들고 쥐처럼 몸을 웅크렸다.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몰라도 선배 대접이 영 개판이구먼. 불행으로 알아라. 팔다리를 잘라서 상자에 넣어 줄 테니까. 흑승을 만날 수도 없을 거다.”
“선배라.”
샤갈의 주위에 아지랑이가 일렁이더니 수많은 단도들이 우박처럼 떨어졌다.
“덤벼.”
“…….”
알 수 없는 현상에 살인마들은 경계했으나, 지옥에서 후퇴는 영원한 추락이었다.
“합공이다.”
말이 끝나는 순간 5명의 살인마가 땅을 박차고 샤갈에게 달려들었다.
공기가 웅 하고 떨리더니 수십 자루의 속사검이 생명을 가진 것처럼 움직였다.
에텔라가 채 나서기도 전에 2명의 살인마가 전신에 칼날이 박혀 쓰러졌다.
“으아아아! 피, 피가!”
몸 안의 피를 전부 뿜어내자 또다시 샤갈의 얼굴은 피 칠갑이 되었다.
“잡았어! 지금이야!”
둔중한 에드론이 민첩하게 땅을 구르더니 샤갈의 발목에 강선을 걸었다.
샤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구식이군.”
단도를 잡은 채로 손목을 흔들자 속사검의 껍질이 에드론의 등에 연거푸 박혔다.
“억! 억! 억! 억!”
분수처럼 피가 솟구치는 가운데 아베리오가 절단기를 크게 벌리며 돌진했다.
“거기부터 끊어 주마!”
사타구니 쪽으로 다가온 절단기가 지렛대의 악력을 받아 탁 하고 닫혔다.
아베리오의 눈에 의아함이 스쳤다.
‘뭐가 이렇게 단단해?’
자세를 낮춘 샤갈이 역수로 쥔 속사검을 절단기 사이에 가로로 끼우고 있었다.
“흥! 그래 봤자!”
철마저 으스러뜨리려는 그때, 샤갈이 손목을 90도로 틀더니 단도를 쳐올렸다.
“으아아! 내, 내 얼굴!”
칼날이 턱을 치고 나갔고, 샤갈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그를 난도질했다.
온갖 급소에 칼날이 박힌 아베리오는 쓰러지지도 못한 채 몸을 떨었다.
“어? 어? 으아아아아!”
갑자기 눈이 부릅떠지더니 풍선이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핏물을 쏟아 냈다.
“선배? 그냥 스타일이 올드한 거야.”
샤갈이 피로 물든 몸을 돌리자 사슬낫을 든 남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괴물이다. 도대체 저건 뭐야?’
도시 하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살인마라면 나름의 실력은 있는 법이다.
‘저 녀석은 그런 수준이 아니야. 전국구, 혹은 왕국 규모의 수배자. 어쩌면…….’
전 세계의 추적을 당했는지도 모른다.
‘이해가 되지 않는군. 그런 놈이 다른 카르마도 아니고 인연의 사슬을 걸고 있어?’
저 정도의 살인마라면 칼날지옥이랄지 가마솥지옥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만큼 저 여자가 중요하다는 건가?’
샤갈이 다가오려고 하자 사슬낫의 남자가 에텔라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
“멈춰! 다가오면 여자를 죽인다.”
샤갈은 걸음을 멈췄으나, 에텔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죽여. 할 수 있으면 말이야.”
“장난하는 게 아니야! 진짜로 죽일 거다! 이 여자가 죽으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그러니까 죽이라고. 나는 상관없으니까.”
“이……!”
사슬낫의 남자가 빠르게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에텔라가 몸을 날렸다.
“커억!”
음양파동권의 연타가 남자의 배를 북처럼 두들기자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끄으으으!”
아픈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남자의 등에 샤갈이 발을 올리며 말했다.
“이제부터 아는 걸 전부 말해라. 저 선배들하고 똑같은 꼴 되기 싫으면 말이야.”
“아우…… 아우우……!”
남자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흐음, 흑승이라.”
사슬낫의 남자에게 많은 정보를 얻은 샤갈과 에텔라는 심각한 표정이었다.
“정리하자면 이거네요.”
에텔라가 말했다.
“지옥을 관리하는 화자원관리공사라는 기관이 있다. 이곳에 떨어진 인간은 지옥 불에 정화되고, 새로운 마족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샤갈은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말했다.
“정화된 마족은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녀석들처럼 아직 지옥 불에 들어가지 않은 자들, 즉 탈주범들은 죽여도 죽인 게 아니라는 거로군.”
턱이 갈라진 채로 꿈틀대는 아베리오를 보노라면 차라리 정화가 나은 듯했다.
“네. 그리고 그 탈주범을 잡아 정화시키는 존재가 흑승(검은 사슬)이라는 거죠. 저승사자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샤갈이 남자에게 물었다.
“어이, 너. 흑승을 실제로 본 적 있나?”
전보다 상처가 훨씬 많아진 남자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 네. 제가 당한 건 아니지만 탈주범이 잡혀가는 건 본 적이 있습죠. 무시무시한 놈들이에요. 시커멓고 음습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도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흑승이 올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