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86
광기에 사로잡힌 선배들조차 흑승에 대한 말이 나올 때는 공포에 질렸었다.
손유정의 눈이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너희들은 뭐야?”
진리를 관통하는 화안금정으로도 놈들의 실체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의 개인가.”
긴고아를 발견한 흑승은 손유정에게 카르마 체인이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너를 보낸 이유가 있겠지. 묻지 않겠다.”
야훼와 부처의 차이점은 흑승이 대하는 태도에서도 확연하게 달랐다.
“하지만 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지옥의 소유물이다. 우리에게 넘겨라.”
겁에 질린 리체라가 발악을 했다.
“으아아아! 저 녀석들 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놈들입니다!”
흑승이 말했다.
“이 세계에 들어온 대부분의 인간은 마지막을 수긍하고 순순히 정화되지. 하지만 쾌락에 중독된 놈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정화를 거부한다.”
속세의 집착이 너무나 강력했다.
“어차피 그런 놈들이니 너희들 세계에서도 규칙을 무시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부처의 뜻에도 반하는 인간, 우리에게 넘기는 게 좋은 일이다.”
“싫어.”
흑승이 몰랐던 것은 손유정의 성향이 혼돈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이 녀석은 내가 먼저 가졌어. 재밌는 장난감이거든. 너에게 주지는 않을 거야.”
물건 취급하는 건 똑같았지만 리체라는 온 힘을 다해 없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겠군.”
부처의 속셈을 짐작한 흑승이 연기로 풀어지며 하늘을 가득 채웠다.
-지옥에서 진리를 구하는 자여, 네가 무엇을 깨닫든 중생 구원의 업은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럴 생각 없다니까?”
손유정이 되받아쳤으나 흑승은 검은 소용돌이가 되어 저편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리체라는 기적 같은 상황에 전율했다.
“갔다. 갔어.”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여태까지 흑승에게 걸리고 무사한 인간은 없었다고 했다.
“그럼 어디…….”
리체라의 시야가 홱 하고 돌아갔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할까?”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입꼬리를 올리는 모습에 다시금 공포가 치밀었다.
“살, 살려 주십쇼. 아니, 적어도 지옥 불에 던져 주세요. 이제 그만 끝내고 싶어요.”
“그건 귀찮은데. 그보다 나는 지금 당장 이걸 없애고 싶거든? 아는 거라도 있어?”
손유정이 긴고아를 긁어 대자 리체라의 머리가 사상 최고의 속도로 회전했다.
“그,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라비에트로 가면 혹시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라비에트?”
“지옥에는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 많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대부분이 거기서 생산된다고 합니다. 그쪽의 전문가라면 혹시…….”
슬슬 자신감이 사라졌다.
“없앨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도.”
“흐음, 그럼 일단 거기로 가 볼까? 내 일이 잘 풀리면 네 요구도 들어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머리카락을 한 올 뽑아 날리자 빛의 스트링 현상이 일어났다.
시로네의 마테리얼과 같은 수준이지만 이것 또한 혈통의 특혜일 뿐이었다.
순식간에 옷을 갖춰 입은 손유정을 보고 리체라가 눈을 깜박거렸다.
“마법인가요?”
“비슷한 거야. 옷을 입으면 불편하기는 한데, 벗고 다니면 더 귀찮은 일이 생기더라고.”
리체라의 목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본 손유정이 왼손에 힘을 주었다.
“너도 좀 꾸며야겠다.”
“네? 아니, 저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용암처럼 달구어진 왼손이 목의 절단면을 지졌다.
“크아아아! 크아아아!”
예상치 못한 고통에 리체라의 눈에 핏발이 일어서고, 턱이 빠질 듯 벌어졌다.
살 타는 냄새가 진동하고, 거의 의식을 잃기 직전에야 유정이 손을 떼었다.
“이제 깔끔하지.”
“흐윽! 흐으으윽!”
얼굴 하나만으로 완전체가 되어 버렸다는 참담함에 눈물이 흘렀다.
“들고 다니기 귀찮으니까.”
뾰족한 마개가 달린 사슬을 창조한 그녀가 리체라의 목에 대고 쑤셔 넣었다.
“케에에에! 케에에에!”
그런 다음 사슬을 허리에 칭칭 감아 옆구리 아래쪽에 달라붙게 했다.
“완성! 자, 이제 출발해 볼까? 어느 쪽이야?”
“…….”
거꾸로 뒤집힌 풍경 속에서 리체라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는지 의문했다.
‘정화될 때까지는 버티자.’
선배들에게 들은 얘기를 떠올린 리체라가 눈을 좌우로 굴리며 말했다.
“혹시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으면, 이 지역이 거인의 유골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머리가 놓인 곳으로 쭉 가면 라비에트라고 하더군요.”
“아하!”
힘차게 몸을 굽힌 유정이 크게 뛰어오르자 순식간에 지상이 멀어졌다.
“으아아아!”
핑글핑글 돌아가는 리체라의 시야에,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유골이 보였다.
***
마도 공학의 도시, 라비에트.
리안은 거리를 돌아다니는 마족들의 외형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의 감정이 다른 만큼 마족들의 형태도 제각각이야. 물론 아귀나 서큐버스 등 엄연히 종족이 구분되지만, 형태의 변화 폭은 상당히 커.”
시로네가 설명을 이었다.
“유전자를 기반으로 하는 인간은 손가락이 하나 더 있는 것조차 돌연변이로 여기지. 하지만 마족에게는 돌연변이가 없어. 마의 성향에 따라 종족이 분리되면 그때부터는 무작위로 태어나거든. 그래서 어떤 마족은 흉악하거나…….”
“크아아아!”
괴물의 얼굴을 가진 마족이 옆을 지나가며 시로네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어떤 마족은 현실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미녀가 시로네를 보더니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다음 순간 길에서 물건을 팔던 마족이 그녀를 쓰러뜨리고 발로 밟았다.
“퉤! 정신 나간 것 같으니.”
등 뒤에서 찌르는 마족의 시선을 느낀 시로네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꼭 인기가 있는 건 아니야. 어쨌든 형태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세계라고 할까?”
“……그렇군.”
주민들의 언어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어떤 사회인지는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시로네, 정말로 궁금한 게 있어.”
리안은 마족들이 아닌, 이 도시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구조물을 살폈다.
“넌 어떻게 제정신으로 이걸 보고 있는 거냐?”
성문에서부터 짐작했지만 모든 구조물에 어떤 식으로든 인간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렇지.”
시로네는 담담했다.
“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야. 하지만 오메가를 받아들이면서 수없이 경험한 거니까.”
거핀이 떠돈 시간만큼이나 길었다.
“어이, 야훼!”
가구를 파는 가판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이것 좀 사 가는 게 어때? 네가 딱 좋아할 만한 물건이 마침 들어왔는데 말이야.”
사람이 엎드려 있는 형태였고, 마치 생선을 회 친 듯 내장이 비어 있었다.
“하악! 하악!”
측면에 붙은 얼굴이 숨을 내쉬는 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마족이 탁탁 두드렸다.
“통짜야, 통짜. 완제품을 그대로 가공한 거라고. 계속 숨을 쉬니까 잘 썩지도 않아.”
현실로 따지면 조립식 가구가 아닌 통나무를 그대로 깎아 만든 물건이었다.
“어때? 하나 장만해. 싸게 해 줄게. 엉?”
입은 웃고 있으나 마족의 눈에 담긴 적의는 마치 원수를 대하는 듯했다.
리안에게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얌전히 만들고 올게.”
대직도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상인에게 몸을 돌리는 그때 시로네가 말렸다.
“괜찮아.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나에게 덤비지는 못할 테니까. 그냥 도발이야.”
마족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내뱉었다.
“뒈져 버려라! 야훼!”
퉤 하고 침을 뱉으며 하악 소리를 내자 리안의 목에 핏줄이 일어섰다.
“그래도 열 받는데.”
“마족이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나니까. 이 정도로 흥분하면 도시에 머물 수 없어.”
하루만이라도 시로네를 쉬게 해 주고 싶은 리안은 화를 가라앉혔다.
시로네가 식당의 간판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배고프지? 일단 뭐 좀 먹자. 대공이 어디 사는지도 들어야 하니까.”
“약간 출출하기는 하지만…….”
허기에 미칠 지경이었다.
“하하, 그럼 저 식당으로 가 보자. 나도 실제로 들어가는 건 처음인데, 그래도 먹을 만할 거야.”
리안은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마족의 언어로 무언가가 쓰여 있고 인간의 팔이 매달려 손짓하고 있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군.”
마도 공학의 도시(1)
“어서 오쇼! 파로메돈 식당…… 응?”
식당의 주인 파로메돈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2명의 인간을 쳐다보았다.
어디를 봐도 인간의 형태.
무엇보다 시로네를 접한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끔찍한 혐오감이 밀려들었다.
“야훼…….”
마족은 알고 있다.
순수한 마의 상태일 때부터 자신의 본질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배척하는지를.
시끌벅적했던 식당이 조용해지고 밥을 먹던 마족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먹기도 전에 체하겠네.”
어차피 지옥에서 시로네를 반기는 곳은 없기에 뻔뻔함이 생존 전략이었다.
“여기 두 사람요.”
중앙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리안이 맞은편에 쿵 하고 엉덩이를 찧었다.
덤빌 테면 덤비라는 기세에 시로네를 지켜보고 있던 마족들이 고개를 돌렸다.
“재수 없군. 입맛 다 버렸어.”
구석의 테이블에서 마족들이 일어서더니 카운터로 걸어가 카드를 건넸다.
“주인장, 여기 계산.”
라비에트는 은행 전산화를 통한 신용 대출이 정착되어 있는 도시였다.
카운터 옆에는 사람의 얼굴이 붙어 있었고 두개골이 열려 뇌가 보였다.
그 사이에 카드를 찌르자 사람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리안은 가게를 둘러보았다.
창자 같은 호스가 주방으로 향하고 있었고 안에서는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이런 게 필요하지? 단지 뭔가 만드는 거라면 지옥에도 돌이나 철은 있잖아.”
“정화되지 않은 마에는 생물의 기능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까. 게다가 소멸되지도 않고.”
시로네가 설명했다.
“생물의 육체는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 예를 들어 뇌는 전산에 활용되고, 눈은 렌즈의 역할을 하거나 정보를 전송하는 터미널이 되기도 해.”
테이블에 파묻혀 있는 눈동자를 손으로 가리자 천장에서 소리가 들렸다.
“주인장! 주문받아!”
“물론 재래적인 사용에 그치는 도시도 있지만 라비에트는 지옥의 첨단이니까. 이곳에서 개발한 기능이 지옥 각지로 퍼지게 되는 거지.”
“그 중심에 대공이 있다 이거지?”
“그렇지. 아마도 이곳에서 활용하는 기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그때 계산을 끝낸 파로메돈이 다가왔다.
“너 때문에 오늘 장사 망쳤어. 주문이나 해. 빨리 처먹고 꺼지라고.”
시로네가 이면 세계의 언어로 말했다.
“메뉴판 좀 주시면 안 될까요?”
파로메돈의 눈에 핏발이 일어섰으나 시로네는 태연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야훼, 지금 내 기분이 무진장 안 좋거든? 경고하는데 그냥 대충 먹어라.”
“메뉴판요.”
지옥이든 천국이든, 식당에서 한 끼를 먹는데 대충 고를 수야 없지 않겠는가.
“쳇!”
카운터로 향한 파로메돈이 메뉴판 2개를 테이블에 텅텅 떨어뜨렸다.
“됐냐?”
시로네는 신경 쓰지 않고 메뉴를 살폈다.
“음, 그러니까…….”
리안의 위력(위장의 힘)을 고려했을 때 그나마 괜찮은 것 몇 가지를 골랐다.
“푸몽이랑, 가르반초 3인분이랑, 기린자 큰 걸로 주세요. 빨리 되나요?”
대답 없이 메뉴판이 수거되었다.
“아귀 같은 마족을 제외하면 인육을 먹지는 않으니까 안심해도 될 거야. 현실에 없는 식재료라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르반초는 곱창 샐러드였고 기린자는 말의 허벅지만큼 커다란 스테이크였다.
음식을 놓은 파로메돈은 미라처럼 말라붙은 사람의 얼굴에 뼈로 만든 컵을 가져갔다.
왼쪽 눈을 누르자 남자의 입 밖으로 연녹색 즙이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