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90
“끼이이이이!”
고속 비행에 특화되어 있는 괴조가 라비에트의 성문 앞에 날렵하게 착지했다.
“엇차.”
이어서 화공사의 사장 레테가 뛰어내렸다.
“오랜만이네. 라비에트.”
턱 밑에서부터 도포를 끌어내리자 피곤에 지친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
“정지! 움직이면 발포한다!”
성벽 위에서 마족들이 소리치고, 철갑을 걸친 2명의 치안대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누구냐. 신원을 밝혀라.”
“응? 신원?”
레테가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에 치안대의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성문이 뚫린 탓에 밤새도록 구른 그들이었다.
“소속 영지가 어디냐고! 이름은 뭐고! 라비에트에 무슨 볼일인지 말하란 말이야!”
한쪽 눈을 질끈 감은 레테가 쏘아붙였다.
“시끄러! 하나씩 물어봐! 내 입이 10개라도 달린 줄 알아? 대공 만나러 왔다! 어쩔래?”
“뭐라?”
치안대의 손이 레테의 가슴팍을 붙잡았다.
“이게 진짜 미쳤나! 너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알아? 혓바닥 잘못 놀리면 그대로……!”
짝 하고 찰진 소리가 터졌다.
“…….”
치안대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즉결심판감이지만, 성벽의 마족들 중에 움직이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누구도 몰랐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따귀질이었고, 그럼에도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딜 만져! 확 그냥 날려 버릴까 보다!”
“전, 전원 공격!”
성벽 위의 마족들이 지침에 따라 화기를 겨누는 그때, 성문이 좌우로 갈라졌다.
쿵! 쿵!
철갑의 기사가 육중한 발걸음으로 등장했다.
“그만둬라.”
라비에트 7장군, 기마라.
갑옷기사라는 별칭답게 그가 입고 있는 갑옷조차 마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레테가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야, 기마라. 애들 관리 좀 잘해야겠다.”
1억 살이 넘은 치안대장의 이름을 면전에서 부르는 모습에 마족들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저기……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기마라가 땅에 큰 검을 박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송구합니다, 레테 님. 도시의 상황이 복잡하여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응? 레테?”
정체를 깨달은 마족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납작 엎드렸다.
“지옥의 어머니시여!”
“아, 시끄러! 바빠 죽겠는데 대체 무슨 일이야? 다들 겁에 질려 가지고 길이나 막고.”
“어젯밤 성문이 뚫렸습니다. 야훼의 농간일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경계를 강화한 것입니다.”
“야훼? 아, 그렇지! 야훼!”
기마라를 일으켜 세우는 시간도 아까운 레테가 쪼그려 앉아 얼굴을 맞댔다.
“여기 리안도 있지? 그 왜, 큰 검을 등에 차고 다니는 무식하게 센 인간.”
“……식당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대공을 찾는 것 같던데, 어제부터 종적이 묘연합니다.”
‘어제라. 아슬아슬했구나.’
레테의 얼굴에 안도감이 어렸다.
“지금 대공 고성에 있지? 안내해. 그리고 모노라스에게 내가 왔다고 전해 줘.”
기마라의 투구 속에서 의아한 눈빛이 번뜩였다.
“대공께서는 레테 님을 반길 것입니다. 하지만 비서실장은 도시에 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레테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무슨 소리야? 야훼가 이곳에 있다며? 그러니까 당연히 모노라스도 있어야지.”
“제 수비 반경은 라비에트를 훨씬 넘습니다. 단언컨대 비서실장은 도시는커녕 반경 100킬로미터 이내에 접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
손에 든 보따리가 툭 하고 떨어졌다.
“레테 님?”
그 순간 기마라는 범접할 수 없는 여신의 분노가 무엇인지 똑똑히 깨달았다.
“이 돼지 새끼가 진짜!”
마도 공학의 도시(5)
***
라비에트의 경비를 담당하는 3천 명의 병력이 도시를 샅샅이 수색했다.
“제기랄! 대체 어디 있는 거야?”
히든 코드로 운용되는 경비 시스템으로도 손유정의 위치가 포착되지 않고 있었다.
“3분대는 건물 안으로! 보이는 즉시 사살해라!”
치안대가 지나가고, 점액질로 만든 벽에서 사람의 형상이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살벌하네.”
손유정의 도술 중에는 일시적으로 사물과 동화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머리카락의 진동으로 율법을 바꾸는 ‘스트링’의 메커니즘은 헥사의 하위였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수는 없어. 대공의 성으로 쳐들어가든가,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지.”
허리춤에 매달린 리체라가 말했다.
“은신할 수 있는 시간은 3분이죠. 계속 머리카락을 뽑아서 가면 안 되나요?”
시선을 내린 손유정이 리체라의 머리를 들더니 점액질의 벽에 그대로 처박았다.
“욱! 욱!”
1분 정도 숨을 못 쉬게 만들고 떼어 내자 목만 남은 얼굴이 울상이었다.
“왜, 왜 그러세요?”
“남의 머리카락이라고 막 말하는 거야? 대머리 원숭이는 절대로 사양이야.”
사실 리체라의 전략은 유용했다.
그럼에도 선뜩 대공에게 가지 못하는 이유는 목에 걸린 긴고아 때문이었다.
‘긴고아를 해체할 수 있다면 작동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인데. 만약 그렇게 되면…….’
상상만으로 섬뜩했다.
‘절대로 안 돼! 평생 노예처럼 부려지느니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말지! 차라리 그냥 돌아갈까? 어차피 이 지옥에 이걸 쓸 수 있는 놈도 없을 텐데.’
실시간으로 표정이 변하는 손유정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리체라가 말했다.
“빨리 결정하세요. 갈 거예요, 말 거예요? 괜히 붙잡혀서 벽이 되기 싫다고요.”
라비에트의 건물에 산 채로 박혀 있는 인간을 보자 정화되고 싶은 간절함이 더 커졌다.
“생각 중이니까 입 다물고 있어. 지금 당장 벽에 박아 버리기 전에.”
“…….”
리체라가 입을 다문 가운데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도시를 잠식하고 있었다.
라비에트 병영.
“뭐야? 아직도 못 찾은 거야?”
의자를 뒤로 까닥거리며 앉아 있는 붉은 마족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특수기동대장 크로세이드.
양처럼 긴 뿔이 돋아 있고 피부에는 악마족을 상징하는 소용돌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빨리빨리 좀 하라고. 찾아내기만 하면 당장에 가서 해치워 버릴 테니까.”
집행대장 이타카는 말이 없었다.
‘거의 점령했다.’
책상에 깍지를 끼고 앉아 있는 그녀를 중심으로 검은 머리카락이 수면처럼 퍼져 있었다.
‘흑의 유산流産.’
이타카의 머리카락은 도시를 가득 채울 정도로 늘어나며 하나하나가 섬세한 신경이다.
“서북쪽.”
그곳에 신경을 집중하자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손유정의 위치가 잡혔다.
“마골 거리의 13블록 골목. 빠르지는 않아. 시속 23킬로미터로 이동 중이다.”
“여유 만만이군.”
의자에서 내려온 크로세이드가 무릎을 구부렸다.
“당장 가서 목을 끊어 오지.”
“방심은 금물이야.”
크로세이드의 허벅지가 풍선처럼 부풀면서 폭발적인 운동에너지가 발생했다.
“흥! 시간이나 재고 있어.”
말이 끝나는 순간 쾅 하는 소리를 내며 크로세이드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
눈을 감은 이타카의 주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생물처럼 넘실거렸다.
흑의 유산이 도시 전체를 장악하면서 더 이상 숨을 곳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 시커먼 거 뭐지? 되게 찝찝하네.”
“마족의 추적 능력일 수도 있어요. 지금 은신 능력을 사용하는 게 어떨까요?”
“그래 가지고 어느 세월에…….”
말을 멈춘 손유정이 눈을 부릅뜨더니 엄청난 속도로 상체를 뒤틀었다.
쾅 하고 땅이 폭발했다.
“호오, 피했어?”
연기 속에서 크로세이드가 나타나자 손유정이 두 자루의 여의를 꺼냈다.
다음 순간 치안대가 도착했다.
“저기다! 엇, 크로세이드 님?”
7장군 중의 하나가 있는 것을 확인한 그들이 사방으로 퍼져 도주로를 차단했다.
크로세이드가 검지와 중지를 펼쳤다.
“둘 중에 하나 선택해라. 여기서 맞아 죽든가, 죽은 다음에 맞든가.”
지옥에서는 가능한 일.
손유정의 두 눈에 화안금정이 켜지고, 여의를 쥔 손에서 뿌드득 소리가 났다.
“덜떨어진 요괴 따위가.”
“크크크.”
어깨를 들썩거린 크로세이드가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손유정이 증발했다.
굉음이 도시를 흔들었다.
***
대공의 성 앞에서 레테가 고개를 돌렸다.
“뭐지?”
갑옷기사 기마라 또한 소리에 담긴 심상치 않은 충격을 감지하고 있었다.
“침입자를 찾은 것 같습니다. 크로세이드가 출동했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단순 무력으로는 7장군 최강이었으니 레테도 걱정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성에서 일하는 마족들이 전부 마중을 나온 가운데 대공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지옥의 누구하고도 술 한잔 걸칠 수 있는 원로 중의 원로가 마그리트지만…….
‘확실히 뭔가 있어.’
화공사의 사장까지 무시하는 건 이례적이었다.
“대공께서는?”
집사 비엘만이 답했다.
“실험실에 계십니다. 아시잖습니까, 한번 들어가시면 언제 나오실지 기약이 없지요.”
“그래서 직접 찾아온 거야. 정말로 중요한 일인데, 실험실로 안내해 줄 수 있을까?”
“그런 기별은 받지 못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언행에 성에서 일하는 마족들이 놀란 표정으로 눈빛을 교환했다.
“비엘만.”
레테의 눈에 살기가 돌았다.
“네, 사장님.”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좋게 대해 주니까 대공이 나와 맞먹는 것처럼 보여?”
“누가 감히 지옥의 어머니를 무시하겠습니까. 다만, 저는 사실을 말한 것이옵니다.”
관철로 소멸을 각오했고, 책임을 넘기는 것으로 대공도 마찬가지라는 뜻이었다.
“하아.”
레테의 눈썹이 팔자로 휘어졌다.
“왜 그래, 진짜? 우리가 무슨 싸우는 사이야? 응? 비엘만 씨, 나야, 레테라고. 왜 그렇게 심각한데?”
“……죄송합니다.”
시선을 내리깐 채로 미동조차 없는 비엘만의 모습에서 레테는 직감했다.
“야훼. 지금 여기에 있지? 그리고 리안도. 누구 본 사람 없어? 적어도 문지기는 알 것 아냐?”
그녀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마족들이 얼어붙은 채로 침을 꿀꺽 삼켰다.
화공사의 사장을 눈빛으로 속일 수 있는 자는 지옥에서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
그럼에도 비엘만은 차분했고, 레테는 마족들의 눈에서 거짓을 찾지 못했다.
‘정말로 야훼가 없다고?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이미 손을 쓴 거야.’
비엘만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죄송합니다, 레테 님.’
마그리트가 머무는 고성에 시로네의 행적을 아는 마족은 1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저는 대공을 모십니다.’
비엘만이 전부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