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94
“이 멍청아! 싸워!”
호전성의 끝을 달리는 그의 입장에서는 시로네가 침입자보다 더 미워 보였다.
“얼빠진 자식! 내 손으로 죽였어야……!”
그의 심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손유정이 시로네를 향해 곤봉을 휘둘렀다.
‘끝났다.’
정말로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착시에서 벗어나자 믿을 수 없는 상황이 그의 머리로 전해졌다.
“뭐, 뭐야?”
자신조차 보지 못했던 일격을 시로네가 허리만 틀어서 회피한 것이다.
‘양자적 움직임.’
처음으로 곤봉에 걸리는 것이 없자, 손유정의 분신이 흥미롭게 눈을 빛냈다.
“우끼?”
시로네는 마그리트가 말한 억제율 7퍼센트를 떠올렸다.
‘93퍼센트 이상 야훼에 가까워지면 히든 코드가 풀린다. 레테가 떠날 때까지는 도시에 있어야 하는데.’
손유정의 분신이 짜증을 냈다.
“키이이익!”
아무리 공격을 이어 나가도 시로네를 맞히기는커녕 스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역시, 분신은 지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몇 가지 말을 기계적으로 내뱉는 것에 불과해.’
화신술에 속하는 근두운을 쓸 수 없다면 분신은 사실 반쪽만도 못한 존재였다.
‘악마족의 속성이 뭐였지?’
불과 전기.
‘그렇다면 나는…….’
양자적 움직임으로 자리를 이동하자 손유정의 분신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동물적 감각.
자연계에 존재할 수 없는 현상 이전의 확률을 경험하고 경계하는 것이었다.
그저 등 뒤로 접근하는 것뿐이지만 손유정의 분신은 괴성을 내질렀다.
“키이이이이이!”
그리고 분신이 낼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몸을 뒤틀며 곤봉을 휘둘렀다.
붉은 잔상이 고개를 숙인 시로네의 머리 위를 허무하게 지나가고…….
‘일렉트릭 포톤 캐논.’
푸른 전기를 띠는 구체가 시로네의 손아귀 위에서 무섭게 번쩍거렸다.
‘이거나 먹어라.’
그대로 복부에 처박는 것과 동시에 손유정의 머리털이 전부 곤두섰다.
“……!”
괴성조차 내지르지 못한 채 입을 크게 벌리고 서 있던 그녀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후우, 난감하네.”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듣기 위해서는 본체를 만나야 하지만, 그건 또 다른 문제를 예고했다.
“너, 너…….”
한편 이샤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시로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과 전기를 다루는 건 악마족의 특성이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움직임은…….’
일개 마족에게 허락된 능력이 아니었다.
“이름, 아니.”
끊어진 어깨를 붙잡고 몸을 일으킨 이샤크가 시로네에게 무릎을 꿇었다.
“존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로열이시여.”
“네?”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우리 같은 마족과는 격이 다른 마를 가진 분. 사탄의 살도, 피도 아닌, 정신을 계승한 존재에게 무례를 범했습니다.”
소수의 혈통만이 물려받을 수 있는 히든 코드가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샤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부디 존함을 들을 수 있는 영광을…….”
시로네는 오메가의 기록을 통틀어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을 찾아냈다.
“유피.”
“오오, 멋지시군요. 지성적이면서도, 로열의 외모에 딱 맞는 존함입니다.”
지옥에는 거짓말을 뜻하는 단어가 4천 개가 넘고, 유피의 뉘앙스는 ‘짧은 거짓말’이었다.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안부를 물었을 때, 그냥 잘 지낸다고 대답하면 그것이 유피다.
“유피 님, 특수기동대의 대장이 되어 주십시오. 소신이 혼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가급적 눈에 띄고 싶지 않았으나 생각해 보니 마족의 성향은 현실과 정반대였다.
‘여기서 거절하면 더 이상하지.’
마치 사장이 퇴근하라고 했는데도 더 일하겠다고 소리치는 직원 같은 느낌이랄까.
‘반드시 강한 자가 지배한다.’
지옥의 철칙이었다.
“좋아. 특수기동대에 나보다 강한 자가 없다면 내가 너희들을 이끌도록 하겠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소신도 부대에서 결코 약하지 않으나 유피 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샤크는 끊어진 팔뚝을 미련 없이 버린 후 시로네를 데리고 도심으로 되돌아갔다.
손유정의 분신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는지 여기저기에 마족의 시체가 보였다.
‘진짜 난장판이네. 이 정도라면 며칠 안에 라비에트를 궤멸시키겠어.’
“잠시 기다리십시오.”
그렇게 말한 이샤크가 임시로 차려진 지휘관 막사의 천막을 걷고 들어갔다.
“현 시간을 기준으로 13블록, 27블록, 66블록에서 포착되고 있고……. 넌 뭐야?”
집행대장 이타카가 설명을 끊자 3명의 장군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 급하게 보고드릴 일이 있어서,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전신의 피부가 화상처럼 일그러진 거구의 마족이 이샤크를 가로막았다.
수비대장 모오놈이었다.
“결례인 줄 알면 하지를 마. 무슨 일이야? 그리고 팔뚝은 또 왜 그래? 당했냐?”
얼굴이 흘러내려 한쪽 눈만 가졌고, 입술도 타 버려 치열이 전부 드러나 있었다.
“네. 하지만 한 놈을 해치웠습니다.”
깍지를 끼고 음침하게 듣고 있던 이타카의 눈썹이 순간 꿈틀했다.
“그래서 몇 가지 정보를 전해 드리면…….”
오리스가 말을 끊었다.
“해치웠다고? 정말로 네가?”
들어오는 보고가 정확하다면, 현재 침입자를 무력으로 제압한 유일한 부대였다.
“아니,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가호로 특수기동대에 뛰어난 악마가 한 분 계십니다.”
기마라가 물었다.
“지금 어디 있지?”
“천막 밖에서 기다리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타카가 내뱉었다.
“들여보내.”
잠시 후 이샤크가 악마족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자 막사에 정적이 흘렀다.
‘작잖아? 악마족은 육체 능력이 강점인데. 어떻게 침입자를 해치웠지?’
그때 오리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너?”
모두가 그녀를 돌아보는 가운데 시로네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하하, 안녕하세요?”
다른 신념(4)
***
대공의 실험실.
레테는 어색할 정도의 침묵을 유지한 채 주위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메르케데,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감추며 메르케데가 두 무릎을 구부렸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대공이 아닌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은 시작이었다.
“대공.”
레테의 눈빛이 다시 싸늘해졌다.
“이유가 뭔가요?”
“무슨 말씀이신지, 그렇게 앞뒤를 자르면 아무리 저라도 알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야훼를 돕는 것입니까?”
“…….”
잡아떼려면 떼겠지만, 지금보다 민망한 상황은 그들의 취향이 아니었다.
레테가 말했다.
“정화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습니다. 어떤 인간이 게헨나의 사슬을 끊었어요. 대공이 살펴봤으면 싶어 비서실장을 보냈으나, 다른 곳으로 새어 버리는 바람에 제가 직접 오게 된 것입니다.”
마그리트는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된 것이로군. 모노라스가 먼저 왔다면 나는 당연히 화공사의 편에 섰을 것이다.’
선착순 같은 게 아니다.
‘우연이란 개념은 인간의 논리에 불과. 지금 이 상황도 5억, 아니 10억 년도 전에 시작되었을 어떤 원인의 결과일 뿐인 것을.’
본래 대공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레테의 의지를 받들어 지옥을 유지하는 것과, 사탄의 의지를 받들어 전세를 역전시키는 것.’
먼저 도착한 것은 시로네였다.
‘게헨나의 사슬이 끊어진 것은 레테에게는 당연히 오류. 하지만 사탄에게는 기회다.’
진성음의 카르마를 정화시킬 수 있다면 심령권이 다시 열린다는 뜻이기에.
“레테 님.”
마그리트는 전쟁을 택했다.
“카르마 체인이 끊어진 것은 인간의 의지가 지옥을 부정했다는 뜻입니다. 이는 해결이 아닌 관철의 문제이지요. 시대가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탄께서 관철시키도록 지켜볼 수는 없는 것입니까?”
아직 밝히지 않은 전제를 사실로 가정한다면, 대공의 말은 이해가 된다.
“언제부터 지옥이 야훼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죠? 아니, 어째서 그들은…….”
야훼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루시퍼나 베히모스까지 가지 않아도, 박애를 끝내 증오하지 못한 자들은 있었죠. 대공도 그렇고요.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족이 아니니까요.”
레테는 관리자였다.
“처음 지옥에서 태어났을 때, 저는 지성종으로 최고의 능력을 가진 마족이었죠.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싸웠고, 정복했고, 연구했습니다.”
마그리트는 당시를 회상했다.
“멋진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함을 증명한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세계. 그런 저에게 박애란 비논리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개념이었죠.”
레테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증오하는가? 우리는 박애의 사생아이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적인 측면이죠. 마족이 태어나기 이전에 인간의 감정이 있어야 한다는, 프로세스 처리의 우선순위에 따라 발생하는 숙명이랄까요?”
관리자의 영역으로 들어가자 레테의 눈동자가 기계처럼 무심해졌다.
“거기까지는 괜찮습니다. 문제는 야훼가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이죠. 그는 프로세스를 역류하는 존재입니다. 시스템의 테러리스트. 속된 말로 자기가 싸질러 놓고는 버린 게 아니라고 말하는, 심지어 본인에게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그 뻔뻔함에 치가 떨리는 것이죠.”
마그리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지성종처럼 분석은 못하더라도 마족은 태어날 때부터 그런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참회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죠. 왜 그럴까요?”
레테는 대답이 없었다.
“철면피이기 때문입니다.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말하는 그 당당함이 너무나 역겹고, 증오스럽고, 찢어발기고 싶지만…….”
또한 너무나 뻔뻔해서.
“정말로 그렇지 않을까, 싶은 것이지요.”
“…….”
“야훼는 아무 잘못도 없는 게 아닐까?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를 버린 게 아니라면, 마족도 언젠가는…….”
마그리트가 천장을 가리켰다.
“이 시스템의 프로세스를 역류해서 진정한 세계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혐오의 감정을 담아 ‘구원’이라 부른다.
***
오리스는 당황스러웠다.
‘저 아이가 침입자를 해치웠다고? 겁에 질려 전장에서 도망친 탈주병이었는데.’
이샤크가 소개했다.
“이분의 이름은 유피. 사탄의 정신을 계승한 로열의 혈통이십니다.”
7장군의 표정이 급변했다.
로열은 지옥의 군대 군단장, 혹은 공작의 작위까지 오를 수 있는 혈통이었다.
이타카가 오리스를 돌아보았다.
“아는 사이인가?”
“응? 어, 그러니까…….”
시로네가 눈치 빠르게 대신 답했다.
“조금 전에 도움을 받았어요. 용기가 없어 도망치는 저에게 진정한 마족의 길을 일러 주셨죠.”
“아니,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오리스가 고양이 발톱으로 콧잔등을 긁는 가운데 모오놈이 외눈을 치켜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침입자를 처단했으니 상이라도 달라는 거냐?”
이샤크가 고개를 숙였다.
“유피 님을 특수기동대의 대장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이끌게 해 주십시오.”
“개소리!”
모오놈이 테이블을 박살 냈다.
“크로세이드는 최강의 전사였다. 저 비실비실한 녀석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아?”
“모오놈 님.”
이샤크가 눈을 부릅떴다.
“저에게는 얼마든지 하대하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유피 님에게는 말을 가려서 해 주십시오.”
악마족으로서 당연히 해야 될 말이나 모오놈은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
“흥! 그것도 정말로 대장이 되었을 때의 얘기지. 저 유피가 7장군만큼 강하다는 것이냐?”
“…….”
이샤크는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