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95
로열의 혈통이라면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를 테지만 7장군에 비하면 경험이 일천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타카가 깍지를 낀 자세로 말했다.
“유피가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은 인정하나, 해치운 적은 허상이다. 실체는 하나야.”
‘어라?’
시로네가 의외라는 듯 돌아보았다.
‘집행대장 이타카.’
7장군 중에서 유일한 로열의 혈통이라는 것이 조금 전의 말로도 증명이 되었다.
‘분신이 아니라 허상이라고 정의했다. 탐색의 정밀도가 내 감각과 맞먹는다는 얘기.’
물론 감각에 국한되는 것이지만.
“이렇게 하지. 현재 도시에는 허상들이 퍼져 있다. 그중 진짜는 하나. 가장 먼저 그 녀석을 죽인 자에게는 무공훈장을 건의하겠다.”
이타카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유피가 실체를 잡으면 무공훈장에 더해 대장직을 추천하도록 하지.”
“크크, 그거 괜찮군.”
모오놈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잘됐구나, 애송아. 우리와 직접 대결했으면 승산이 없었을 텐데, 이건 운도 작용하니까.”
이타카는 여전히 차가운 목소리였다.
“경쟁도 좋지만 적당히 해. 임무 수행에 방해될 정도라면 징계를 내릴 테니까. 필요할 경우에는 넷이서 협력하는 수단도 상정해라.”
“여섯이겠죠.”
7장군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저쪽 어둠 속에 2명이 더 있는 것 같은데요. 굉장히 정숙한 기운이지만.”
시로네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이타카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제법 촉이 좋은 놈이군.”
야간경비대장 일각과 백사일 테지만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내기에서 빠진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죽을 것 같으면 도와줄 테니.”
기척이 사라졌다.
“간만에 총출동인가? 크로세이드가 없으니 무공훈장은 아무래도 내 것이겠군.”
모오놈이 출동할 채비를 했으나 가장 먼저 막사를 나간 건 시로네였다.
“가자, 이샤크.”
7장군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시로네의 뒤를 따르는 이샤크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과는 분위기가 달라.’
탈주병의 오명을 썼을 때와 비교하면 누구보다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하긴, 로열의 혈통이시니, 경쟁에서 피가 끓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
해석은 틀렸지만 실제로 시로네는 이번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손유정은 내가 찾아야 해.’
직접 느낀 7장군의 힘은 결코 약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가항력일 터였다.
‘손유정이라면 라비에트를 초토화시키는 데에는 3일도 걸리지 않을 거야.’
마그리트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가짜는 패스하고 진짜를 찾을 거야. 아마 못 따라올 테니까 병력을 수습해라.”
대답을 듣기도 전에 시로네의 육체가 섬광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로열이시여…….”
이샤크는 감격에 몸을 떨었다.
7장군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면서 손유정의 분신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뭐야? 별것도 아니잖아!”
생물학적인 진화를 거듭하는 모오놈의 신체는 점차 기괴하게 변해 가고 있었다.
“흐읍!”
전신에서 가시를 뿜어내자 반경 30미터에 있는 손유정의 분신들이 꿰뚫렸다.
“키익! 킥!”
가시를 더듬거리며 괴성을 내지르던 분신들이 잠시 후 빛으로 화했다.
“쳇! 전부 꽝이야?”
모오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가짜라고 해도 너무 약한데. 크로세이드가 정말 이런 놈에게 당했다고?’
마족에게 특별한 전우애는 없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했던 사이였다.
“용서할 수 없어.”
입술 없는 치열이 뿌드득 갈리는 그때 건물 저편에서 굉음이 터졌다.
비정상적인 충격을 감지한 그가 돌아보자 7층 건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거기냐?”
“하아아악!”
손발톱을 바닥에 박은 오리스가 피를 흘리는 얼굴로 위협음을 내질렀다.
그녀의 눈에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손유정이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진짜 강하다.’
무엇이 강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지고 있는 전투 능력치가 전부 최상이었다.
리체라가 폭소했다.
“푸하하하! 꼴좋다, 거지같은 마족들. 손유정 님! 어서 빨리 사지를 끊어 버려요.”
한낱 인간의 조롱에도 오리스는 침묵했다.
‘저 인간을 데리고 다니는 게 본체. 가짜하고는 수준이 달라. 이대로 두면 도시가 궤멸할 거야.’
적과 함께 죽기로 작정한 오리스가 엉덩이를 뒤로 빼며 털을 전부 곤두세웠다.
“응?”
손유정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무서운 속도로 쇄도했다.
“키야아아아옹!”
육체가 도달한 시간은 사람의 눈꺼풀이 채 절반도 감기기 전이었으나.
“느려.”
손유정은 이미 한 바퀴를 돌아 오리스의 뒤통수를 향해 여의를 휘두르고 있었다.
‘분하다.’
전투 의지를 상실한 그녀가 모든 것을 체념하며 몸에서 힘을 빼는 순간이었다.
“응?”
고양이의 눈동자에 붉은 마족의 잔상이 비쳤다.
“……!”
대응할 겨를도 없이 오리스를 밀어낸 시로네가 손유정에게 파고들었다.
‘이 녀석이 본체라면…….’
평범한 위력으로는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터.
‘화신에 직접 때린다.’
미라클 스트림이 포톤 캐논으로 압축되면서 손유정의 복부를 정통으로 강타했다.
“허억!”
불가항력의 충격에 당한 그녀가 괴성을 내지르며 시야 끝까지 날아갔다.
벽에 쓰러진 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유피?”
어린 악마족이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요?”
단련의 한계 (1)
한참 동안 시로네의 얼굴을 쳐다보던 오리스가 정신을 차리고 손을 맞잡았다.
“어, 그래. 고마워. 그런데…….”
그녀의 동체 시력으로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건 없었다.
“어떻게 한 거야?”
양자적 무브먼트에 이은 화신 파괴의 깨달음을 설명할 도리는 없었다.
‘설명해서도 안 되고.’
지금은 어디까지나 야훼가 아닌 유피였다.
“아직 안 끝났어요. 이 정도로 당할 상대가 아니니 일단 자리를 피하세요.”
오리스는 입술을 내밀었다.
‘뭐야, 이제는 막 무시하네? 너무해.’
그럼에도 대꾸할 수 없는 이유는 손유정의 무위를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면 대결에서 졌으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같이 싸우는 게 어때? 나라면 충분히 미끼 정도는…….”
그때 측면의 벽이 쾅 하고 폭발하더니 기괴한 육체로 진화한 모오놈이 도착했다.
“후우우우!”
한쪽 팔이 농게처럼 거대했고 두상은 길게 늘어나 뒤통수가 등에 닿았다.
시로네는 깨달았다.
‘초진화.’
단순히 육체에 적용되는 돌연변이가 아닌 뇌의 기능까지 진화한 상태였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모오놈은 주위를 한번 훑는 것으로 상황을 짐작했다.
“저곳으로 날아갔나?”
엄청난 저음이었다.
“모오놈, 적은 상상외로 강하다. 7장군이 모두 힘을 합쳐야 해. 특히 유피의 힘을.”
모오놈의 외눈이 시로네를 주시했다.
“……그런가?”
막사에서 드러낸 난폭한 기질은 지성의 눈빛에 통제되어 있었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로열의 혈통이 틀림없겠지. 하지만 나는 1억 년을 단련한 전사다. 싸워 보지도 않고 물러서는 성격이 아니야.”
모오놈의 진화는 돌연변이를 기반으로 한다.
“나는 2.7퍼센트의 확률을 뚫고 4세대 격변에 도달했다. 내가 죽일 수 있어.”
7장군이 아닌 다른 자가 적을 꺾는다면 크로세이드에게 쪽팔리는 일이었다.
모오놈이 전방을 돌아보자 손유정이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너.”
그녀의 표정은 심각했다.
“방금 나에게 한 그거, 어떤 기술이지?”
호전적인 그녀가 먼저 대화를 청한 이유는 단순히 위력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화신에 금이 갔다.’
일개 마족의 공격에서 부처의 묵직함을 느낀 것은 착각으로 벌어질 수 없는 일.
‘깨달음이 들어간 일격이야. 그것도…….’
나네에게 맞은 느낌이라면, 경지의 깊이가 부처에 준한다는 뜻이었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능력치의 손유정도 득도 앞에서는 찝찝할 수밖에 없었다.
시로네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모오놈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네가 크로세이드를 죽였냐?”
말 그대로 지옥에서나 볼 법한 외모였으나, 손유정은 1초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붉은 여의가 시로네를 겨누었다.
“대답해. 정체가 뭐야? 어떻게 파계의 진의를…….”
쾅!
모오놈의 거대한 주먹이 손유정의 측면을 후려치면서 벽에 처박혔다.
“쯧. 별것도 아닌 게.”
주먹을 거두자 유기체의 벽면에 도장처럼 찍힌 손유정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죽고 싶냐?”
손유정이 비로소 자신에게 집중하자 만족한 모오놈이 어깨를 빙빙 돌렸다.
“확실히 단단하긴 하군. 하지만…….”
웅 하고 공기가 진동하더니 모오놈이 거구를 날리며 연타를 퍼부었다.
“부서질 때까지 치면 그만이지.”
손유정이 날렵하게 허리를 뒤틀며 접근하려는 순간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응?”
마치 예상했다는 듯 모오놈의 주먹이 급격히 궤도를 바꾸어 그녀를 강타했다.
쾅! 쾅! 쾅! 쾅! 쾅!
수십 발의 공격이 거의 동시에 찍히는 가운데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렇게 빠른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내 움직임을 예측하는 거지?’
초진화로 4세대 격변에 도달한 모오놈의 아이큐는 무려 1,700대에 육박했다.
‘보인다, 모든 변수가. 네가 어떻게 움직이든 나는 절대로 놓치지 않아.’
연타의 속도가 빨라졌다.
“크하하하! 죽어라! 내가 최강의 마족이다!”
오리스가 중얼거렸다.
“4세대 격변. 죽을 각오를 하고 진화를 거듭한 거야. 하지만 저 능력이라면…….”
손유정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저 정도로는 안 돼.”
실제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는 쪽은 연타를 거듭하는 모오놈이었다.
“크으으으!”
단단하다?
아니, 분명 때리는 손맛은 살아 있다.
‘그렇다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생물이라는 거다. 그런데, 그런데 왜?’
무호흡의 한계까지 도달한 모오놈이 악을 질렀다.
“부서지지 않는 거야!”
유피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은 오리스가 즉각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7장군 2명의 연계 공격이 이루어졌으나 압도하는 쪽은 오히려 손유정이었다.
“안 되겠다, 너희들. 자격 미달이야.”
두 자루의 곤봉을 현란하게 휘두르던 손유정이 갑자기 허리를 뒤틀었다.
“죽어.”
엄청난 운동에너지가 발생하면서 시간이 느려지고, 주위의 건물들이 바깥으로 휘어졌다.
‘어?’
오리스는 입술을 오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