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02
31장. 새로 태어난 죽음에게(2)
원천강이 나타났다는 곳은 병원의 장례식장이었다.
하필 생을 마무리하는 곳에 운명의 강이 씌었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원천강의 신이 누구인지 아느냐?”
입구에 선 삼신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특별할 것 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눈이 나를 향하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긴장을 느끼며 대답했다.
“……‘오늘이’입니다.”
원천강 신화의 주인공은 운명신 ‘오늘이’였다.
어찌 된 영문인지 부모 없이 학이 물어다주는 음식을 먹고 자라난 그녀는,
어느 날 모든 것을 대답해준다는 원천강의 소문을 듣고 부모를 찾아서 원천강으로 떠나게 된다.
오늘이는 원천강으로 가는 길에,
옥황상제의 명으로 하염없이 글을 읽던 장상도령에게 도움을 받는 대신,
대체 언제까지 글을 읽어야 하는지 원천강에게 물어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여의주가 세 개인데도 승천을 못 하는 이무기에게 도움을 받는 대신,
왜 승천을 못 하는지 원천강에게 물어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꽃을 한 송이밖에 피우지 못하는 연꽃나무에게 도움을 받는 대신,
어떻게 하면 꽃을 다 피울 수 있는지 원청강에게 물어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마지막으로 하염없이 글을 읽던 매일낭자의 도움을 받는 대신,
언제까지 글을 읽어야 하는지 원천강에게 물어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마침내 원천강에 도착한 오늘이는 천신의 의무를 다하느라 이승에 내려오지 못했던 부모를 만나고,
도움을 줬던 이들이 부탁한 질문에도 답을 받아와 그들이 소원을 이룰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준 뒤,
그녀는 이무기가 준 여의주와 연꽃나무가 준 연꽃을 들고 한반도의 운명신이 된다.
“그래, 오늘이야.”
삼신이 대답했다.
“운명에 맞서려고 너는 오늘에 섰구나.”
나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눈은 결코 따스하거나 부드럽지 않았으나, 탯줄을 끊게 될 것이라 예언하며 나를 내려다보던 살벌한 눈과도 분명 달랐다.
“원천강을 상대하려면 원천강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삼신이 말을 이었다.
“원천강은 승천하지 못한 뱀의 모습으로 널 맞이하겠지.”
그녀는 원천강의 공략법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딱히 어렵지 않아. 네가 원천강의 신화를 알고 있다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삼신은 그것을 굳이 풀어 이야기하지 않았다.
“진짜 시험은 원천강이 너그러이 네 질문을 받아줄 때다. 던전을 나가려면 반드시 질문에 대한 답을 들어야 해.”
잠자코 설명을 들으면서도, 삼신의 말을 곧바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너그러이 질문을 받아준다는데 그럼 대체 무엇이 문제라는 것일까.
“원천강이 답한 이상 그것은 반드시 운명이 된다.”
“……아.”
반드시.
그렇다면 원천강이 말한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실현된다는 뜻일 터.
단순히 답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답이 다가올 미래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원천강의 말에 그 정도의 힘이 있는 것이라면…… 삼신이 마땅히 주의를 줄 만도 했다.
“하찮은 질문은 할 수 없어. 원천강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진심으로 원하는 질문을 해야 해.”
그런데 계속되는 그녀의 말에 불현듯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것이 운명인 이상 답을 들으면 벗어날 수도 없지.”
2만 년의 세월을 태어난 것들의 왕으로 군림해 왔던 신이, 운명을 품은 원천강을 두려워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저 욕망을 솔직하게 말할 수도 있어. 그리하면 그 욕망은 반드시 이루어지겠지. 하지만 운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신화적 존재로서 모든 운명을 점지해 온 생불왕은 그렇게 말하고선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안 돼.”
그녀가 침묵한 시간은 짧았지만, 다시 말을 잇는 목소리는 한결 나지막했다.
“모든 새로 태어난 것들은 욕심이 너무 많아. 때로는 그 욕심 때문에 깨지고 다치는데도 좀처럼 줄지를 않지. 태어난 것들이란 게 원래 다 그래.”
뜻밖에도 자조가 깃든 어투였다.
“그러니 죽음이여, 네가 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다시금 생불왕의 위엄을 담아 단언했다.
“생의 끝에서 과연 욕심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냔 말이다.”
삼신은 해야 할 말은 모두 말했다는 듯 다시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 모습을 눈으로 좇다 이내 그녀를 따라 장례식장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 (!) 공간의 지배법칙이 바뀝니다. ]던전의 입장을 알리는 팝업창이 떴다.
[ ‘원천강’에 입장하셨습니다! ]– (!) 해당 던전의 등급은 ‘영웅담’입니다.
– 클리어 조건 : 원천강의 시험을 통과하십시오.
장례식장의 풍경도 완전히 바뀌었다.
건물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새하얀 빛으로 칠해 놓은 듯 순백한 공간에 맑고 투명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투명한 푸른빛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강이었다.
“……!”
그런데 그 풍경을 눈에 담자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듯 심한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나는 조금 비틀거리며 눈을 감았다.
악인의 업을 느낄 때와는 또 다른, 멀미와 같은 현기증이었다.
아무래도 업경의 권능이 비춰 낸 원천강의 본질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정보량이 너무 막대한 나머지 순간적으로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불시의 공격과도 같은 충격이었지만, 덕분에 운명을 품은 강이 어떠한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원천강은 정말로 세상의 모든 것을 품을 만큼 깊고 넓은 강이었다.
강이라는 이름보다는 기실 바다가 더 어울리리라는 감상마저 뒤따랐다.
“이거……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는데.”
눈을 뜨고 다시 강 앞에 섰다.
의식적으로 업경의 권능을 닫자, 비로소 그 아름다운 정경만이 눈에 들어왔다.
“우와…….”
강을 내려다보던 나는 무심결에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사계절을 품은 강이라더니.
투명하게 물결치는 강의 표면 아래로 꽃잎이며 낙엽, 싱그러운 신록과 흰 눈발이 한데 뒤섞여 반짝이고 있었다.
무척이나 거대하고 더없이 화려한 스노글로브 같았다.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멍청히 서 있을 게냐!”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그저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는데, 삼신의 호통이 크게 울렸다.
“어서 들어가라, 못난 놈!”
동시에 무지막지한 힘이 그대로 등을 떠밀었다.
첨벙!
나는 대처할 새도 없이 강물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세상의 모든 것을 품어 낼 수 있는 웅대한 강의 수압이 온몸을 덮쳐 왔다.
“윽……!”
여느 물속처럼 숨이 막혀 오는 감각은 없었으나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사계절의 꽃잎과 눈발 따위로 시야가 어지러웠다.
중심을 잃은 몸은 바닥없이 깊은 강 아래로 자꾸만 꺼져 들었다.
어떻게든 다시 위로 올라가려 팔다리를 휘저어 봤지만, 무거운 추에 발이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끊임없이 가라앉기만 했다.
-쉬이익!
그때 어딘가에서 기포가 바글거리는 소리와 뒤섞여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쉬이이익!
등골을 스치는 섬뜩함에 어설프게 몸을 움직여 뒤를 돌아보았다.
“……뱀?”
마주한 것은 몹시 커다란 눈동자였다.
샛노란 홍채에 동공이 길게 찢어진 눈.
그것은 거대한 뱀을 넘어 거의 용에 가까운 이무기였다.
이무기로서는 드물게도 이미 용의 뿔이 자란 데다가, 발톱이 길게 돋은 앞발에는 커다란 여의주까지 들었다.
이미 두 발에 여의주가 하나씩.
한데 입에도 똑같은 여의주를 또 하나 물고 있었다.
“……여의주가 세 개라니.”
너무도 특징적인 모습에 나는 눈앞의 이무기를 바로 알아보았다.
“원천강 신화의 이무기구나.”
용처럼 거대한 이무기는 굵고 긴 식물의 줄기에 몸통이 묶인 채였다.
아마 꽃이 피지 않은 연꽃나무겠지.
원천강을 찾아 나선 오늘이에게 어찌하면 꽃을 다 피울 수 있는지를 물어보던 연꽃나무.
-쉬이이이익!
이무기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콰르르르르!
거대한 이무기의 몸짓에 따라 강물도 사정없이 나를 압박했다.
깊고 웅대한 강은 작은 물결만으로도 이리저리 내 몸을 뒤흔들었다.
“이런……!”
어떻게든 무너진 자세를 회복하려 의식을 집중하고, 인벤토리에서 검수엽을 꺼내 손에 쥐었다.
[ ‘원천강’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직후 전투 개시를 알리듯 팝업창이 떴다.
-쉬이이이익!
선수를 잡은 이무기가 육중한 몸을 휘둘러 왔다.
콰르르르!
콰르르르르!
거센 물결이 연달아 내 몸을 내리쳤다.
힘겹게 방어 자세를 취하며 물결에 흔들리는 와중 이무기의 거대한 머리가 소리 없이 코앞에 다가왔다.
-쉬이이이익!
이 몸을 못 쓰게 만들기에는 단 하나로 충분할 것 같은 이빨들이 수십 개의 날카로운 빛을 흘렸다.
이무기는 금방이라도 내 몸이고 뭐고 다 찢어발길 듯 매서운 기세를 내뿜었다.
퍼어억!
그러나 이무기는 그 위험한 이빨 대신 머리로 나를 들이받았다.
각각 여의주를 잡고 있느라 이빨과 발톱이 묶여버린 것이다.
“우윽……!”
그럼에도 거대한 몸집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나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가 꼬르륵 물속을 굴렀다.
아팠다.
다만 예상했던 것보단 버틸 만한 고통이었다.
-쉬이이익!
-쉬이이이익!
이무기는 계속해서 위협적으로 날 노려보았지만, 연꽃줄기에 묶인 탓에 그 이상 내게 다가오지 못했다.
물살을 견디며 내 두 발로 선 나는 이무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한자리에 묶여 있으니까 그냥 계속 치고 빠질 수도 있겠는데…….”
묶인 채로도 여전히 나를 머리로 들이받으려 하는 이무기를 피해 뒤로 한 걸음 몸을 물렸다.
“으음, 그래도 설마 그런 치사한 공략은 아니겠지?”
난감한 마음에 턱을 문질렀다.
연꽃에 묶여 덤벼들지 못하는 이무기는 그저 난폭하게 몸부림치는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좀 여유가 생겨서일까?
보다 보니 어쩐지…… 입에 문 여의주를 포기하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듯 박치기만 시도하는 이무기가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빨로 물어뜯으려 했으면 금방 항복했을지도 모르는데.”
입에 문 여의주 하나, 두 발에 각각 쥔 여의주 둘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이무기를 내려다보며 나는 원천강 신화를 상기했다.
-오늘이여, 원천강에 가거든 여의주를 세 개나 품은 내가 어찌 승천을 못 하고 있는지 물어봐주시오.
이무기의 부탁에 오늘이는 원천강의 답을 들려주었다.
-그것은 그대가 여의주를 너무 많이 품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오르는 것은 하나만으로 충분할 터이니, 둘은 이제 그만 내려놓으십시오.
이무기의 질문과 오늘이가 전한 원천강의 대답을 곱씹으며, 나는 검수엽을 들었다.
“때로는 욕심이 참 나를 우습게 만들죠?”
다소 친근하게 말을 붙여보면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물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살다 보면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풀리는 일도 있더라고요.”
재차 날 들이받으려 하는 머리를 피해, 이무기의 왼발이 품은 커다란 여의주에 검을 박아 넣었다.
쩌어어억!
검수엽에 내리 찍힌 여의주는 표면에 굵은 금이 빠르게 번지더니.
파장창!
이윽고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쉬이이익!
-쉬이이이이익!
여의주 하나를 잃은 이무기가 더욱 거세게 몸부림쳤다.
와중에도 입에 문 여의주는 놓지 않은 채로 자꾸만 어설프게 나를 들이받으려는 공격만 반복되었다.
덩달아 요동치는 물결에 이를 악물면서도, 이무기의 어리석은 모습에 실소가 새어 나갔다.
원천강이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은지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노려야 할 것은 이무기가 아닌 여의주.
운명에 맞서는 자들이 벗어나야 할 아집이었다.
나는 거친 물살을 헤치고 이무기의 단조로운 공격을 피해 오른발이 쥔 두 번째 여의주에 검을 꽂았다.
파장창창!
두 번째 여의주마저 산산이 조각 나버린 순간.
파아아아앙!
이무기를 중심으로 눈부시게 빛이 산개했다.
[ ‘원천강’이 당신을 품으로 불러들입니다. ]새로운 팝업창이 떴다.
-나를 찾아온 이여.
사계절을 품은 강이 시야에 가득히 들어왔다.
색색의 꽃잎과 하얀 눈발, 푸르른 초목과 흩날리는 낙엽 속에서 원천강이 내게 속삭였다.
-그대는 무엇을 바라서 나를 찾아왔는가?
삼신이 말한, 원천강의 진정한 시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