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125
38장. 죄인(3)
하얗게 얼어붙은 얼음 산호 궁전.
사방에서 얼음을 두른 용신들이 걸어 나왔다.
오징어, 게, 상어.
다양한 모습의 용신들은 그 수가 열댓은 되어 보였다.
모두 갑주며 창검으로 무장한 상태였지만 움직임이 느리다는 약점이 있었다.
-멍멍!
강림 형의 품에서 뛰어내린 멍군이 용맹하게 짖으며 내 앞에 섰다.
“그래, 왕을 지키는 것을 우선해라.”
이제야 조금 마음에 든다는 듯 누그러진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는 형 또한 버릇처럼 나를 가리고 섰다.
“어떻게 할까, 전하. 일단 저 생선들을 쓰러트리면 되는 거야?”
암녹색 신성을 휘감은 호구별성이 물었다.
“글쎄요, 일단 저들을 쓰러트리는 것이 맞긴 할 텐데…….”
오류가 뒤섞인 던전.
여느 던전이 그러하듯 눈앞의 적들을 쓰러트리면 끝나는 단순한 구조는 아니겠지.
하물며 영웅답급이라면 상당한 난이도의 조건이 숨겨져 있을 터였다.
– 클리어 조건 : 얼어붙은 베멸굶궈렛흐흐흐을 해방벴녀땍귁렵롼륌꽹뙤땟흐흐.
클리어 조건을 다시 살펴보았다.
오류 때문에 ‘얼어붙은’과 ‘해방’ 외 다른 것은 해석할 수 없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짐작건대 최종 목표는 얼어붙은 용신을 해방하는 게 아닐까.
글자가 깨진 조건을 반복해 읽으며 의미를 추측하던 나는 새삼 낯선 던전에 들어왔음을 실감했다.
지금까지는 오류가 섞인 던전이라고 해도, 커뮤니티에 알려진 본래의 공략을 참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정보도 없는 이번에는 몬스터들을 쓰러트리며 직접 공략법을 찾아 나가야 했다.
“일단은 저것들부터 치워 보자꾸나.”
사라가 차츰 가까워지는 냉동 용신들을 흘끗 곁눈질하며 말했다.
“뭐, 나는 도움이 안 될 터이니 여기 얌전히 숨어 있으마.”
“아니, 이 영감탱이가 또!”
이제 완전히 호구별성을 전용 방패 삼기로 했는지, 팔짱을 낀 사라가 능숙하게 호구별성의 뒤에 섰다.
불퉁해진 그녀가 독기를 뿜든 말든 평소처럼 태평한 얼굴이었다.
“대왕님께서도 제 뒤에 계십시오.”
용신들에게서 나를 가리고 선 강림 형이 사라와 호구별성을 한심하다는 듯 흘기며 말했다.
“팔은 가급적 쓰시지 않게 하겠습니다.”
-멍멍멍!
형과 나란히 선 멍군도 소리 높여 짖었다.
“그래, 너는 내가 놓친 적이 있으면 물어뜯어라.”
멍군에게 지시한 강림 형이 발설지옥의 신성을 내뿜었다.
파아앙!
검푸른 빛이 번쩍이며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던 용신들을 덮쳤다.
-그으윽!
용신들은 막지도 피하지도 못한 채 얼음이 깨지듯 바닥에 널브러졌다.
파아앙!
파아아앙!
구체적인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발설지옥의 신성은 검푸른 빛만을 연속적으로 번쩍였다.
그때마다 바닥에 흩어지는 얼음 조각들이 늘어났다.
주위의 얼음 용신들을 순식간에 부숴버린 강림 형이 거목처럼 굳건하게 내 곁에 섰다.
“어이구!”
신성을 끌어올리며 자연스럽게 역안이 된 호구별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속전속결이네? 기합 장난 아닌데?”
그녀가 끼어들 새 없이 모든 적들을 해치운 참이니 놀랄 만도 했다.
견묘지간 사이에 모처럼의 칭찬이었지만 형은 감흥 없는 얼굴로 내 옆을 지킬 뿐이었다.
“얼씨구.”
호구별성은 그런 형의 반응을 이제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쓰러진 얼음 용신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근데 이건 뭐 마네킹이냐? 속이 텅텅인데?”
그녀의 말대로 얼음 용신들은 진짜 용신들을 얼려 놓은 게 아니라 용신을 본떠 만든 인형이었다.
부서져 나뒹구는 그들의 머리와 몸통은 겉모습만 그럴듯할 뿐 속이 비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구력은 약한 것 같구나.”
호구별성의 뒤에 숨은 사라가 조각난 용신들을 살피며 말했다.
“그런데 영향력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어요.”
나는 허공에 뜬 영향력 수치를 확인하며 얼음 용신들의 잔해를 둘러보았다.
우리를 공격해 온 적들이 모두 쓰러졌는데도 던전을 지배하는 법칙의 영향력은 ‘100%’ 그대로였다.
“역시 단순히 쓰러트리는 것은 공략법이 아니네요.”
그렇다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뜻.
한데 용신들을 쓰러트리고도 특별히 달라진 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던전의 구조물이라도 바뀌려나 싶어 살펴봤지만 얼어붙은 궁전은 처음과 똑같았다.
모든 것이 새하얀 궁전 안에서 간간이 색을 가진 것은 얼어붙은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산호가 전부였다.
“대왕님, 이곳을 봐주십시오.”
문득 강림 형이 반장갑을 낀 손으로 부서진 용신들의 잔해를 가리켰다.
“응? 뭐야, 기분 나쁘게 생겼어.”
눈을 가늘게 뜬 호구별성이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색도 좀 거무죽죽한 게 꼭 심장 같지 않냐?”
듣고 보니 정말로 심장을 닮은 형태였다.
얼음 조각과 도자기 인형이 아무렇게나 부서진 듯한 잔해 사이, 검붉은 심장들이 곳곳에 진짜와 같은 모습으로 섞여 있었다.
“아이템 같은데 한번 주워 볼까요?”
“제가 하겠습니다.”
가까이 가려 하니 형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
나는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한 채 형의 등을 바라보았다.
흑암지옥의 어둠에 당한 나를 그가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전보다 더욱 철저해진 태도는 오히려 불편함을 키웠다.
안 그래도 과보호하던 형인데 한층 더 과해졌다.
그렇다고 줄곧 나를 염려해 온 형을 향해 내 마음이 불편하니 그러지 말라 말을 할 수도 없었다.
“……!”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친 어깻죽지에서 욱신 통증이 일었다.
아려 오는 상처에 입을 꾹 다물었다.
차사에게 마음의 짐을 느낀 것이 트리거가 된 것이다.
머릿속에 얽힌 생각들을 의식적으로 흩트렸다.
지금은 상념에 빠질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고, 다행히도 고통은 상처가 터지기 전에 가라앉았다.
“아이템이 맞습니다.”
심장을 주운 형이 나를 돌아보았다.
“혹시 뭐라고 설명되어 있어요?”
상념을 막기 위해 곧장 아이템에 대해 질문했다.
“한기를 모으는 심장이니 화기로 녹여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화기로 녹여야 한다고?
왜, 어떻게, 얼마나 녹이라는 말이지?
뭔가 감이 잘 오지 않는 설명이었다.
다소 어리둥절한 심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는지 형이 심장을 공손히 내밀었다.
“직접 살펴보시겠습니까?”
내가 끄덕이며 심장에 손을 뻗으려 할 때.
[ (!) 얼음 산호가 얼어붙은 심장에 한기를 불어넣습니다. ]갑작스레 새로운 팝업창이 떴다.
[ (!) 얼어붙은 심장이 얼어붙은 병사로 되살아납니다. ]팝업창이 떠오르자마자 형은 심장을 쥐어 터트리려 했다.
그러나 심장은 형의 악력에도 터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곳에는 그것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파스스스!
널브러진 냉동 용신들의 조각이 각각의 심장을 중심으로 자석에 쇠가 달라붙듯 모여들었다.
“이런!”
이어지는 광경에 탄식이 샜다.
부서진 조각들이 다시금 원래의 모습으로 합쳐져 몸을 일으켰다.
얼어붙은 몸을 휘감은 한기는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이번 공략 포인트는 심장이었나 봐요.”
되살아난 얼음 용신들을 보며 말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빠르게 내게 등을 보인 형이 다시 신성을 휘둘렀다.
파아아앙!
발설지옥의 권능에 휩쓸린 용신들은 산산조각이 나서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러자 이전과 같이 껍데기뿐인 잔해 사이로 검붉은 심장이 나타났다.
심장은 말 그대로 냉동 용신들의 핵이었다.
핵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용신들은 끝없이 되살아날 터였다.
심장은 강림 형의 악력에도 터지지 않았다.
단순 물리력을 이용하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의미다.
“한기를 모으는 심장이니 화기로 녹여야 한다…….”
심장의 아이템 설명을 상기했다.
심장을 막 발견했을 때는 아이템의 역할을 알지 못해 설명을 들어도 모호했지만, 파괴가 목적이라면 그리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아까 채취했던 산호초.”
이곳 새하얀 얼음 궁전에는 드문드문 울긋불긋한 산호초가 장식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협곡에 들어서기 전 보았던, 화기를 머금은 붉은 산호초 또한 분명히 자리했다.
궁전의 벽에 박힌 붉은 산호초를 채취해도 되겠지만, 구태여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미리 채취한 산호초를 꺼내곤 자세를 낮춰 발치의 심장에 갖다 댔다.
[ (!) 얼어붙은 심장에 화기가 스며듭니다. ]팝업창이 떴다.
화기가 스며든 심장은 점차 검은 기가 옅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선명한 붉은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불길이 심장 전체를 뒤덮었지만 내 손이 화상을 입는 일은 없었다.
불붙은 심장은 더욱더 새빨간 빛을 향해 달려가듯 불타올랐고, 그 붉은빛이 최고치에 이른 순간.
[ (!) 얼어붙은 심장이 녹았습니다. ]마침내 다시 한번 팝업창이 뜨면서 허공에 표시된 법칙의 영향력이 ‘99%’가 되었다.
“심장을 다 녹이면 던전 보스를 만날 수 있겠네요.”
한데 영향력이 떨어졌음에도 심장은 재가 되어 사라지거나 불길이 사그라지는 일 없이 계속 똑같이 불타오르기만 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멍멍!
조금 난감한 마음으로 손바닥을 내려다보는데, 곁에서 불을 지켜보던 멍군이 심장을 향해 입을 벌렸다.
[ (!) 해태 멍군이 화기를 삼킵니다. ]“응……?”
뜻밖의 행동에 눈을 깜박였다.
불타는 심장째 사라진 손바닥은 깔끔하게 비었고, 불을 삼킨 멍군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불을…… 먹는 걸 좋아하나?”
그러고 보니 그것 말고는 멍군이 뭘 먹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럼 지금까지 화속성 공격을 막아줄 때마다 나름 식사를 한 셈이었던 건가?
가짜 몸에 현신해 밥을 먹어야 하는 우리처럼, 멍군도 식사를 해야 하는데 내가 그동안 불도 안 주고 굶겼던 거면 어떡하지?
뒤늦은 깨달음에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며 입을 막았다.
“흠, 어쨌든 방법을 찾았으니 우선 심장부터 전부 태우자꾸나.”
이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건 나뿐인지 사라는 사방에서 나뒹구는 심장들을 둘러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던전을 공략하는 일도, 심장을 불태워 그걸 멍군에게 먹이는 일도 시급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기를 머금은 산호초를 우르르 꺼냈다.
남은 심장은 총 49개.
심장이 하나하나 역할을 마치고 처치 곤란 불덩이가 될 때마다 멍군은 꼬리를 흔들며 불을 먹어 치웠다.
“……그새 좀 통통해졌네.”
마침내 법칙의 영향력이 ‘50%’가 되었을 때.
나는 그 많은 불을 전부 먹어 치운 멍군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대걸레 같던 몸이 이제는 빵빵하고 하얀 대걸레처럼 되어 있었다.
-멍멍!
빵빵해진 멍군은 내 주위를 빙빙 돌며 폴짝폴짝 뛰다가,
-멍멍멍!
얼음 궁전의 벽으로 불쑥 달려들었다.
빵빵해질 만큼 화기를 잔뜩 머금어서일까?
벽이 불에 닿은 아이스크림인 양 녹아내리면서 가려진 공간이 드러났다.
우리가 선 홀과 비슷한 공간이었다.
투명한 얼음벽에는 산호초 대신 여러 용신들이 잠든 채로 얼어붙어 있었다.
또한 한가운데에 몹시 크고 새파란 산호가 우뚝 솟아 있었다.
산호는 보기만 해도 솜털이 서는 듯한 짙은 한기를 내뿜었다.
“흐음, 해태가 삿된 것을 꿰뚫어 본 모양이구나.”
팔짱을 낀 사라가 말했다.
“이야, 딱 봐도 저게 얼음 산호네.”
호구별성이 감탄사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말없이 산호를 주시했다.
산호가 내뿜는 한랭한 기운 너머, 익숙하면서도 불쾌한 기운이 느껴졌다.
본래 내 것이었어야 할 힘이었다.
“역시…… 산호가 지옥수를 품고 있네요.”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는 업경의 권능이 산호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곳은 흑암지옥의 나무를 키우기 위해 삿된 주술로 개조된 던전이었다.
얼음 산호를 녹이면 그 아래 감춰진 지옥수가 모습을 드러낼 터였다.
문어 용신들의 혼백에서 읽어낸 기억 속 지옥수가 바로 그것이었다.
“흑암지옥의 나무를 꺼내면 어둠에 갇힌 오휼과 오혜도 찾을 수 있겠죠.”
업경의 권능은 지옥수의 기운뿐 아니라 두 용신의 신성 또한 감지했다.
다만 그들을 꺼내려면 그들을 가둔 어둠의 본체, 지옥수부터 찾아내야 했다.
“일단…… 제 화탕지옥으로 녹여 보겠습니다.”
다만 말을 꺼내면서도 확신은 서지 않았다.
이 던전의 등급은 영웅담.
같은 영웅담 등급이었던 업신 던전의 황금돼지도 업경과 화탕지옥만으로는 화력이 조금 모자랐는데, 과연 얼음 산호를 녹일 수 있을까.
자연스레 이무기 터와 불가사리 던전에서 일으켰던 백염이 떠올랐다.
하나 흑암지옥의 독에 당한 이후로 줄곧 내게 마음을 쓰는 형에게 그 모습을 또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가볼게요.”
그렇다면 업경과 화탕지옥으로 최대한 화력을 내 보는 수밖에.
[ 업경(L) ]스킬을 발동하자 얼음 산호를 중심으로 세 개의 거울이 솟아났다.
츠츠츠!
츠츠츠츠!
[ 업경(L)의 권능이 당신의 신성에 공명합니다. ]산호는 용신들의 궁전을 빼앗았다는 업을 품었고, 업경은 그 점을 이용해 신성을 증폭시켰다.
[ 화탕지옥(L) ]도둑질한 죄인을 벌하는 화마(火魔)가 얼어붙은 산호를 감쌌다.
화르륵!
화르르르륵!
[ (!) 얼음 산호가 화마에 휩싸입니다. ]팝업창이 뜨고 사방에서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휘몰아쳤다.
파아아앙!
강림 형이 발설지옥의 신성으로 우리를 덮치려던 얼음 파편을 날려버렸다.
“산호의 공격은 제가 막겠습니다. 걱정 마시고 집중해주십시오!”
이어지는 형의 말에 나는 재차 화력에 집중했다.
화르르륵!
화르르르르륵!
그러나 불길이 거세질수록 처음 품었던 의심도 함께 커져 갔다.
“……안 돼.”
불을 더하며 작게 신음했다.
“……또 모자라.”
불길을 높일 마력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건만 얼음 산호에서는 아직도 끝 모를 한기가 느껴졌다.
“젠장…….”
낭패감에 꺼져가는 목소리로 욕설하면서도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라 어떻게든 힘을 더할 때였다.
-멍멍멍!
옆에 섰던 멍군이 산호에 달려들었다.
“허?!”
“아니, 쟤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란 차사들이 멍군을 말리려 했으나.
화르르륵!
불을 많이 삼켜서 한껏 빵빵해진 멍군이 얼음 산호를 향해 거대한 불길을 내뿜었다.
[ (!) 해태 ‘멍군’이 삼켰던 불을 토해냅니다. ]직후 또 한 번 뜻밖의 팝업창이 떴다.
[ 해태 ‘멍군’의 레벨이 1 상승하였습니다! ] [ 당신의 ‘풍문(E)’이 당신의 전설에 공명합니다! ] [ 당신의 ‘풍문(E)’이 ‘무용담(E)’으로 변화합니다! ]악인을 벌하는 신수의 새로운 무용담이었다.